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장 성막 봉헌을 위해 드린 예물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영원한 언약 관계가 설정되고 이스라엘 중에 하나님의 영원한 임재를 상징하는 성막이 완성되고 그 성막을 중심하여 백성들의 진영이 모두 갖추어졌다. 이제 성막을 앞세운 광야 여정을 출발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성막의 봉헌식을 성대히 치러야 한다.
이 의식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이시고 통치자이심을 나타내는 공식적인 즉위식으로 볼 수 있다. 왕위 즉위식인 것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기뻐하고 감격했으며 그 감격의 표시로 각 지파의 족장들이 최선의 예물을 드린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으로 임재하시는 이 사건보다 더 엄청나고 감격적인 사건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감격을 경험한 자만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경배와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이다.
1. 성막 봉헌시 바친 예물과 분배 (7:1-9절)
제 1차 인구조사가 끝난 후 출애굽 제 2년 2월 8일에 성막 봉헌식이 베풀어졌다. 성막을 봉헌하기 전에 먼저 성막과 그 기구들에 기름을 바른 도유식이 있었다. 이것은 그것들의 제작 목적과 용도에 따라 하나님께 거룩하게 쓰임 받기 위함이었다.
이 기름 바름은 성별의 외적 표시이며 하나님의 소유로서 공적인 인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율법의 규례나 제도, 형식들은 그 자체로서 신적 권위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인준과 섭리 때문에 권위가 주어지는 것이다.
인구조사를 마친 족장들은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는데 그것은 성막의 기구들을 옮기는데 필수적인 수레와 소들이었다. 이는 완공된 성막의 이동을 위한 대책이었던 것이다.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하고’
사람이나 사물에게 기름을 바르는 것은 그 대상을 세속적인 것과 구별하여 하나님의 소유로 삼고자 하는 것이며, 그 대상에게 신적 권위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번 기름을 바른 것은 영원히 세속적인 일에 남용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관유’는 그 의미하는 바에 따라 성령과 성령의 사역이라 할 수 있다.
*렘31;14 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며 내 복으로 내 백성을 만족하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구약시대의 각종 모형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시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공식적으로 성별되어 공생애 사역을 이루신 사실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덮개 있는 수레 여섯 대와’
이것은 들것과 같이 바퀴가 없는 수레인지, 아니면 바퀴가 있는 수레인지 분명하지 않다. 다만 이 수레는 소 두 마리가 끄는 것과 운반해야 할 기구가 상당히 무거운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바퀴가 달린 수레였을 것이다.
족장들은 각 지파의 형편에 따라 많게, 혹은 적게 헌상할 수 있으나 모두 동일한 양의 예물을 바쳤다. 이것은 상호 아름답게 협력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은 각 족장들에게 동일한 관심을 보이시며 동일한 헌신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레위인에게 주어’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헌상된 예물은 주로 제사장들의 생계용으로 할당되었으나 여기서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성막의 운반을 담당할 레위인들에게 배당되었다. 이는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게르손 자손들에게는’
이들은 성막의 앙장들과 덮개, 휘장을 맡았기 때문에 소와 수레가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수레 2대, 소 네 마리를 할당받은 것이다. 므라리 자손들은 널판, 기둥, 띠, 받침 등을 운반해야 했기 때문에 수레 4대, 소 여덟 마리를 분배받았다.
고핫 자손들은 성소 안의 기물을 맡았으므로 그들은 성막의 이동 시에 어깨로 메어 운반해야 했다. 그 결과 족장들이 바친 예물인 수레나 소가 필요하지 않았으며 그 직임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이었던 것이다.
2. 단의 봉헌을 위한 12족장의 헌물 (7;10-83절)
각 지파를 대표하는 족장들이 순차적으로 ‘단의 봉헌’을 위한 헌물을 바쳤다. 각 지파의 배진대로 순서에 따라 질서 있게 예물을 바쳤는데 첫 날에 유다 지파로부터 마지막 날에 납달리 지파가 바쳤다.
각 지파의 족장들은 동일한 예물을 동일한 방법으로 바쳤는데 이러한 내용을 그대로 기록한 것은 단순한 반복 기사를 다룬 것이 아니라 그 예물을 일일이 받으시는 하나님의 기쁨을 의미하는 것이며, 후대를 위해 남긴 예물의 모범을 보여준 것이다.
