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필자가 그토록 부르짖던 대본, 연기, 연출의 삼박자가 완벽히 갖추어진 드라마를 말이다. 2007년 '하얀거탑'과 2008년 '베토벤바이러스' 이후로 미친 듯이 빠져들어 가는 드라마는 정말 처음인 것 같다. 물론 다른 드라마들도 재미있게 본 건 있지만 이처럼 나무랄데 하나 없고 한눈 팔 틈을 주지 않는 드라마는 실로 오랜만이다.
그 동안 수목 드라마에서 2년간 부진을 면치 못했던 MBC가 그 부활의 신호탄으로 쏘아 올리려던 '마이프린세스'가 딱 두 주 천하로 끝나고 용두사미로 끝난 반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후속작에서 터져 나와 버렸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것처럼 그 동안 '마이프린세스' 외에도 이전에 '개인의 취향'이나 '즐거운 나의집', '로드 넘버원', '장난스런 키스'등으로 부활을 노렸다가 기대만큼 실망했던 MBC 입장에서는 업고 다니고 싶을 만큼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이 드라마가 대단히 고마울 것이다. 바로 '로열패밀리'. 가뜩이나 드라마도 신통치 않고 예능마저 '위대한 탄생'과 '나는 가수다'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는 듯 했으나 여러 논란으로 시끄러운 때 조용히 돌풍을 일으키더니 어느 덧 수목극 1위에 나날이 시청률도 상승하고, 한 번 보면 절대로 다른 드라마로 눈돌릴 수 없도록 만드는 재주를 가진 이 드라마의 힘은 실로 놀라울 만하다.
제목에서만 봐도 알 수 있듯, 이 드라마는 재벌의 이야기다.가뜩이나 식상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고,비슷한 소재로 비록 월화 드라마이긴 하나 SBS에서 이미 '마이더스'란 드라마가 한 주 차이로 먼저 방송되었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출발했다. 또한 첫 방영이 한참 물오른 상대 방송사 '싸인'의 종영과 맞물려 첫 방송에서 6~7% 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초라하게 시작했다. 필자 역시도 별 기대감 없이 처음 시작하는 드라마라 예의 차원에서 봤다. 그리고는 완전히 빠져 들었다.
첫 방부터 '시크릿가든'의 현빈은 가난하게 보일 정도로 비교도 되지 않는 이른바 상위 0.01%의 재벌들의 모습은 위화감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이 틈에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사람대접 받지 못하는 여주인공이며 모든 스토리의 핵심 인물인 둘째 며느리 김인숙의 모습은 그녀의 성공 스토리라는 그저 그런 내용이려니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첫 회부터 무참히 깨져 버렸다. 그러면서 전개될 수록 한 치 앞의 내용조차 가늠할 수 없는 탄탄한 스토리에 군더더기 없는 연출, 이 사람들이 이렇게 연기 잘 하는 사람들이었나 싶을 만큼 역할에 빙의된 듯한 배우들의 연기에 한없이 빠져 들었다. 그러면서 작가와 연출가를 찾아 보게 되었다.
종합병원 2의 작가 권음미, 그리고 크리에이터 김영현, 박상연.
처음 작가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약간 의아했다. 공홈에 소개된 권음미 작가의 이력을 보면 '종합병원 2'가 다였다. 물론 이 드라마는 실패작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성공작이라 보기에도 애매한 작품이라 이 한 편 가지고 평을 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 작품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좋아진 필력을 보곤 감탄을 했다. 그런데 작가 소개 위에 크리에이터라 되어 있는 소위 대본의 총책임자 정도급인 두 사람의 이름을 보고는 역시나 했다. 김영현과 박상연. '대장금', '서동요', '히트', '선덕여왕'을 집필한 김영현 작가에 '히트'와 '선덕여왕'을 공동 집필한 박상연 작가. 이들의 이름만으로도 이 드라마를 믿고 가기로 했다. 필자는 위의 네 작품 중 서동요를 제외한 나머지 세 작품을 다 봤다. 그리고 작가의 능력에 감탄을 했다. 특히 김영현 작가의 작품 중 개인적으로 최고라고 치켜 세우는 '히트'는 네 작품 중 시청률이 가장 낮았던 작품임에도 첫 회부터 마지막회까지 수사물로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빠져 들게 만들었던 수작이었다.-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보지 않은 분들에게 강력 추천하는 작품이다.-
두 작가의 총책임하에 전작에서 훨씬 나아진 필력으로 작품을 이끌어 가고 있는 작가의 능력이 어우러져 마치 히트와 선덕여왕의 장점만 합쳐 놓은 듯한 긴장감넘치는 최고의스릴로시청자들을 잡아 끄는 마력을 분출해 내는 것 같다.
스포트라이트, 환생-Next의 감독, 김도훈
감독인 김도훈 PD는 크게 대박 작품을 만들어낸 감독은 아니다. 하지만 다수의 베스트극장과 미니시리즈 '스포트라이트', '환생-Next' 등을 통해 가능성을 보인 적이 있다. 드라마가 작가의 비중이 더 큰 만큼 사극을 제외하고는 상대적으로 감독이 덜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는데, 이번 '로열패밀리'에서는 완벽한 극본을 더욱 빛내 주는 군더더기 없는 연출로 빛을 내고 있다. 아무리 작가가 최고의 대본을 써 준다고 해도 연출이 형편없으면 재미가 떨어지고, 반면에 대본이 받쳐 주지 못해도 연출에서 어느 정도 커버해 주면 대본의 부실함은 어느 정도는 상쇄되는데 로열패밀리는 영상도 화려할 뿐만 아니라 필요없는 부분이 없을 정도로 매끄럽게 편집해서 질질 끄는 듯한 느낌도 없다.
