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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사역 부흥방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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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원 심점옥
교회의 교육의 미래이기도 하며 현실이기도 한 청년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찾고자 하며, 무학교회 김창근 목사님의 청년목회를 모델 삼아 현재 섬기는 우리 교회에 적용한다.
우리교회, 미래는 청년과 복음에 있다.
1. 청년사역의 매력과 의미
가. 청년사역의 매력: 청년리더십의 특권
우리 모두는 청년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건강한 부흥을 꿈꾼다. 청년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사람들을 키운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청년들은 무한한 하나님의 꿈이고 가능성이다. 그런 청년들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것이 행복이다. 다시 말하면 청년들이 하나님 나라의 생명력이고 운동원이다.
그러므로 청년들을 섬기는 청년 리더십들이 하나님 나라를 꿈꾸지 않으면 이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드리울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그 일에 헌신한다면 그들로 인해 세상은 아름답게 변화되어질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죽음 이후에 경험해야만 하는 세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경험되어져야만 하는데 청년들을 섬기는 리더십의 자리는 하나님 나라 경험의 최전방이라고 생각한다.
청년사역자들, 선교단체 간사, 청년대학부 사역자, 청년간사, 리더 임원으로 섬기는 우리 모두는 영적인 전투현장(야전)에서 달리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서 있는 청년의 현실이라는 곳에는 전투가 끝이 없다. 휴전도 없다. 크고 작은 승리와 패배를 반복하면서 영적인 지형도가 바뀌는 최일선에서 피 흘리고 땀 흘리고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청년 리더십이라고 생각한다. 방심은 금물이다. 끝없이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견고하여 더욱 주의 일에 힘써야 하는 자리이기에 계속되는 영적 전투 속에서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이 청년 리더십들이 가진 특권이자 은혜라고 생각한다.
나. 우리교회에서 청년세대의 의미
청년세대는 교회에서 말하는 허리세대이다. 시성세대와 다음 세대의 커넥션(연결)을 맡고 있다. 몸에서 허리가 약해지고 허리가 사라지면 각종 질병에 노출되고 건강이 악화되어 결국엔 병들고 죽을 위험이 있는 것처럼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에서 청년이 줄어든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신호이다. 청년은 교회의 미래이다. 청년이 사라지는 것은 교회의 미래가 사라지는 것이다.
2. 청년사역의 문제점
첫째, 아래로의 소통의 문제이다. 청년세대는 미전도 종족이다. 해마다 청년들이 바뀌므로 새롭게 연구하고 다가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둘째, 위로의 소통의 문제도 있다. 청년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안타깝게도 청년들을 살리고 세우고 격려하는 기성세대들이 의외로 많지 않다. 지배하려고 하고 섬김 받으려하고 주인이 종에게 하듯 종노릇을 하는 권위주의적인 접근은 정말 위험하다. 지금이야말로 사람을 키우는 정책과 그 정책을 세울 사람이 필요하다.
셋째, 건강한 청년상으로 청년들이 주가 되고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구조가 중요하다. 동시에 성숙한 사역들의 적절한 지도와 지원이 필요하다. 그래야 건강한 사역이 가능하다. 청년이 주체라고 해서 모든 것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려고 하기보다 경험이 있고 성숙한 선배세대로부터 들어야 한다. 그리고 도전정신과 창조적인 생각들로 생명력 있는 변화를 추구하면서 멘토링과 코칭을 받으면 새 부대가 될 것이다. 그 때에는 이전세대보다 더 아름다운 청년사역의 계승이 가능하다.
넷째, 특히 교육적인 측면에서 가르치는 일과 관련해서 청년사역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역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되어져야 한다. 동시에 은사 사역과 관련하여 청년 리더십의 역할이 중요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각각의 역할을 존중하면서 함께 이루어가야 한다. 몸이 지체라면 지체의 각 역할을 잘 조율하고 조정하면서 유기체적인 구조를 이루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선배세대를 보면서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부분을 어떻게 수정 보완해 갈 것인지를 잘 분별하면서 준비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자신들이 그 자리에 섰을 때 대안의 사람으로서 서야 한다. 청년사역의 도처에 산발랏과 도비야가 있다. 그때마다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다. 자기성찰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야 한다.
3. 청년사역의 특징
가. 젊은이 사역은 타문화권 사역이다.
