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 강원 강릉의 한 서당을 촬영한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한 해가 끝나가는 지금 학생 여러분은 열심히 공부해서 손때가 묻은 교과서를 보며 뿌듯함을 느끼기도 할 거예요.
올해 새 교과서를 받았을 땐 '내가 이걸 다 배울 수 있을까?' 걱정도 있었겠지만, 수업을 열심히 듣다 보니 교과서 한 권을 모두 배웠네요! 옛날 우리나라 서당에서는 책 한 권을 마칠 때 '책씻이'라는 풍습이 있었어요.
서당과 책씻이에 대해 알아볼까요?
서당은 조선 시대 아동의 유학(儒學) 교육을 위해 전국 곳곳에 세운 교육 기관이에요. 7세부터 16세까지 학생들이 다녔어요. 서당이 지금 학교와 다른 점은 나라에서 세운 기관이 아니라는 거에요.
서당은 교육에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세울 수 있었답니다. 조선 시대 세워진 서당 중에는 명망 있는 가문에서 자제를 교육하려고 훈장을 집으로 초대한 경우, 마을에 훈장을 모셔 서당을 지은 경우, 훈장이 생계를 위해 직접 서당을 열었던 경우 등이 있었어요.
나라에서 만든 교육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훈장의 자격도 정해진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흔히 '훈장님'을 떠올리면 엄격하고 학식 높은 어르신이 생각나죠. 하지만 의외로 조선 시대에 훈장의 사회적 지위는 그다지 높지 않았답니다.
사실 자격이라는 것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훈장마다 학식 수준이 천차만별이었어요.
유교 경전에 도통한 훈장님은 드물었고, 경전 해설서를 보고 뜻을 대강 읽을 수 있는 수준의 훈장이 대부분이었어요. 게다가 지방 훈장 중에는 한자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 도망친 노비가 관아에 끌려가는 것을 피하려고 훈장 노릇을 한 경우도 있었다고 해요.
옛날 설화를 보면 훈장을 골탕 먹이는 이야기도 꽤 전하고 있어 훈장에 대한 인식과 대우가 그리 좋지 않았다고 추정할 수 있어요.
특히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대가로 훈장이 받은 것은 일용할 양식과 땔감 정도였어요. 어떤 훈장은 생계를 위해 마을 사람들의 글을 대신 써주기도 했어요.
이렇게 벌이가 시원치 않은 훈장이지만, 나름 학생들의 공부를 위해 힘썼답니다.
그래서 학생이 책 한 권을 마칠 때마다 부모님들은 책씻이를 준비했어요. 세책례, 세서례, 책거리라고도 하죠.
이 풍습은 아이들이 천자문, 동몽선습(서당에서 교재로 사용한 책) 같은 책을 마칠 때, 부모님들이 훈장의 노고에 보답하는 의미로 떡이나 국수 등을 준비해 훈장과 친구들에게 한턱 내는 것을 말해요.
특히 송편을 준비하곤 했는데, 팥이나 콩, 깨 등으로 꽉 채운 송편처럼 머리를 지식으로 꽉 채우라는 의미가 담겼대요.
정약용의 '여유당전서'에는 왕의 책씻이를 다룬 시가 실리기도 했어요.
1799년, 나이가 50세에 가까웠던 정조가 국정을 돌보는 틈틈이 열심히 공부해 '춘추좌씨전'이라는 책을 마치자,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규장각 학사들에게 세서례라며 술과 음식을 내렸다고 합니다.
어린 자식이든, 나이 쉰 살이 다 된 자식이든 열심히 공부해 책 한 권을 떼면 기특하고 자랑스러운 것이 부모 마음인가 봅니다.
여러분도 올해 열심히 공부한 교과서를 부모님께 보여 드리며 칭찬을 들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