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포교회의 중심지 ‘황무실 성지’ 축복
대전교구 신합덕본당, 축복 미사 봉헌
- 유흥식 주교가 황무실성지에 세워진 순교자현양비에 분향하며 축복하고 있다. 오세택 기자
대전 신합덕본당이 11월 29일 충남 당진 합덕읍 석우리 1013 현지에서 교구장 유흥식 주교 주례로 황무실 성지 및 순교자 현양비 축복 미사를 봉헌했다.
신합덕본당은 이에 앞서 해미 순교 복자 이보현(프란치스코, 1773∼1800)이 살았던 옛 황무실교우촌 부지를 매입, 4m 높이 자연석으로 순교자 현양비를 세워 순교자들을 기리고 성지 복원을 본격화했다.
신합덕본당은 또 이날 황무실에서 2㎞ 거리의 면천읍성 남문 앞 공소에서 유 주교 주례로 김진후(비오, 1739∼1814) 등 순교복자 5위를 기리는 순교자 현양비를 세우고 축복했다.
황무실은 당진시와 예산군의 경계에 위치한 얕은 구릉 지대에 있는 유서깊은 교우촌으로, 정사박해(1797년) 때부터 병인박해(1866년)시기까지 박해 전 시기에 걸쳐 존속했던 신앙 공동체였다. 최근에는 신리 교우촌과 더불어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거주하며 사목활동을 한 내포교회의 중심지로 고증됐다.
황무실 교우촌과 인연을 맺은 선교사는 메스트르 신부와 랑드르 신부, 성 위앵 신부 등 3명. 1857년 예수 부활 대축일 직후 황무실에 부임한 메스트르 신부는 그해 12월에 선종해 이곳에 묻혔는데, 그의 장례식에는 박해시대인데도 300명이 넘는 신자들이 모였다고 전해진다. 황무실의 두 번째 선교사인 랑드르 신부는 1861년 10월 부임, 하부 내포를 사목하다가 1863년 9월 전염병에 걸려 35세 젊은 나이로 선종했다. 끝으로 위앵 신부는 1865년 황무실에서 언어와 풍습을 배운 뒤 사목을 하다가 이듬해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신리에 있던 다블뤼 주교의 자수 권유를 받아들여 동료들과 함께 갈매못에서 순교했다.
병인박해와 동시에 황무실 교우촌은 철저히 파괴됐고, 이웃한 면천읍성 출신 순교자와 합쳐 70여 명에 이르는 순교자가 탄생했지만, 역사 속에 묻혔다. 그러다 신합덕본당 신자들이 메스트르ㆍ랑드르 신부의 묘소를 찾았고, 이곳 출신 이보현 순교자의 시복을 계기로 성지로 조성되고 있다.
정성용 주임 신부는 “황무실은 박해 초기부터 박해가 끝나는 무렵까지 존속했던 신앙 공동체로, 아주 특별한 역사를 갖고 있다”며 “성지로 개발해야겠지만 요란하게 개발하기보다는 소박하게 순교자들을 기념하고 신앙의 의미를 새기며 기도할 수 있는 성지로 가꾸겠다”고 밝혔다. [평화신문, 2014년 12월 7일, 오세택 기자]
대전교구 신합덕본당, 「황무실 · 면천 자료집」 발간
내포교회사연구소 편저 / 135쪽 / 비매품 / 대전교구 신합덕본당
황무실성지를 관할하는 대전교구 신합덕본당이 순교자 현양 활동을 위해 발간한 책이다. 황무실은 지난 8월 거행된 124위 시복식에서 황무실 출신 순교자 이보현이 복자품에 오르면서 한국교회 초기 교우촌으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내포교회사연구소 편저로 정리된 「황무실·면천 자료집」은 황무실 교우촌 내력을 설명할 뿐 아니라 이보현, 유군명, 메스트르 신부 등 황무실 관련 순교자 사료까지 충실히 다루고 있다.
인근 지역 ‘면천’에 관한 교회 사료들을 총 망라하면서 내포천주교 약사까지 담아 지역 교회사와 함께 신앙 선조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다. [가톨릭신문, 2014년 12월 14일, 이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