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정확하게 풀어
(사도행전 18 : 24-28)
사도바울은 제 3차 전도여행을 시작합니다.
갈라디아와 부루기야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게 하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렀습니다.
1. 아볼로는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입니다.(24절)
본문 24절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아볼로는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입니다.
아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인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부터 성경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성경의 지식에 탁월한 실력이 있었고, 언변에도 능해서 다른 사람들을 잘 가르쳤습니다
요즘으로 하면 모태신앙인이었고 성경에 대하여도 어느 정도 지식이 있었고, 주일학교 교사도 하고, 속회 인도자도 했다는 말입니다. 어릴 적에 많은 사람 앞에서 세례를 받고 내가 이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갈 겁니다. 하고 선언하고 결단한 적도 있고,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결단하도록 요청 하는 일도 잘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단 한 가지 약점이 있었습니다.
성령님에 대하여, 영적인 세계에 대하여 무지했습니다.
지적으로는 좋았는데 영적으로는 무지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했고, 교회는 나와 앉아 있었지만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에는 아주 많은 약함을 드러내었습니다.
교회는 나아오지만 영적인 기쁨이 없습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가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삶이나, 정직하다 성실하다 공의롭다와 같은 영적인 단어들에는 취약합니다.
단지 이 세상에서 잘 살고 싶고, 이 세상에서 부족함 없이 살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만을 바랄뿐인 상태입니다.
아볼로는 그랬습니다.
로마서 15장 13절에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8장 26절에 ”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니라“
2.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주었습니다.(26절)
본문 26절에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여기 성경에 능통할 뿐만 아리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브리스길라라고 하는 부인과 아굴라 라고 하는 남편이었습니다.
부부는 아볼로를 따로 만나서 성령님의 일하심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다행히 이 부부는 일찍 사도바울을 만나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배웠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도 배운 사람들입니다.
많은 성령의 은사를 받았고, 성령의 열매 맺으며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이 땅에서도 그 나라를 체험하며 살던 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이들 부부가 가만히 보니까 아볼로은 다 좋은데 성령님을 만나지 못한 것 같아 보여서, 따로 자신들이 믿어온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볼로가 무척 당황 하였습니다.
자신이 성경에 대하여 아주 잘 아는 전문가인지 알았는데 자신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영의 세계를 말하는 부부가 있다는 것이 어쩌면 어릴 적부터 똑똑하다고 인정받았던 아볼로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 배우려고 하고, 부족함을 인정하고 더 사모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면 좋을 것은 대부분 그런 사람들은 조용히 떠나려고 합니다. 착한 척을 해야 하니까 대적하지 않고, 배우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떠나려고 합니다.
참 아쉬운 부분입니다.
당시 최고의 선생님 중에 한 사람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서 배우고 또 배웠으면, 성령체험도 하고 눈물도 흘려보고 결단도 했으면, 사도 바울과 더불어서 쌍벽을 이루며 큰 사역을 감당했을 것을 아볼로은 자기보다 더 영적인 사람들이 나오자 조용히 떠나려고만 합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9절에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3.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였습니다.(28절)
본문 28절에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말은 예수님은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제사장와 왕과 선지자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제사장이 되어 죄사함을 받도록 제사를 드려 주는 사람이고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 되어 우리를 다스리고 보호하는 사람이고
예수님은 우리의 선지자가 되어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복음의 능력과 성령충만함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충만을 사모하지 않는 사람들,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진리 앞에 나를 세우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볼로와 같은 사람입니다.
지식이 많으니 말도 잘했고, 말 잘한다는 유대인들은 많이 이겼습니다.
그래서 말로 사람들을 굴복 시킨적도 많았습니다.
그랬지만 여전히 성령의 열매는 맺히지 않았습니다.
흔히들 이야기 합니다.
그래도 그냥 그렇게 믿으면 되지..
성령의 열매가 없어도, 성령의 은사가 내게 한 가지도 안 나타나도 그냥 교회 다니면 되지, 뭐 그게 그렇게 중요하냐고..
그런데 성령 받지 못한 사람들은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아볼로가 처음에는 좋았는데 점점 지식으로 뭉쳐지다 보니까 고집이 세지고 자아가 강해졌습니다.
자존심이 강해지고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교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겸손해지지만 성령님이 떠나시면 교만해집니다.
그 교만의 증거는 불순종으로 나타납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2절에 “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
무슨 말씀입니까?
당시 최고의 스승이신 사도바울께서 아볼로에게 권면하였습니다.
형제들과 함께 이제 다시 고린도교회로 돌아가라고!
그랬더니 아볼로가 계속 거절하더라는 것입니다.
갈 뜻이 전혀 없다고... 몇 번을 권면해도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교만해지면 스승도 눈에 안 보이고, 영적인 권위도 무시합니다.
교만해지면 당연히 불순종하게 됩니다.
뿐이 아닙니다.
아볼로는 고린도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동안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을 중심으로 파당을 만들었습니다. 친하게 지내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파당을 만들게 되면 다른 모든 사람들을 적군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교회 안에 다른 모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아볼로 편이다, 나는 바울 편이다 나는 베드로 편이다.
나는 이것저것 다 싫은 사람들이다.
왜 이렇게 됩니까? 그렇게 성경공부도 많이 하고, 제자교육도 많이 하는데 왜 파당이 생겨나고 불순종하고 교만해집니까? 그들 안에 성령님이 계시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이런 것을 미리 다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다른 방법으로는 너희가 증인의 삶을 살 수 없고 오직 성령이 임하셔야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초대교회에도 보면 성령 충만한 사람을 교회 일군으로 세웠습니다. . 교회에서 일하려면 돈도 있어야 하니까 돈이 많은 사람을 세울 수도 있었지요. 그런데 초대교회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냐 아니냐를 보았다는 거예요. 그만큼 성령 충만이 중요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님께서 인격적으로 나를 100% 이끄시게 만들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은 인격적으로 이끄시니까, 성령께서 인격적으로 나를 100% 장악하게 만들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지혜 있게 사는 비결 중의 비결은 성령 충만하게 사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게 사는 것이 세월을 아끼는 것이고, 성령 충만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되는 것입니다.
전에는 나 중심으로 살았는데, 성령이 충만하니까 하나님 중심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를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게 되는 거예요. 기도하고 싶어지고, 전도하고 싶어지고, 사랑하고 싶어지고, 성경 읽고 싶어지고, 감사하고 싶어지고, 하나님께 자꾸 더 드리고 싶어집니다.
성경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더 정확히 하는 성령충만한 사람이 되어 예배자, 전도자, 예수님의 제자가 살아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