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하나. 지난달 27일 오전 7시 38분 고속도로 갓길에 세워진 자동차에서 두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조사 결과 두 남성은 1시간 26분 전인 오전 6시 12분쯤 경기 하남시 만남의 광장 휴게소에 들른 것으로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을 통해 확인했다. 경찰은 당시 조수석에 탔던 의사 김모씨가 비닐 봉투를 들고 차에서 내려 주유소 화장실로 급히 걸어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 수사 결과 주유소 쓰레기통에서 주사기 1개와 홍삼드링크병 2개가 담긴 봉투가 발견됐다.
사례 둘. 지난달 26일 오후 경기도 일산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발생한 어린이 납치 미수사건. 경찰은 범행 직후 엘리베이터 CCTV에 찍힌 용의자와 똑같은 복장을 한 남자가 범행 직후 지하철 3호선 대화역 개찰구를 통과하는 장면이 담긴 CCTV를 확보했다. 화면에는 이 남성이 승강장 도착 후 자동판매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는 모습과 전철 한대를 그냥 보낸 뒤 수서행 전철을 타는 장면도 담겨 있었다. 경찰은 이 화면이 찍힌 시간대에 사용된 교통카드 사용 내용을 용의자 이모씨 수사에 활용했다.
◆CCTV,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범죄 용의자를 검거하는 데 CCTV를 활용하는 것은 이제 고전이 됐다. 이호성 전 프로야구 선수의 일가족 살해 사건도 피해자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확보한 CCTV 화면이 사건해결에 결정적인 증거로 쓰였다.
전국 각 구·군청에서 방범용 CCTV 설치를 하는 경우도 크게 늘었다. 대구에만도 올해 2월 현재 모두 631개의 방범용 CCTV가 설치된 것으로 조사됐다. 행정안전부 추산으로는 전국적으로 공공기관에만 13만여대, 민간부문 250만~300만여대의 CCTV가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안으로 3만대 이상이 증설될 거라고 하니 가히 ‘CCTV 천국’이라 할 만하다. 한국인이 하루에 CCTV에 노출되는 횟수는 평균 40차례나 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기자는 지난 25일 대구시내 일대를 직접 돌아다니며 CCTV를 확인해 봤다. 시내 한 대형서점에서 소설책을 사는 동안 감시카메라에 노출된 횟수는 5회. 지하 문구점과 음반판매점에서도 3대의 CCTV를 볼 수 있었다. 근처 영화관으로 걸어가는 동안 지하상가에서 3대, 영화관 건물 지하에서 9대, 영화관에서도 10여대의 카메라를 확인했다. 다시 지하로 내려가 지하상가를 따라 중앙로로 올라오는 동안에도 10여대의 카메라가, 근처 편의점에서 3대의 카메라가 발견됐다.
한 대형마트에 들러 쇼핑을 하는 동안에도 주차장을 포함, 20대에 가까운 CCTV가 설치돼 있었다. 반월당역에서 용산역까지 지하철을 타는 과정에서도 20여차례 CCTV에 노출됐다. 여기에 운전시 도로교통정보 수집용 CCTV에 잡히는 것까지 계산하면 족히 100차례 넘게 CCTV에 걸려든 셈이다. 병원은 물론이고 어린이집, 놀이터, 학교, 직장까지 전국 방방곡곡에 감시카메라가 넘쳐나니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를 벗어나기란 불가능한 일이 됐다.
◆디지털 사회의 그늘, 디지털 족적
개인의 ‘디지털 정보’의 흔적은 어디에든 저장된다. 물품을 구매하고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를 쓰는 즉시 ‘언제 어디서 무슨 물품을 얼마나 샀는지’에 대한 정보가 신용카드사 데이터베이스로 실시간 전송된다. 신용카드사들은 이를 통해 고객의 취향을 파악, 카드 상품을 홍보하는 데 활용한다. 교통카드 사용시 저장되는 정보를 확인하면 교통카드 주인의 이동경로를 파악할 수 있다.
