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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
제10장 수술과 동양의학
-약으로 쓰는 자황은 목숨을 늘이는 법이다-
생물계의 신진대사와 같이 사람이 태어남生 ‧ 늙음老 ‧ 병듦病 ‧ 죽음死 따위의 현상도 피면할 수 없다. 특히 죽음은 모든 사람이 최종 벗어나지 못하는 ‘숙명’이다. 물론 과학기술이 날로 발달해가는 오늘날 각종 과학수단을 운용하여 질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장하게 한다. 일정한 정도에서 노쇠해짐을 늦추는 것도 신진대사의 상태를 위반하지는 않으며 이는 바로 현대 의학에서 노력하고 있는 목표인 것이다. 사실상 옛 사람들도 일찍이 위생을 지키고 질병을 제거하고 치료하는 의식이 있었다. 또 우리의 의식보다 더 강렬했을 수 있지만 이론기초 ‧ 조작수단 등 방면에서는 우리와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중에 어떤 방면은 우리가 보기에 농후한 신비주의 색채를 띠고 있지만 이런 신비주의는 바로 수술과 밀접히 연관된다. 본 장에서는 이 각도에서부터 독자들과 중의에 관한 몇 가지 화제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1. 무술과 의술은 뿌리가 같다
《논어》 <자로>에서 이르기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남국 사람의 말에 사람으로서 꾸준함이 없은 즉 무당이나 의원도 되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옳은 말이다. [주역 항괘구삼효사恒卦九三爻辭에] 덕을 행함에 꾸준함이 없은즉 혹시 수치를 당하리라.’2)
여기에서 기록한 것은 공자가 발표한 한 단락의 의론이다. 공자는 “남방 사람들이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이 만약 변함없는 마음(항심)이 없다면 무의巫醫마저도 할 수 없다. 사람이 만약 덕행을 오래도록 유지하지 못한다면 치욕을 불러오게 된다.’ 이 말을 매우 잘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주역》의 효사에서 나타난 것이다.)
공자의 이 의론에 대하여 우리는 두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는 공자가 강조하려는 중심은 꾸준히 지속하는 덕행이고 둘째는 공자가 무술과 의술 양자 사이가 모종의 통하는 공통성이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여기서 관심을 가지는 것은 바로 후자이다. 그것은 의술의 기원에 대한 중요한 정보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전통의학의 역사도 매우 오래 되었다. 그 기원은 심지어 원고전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사전적 해석으로 보면, ‘의醫’의 아래가 ‘유酉’을 있다. 그런데 ‘유’자 자체는 술이 넘쳐나는 그릇의 형상이고 또한 ‘주酒’과 통용될 수 있다. 그럼 ‘주’와 ‘의’는 또 어떤 관계가 있는가? 원래 주는 최초에는 일종의 약이었다. 예를 들면, 옛날 의술서인《황제내경黄帝内經》에서 ‘주’의 작용을 논의할 때, ‘좋지 못한 기운이 이르는 시기에 술을 음복하면 완전해진다’고 했다. 그 후세에는 ’술은 모든 약의 우두머리‘의 설이 그것이다. 여기서 술이 옛날 약제 가운데 위치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더 나아간 물음을 할 수 있다. 술이 중요한 약이라면 이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이것은 술이 다른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즉 신령과의 교통이라는 것이다. 술은 본래 혈액순환을 가속화할 수 있고 대뇌신경을 자극하여 흥분하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구름과 안개를 타고 하늘을 나는 듯하고 표표욕선의 감이 들게 한다. 그러나 초기의 사람들은 그 원인을 몰라서 이런 작용을 신비화하였다. 그들은 술의 신령이 그렇게 되였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신령과의 교통이라는 결과라고 생각하였다. 때문에 원시 무술과 종교 중에서, 술은 일종 신령과의 교통이라는 중요한 중개로 사용한다고 간주했던 있다. 갑골문과 금석문 가운데도 모두 이런 기록이 있었다. 그러나 옛날 사람들이 보기에는 신령과 통하는 물건도 신성과 신력이 있어 질병을 치료할 수 있기 때문에 ‘의’ 아래 ‘유酉(酒)’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로 보면 무술와 의술은 원래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곧 의술은 본래 무술에서 기원했거나 의술이 무술에서 분화하여 발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무술과 의술의 이 연원은 의술이 후세에서 수술과의 어려운 분리를 미리 설정해놓았던 것이다.
