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카페정보
When Computers Went To Sea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World News 장유샤, 류전리 숙청으로 시진핑이 대만 침공 결정권을 쥐게 됐다
위종민 추천 0 조회 200 26.01.30 15:12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26.02.01 07:30

    첫댓글 1979년의 베트남 침공은 등소평이 주도했다고 하는데 '바지 사장'인 화국봉이 아직 있던 시절입니다.

    https://cafe.daum.net/NTDS/5q4/328

    https://cafe.daum.net/NTDS/5q4/329

    조영남 교수가 쓴 '개혁과 개방 -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1'의 368-369쪽 내용입니다.

    "베트남 침공의 참담한 결과는 덩샤오핑에게 커다란 정치적 타격이었다. 이 전쟁은 예젠잉 등 다른 원로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덩이 주도하여 추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단 민주벽에 자신과 베트남 전쟁을 비난하는 대자보가 붙었을 때 덩은 참을 수가 없었다. 4항 기본원칙의 제기와 민주벽 운동의 탄압, 그것은 덩샤오핑이 이론적이고 물리적인 차원에서 이런 비판에 일대 반격을 가한 것이다."

  • 작성자 26.02.02 15:58

    실패했어도 정국주도권을 상실하지 않은 게 대단하네요 ㄷㄷ

  • 26.02.03 17:58

    @위종민 등소평이 엿된 것을 깨달은 그 순간 푸틴처럼 고집부리는 대신 "충분히 응징했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철군해서 성공으로 프레이밍하고, 공식적인 전쟁결정이 중군위의 결정이었기 때문에 책임을 조직전체로 분산시켜버리고, 중월전쟁의 결과가 오히려 78년도 등소평이 주장했던 "4대 현대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증거로 활용해서 오히려 보수적 군부지도자들을 실각시키고 중군위 주석을 차지했죠. 물론 그 전에 화국봉 등이 반격할 힘도 없었겠습니다만..

  • 26.02.03 17:11

    개인적으로 한가지 음모론적인 의심(?)이 좀 있는데... 작년 한해동안 장유샤에 의한 시진핑 실각설이 사실 반중세력의 이간계 아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의도한 바는 무엇인지 몰라도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 중군위가 2명만 남았고 그간 이래저래 잘려나간 장성이 수두룩하니 시진핑 1인권력집중으로 대만침공결정권을 갖게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실무적으로 그 준비과정에 난항을 겪을 가능성도 커졌고... 더군다나 1인권력이 공고해보이지만 취약성도 커지는 양면성이 있으니..

  • 26.02.03 22:33

    시간이 지나면 이 사건이 1971년의 임표 숙청 정도의 사건으로 기억될라나요?

    https://cafe.daum.net/NTDS/5q4/551

  • 작성자 26.02.04 08:45

    시진핑이 일부러 그 쪽에 소스를 흘렸을 가능성도 높아 보이구요. 일종의 차도살인으로..

    중군위 공석을 빨리 안 채우는 게 신기하긴 합니다. 2027년 양안전쟁 개전하려면 공석을 빨리 채우긴 해야될 텐데.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