연례행사로 있는 명절 및 기일 때마다 상에 올린 대추를 냉장고에 보관해 놓고 보니 어느새 꽤 많이 모아졌다.
양이 많다보니 냉장고 한켠을 나름대로 많이 차지하고 있어서, 오늘 드디어 일을 저질렀다.
대추차를 만들기로 했다.
대추차래야 주재료는 한 바구니 되는 대추와 생강 그리고 계피가 전부이니 얼마나 간단할까....
그러나 간단히 차를 만들수 있다는건 정말 큰 오산이다.
몇번 대추차를 만들어 보았지만, 정말 잔 손도 많이 가고, 과정도 많고 해서 솔직히 큰맘 먹지 않으면
그냥 껍질이 장난 아니게 까끌까끌한 마른 대추를 씹어 먹으려 했으니 말이다...
대추차를 만들기에 앞서 대추에 대해서 좀 부연 설명을 한다면,
대추는 맛이 달고 독이 없으며 속을 편안하게 하기 때문에
얼굴이 밝아 보이고 몸이 가벼워진다고 알려져 있다.
“양반 대추 한 개가 아침 대추 해장” 이라는 속담이 있듯 몸에 좋은 대추는
주로 약을 달이거나 한방 건강식을 만들 때 빠지지 않고 이용되어 온 천연 식품이다.
대추차의 재료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대추 600g, 생강 20g, 약간의 계피가 있으면 된다.
계피는 우리나라에서 아주 극소수로 생산이 되기 때문에 대부분 베트남이나 중국에서 수입을 한다고 한다.
무조건 made in China 라고 해서 경원시하면 안된다는걸 한약방 주인 아저씨가 그러는 거다.
아무튼 계피는 끓는 물에 한번 끓여낸다.
생강은 껍질을 벗기고 국물이 잘 우러날 수 있게 얇게 저며놓는다.
계피는 너무 많이 넣으면 대추향보다는 계피향이 더 많이 날 수 있기 때문에 소량을 넣는다...
대추차에 생강을 넣는 것은 대추와 더불어 생강이 따뜻한 성질을 갖고 있고
대추향의 깊이를 더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냉장고 안에서 묵어 있기 때문에 미지근한 물에 대추를 넣어 3-4회 정도 깨끗이 씻어
채에 받쳐 물기를 빼놓는다.
그리고 솥에 3-5시간정도 대추를 우릴것을 계산하여 물을 넉넉히 붓고
대추와 생강 그리고 계피를 넣는다.
그리고 점화~~~~
대추를 끓이는 동안, 물기를 씻어놓은 대추에 길게 칼집을 넣고 씨를 발라낸다.
무엇에 쓸꼬 하니.....
대추차 위에 얹을 고명으로 사용할 거다.
씨를 발라낸 대추를 꼼꼼히 돌돌 말아 놓는다.
어느정도 대추과육이 엉겨 붙어 말아놓은 모양이 그대로 형태를 유지할때
살살 칼을 톱질하듯이 날렵하게 썰면, 이렇게 귀여운 모양이 된다.
접시에 얌전히 담아 한쪽에 모셔놓고...
그동안 시간이 좀 많이 흘렀다...
대추가 팔팔 끓어 오르면 20분 정도 센불에서 끓이다 약불에서 3시간정도를 과육이 흐믈흐믈해질때까지 끓인다.
원래는 이렇게 3-5시간 약불에서 뭉큰히 끓이면 하룻밤 정도 식게 내버려 두었다가,
다음날 대춧물이 갈색으로 우러나온 솥에 두손을 담그고 사정없이 대추를 뭉게어 으깨는 일을 한다.
그때의 쾌감과 기분은 정말 뭐라 표현하기 그렇지만 희비의 쌍곡선이 그어지는 순간이다.
내 손안에서 쪼글쪼글하고 질긴 대추살이 물컹해져 조금의 힘만 주어도 터져버려 내 손을 간지럽히면서도
양끝이 날카로운 대추씨가 살속에서 빠져나와 어느 순간에 내 손아귀에 들어와 힘을 주기만 기다리고 있다가
일순간 내 손을 사정없이 찔러대는데 그 날카로움이 만만찮게 아프기 때문이다.
오늘은 한참 끓인 대추의 주름이 다 펴지고 통통히 부풀어 올라
한번 눌러보니 금새 살이 툭 하고 터져버릴 정도가 되어서
채로 건져내어 보올에 넣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으깨었다.
오늘 대추차를 만들어서 시음하고 싶기도 했고, 내일이면 일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처럼 탄력 받아서 몰입하는 즐거움의 멜로디를 멈추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어서 편법을 쓰기로 한것이다.
으깬 대추를 다시 솥에 넣고 센불에서 끓어 오르면 이번엔 약간 중불의 세기에 맞춰서
나머지 대추 살이 흐믈댈 때까지 끓인다...
그동안 늦었지만 이른 저녁을 미리 먹고, 잠시 집안의 소일꺼리를 챙겼다.
거실에 온통 은은한 계피향과 대추향이 진동을 한다.
어느정도 대추껍질과 살 그리고 대추씨가 분리가 되면 이제 슬슬 대추차가 본색을 드러낸다.
아마 거의 3시간을 끓인것 같다.
넓은 스텐보울을 놓고 그 위에 체을 얹어 놓고 끓인 대춧물을 붓는다.
처음엔 맑은 진한갈색의 대춧물이 아래로 떨어진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다.
나무주걱으로 거의 분리된 대추를 마지막까지 아래로 눌러대며 육즙을 내린다.
그런데 이 육즙이 보기와는 달리 아주 걸죽해서 체의 망에서 잘 안 걸러지기 때문에
나무주걱으로 꾹꾹 누르며 저어주어야 육즙이 아래로 떨어진다.
이런 과정을 대여섯번 하고 나니 양쪽 손목이 후들거린다...
그 수고로움을 알아 주기라도 하듯이, 걸죽한 대춧물이 솥에 절반 정도 받아졌다.
그리고 다시 30여분을 센불에서 그리고 약불에서 끓여댄다.
드디어 완성이다.
미리 준비해 놓은 대추 고명을 두 점 차에 띄우고 잣도 대추차 위에 모양을 내어서 띄웠다.
보기만 해도, 진한갈색의 걸죽한 대추차와 부드럽고 구수한 향에
벌써 몸이 따뜻해진 기분이다.
기호에 따라 종지에 꿀을 담아 예쁜 소반에 내어 놓으면 훌륭한 대추차를 손님에게 대접할 수 있을것이다.
물론 나 자신을 위해서 정성을 다해 우아하게 내 놓는다면 이 또한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 아닌가...
난 단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구색을 맞추려 꿀을 옆에 놓았을 뿐, 그냥 마시기로 했다.
시음을 해보니 정말 구수했고, 그 뒷맛에 약간의 생강과 계피의 향이 대추차의 풍미를 더해 주었다.
그리고 과육까지 으깨어 내렸기 때문에 꿀이나 설탕을 넣지 않아도 단맛이 충분했다.
따끈한 대추차 한 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정갈하게 올리고 싶은 마음으로.....
내게 주어진 오늘 하루, 미완의 일들 또한 정성껏 소중히 보낼 수 있길 간절히 바라며....
지초님 글중에서
첫댓글 정성이 많이 들어가네요. 좋은 정보 감사 드립니다 ^^*
글주인님 차를 넘 좋아 하시는분이고 자유여행가이며 사진술 또한 프로에요 아름다움이 넘치는 여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