하나님은 개개인의 예물을 독립적으로 향기롭게 받으시고 기뻐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집단으로 만나시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교제하시기를 원하시고 그의 아름다운 헌신을 일일이 기억하시는 것이다.
12지파의 족장들은 자원하는 심령으로 많은 예물을 드렸는데 특이한 점은 모든 예물이 동일한 내용과 동일한 분량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하나님 앞에 평등한 자격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각 지파는 혈통 상, 차서가 있고 각각에게 주어진 축복과 영예가 다르기 때문에 차별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들의 헌신과 예배만은 차별도 주어지지 않고 다 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이다.
‘제단의 봉헌을 위하여’
제단을 거룩히 구별하여 바칠 때에 공식적으로 드리는 최초의 제전이다. 이 제전은 거룩한 기름 곧 관유와 희생의 피를 바름으로써 절정에 이른다. 그와 더불어 백성들의 각종 예물이 단 앞에 바쳐짐으로써 온 백성이 경하하는 기쁨의 의식이 되는 것이다.
‘봉헌’ 이라는 말 ‘하누카’는 ‘새 건축물을 헌납하다.’라는 뜻 외에 ‘신적 권위를 부여하다.’라는 의미로 쓰였는데 후일 ‘수전절’의 공식 명칭이 되었다. 이 의식은 솔로몬 성전의 완공 때, 그리고 예루살렘 성벽의 완공 때에 성대히 치러졌다.
‘지휘관들은 하루 한 사람씩 제단의 봉헌물을 드릴지니라.’
12일 동안 예물을 드리라는 것을 지시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은 한꺼번에 혼잡스럽게 드려지는 예물을 원하지 않았고 질서 속에서 경건하게 엄숙하게 진행되는 예식을 원하셨다. 사실 이 예물들은 대부분 당일에 사용되어야 할 예물들이었기에 그 제물을 한꺼번에 바친다면 제사 집례 상 매우 혼잡했을 것이다.
족장들이 바친 것은 번제, 속죄제, 소제, 화목제 등이었다. 이 중에서 속죄제를 가장 적은 양으로 드리고, 화목제를 가장 많은 양으로 드린 것은 단의 봉헌을 위한 예물이 대부분 감사를 위한 화목 제물로 드려진 것이기 때문이다.
봉헌자의 명단은 1장에서 이미 나타난 이스라엘 12지파의 족장들의 명단과 동일하며, 예물을 드린 순서는 2장에서 나타난 이스라엘 12지파의 진 배치와 동일하다.
‘제 일 일에’
제사의 순서는 성막을 중심으로 동쪽에 배진한 유다 지파로부터 시계 방향으로, 곧 행군 대형으로 실시되었다. 여기서 제사를 드리는 순서와 행군의 순서가 동일한 것은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면모를 드러내 주는 것으로 혈통적인 측면보다 영적인 측면이 더 강조된 것이다.
‘은반’이라는 것은 은으로 만든 사발이나 큰 접시를 가리킨다. 이것은 진설병을 담는 그릇이었고 ‘은바리’는 일종의 대야 같은 것인데 포도주를 담는 기물이었을 것이다.
‘일곱 째 날에는’
이 날은 안식일이라는 말이 아니라 일곱 번째로 족장이 예물을 드린 날이다. 그런데 12족장들이 예물을 드렸던 12일 동안 한 번, 혹은 두 번의 안식일이 있었음이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안식일에 예물을 드리는 일을 멈추었다는 기사가 없다.
즉 예물을 드리는 일은 안식일에 구애 받지 않고 계속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며 이것은 일종의 신성 의무 조항으로 모든 환경을 초월하는 인간의 기본 도리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형식과 전통의 굴레를 벗어나 과연 무엇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지를 먼저 생각하시고 가르치시고 행하셨다.
3. 예물을 기쁘게 받으신 하나님 (7:84-89절)
정성되고 엄청난 봉헌 예물의 바쳐지고 그것이 합계된 후 하나님께서 속죄소 위에서 모세에게 음성을 들려 주셨다.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헌상한 예물을 기쁘게 열납하셨음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다정한 친구처럼 말씀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친구가 되시고 사랑하시며 돌보시는 모습을 드러내신 것이다.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
이것은 이상 중에서 감지되는 환청이나 내면적 소리가 아니라 직접적이고도 생생한 실제 음성을 말한다. 이처럼 말씀을 통한 임마누엘 사상은 훗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예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