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나무 잎사귀가 있는 저녁
장철문 호두나무 잎사귀 사이, 하늘에 막 생겨나는 달이 있었다 호두나무 잎사귀 사이, 마음에 막 생겨나는 사람이 있었다 어스름 속에서 막 돋아난 달처럼 막 피어난 호두나무 푸른 잎사귀 사이로, 돋아나는 사람이 있다는 데 놀라고, 그 사람이 지금 곁에 없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는 데 또 놀랐다 어스름 바람에 팔랑이는 호두나무 잎사귀 사이로, 그 사람도 달을 보고 내가, 그 사람에게 생겨나는 달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사람의 씽긋 웃는 얼굴이 호두나무 잎사귀 사이, 하늘에 떠 있었다 어두워지는 호두나무 잎사귀 아래서 그 사람을 보고, 다시 보고 호두나무 잎사귀를 흔드는 바람이 살을 감고, 달이 싱거워지고 검은등뻐꾸기 소리와 호랑지빠귀 소리에 귀가 기울고, 하늘에 떠 있는 그 사람이 싱거워지고 검은등뻐꾸기 소리와 호랑지빠귀 소리와 놀다가 그 사람이 저문 호두나무 잎사귀 사이에 달을 두고 들어왔다 사람의 체취를 가진 호두나무와 안는 꿈을 꾸었다
—계간 《문학인》 2024년 여름호 ---------------------- 장철문 / 1966년 전북 장수 출생. 1994년 《창작과비평》 겨울호로 등단. 시집 『바람의 서쪽』 『산벚나무의 저녁』 『무릎 위의 자작나무』 『비유의 바깥』, 동시집 『자꾸 건드리니까』 등. 현재 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