부정적인 면에서는
공동체 중심성에서 개인주의적으로 변한 것이 심각한 문제이다. 과거보다 시야가 좁아지고, 관계가 좁아지고, 생각이 좁아지면서 점점 자기중심적이 되어 간다. 자기 소위에 좋을 대로 행하는 사사시대의 위험성이 오늘 우리 시대에 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왜곡된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다. 한국사회 청년들은 집단적인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참 위험한 일이다. 자폐적인 증상들도 많아진다. 자기 생각 속에서 도무지 헤어 나오지를 못한다. 자기를 모든 것의 기준으로 삼으면 세상은 혼돈하고 공허만이 판을 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기 속에 갇혀 있는 청년을 이끌어 내는 일이 어렵게 된다.
긍정적인 면에서는
요즘 청년들은 의미와 가치를 추구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눈에 보이는 규모의 논리에 사로잡혔다면 요즘엔 의미와 가치의 논리에 더 가까이 간다고 생각한다. 남들 보기에 좋아 보이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보기에 좋아 보이는 삶을 추구하는 것은 장점이자 동시에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획득된 권위를 인정하지만 권위주의에는 선긋기를 한다. 어른들에 무조건 따르기보다 본인들이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을 존중해야 하는 세대들이라는 의미이다.
청년들을 새에 비유한다면 과거에는 텃새처럼 한곳에 정착하는 경향이 강했고, 현재는 철새처럼 사진의 필요를 따라서 쉽게 떠나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 비해서 떠돌이 청년이 많아 졌다. 이런 저런 이유로 공동체에 대한 헌신도가 많이 약해졌다.
직업에 비유하면 과거기성세대가 농경세대라면 요즘은 인터넷 속도처럼 빠르게 이동하는 유목민세대 같다. 일단 교회든 공동체든 설교든 무엇이든지 관심 없으면 바로 로그아웃한다. 클릭세대가 가진 장점을 살려 주면서도 단점은 보완하는 것이 타문화권 사역의 고민이다.
4. 청년들이 교회를 이탈하는 원인
교회 안에 다양한 영역에서 영적인 어른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청년들에게는 모델이 필요하다. 영적 어른이 사라진 교회는 위험하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씨름하는 참된 어른이 많아져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스포츠 의료 언론 등 일상 속에서 예배자로서의 모델이 너무 절실한데 세상과 교회 사이에서 괴리감이 있다.
교회에서 만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인정받고 칭찬받는 리더십인지 고민이다. 세상적인 성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의 성품과 신뢰성을 인정받고 있는가를 말한다. 그래야 청년들이 보고 듣고 배울 것이다. 청년들은 침묵하고 모르는 것 같지만 모든 것을 다 보고 듣고 지켜보고 있다. 영적 아비 세대가 절실히 필요하다.
무조건적인 봉사나 무조건적인 순종의 요구에 청년세대들은 공감하지 않는다. 교회의 구조가 권위적이고 경직되어 있을수록 청년들이 교회를 떠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청년들을 자녀로 보고 양육훈련을 충분히 하도록 배려하고 지원해야 한다. 청년들과 공유하고 공감하며 소통하는 시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가. 청년들 교회이탈의 내부적인 요인
삶으로 연결되는 성경적인 양육훈련의 약화이다. 그 결과 세상과 타협하거나 단절하는 약한 그리스도인들이 늘어났다. 신앙과 삶이 분리된 이원론적인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성경적 가치와 기준을 붙들고 씨름하지 않는다.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기꺼이 손해보고 희생하면서 변혁적인 작은 예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현장의 그리스도인들이 줄어든 것이 원인이다. 세상을 이기고 변화시키는 사람을 키워내는 작업이 부족하다. 숫자의 논리에 빠지고 있다. 소수만도 아니고 다수만도 아니고 “제자인가?”이다. 교회학교 교육이 약화되고 있다. 영적 기본기가 부족하다.
나. 청년들 교회이탈의 외부요인
분주함, 산만함, 조급함이라는 심각한 병에 걸려있다. 이러한 질병을 이겨내는 영적인 힘이 빈약하다. 취업준비학원처럼 변해버린 캠퍼스 상황, 청년실업의 증가가 본질에 집중하는 힘을 분산 시킨 것이다.