사회의 진보와 인류의 발전에 따라 무술의 지위도 점차 낮아졌다. ‘땅과 끊어지고 하늘과 통하다’ 이후 무술의 지위가 직관에 의해 바꾸어졌다. 따라서 의약 따위 방기술方技術3)도 직관에 의해 장악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주례》<천관> <총재>에는 의사醫師 및 음식에 의술食醫 ‧ 질병에 의한 의술疾醫 ‧ 상처에 의한 의술瘍醫 ‧ 짐승을 위한 의술獸醫 따위의 전직 관원이 차례로 배열되어 있다. 이것은 삼대三代 시기 의와 의술이 이미 무와 무술 가운데에서 점차 독립해 나왔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물론 무의 활동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전에 무와 의가 합하여 하나가 되는 문화적 배경이라는 일부 단서를 제공한 것이다.《산해경》<해내서경>에서 여섯 무는 ‘모두 죽지 않은 약을 조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황서경大荒西經>에서도 열 무가가《백양애재百藥爱在》에 오르내리는 영산지설靈山之說이 있다. 그중 무함巫咸 ‧ 무팽巫彭 따위가 《세본世本》 ‧ 《여씨춘추吕氏春秋》등 옛날 전적 가운데에서 명확하게 ‘의醫’라고 불리웠다. 그 이름이 갑골복사甲骨卜辞 가운데에서도 여러 차례 나타난다. 여기서 그 활동 연대가 대략 은상殷商 시기를 넘지 않음을 알아볼 수 있다.
서주 이후 예악이 붕괴되고 직관이 분화함에 따라 의술도 민간에 유행되어 제자가 스승으로부터 이어받는 계통이 점차 일종 직업을 형성하였다. 이와 동시에 의가醫家도 중의하여 자기 및 선인의 의료 실천경험을 총결하기 시작하여 의약지술로 하여금 점차 계통화 ‧ 이론화 되게 하였다.《칠략七略》에 서한西漢 이전의 서적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중《방기략方技略》에 ‘의경醫經’ ‧ ‘경방經方’ ‧ ‘방중房中’ ‧ ‘신선神仙’ 따위의 네 가지 부류의 책이 간수되어 있다. 앞의 두 가지 부류는 계통적 의학의론과 약제학 ‧ 약물학 저작이고 ‘방중房中’의 책은 주요하게 성학性學 ‧ 우생학優生學과 관계되고 ‘신선神仙’의 책은 음식 및 후세의 체조 ‧ 기공 등 신체를 건강하게 하고 양생하는 방법과 관계된다. 여기서 ‘신선神仙’의 이름 ‧ 책의 내용 및 이런 분류방법 자체로 볼 때 여전히 상고 이래 무와 의를 나누지 않는 신비주의 전통을 대략 엿볼 수 있다.
2. 의·역醫·易은 이치가 같다
고대의학에 이런 명언이 있다. ‘부지《역》不知《易》, 부족이언대의不足以言大醫.’ 그 뜻인즉 《주역》를 통달하지 않은 자는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럼 의술醫術 ‧ 의학醫學과《주역》은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가? 명 나라의 유명한 의학가醫學家 장개빈張介賓4)이 쓴《의역의醫易義》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이라 할 수 있다. 장개빈은 거기에서 ‘의역동원醫易同原’설을 명확히 제기하였고 의역이 정통한 이론 근원도 지적하였다. 즉 소위 ‘천인일리자天人一理者, 일차음양야一此陰陽也, 의역동원자醫易同原者, 동차변화야同此變化也’이다. 그 뜻인즉 ‘의역동원’의 최종 공동 근거가 《주역》에서 설명한 음양 변화의 도道에 있다는 것이다.