휴대전화도 ‘디지털 족적’(Digital Footprint)을 남기는 대표적인 기기다. 통화를 중계하는 기지국을 통해 사용자의 위치는 실수없이 기록된다. 가입자들의 전화사용 내용도 고스란히 이동통신사 서버 컴퓨터에 저장된다. 발신 통화 이력은 12개월간, 착신 이력은 6개월 동안 보관된다. 문자메시지 내용도 6개월 동안 보관이 된다. 본인의 전화기에 저장된 내용을 삭제하더라도 지워지지 않는다.
인터넷도 사정은 마찬가지. 모두 유사시 이용자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긴 하지만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의 위험이 있다.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형성되는 쿠키 파일(특정 웹사이트를 접속할 때 접속 정보를 담아 사용자 컴퓨터에 생성되는 작은 파일)도 사용자가 입력한 검색어나 방문한 사이트 등을 기록한다. 개인의 관심사를 파악할 수 있고, 어떤 은행을 이용하고 인터넷으로 무슨 물품을 구매하는지도 충분히 알아낼 수 있는 셈이다.
e-메일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신정아-변양균 사건 때에는 검찰이 두 사람 간의 e-메일 100여통을 신씨의 컴퓨터에서 찾아낸 것이 화제가 됐다. 신씨는 자신의 컴퓨터에서 데이터를 삭제했지만 검찰이 하드 디스크 파일 복원을 통해 지운 자료를 살려낸 것이다. 파손이나 자력을 통한 손상 등 물리적으로 파괴하지 않는 한 디지털 저장매체에 기록된 정보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이 같은 정보를 삭제하지 않고 거래되는 중고 컴퓨터는 개인 및 기업 정보 유출의 온상이 되고 있다.
◆디지털 빅브러더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이 같은 ‘디지털 그림자’(Digital Shadow)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집안에 틀어박혀 있든 말든 상관없다. 국경도 상관없다. 최근 미국의 워싱턴시에서는 범죄 예방을 위해 개별로 관리되고 있는 CCTV를 통합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가 인권단체의 반발을 샀다. 유럽연합(EU)에서는 지난해 27개 회원국이 보유한 모든 범법자의 지문을 데이터베이스화해 개인 정보를 공유하려는 계획을 세워 문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 정부가 미국과 ‘비자 면제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선결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전자여권도 논란이 되고 있다. 전자여권에 얼굴정보와 지문 같은 생체정보가 수록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의 도시 영상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인터넷 라이브 웹캠과 구글 어스 같은 위성 영상 지도 서비스도 사생활 침해 논란을 비켜갈 수 없다.
개인의 디지털 정보가 문제되는 것은 정보 유출 및 개인통제 가능성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공기관이 파악하고 있는 개인정보 목록만 해도 1천건이 넘는 상황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될 경우 큰 파장이 발생할 수도 있다. 실제로 올해 초 인터넷 경매·쇼핑몰 옥션에서 1천여명의 고객 정보가 해킹당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하나로텔레콤은 아예 고객정보를 텔레마케팅 업체에 팔아넘긴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줬다. 유출된 개인정보는 보이스 피싱 등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 문제가 클 수밖에 없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김영홍 정보인권국장은 “개인이 사회·경제적으로 생활하면서 발생하는 정보의 대부분이 디지털화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가 악용되는 것도 문제지만 개개인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구지부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구인호 변호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보유출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것이 문제다. 정보유출이 의심될 경우 개인정보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확인해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정부의 정책적 규제 의지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디지털 그림자(Digital Shadow)= CCTV에 찍힌 영상이나 디지털 로그 기록처럼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만들어지는 개인 디지털 정보. 프라이버시 침해와 개인정보 악용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 세계적 시장조사기관 IDC는 ‘2011년까지의 세계 디지털 정보성장 전망보고서’에서 세계적으로 ‘디지털 그림자’에 해당하는 정보량이 개인이 능동적으로 생성하는 디지털 정보량을 이미 초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IDC 전망에 따르면 디지털 정보량은 앞으로 연평균 60% 성장을 지속해 2011년에는 2조GB(2006년 대비 10배)를 기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