과거에 비전을 위해 쏟아 부었던 에너지가 지금은 3s에 부어지고 있다. 스포츠, 스크린, 섹스에 미쳐 있는 것이 한국사회 청년들의 현실이다.
거기에 한 가지를 추가해서 스마트폰을 추가한다. 언제부터인가 대화가 사라지고 같은 공간에서도 스마트폰으로 대화하고 소통한다. 스마트폰은 그 이면에 맘몬과 아세라가 영향을 미치면서 쥐고 흔들고 조정한다.
청년들을 다시 창조적인 자리로 이끌어 와야 한다. 창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교회도 청년도 병들고 죽어간다. 비교의식, 경쟁의식으로 스피드 따라잡기를 점검해야 한다. 1등외에는 모두 불행이라면 병든 사회이다. 창조의식의 회복, 소명의식의 회복이 중요하다. 스피드보다 스피릿이 중요하다.
교회에서의 청년이탈은 “사람 키우기의 실패이다.” 교회가 세상을 변혁 시킬 사람을 키워내야 한다.
5. 청년사역의 방향
가. 사람을 키우는 방법
성공의 복음이 아닌 성경의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달라야 한다. 세상이 보기엔 실패한 인생처럼 보이지만 복음을 위해 살고 성경적인 가치와 기준과 의미를 담아내는 삶을 위한 씨름을 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복음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다. 산의 정상을 정복해야 주님이 기뻐하는 것만은 아니다. 둘레 길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빈부가 어우러지고, 장애우와 어우러지고, 남녀노소가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성경의 복음이자 우리 시대에 산적한 문제를 풀어가는 비밀이라고 생각한다.
나. 어떻게 준비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불행(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있었는데 그 주인이 욕심이 나서 장장 황금을 많이 가지고 싶어 그 거위를 죽여서 배를 갈라서 만들어지고 있는 황금알까지 모두 차지했는데 그 것이 당장은 유익한 것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어리석은 일을 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이 우리들 교회에서 점검하여야 할 부분이다. 긴급성에 쫓겨서 중요하면서 긴급하지 않은 중요한 일들이 희생되고 있는 현실들이 없는지 말이다.
다시 말하여 청년들이 봉사 이전에 양육이라는 말이다. 물론 양육만 받고 봉사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제자가 되어야지 소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팬클럽의 팬이 아니라 제자여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전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고 동시에 세상 속에서 복음을 살아내도록 하는 전인적이고 총체적인 삶으로서의 제자도가 강조되어야 한다.
다. 청년교회의 방향
“세상을 품고, 세상을 섬기며, 세상을 변화 시키는 작은 예수들을 세우는 것”
양육훈련을 강화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을 제자로 키우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
프로그램이나 이벤트가 아닌 소그룹 중심적인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
세상을 품고 세상을 섬기는 섬김과 봉사에 대해 헌신하는 것
보육원, 장애우, 노인요양원, 미자립교회, 캠퍼스섬김, 사랑의 연탄 배달, 무의탁노인 섬김사역 등 섬김의 가치들이 맛있는 열매의 나무들처럼 주변에 널려 있다.
우리 청년들은 만인제사장적인 삶을 살도록 도전하고 격려하며 훈련하는 청년부로, 제2의 종교개혁을 이루는 청년부로 나아가야만 한다.
현세대의 청년들(스마트폰 세대)은 본질이 살아 숨 쉬지 않으면 언제든지 채널을 바꾸는 시대이다. 기다려 주지 않는다. 바로 클릭해서 자신들의 시야에서 삭제해 버린다. 복음의 가치가 살아나려면 다원화 된 세상 속에서 주일만의 신앙이 아니라 일상의 예배자의 삶의 회복이 시급하다. 세상을 향해 거룩한 문화적 충격을 긍정적인 의미에서 줄 수 있어야 한다.
캠퍼스는 물 근원이다. 캠퍼스가 물 근원이라면 시내는 지역교회의 청년대학부이다. 강은 지역교회를 의미한다. 바다는 한국교회이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샘 근원이 마르면서 시내가 바짝 말라가고 있고 강이 마르면서 가뭄과 홍수의 조절능력을 상실하고 정화작용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교회는 캠퍼스를 위한 “마중물”이 되어 주어야 한다.