사실《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 시작하여 음양학설이 바로 중의中醫 이론체계의 기초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의가醫家 마음속의 음양이 대개 두 가지 층의 뜻을 가진다. 첫째, 음양은 두 가지 성질이 서로 다른 물질을 대표한다. 나아가 음양의 보편적 속성을 펼쳐 우주만물로 인류 자신에 이르기까지 모두 음 ‧ 양 두 가지 큰 유로 나뉜다는 것이다. 둘째, 음양 사이의 동태관련의 각종 형식으로써 천인天人 사이의 각종 규칙성과 불규칙성의 관계를 탐론했다. 그럼으로써 인체 자신이 음양의 오르내림(升降)과 조화된 생리 ‧ 병리 상황과 진단 ‧ 치료 과정까지 미쳤다. 예를 들면,《황제내경》은 인체의 음양에 살펴서 경계의 분리를 진행하였다. 내부는 음에 속하고 외부는 양에 속하며 등부는 양에 속하고 복부는 음에 속하며 오장은 음에 속하고 육부는 양에 속하는 따위이다. 또 다시 음양을 사시四時와 대응시켰다. 즉 봄春 ‧ 겨울冬 두 계절은 음성에 속하는 부위가 병에 걸리기 쉽다. 여름夏 ‧ 가을秋 두 계절은 양성에 속하는 부위가 병에 걸리기 쉽다. 이 밖에도《영추경靈樞經》은 경맥經脉과 음양을 연결시켜 인체의 허리 위 부분을 양이라 부르고 상지上肢의 10조경맥十條經脉과 천간天干을 대응시켰다. 인체의 허리 이하의 부분을 음이라 부르고 하지下肢의 12조경맥十二條經脉과 지지地支를 대응 시킨 따위이다.
음과 양을 말하면, 아무래도 5행五行을 제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상 한의학의 기본 특징의 하나가 바로 5행과 5장五臟 및 자연계의 5기五氣 따위의 인소를 대응시켜 또 음양학설과 결합하는 이것을 기초로 하나의 완전한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사상체계를 수립하는 것이다. 이런 사상에 근거하여 천지만물이 모두 음양오행의 기화氣化에 의해 이루어지고 인체 또한 음행오행의 성격을 갖추었기 때문에 사람과 천지만물도 이 큰 대우주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작은 우주인 것이다. 인체는 우주의 운행을 모델로 한다. 만물의 생장하는 모습이 떳떳함을 잃지 않는다면 즉 소위 ‘시중時中’한다면재능은 건강하여 편안한 것이다. 질병의 산생은 ‘불시不時’, ‘불줄不中’, 즉 인체의 음양이 조화를 잃고 5행이 역란한 결과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질병을 일으킨 직접적인 인소는 불외호외감不外乎外感 ‧ 내상內傷 ‧ 음식불절飮食不節 ‧ 노작무도勞作無度이다. ‘천지오기天之五氣’ 즉 바람風 ‧ 더위暑 ‧ 습기濕 ‧ 건조燥 ‧ 한기寒은 본래 사람과 만물이 의지하여 생존하는 조건이다. 다만 만약 그 때가 아닌데 그 기만 있다면(不時) 발생이 너무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한다면(不中) 편법으로 외감外感의 ‘음사淫邪’가 성립된다. 사람에게는 분노怒 ‧ 기쁨喜 ‧ 생각思 ‧ 근심懮5) ‧ 공포恐 따위의 ‘오지五志’가 있다. 만약 발했으나 중절中節이 없다면, ‘내상’을 초래할 것이다. ‘땅의 5맛地之五味’은 신 것酸 ‧ 쓴 것苦 ‧ 단 것甘 ‧ 매운 것辛 ‧ 짠 것咸은 모두 사람이 음식을 먹을 때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많아도 질병을 초래한다. 피로함과 편안함이 평형을 잃어도 마찬가지다.
《황제내경》은 또 5행과 5장의 대응 관계에 의하여 대량의 의료 방법을 제정하였다. 예를 들면, 간병肝病에 걸린 자는 여름에 치료하면 적합하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가을 와서 병세가 더 심해진다. 무엇 때문인가? 5행의 원리에 의하면, 간肝은 목木에 속하지만 추秋는 금金에 속한다. 즉 금이 목을 극克하므로 여름인 목이 금의 제약을 받지 않는 절기가 간병을 치료하기에 이로운 것이다. 같은 원리로 심장병은 늦은 여름에 치료하면 적합하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겨울에는 병세가 더 심해진다. 비장병脾臟病은 가을에 치료하면 적합하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다음해 봄에는 병세가 더 심해진다. 신장병腎臟病은 봄에 치료하면 적합하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여름에는 병세가 더 심해진다. 이밖에도 5장에 병이 생기면 의가醫家가 약을 쓸 때 음양오행의 제약을 받아 오미五味 ‧ 간지 따위의 수술 관념이 언급되는 것이다. 원리는 위의 서술과 유사하다. 여기에서는 다시 한번 늘어놓지 않겠다.
더욱 재미가 있는 것은《황제내경》에서 또 오행의 원리에 근거하여 사람을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는 것이다.
