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포교원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불교입문은 말그대로 입문서로서 부족함이 없을정도로 훌륭한 책입니다.
교양불교대학은 1971년 전국신도회에서 근대화의 물결에 맞춰 동국대학교 강당에서 처음 시작했습니다.
그후 꾸준히 늘어 지금은 수십개에 이르는데 불교대학은 많아도 교재는 각각의 절에서 임의로 편집하였는데 몇년전부터 포교원에서 불교입문을 편집한후 꾸준히 개정하더니 이제는 어디에다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교과서가 되었습니다.
우리절에도 규모는 적지만 불교대학이 있는데 불교입문을 교재로 쓰고있습니다.
오늘은 제 5장 불자의 신행중 첫번째 수행과 기도를 공부할차례인데 그중에 발원과 욕심과의 차이에 대해 설명한 것이 참 잘 정리되어 있어서 글을 올립니다..
욕심과 발원의 차이는 크게 네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욕심은 다분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바람이지만, 발원은 공통적
바람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것은 오직 나만을 위한 욕망이 아니라 우리모두,인류전체,나아가서는 모든 중생을 행복과 평화의 세계로 이끈다.
여기에서 나와 남은 구분되지 않는다.
둘째, 욕심은 본능적인 것이지만, 발원은 능동적인 수행을 동반한다.
잘 먹고 잘 살고, 부와 명예를 바라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발원은 욕심보다 더 깊지만 욕망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욕망에 가려진 본능을 본래대로 되돌리려면 욕망을 제어하고 통제해야 한다. 그것이 수행이다. 자기 욕심을 제어하고 자신을 돌이키면서 원을 발하여 자꾸 베푸는 마음을 연습함으로써 아상을 소멸해 가는 것이다.
셋째, 욕심은 의도된 의지이지만 발원은 순수 의지를 지향한다. 순수의지는 공과 무아에 바탕을 둔 깨끗한 마음이다. 선악의 분별,나와 너의 분별,가치와 반가치의 분별을 떠난, 참으로 선한 행위가 순수 의지이다.
거기에는 나도 없고 너도 없으며 순일 무잡한 전체가 있을 뿐이다.
넷째, 욕심은 결과를 중시하지만, 발원은 과정 그 자체를 중시한다.
한마디로 발원은 결과에 대한 집착이 없다. 욕심은 미래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욕망 달성을 위해서 때로는 현재의 희생을 강요한다.
하지만 발원은 현재에 중점을 두고 있다. 물론 스스로가 세운 원을 달성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기는 하지만, 결과에 대한 집착 없이 바로 지금 여기에서 노력하는 그 자체가 즐거운 것이다.
발원은 참다운 자기 전환의 시작이다. 끌려다니는 업생이 아니라 창조적인 원생으로 나아가는 첫 단추인 것이다. 업생이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채, 그저 과거에 지은 업에 이끌려 살다 가는 것이다. 반면 원생은 스스로의 삶을 갈무리해 나가는 창조적 삶이다.
창조적 삶은 걸림이 없으며 당당하고 활기차다. 걸림만 없다면 무엇이든 마음에 그리는 대로 된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마음을 집중하면서 노력하면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마음 속 어딘가에 걸림이 있기 때문에, 즉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욕망에 따른 의욕이나 선입관을 가지고 할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원을 세워 반드시 이루고 말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부지런히 노력해야 한다.
발원은 욕망으로 물들어 있는 에너지를 생명 창조로 방향 전환하는 것이다. 부정을 긍정으로, 나에서 우리로, 부분에서 전체로, 고통에서 기쁨으로, 대립에서 평화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다. 발원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것으로 사홍서원이 있다.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중생무변서원도)
번뇌을 다 끊으오리다(번뇌무진서원단)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법문무량서원학)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불도무상서원성)
이 사홍서원은 대승 보살들이 깨달음 성취와 중생구제를 위한 보편적인 실천덕목으로 제시한 것이다. 깨달음을 향해 보리심을 일으킨 보살은 어떠한 난관에도 물러서지 않는 견고한 결의를 일으켜야 한다.
이타행을 통해 모든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 제도하면서도 누구를 제도한다거나 누가 제도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것, 그래서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는 것이 바로 보살의 서원이다. 보살은 항상 무아로서 전체와 함께하고 있다. 중생을 구제하는 일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기에, 한계가 없는 전체이기 때문에 무량하고 무수하고 무변하다. 그래서 큰 서원이라 한다. 이러한 사홍서원은 모든 보살이 지녀야 할 모든 인류가 지녀야 할 보편적인 원이라 해서 총원이라 한다. 반면 각각의 보살들이 갖는 개별적인 원이 있는데 그것을 별원이라 한다. 보현보살의 십대원이라든가 문수보살의 원, 지장보살의 원 등이 그것이다.
서원은 클수록 좋겠지만, 자신의 현재 상황과 부합하는 것으로 하는 것도 괜찮다. 예컨대 지금 자기가 가장 절실하게 바라고 있는 것으로 병고를 극복하거나 무엇을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조그마한 생명이 아니라 전체로서 열려 있어야 한다.
병고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나 자신은 물론 ‘모든 중생이 다 병고에서 벗어나지이다’ 하며, 마음의 안정을 성취하고자 한다면 나 자신은 물론 모든 중생이 다 마음이 편안하여지이다‘ 하는 식으로 발원해 나가야 한다.
첫댓글 ........()()()........
몇년 전 저도 그 교재로 공부했었는데요, 참 알차게 잘 엮어져서 지금도 가끔 펼쳐보곤 한답니다.
글 잘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
_()()()_
마하반야바라밀()()()
마음을 갖고 있으면 시절 인연이 닿으면 이루어 지던데.... 그 시절 인연이 언제 오느냐가 문제랍니다.. 모든 일에 쳐다보는 눈이 아름다워야 결과도 좋은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