6. 청년부 브리지사역
“청년부여! 브리지 사역을 통해 부흥의 공동체를 이루라.”
브리지는 다리 놓기 사역을 의미한다.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고 연결하는 사역, 교회와 청년을 연결해 주는 사역, 부서와 부서를 연결해 주는 사역, 청년세대를 묶어주고 연결하는 사역을 말한다.
오늘날 다양한 교회에 대한 생각들이 존재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생각한다. 몸은 연합과 일치가 중요하고 동시에 창조성과 다양성이 숨 쉬는 공간이 건강한 몸이라고 생각한다. 각 몸의 지체는 각각이 모여서 한 몸을 이루지만 동시에 각각의 역할을 건강하게 감당할 때 그 몸은 건강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유기체적으로 교회를 이해해야 한다. 건강한 몸은 각 지체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균형을 잃지 않고 지체됨을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유기체적인 건강한ㄹ 몸을 이루어 가느냐 하는 것이다. 청년 공동체가 어떻게 하면 대안의 공동체로 부흥할 수 있는가?
가. 교회와 청년 사이
브리지 사역이 필요한 첫 번째는 교회와 청년 사이이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청년들의 헌신을 요청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청년들을 향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배려가 필요하다. 따라서 교회는 교회의 필요와 청년들의 영적 상태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조율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청년들이 교회 안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거나, 기성세대를 위한 하인으로 대하거나, 아무것도 맡기지 않고 모든 것을 다 해주며 아이 다루듯 하기도 한다. 그러나 건강한 청년부는 3가지 부류사이에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급선무이다.
청년들은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청년 디모데로 미래를 준비하는 단계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자신을 던져 헌신하지만 동시에 양육 훈련을 통해서 늘 영적인 재충전과 영적 성장과 성숙이 계속 되어져야 하는 소중한 동역자들이고 믿음의 자녀들이다. 청년들에게 양육훈련이 된 만큼의 영적 수준에 맞게 섬김을 통해 봉사의 사역의 수위를 조율해 주고 갈등을 조율해 주는 것이 교회와 청년 사이의 브리지 사역이다.
우리 청년부의 경우 청년예배와 공동체 모임과 셀 모임과 식탁교제로 이어지는 긴 시간동안 청년사역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청년사역부의 사역자가 최근 5년간 계속해서 변동되고 있어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교회와 청년 사이의 브리지 사역의 실패이다.
나. 부서와 부서 사이
브리지 사역이 필요한 두 번째는 부서와 부서 사이에 연결이다. 청년부를 관심 있게 살펴보면 각 부서의 모든 필요들이 청년부로 쏠리고 무거운 부담감을 느낄 때가 많다. 교회 각 부서에서는 젊은 피의 공급이 필요하다. 하지만 훈련이 끝나지 않은 병사를 전쟁에 내 보낸다면 더 큰 피를 보게 된다. 교육부서, 찬양 팀과 성가대, 각종 행사와 프로그램, 주차봉사와 식당봉사 ... 너무나 많은 영역에서 청년들을 요청하고 있다. 청년들은 준비되지 못한 채 끌려가서 봉사하다가 어느 순간에 지쳐서 청년들은 결국 잠수를 탄다. (교회를 다니면서 조용히 다니면 아무 연락도 받지 않거나 아예 교회를 떠나는 경우를 말한다.)
청년사역자는 청년들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시기적절하게 판단해서 감당하기에 너무나 무거운 짐인 경우에는 조율 해 주어야 한다. 각 부서에 동참하는 것은 좋지만 동원이 일상화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교회적으로 꼭 필요한 부분에 동참하게 하고, 청년들이 자발성이 살아날 수 있는 영역을 지도해 주어야 한다. 청년들은 공감하고 공유하기를 원한다. 소통이 아니라 강요로 진행되는 일이 반복되면 등을 돌리게 된다. 청년들과의 불통은 결국 청년 세대의 교회 이탈을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 청년들을 성인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성숙한 대화와 배려가 필요하다. 부서와 부서 사이에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동원이 아니라 자신들이 감동되어져서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동참이다.