목성인木性人은 피부가 파랗고 머리가 작고 얼굴이 기렴 어깨와 등이 넓으며 몸집이 곧고 손발이 작고 재능과 지혜가 있고 속셈이 않고 체력이 강하지 못하며 잡무에 영향 받고 추위를 견디지 못한다.
화성인火性人은 피부색이 빨갛고 치근이 넓고 얼굴이 야위고 머리가 작으며 어깨와 등 ‧ 허리와 복부 및 두 다리의 발육이 고르러 아름답고 손발이 작고 걸음걸이가 빠르나 온정하지 못하고 성격이 급하며 기백이 있고 금전을 중히 여기지 않고 신용이 적고 우려하지 않으며 사물관찰이 예민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급히 죽거나 단명이 많고 추위를 견디지 못한다.
토성인土性人은 피부색이 노랗고 머리가 크고 얼굴이 둥글며 어깨와 등이 풍만하고 허리와 복부가 장대하고 두 다리가 건장하며 손발이 작고 근육이 튀어나오고 몸매가 균일하며 걸음걸이가 가볍고 온정하고 성격이 온화하고 조용하며 오만하지도 않고 성급하지도 않으며 사람 돕기를 즐기고 사람을 단결하기에 능숙하고 추위를 견뎌낸다.
금성인金性人은 피부색이 하얗고 머리가 작고 얼굴이 네모나며 어깨와 등이 작고 복부도 작으며 손발이 작고 발끝부분의 뼈가 선명히 드러나고 행동이 가볍고 빠르며 천성이 청렴하고 성격이 급하며 평시에는 잠잠하고 행동할 때는 맹렬하고 영도재질이 있고 더위를 견디지 못한다.
수성인水性人은 피부색이 검고 얼굴 면이 평하지 않고 머리가 크고 얼굴이 넓고 어깨가 작고 복부가 크며 손발을 움직이기를 즐기고 걸음걸이가 온정하지 못하고 허리와 등이 비교적 길며 사람을 대함이 공손하지 못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남을 속이기에 능숙하다. 늘 나쁜 일을 함으로써 목숨을 잃게 되며 더위를 견디지 못한다.
위의 매 유형의 사람들 가운데 또 각기 네 가지 유형의 속성이 완전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 예를 들면, 목성인 가운데 순수한 목성인을 제외하고 또 네 가지 즉 위로 치우치고 아래로 치우치고 왼쪽으로 치우치고 오른쪽으로 치우치는 목성인이 있다. 때문에 이 다섯 유형의 사람은 사실 25가지의 사람을 포함한다.
여기까지 말해도 아직은 의문스러운 일이 있으리라. 위의 각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무엇 때문에 상면相面과 비슷할까? 그러면 우리는 당신한테 응당 경복을 표시해야 한다. 당신의 민감은 정확하다. 양자는 확실히 관계가 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한의의 가장 기본적인 ‘사진四診’(보는 것望 ‧ 듣는 것聞 ‧ 묻는 것問 ‧ 절개하는 것切)의 기술 가운데 망진望診은 고대 상술相術에서 분화하여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객관적으로 논하면 양자간에 확실히 뒤엉킴이 매우 많고 또 모두 음양오행에 의거하여 형形 ‧ 성性 ‧ 신神 ‧ 색色을 논한다. 다만 전자는 질병사생에 많이 치우치고 후자는 길흉화복에 많이 치우칠 따름이다. 다시 말해서 질병사생도 길흉화복 중에 포함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고대의술과 수술이 원리상에서만 연관이 많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조작행위에서도 분리하기 어렵다.
3. 의료상의 금기
고대의 많은 의서醫書중에 많은 양의 의료의기醫療宜忌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들과 수술 활동을 전혀 떼어서 구분할 수 없다. 아래《황제내경》의 기록을 주요 의거로 이에 대해 대략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우선 의서에서 인체에 병변病變이 발생할 때, 간장병肝臟病은 마땅히 신 맛을 먹어야 하고 매운 맛을 삼가야 하며, 심장병心臟病은 마땅히 쓴 맛을 먹어야 하고 짠 맛은 삼가야 하며, 비장병脾臟病은 마땅히 단 맛을 먹어야 하고 신 맛을 삼가야 하며, 폐장병肺臟病은 마땅히 매운 맛을 먹어야 하고 쓴 맛을 삼가야 하며, 신장병腎臟病은 마땅히 짠 맛을 먹어야 하고 단 맛을 삼가야 한다. 이런 규정도 오행상五行相胜 관념의 산물임이 분명하다. 간장병의 의기宜忌에서 간은 오행의 목木에 대응하고 목은 오미의 신 맛酸에 대응된다. 때문에 비장병에 걸린 자는 마땅히 신 것을 먹어야한다. 그러나 매운 맛은 오행의 금金에 대응되고 금이 목을 극克하기에 매운 음식은 삼가야 한다.