다. 교육부서와 청년사이
세 번째 영역은 교육부서와 청년 사이의 연결점이다. 부서 가운데 특히 교육부서와의 갈등은 관심 있게 살펴봐야 한다. 교사로 봉사하는 청년들에 대해서 교육부서 사역자와 청년사역자들과의 긴밀한 교류와 교제가 필요하다. 어느 교회나 교사수급의 문제가 심감하고 그에 따른 비난과 비판은 청년사역자들에게 날아온다.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청년들을 대거 발탁하여 교사로 세운다. 그들은 입시에 초점이 맞추어져서 영적훈련이 안 된 상태에서 청년부로 올라온다. 양육훈련을 받기도 전에 보조교사로 서무교사로 현장에서 헌신한다. 보통은 1년 길게는 3년 정도 주일학교를 섬기는 것과 청년부 활동을 병행하지만 점차로 청년부서 활동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피곤이 축적되고 하루 종일 교회에서 보내야 하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30~40대층이 가장 좋은 교사 재원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의 심정으로 다음세대를 가르치는 교사들은 최고 수준의 성실성과 헌신도를 갖추고 있다. 청년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최소한 1년 정도는 양육훈련을 받도록 배려하고 돌봄과 격려가 필요하다. 이때 청년부서에 속해 리더십으로 세워지지 못하면 또래나 후배들을 섬길 리더십으로 성장하지 못하기에 청년부서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는 경우가 허다하다. 청년교사에게는 청년예배, 청년공동체 모임, 청년소그룹 모임을 우선순위에 두게 하는 것이 황금거위의 우를 범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청년부서 사역자는 적절한 시기에 교육부서의 행사들에 관심을 가지고 청년 사역지의 일부로 또는 선교지로 교회 안에 유기체적으로 조절되도록 조율하여야 하겠다. 청년들이 교육부서와 청년부서 사이에 서서 고민하지 않도록 청년을 배려하는 정책을 세우고 진행하라. 무엇이 그 청년의 영혼을 위한 하나님의 방법인지로 고민하라.
라. 청년과 청년사이
네 번째는 청년과 청년 사이에 브리지 사역이 필요하다. 청년을 그리스도의 몸 된 유기체로 이해하는데서 유기체적인 사역은 광범위하게 적용 될 수 있다. 특히 세대와 세대 간에 누수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 고등부에서 대학부 연결 사역과 대학부에서 청년부 연결 사역과 청년부에서 장년부로의 연결 사역은 청년부서에서 깊이 고민해야 할 브리지사역이라고 생각된다.
마. 청소년에서 대학부로
고등부서에서 청년부서로 올라오기 1달 전에 모든 신상과 정보를 교육부서로부터 받아서 청년들을 입양하는 준비를 진행한다. 대입 수능일 에는 시험 이후에 만나서 식사를 사주기도 하고 기도를 해주기도 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섬기고 청년부서에 올라오게 되면 식탁교제를 통해 먼저 친밀해 지는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청년부서 등반과 함께 MT를 가지고 선배들과 교역자와 함께 비전 트립을 떠나기도 한다. 비전 트립의 경우는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하기에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아.
◆ 비전트립 ◆
○ 비전트립의 목적
청소년과 청년은 문화와 세대가 엄연히 다르다. 이러한 차이는 신앙과 관심과 추구하는 분야도 다르다. 그렇다면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소년들이 청년부에 정착하기까지는 많은 관심과 양육이 필요하다. 번전트립은 청소년들이 청년부에 정착하기 위한 문화충격과 신앙의 충격을 줄이는 동시에 이제는 청년부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심는데 있다. 또한 졸업 후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삶에 대한 청사진이 절실히 필요한 것을 보게 된다. 따라서 비전트립은 갓 등반한 새내기들 내면에 신앙적 비전, 사회적 비전을 심어주는 귀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러한 비전트립은 매년 등반하는 청년에 대한 분석을 기초로 프로그램의 방향을 결정하고 목적을 설정한다.
a. 여행을 하며 친밀해지는 비전트립
서울에서 여수로 밤기차로 이동 ->송도로 배로 이동하여 영성집회-> 목포로 이동 후 제주도로 배로 이동-> 제주도에서 한라산 등반 및 1일 전도 여행, 저녁에는 영성집회->제주에서 부산으로 배로 이동 후 자갈치 시장 방문-> 부산역에서 기차로 서울로 이동
* 이때 기수는 이주 적극적이고 활동성이 강한 기수여여 여행을 하면서 하나 됨을 경험하도록 한다. 함께 여행을 하면서 모든 식사를 조별로 준비하여 진행하며 4박5일 동안 진행한다.
b. 영적 순례를 통한 비전 찾기를 하는 비전트립
1) 초기 선배들의 비전을 찾아서(양화진과 절두산 순교 기념관 방문)
☞ 비전 중에서 가장 중요한 비전은 신앙의 비전이다. 비전은 비전의 사람을 만남을 통해서 온다. 양화진 방문을 통하여 초기 선교사들이 이 땅에 온 그들의 비전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묘비명들을 통해 이 땅에 심겨진 비전을 되새겨 본다. 더 나아가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 삶을 살 것인가? 하나님을 향한 수직적 비전을 생각해 보게 한다.
2) 현지 선배들의 비전을 찾아서(음성 꽃동네 방문)
☞ 건전한 신앙인은 신앙과 삶이 조화를 이루야 한다. 비전은 교회를 섬기는 동시에 사회를 섬겨야 한다. 음성 꽃동네를 통하여 세상은 품고 세상을 섬기는 비전을 되새겨본다.
3) 나의 비전을 찾아서(저녁 집회)
☞ 비전 집회와 성령집회를 통하여 나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비전들을 전도 여행을 통하여 실현해 본다.
(* 이외에도 다른 컨셉으로 각 기수에 맞추어 비전 트립을 기획한다. 중요한 것은 공유하고 공감하여 소통하는 시공간이라고 생각되어진다.)
바. 청년부에서 신혼부부로
청년은 영원한 청년일 수 없다. 결혼을 하고 장년이 되고 청년의 때에 교회의 허리의 역할을 했다면 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교회의 중심부로 들어가서 핵심적인 섬김을 감당해 가야한다. 그런데 청년의 문화와 장년의 문화가 다르다보니 결혼한 청년들이 장년부에 적응하는데 어려움들이 생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신혼부부 공동체를 만들고 결혼한 청년들이 모여서 소그룹을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신혼부부끼리 삶을 공유하며 적극적인 교회의 돌봄과
격려를 받으면서 청년과 장년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청년부에서 신혼부부로의 이동은 정기적으로 1월에 등반을 시킨다. 그리고 리더십들은 자원하는 경우에는 청년부에 남아서 다양한 모습으로 최대한 섬김을 감당하도록 한다. 그러나 임신이 되어 출산일이 가까우면 동질그룹인 신혼부부 공동체에서 교제권을 형성하도록 등반을 비정기적으로 진행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는 청년들이 누수 없이 헌신이 이어지고 신혼부부 공동체에서 새로운 역할을 감당하면서 교회를 배우고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사. 청년사역자와 하나님 나라를 연결하기
청년사역자, 그들이 선 땅은 척박한 토양이다. 청년세대의 척박한 영적 토양을 기경해야 하고 물질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에너지 소모가 많다. 그러나 이것을 청년사역자는 기꺼이 자원함으로 즐거이 헌신해야 한다.
청년사역자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영적 야전군이다.
청년사역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예비하는 인생들이다.
청년사역자는 사도바울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한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는 인생들이다.
청년사역자는 가는 곳마다 복음의 확장을 수행하는 첨병과도 같은 인생들이다.
청년사역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흔적을 그 몸에 지닌 인생들이다.
청년사역자는 교회를 향해서는 끊임없이 청년들의 소리를 대변하고 청년을 향해서는 교회의 소리를 들려주어야 하는 브리지사역자들이다.
그래서 청년사역자들은 고독과 고통과 고난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청년사역자는 예나 지금이나 예수님이 소시는 그날까지 변함없이 성경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로보고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현장에서 나아가 청년을 살리고 청년을 세우며 청년을 헌신 시켜서 다음 세대를 위한 동역자로 세워가야 한다.
청년사역자인 이 시대의 바울과 같은 한 분 한분에게 격려를 보내야 한다.
그리고 다음세대의 바톤을 넘겨줄 디모데를 발견하고 훈련시켜서 한국교회의 미래를 밝히는 일에 헌신하는 그 소중한 헌신을 주님께서 기뻐하심을 알려주어야 한다.