다음 침구로 치료를 진행할 때, 날짜와 침술부위의 관계를 주의해야한다: 갑甲 ‧ 을乙일에는 두부頭部를 찌르는 것을 삼가야 하고, 병丙 ‧ 정丁일에는 어깨 ‧ 목을 찌르는 것을 삼가야 하며, 무戊 ‧ 을乙일에는 사지와 복부를 찌르는 것을 삼가야하며, 경庚 ‧ 신辛일에는 국부와 무릎을 찌르는 것을 삼가야하며, 임壬 ‧ 계癸일에는 정강이를 찌르는 것을 삼가야 한다. 그밖에도 또 ‘천기일天忌日’의 설법이 있다. 즉 입춘立春 ‧ 입하立夏 ‧ 입추立秋 ‧ 입동立冬 ‧ 춘분春分 ‧ 하지夏至 ‧ 추분秋分 ‧ 동지冬至 및 무戊일과 사巳 모두가 세게 금지하는 날이다. 인체의 구관九官(다음 장에 있음.)의 대응에 근거하여 금자禁刺의 제한에 주의해야 한다. 특히 위에서 서술한 날짜 중 파궤破潰한 방법으로 옹종이 난 등 병증을 치료하는 것은 엄금한다.
게다가 오장五臟은 인체의 핵심이다. 때문에 침을 잘못 사용하여 어느 하나의 장기臟器라도 잘못 찌르면 모두 죽음을 초래 한다. 간장을 잘못 찌르면 말이 많아지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오일 좌우면 반드시 죽는다. 심장을 잘못 찌르면 빈번하게 트림을 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일일 좌우면 반드시 죽는다; 脾脏을 잘못 찌르면 자기도 모르게 물건을 삼키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십일 좌우면 반드시 죽는다. 폐장을 잘못 찌르면 끝임 없이 기침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삼일 좌우면 반드시 죽는다. 신장을 잘못 찌르면 재채기를 많이 하고 하품을 하는데 육일 좌우면 반드시 죽는다. 오장이 인체 중의 가장 중요한 기관임을 응당 승인해야한다. 의가가 병을 치료할 때 반드시 각별히 조심해야한다. 그러나 이렇게 오장과 죽음의 필연관계를 강화하는데 오행의 신화神化을 배제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이밖에《황제내경》에서는 또 대량적으로 각 유의 병인의 죽은 날짜의 추단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예를 들면, 간장병은 경庚 ‧ 신辛일에 죽게 되고, 심장병은 임壬 ‧ 계癸일에 죽게 되며 비장병은 갑甲 ‧ 을乙일에 죽게 되고 폐장병은 병丙 ‧ 정丁일에 죽게 되며 신장병은 무戊 ‧ 을乙일에 죽게 되는 따위이다. 이것은 오행 ‧ 오장과 10천간의 대응 관계 및 오행상극의 원리에 근거하여 추산한 각종 병변의 원리이다.
물론《황제내경》중에도 이상야릇한 의기지수宜忌之數가 있다. 예를 들면, 그중의 ‘연기지설年忌之說’은 한 사람이 7세까지 자랐을 때는 첫 대기년大忌 年이고 이후 매 9년에 한번씩 기년忌年이 있다. 즉 16세 ‧ 25세 ‧ 34세 ‧ 43세 ‧ 52세 ‧ 61세 등등이다. 대기년을 만난 사람은 반드시 보양하는데 주의를 돌리고 겅거망동하지 말아야 한다. 예측할 수 없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또 예를 들면 진맥할 때 만약 맥박이 50차를 뛰어도 멈추지 않으면 이 사람이 신체가 건강하고 오장이 모두 병증이 없음을 설명하고, 만약 40차 뛰고 한번 멈추면 오장의 1장一臟이 정기가 쇠약함을 설명하고, 만약 30차 뛰고 한번 멈추면 오장의 2장二臟이 정기가 쇠약함을 설명하고, 만약 20차 뛰고 한번 멈추면 오장의 3장三臟이 정기가 쇠약함을 설명하고, 만약 10차가 안되어서 한번 멈추면 오장이 전부 쇠약하며 이 사람은 죽을 날이 멀지 않다. 이런 의기지수는 비록 일시적으로 아직은 그것의 유래를 모르지만 최종 수술 계통 중에서 그것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4. 의가는 점복을 한다.