7. 청년심방1)
심방(尋訪)의 국어사전 뜻을 찾아보면 ‘방문하여 찾아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심방의 목적은 성도들의 가정이나 직장을 방문하거나 만남을 통해 영적 정서적 상태와 가정 형편과 여러 가지 상황들을 파악하고, 형편을 살핌으로 그들의 믿음생활을 돕는 것이다. 심방은 목회현장에서 성도들의 영적인 생활과 건강한 믿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목회자가 방문하여 돌보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가. 심방은 규모가 작은 공동체일수록 그 효과가 크다.
100명 미만의 공동체에서 심방은 가장 탁월한 목양사역의 수단이 된다. 심방은 직접 방문하여 만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전화나 편지나 메일을 통한 만남도 가능할 것이다. 심방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여러 번 만나는 것도 아니며, 어떤 경로로 만나는가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만남의 질이다. 심방을 통해서 그들이 마음에 은혜를 받고 목회자를 더 깊이 신뢰하고 공동체에 깊은 애정을 갖고 하나님을 더 깊이 찾을 수 있다면 그 심방은 잘 된 심방이다.
내가 만난 청년사역자 중에 심방의 달인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분이 있다. 생수교회 이성헌 목사는 강남교회에서 청년부 사역을 할 때 전국으로 심방을 다닌 것으로 유명했다. 노량진 학원에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 공부를 마치고 지방으로 내려가면 그 지방까지 다 심방을 다녔다. 군부대에 있는 형제들에게도 심방을 다녀왔다. 전국 어디든지 심방이 필요한 곳은 다 다녔다. 강남교회 청년부의 부흥에는 여러 가지 다른 요인들도 있겠지만 부지런히 전국을 누빈 심방의 효과도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나. 심방에 있어서 유념해야 할 부분들
첫째, 심방은 목적에 맞게 해야 한다. 심방에도 종류가 있다. 새가족 심방이면 충분히 파악하고 교회를 잘 소개하는데 초점을 두고, 병원 심방이면 위로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그냥 심방을 위한 심방을 하는 경우가 참 많다. 병원에 입원한 성도에게 심방을 가는데 6인실이면, 거기서 찬송을 부르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성도에게도 오히려 누가 될 수 있다. 조용히 말씀 읽어 주고 손잡고 기도하면서 위로해주는 방식으로 목적에 맞게 효율성을 최대한 높이는 방법을 간구해야 한다.
둘째, 많이 들어줘야 한다. 경청이야말로 최고의 심방이다. 청년부 지도자들은 권면하는데 너무 익숙해서 침묵하는 시간이나 말이 없는 순간을 견디질 못한다. 그래서 무조건 권면을 하는데 권면은 설교시간으로 충분하다. 많이 들어주고 잘 들어주어야 한다. 아무런 해결책이 없더라도 들어준 것만으로도 최고의 심방이 될 수 있다.
셋째, 심방할 때 선물이나 대가를 바라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런 느낌조차도 주어서는 안 된다. 그냥 순수하게 그들의 영적 상태를 살피고 돕는 목적에만 충실해야 한다.
넷째,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인격적인 상처를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가정사에 어려움이 있다든지, 고등학교 나온 형제에게 대학 어디 나왔는지 공개적으로 묻는다든지, 월급을 얼마 받느냐고 묻는 등의 질문은 백해무익한 질문들이다. 본인에게 민감한 질문은 공개적으로 하지 않으며 상처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부적절한 질문은 하지 말아야 한다.
다섯째, 심방예절을 준수해야 한다. 아무리 대상이 청년대학생들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사생활이 있다. 약속을 정하고 정한 시간에 방문해야 한다. 예고 없이 방문하여 그들의 일정을 엉망으로 만든다든지, 사역자의 품격에 손상이 되는 행동들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여섯째, 학교와 직장으로 방문하는 것이 좋다. 캠퍼스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으니까 좋지만 직장은 다소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하더라도 직장 주변에서 만나더라도 그 근처에 방문해주고 기도해주는 것만으로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절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친한 사람들에게만 심방 가는 것이다. 이것은 사역을 망하게 하는 것이다. 친한 사람에게 자주 심방하는 것은 심방이 아니라 놀러 가는 것이다. 주의해야 한다. 심방은 몇 번 만나는 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번 만나도 최선의 효과를 얻어야 한다.
1) <출처: 기독신문> 오대희 목사(열두광주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