고대의 많은 의가醫家는 동시에 직접 점복占卜과 산명算命등 유의 수술 활동에 종사한다. 사적 중에 의가의 이런 활동에 대해서도 확실한 기록이 있어 옛 사람 자신이 의술과 수술이 관련된 데 대한 견해를 반영할 수 있다.
춘추 시기 진晋나라 귀족인 조간자趙簡子가 어느 한번 큰 병이 났는데 오일동안 의식불명이여서 시종들이 너무 놀라 재빨리 당시의 명의 편작扁鹊을 모셔왔다. 편작은 병 증세를 한번 살피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혈맥이 초래한 것인 신기할 것이 없다. 당년에 진목공秦穆公도 이러했다. 칠일 간 혼수상태에 있다가 깨어났다. 그 후 공손지公孫支등 사람들에게 ‘요즘 나는 상제한테 갔었다. 매우 즐겁게 보냈다. 내가 오랜만에 돌아온 것은 거기서 무엇인가를 배우고 왔다. 상제가 나에게 알려주기를 얼마 후 진晋나라가 동란을 일으켜 5세五世가 안정할 수 없다. 그 후 진晋 나라가 천하를 독점하게 된다. 그러나 독점자는 천수를 다하지 못한다. 그들의 후대들이 너희 진秦나라를 위협에 미치게 하여 음란의 재앙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공손지는 이 말을 기록하여 진秦 나라의 참서讖書를 형성하였다. 후에 진헌공지란晋獻公之亂 ‧ 진문공지패晋文公之霸 및 진양공晋囊公이 진秦나라를 물리친 것 ‧ 사의음란肆意淫亂 따위 사실이 모두 진목공의 말을 인증하였다. 지금 조간자의 병이 진목공과 같다. 삼일이 않지나 그가 깨어날 것이니 깨어난 후 참어讖語를 서술할 것이다.
이틀 후, 조간자는 과연 깨어나 주위 사람들에게 참어를 말하였다. 이런 참어들은 시종에 의해 기록되어 잘 보관하였다. 전하는데 의하면 후에 모두 들어맞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편작의 진단과 몽점夢占 ‧ 신화神話 ‧ 참어讖語 등 문화현상과 한데 교차되어 중국고대의 의술과 수술이 갈라놓을 수 없다는 역사사실을 생동하게 반영하였다.
이밖에 고대의 많은 유명한 의가들이 의술을 행하는 동시에 또 직접 산명算命등 우의 수술 활동에 종사한다. 예를 들면 ‘약왕藥王’으로 불리는 수당隋唐시대의 의학가 손사막孫思邈의 많은 신기한 점의 보기占例가 있다. 전하는데 의하면 수문제隋文帝 때 조정에서 손사막에게 국자박재國子博才하니 취임하라고 하였다. 그는 병에 걸렸다고 자칭하고 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남몰래 가족에게 ‘나는 이미 수 나라의 국운이 얼마 못갈 것을 추단해냈다. 이제 50년이 지난 후 성명한 군왕이 출현하는데 그때에 가서 내가 나서서 그를 도울 것이다.’ 라고 하였다. 후에 수 나라는 과연 2세二世에 망하였다. 당태종 이세민李世民(599~649)이 즉위할 때에서야 손사막이 벼슬을 하였다.
다른 기록에 의하면 노제경盧齊卿이라는 한 소년이 손사막에게 자기의 앞으로의 전망을 물어보았다. 손사막이 말하기를 ‘50년 후 당신이 자사(한 ‧ 당시대의 주장관)에 취임하고 나의 손자가 당신의 아래에서 벼슬을 할 것이오. 그때에 가서 당신이 호자위지好自爲之하기 바라오!’ 50년 후 노재경卢齐卿이 과연 서주徐州의 자사刺史에 취임하였고 손사막의 손자 손부과孫溥果도 서주徐州 소현승蕭縣丞으로 취임하였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은 손사모가 노제경 위해 산명算命할 때 손부과가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첫댓글 좋은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