여기에 최고의 대본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부실한 대본 살려 보려고 감독 혼자 힘들어해야 할 필요가 없으니 당연히 훌륭한 연출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연기대상감인 염정아와 김영애, 그리고 조연들까지 완벽한 연기
출연하고 있는 배우들을 보고 있으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이다.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으나 그렇다고 대단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라 생각하지도 않았던 염정아는 영화 '장화홍련' 이후로 최고의 배역을 맡았고, 두 말할 필요없는 중견 배우 김영애는 염정아와 더불어 악역을 맡았으나 두 사람 다 소리만 빽빽 지르는 악역이 아닌, 조용히 읊조리는 말 한마디로도 소름돋는 아우라를 보여 줄만큼 최고난도의 연기를 소화하고 있다. '뉴하트' 이후 오랜만에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 맞춤 배역으로 돌아온 지성 또한 남자 주인공으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 특히 5회의 종반부에서 감금된 별장에서 탈출한 후에 김영애와 독대하며 협박으로 협상을 이끌어 내는 부분에서는 10분 정도의 방영 시간을대선배인 김영애에 결코 밀리지 않는 연기력으로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을 선사했다.
또한 다른 배우들에 비해 이 작품의 아킬레스건일 줄 알았던 차예련 역시 우려와는 달리 잘 해 주고 있고, 이 외에 그 동안 찌질남이나 불륜남의 이미지가 강해 재벌가의 장남 역할엔 안 어울릴 줄 알았던 안내상이나, 비중의 크고 작음을 떠나 전작인 '제빵왕김탁구'나 '에덴의 동쪽' 외에 이전의 수많은 작품에서 늘 미친 존재감을 보인 전미선, 적은 배역임에도 최선을 다하는 서유정, 기태영, 이채영 등도 충분히 제 몫을 하고 있다.
특히 이 드라마의 최고의 반전이면서 십년 묵은 체증을 뻥 뚫리게 해 준 통쾌한 장면이었던 7회의 엔딩에서의 염정아와 전미선의 연기 대결은 진정한 연기가 무엇인지를 보여 준 또 하나의 수확이었다. 동서 전쟁에서 사람 취급도 안 하던 아랫 동서에게 패하고도 카리스마 있는 척 도도하게 굴다가 마지막 약점마저 잡히고 늘 "이 봐"라는 호칭으로 부르던 때와는 달리 굴욕적인 투로 "동서"라고 부르며 살려 달라고 무릎꿇는 '윤서' 역할의 전미선이나 천사인 척 하다가 드디어 본성을 드러내며 맞받아 치고 승리하자 그 동안 자신을 무시하던 손윗 동서에게 썩소를 날리고 돌아서며 웃는 웃음을 소름끼치게 보여 준 '인숙' 역할의 염정아 모두 완전히 배역에 몰입된 연기로 다른 드라마에서 발연기의 향연에 지쳐 있던 시청자들의 갈증을 한 번에 해결해 준 명장면이었다.
훌륭한 연기력을 가지고도 그 동안 저평가 받은 배우 중의 한 사람이 염정아가 아닐까 한다. 마치 선덕여왕에서의 미실을 보는 듯한 고고한 악역을 자연스럽게 소화하고 있는 염정아야말로 올해 연기대상감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아직 시청률은 20%를 넘지 못했지만 매회 조금씩 오르며 시청자를 늘여 가고 있는 '로열패밀리'는 그 동안 보지 않고 있다가 입소문을 타고 뒤늦게 본 사람들이 단 번에 매료되어 지난 방영 분을 몰아서 보고 있을 정도로 파급 효과가 점점 커지고 있다. 또한 관련 기사나 시청자 게시판의 반응들 또한 온통 호평 일색이다. 비슷한 시청률로 월화극에서 동시간대 1위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갈수록 힘이 빠지고 있는 '짝패'와는 달리 '로열패밀리'는 계속 시청률이 오르고 있고, 갈수록 더 궁금해지고 있어서 안 보고는 못 배기게 만들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시청률이 더 오를지는 모르고 대박이라는 3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할 지는 알 수 없지만 오랜만에 '하얀거탑'이나 '베토벤바이러스', '개와 늑대의 시간'과 같이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갖춘 수작이 탄생할 것 같은 느낌이다.
대본과 연기, 연출의 삼박자가 고루 잘 맞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걸 몸소 보여 주고 있는 '로열패밀리'. 대본도 형편없고 내용도 그지같고, 질질 끌며 짜증나게 하고 연출마저 형편없으니 연기자들까지도 발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러면서 시청률만 높은'웃어라 동해야'같은 드라마에게 추천하고 싶은 드라마이다. 다만 한 가지 염려스러운 건 쪽대본으로 작품을 망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지난 4회와 6회에서 예고편 없이 끝낸 것이 쪽대본이라 그런 건지 방송 시간이 오버되어 그런 건지 알 수가 없다. 예고편 안 나갈 때 보여 주는 하이라이트 장면도 안 나간 걸 보면 방송 시간이 오버되어 그런 거라 믿고 싶다.
앞으로 김인숙의 과거가 하나씩 파헤쳐 지면서 위기에 처하고 또 그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하는 김인숙의 모습, 그리고 한지훈의 관계 등이 점점 더 흥미를 자아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속도감 있는 전개를 보이면서도 이 내용들을 감질나게 드러내고 있다. 바로 이런 매력으로 이 드라마에 빠져 드는 것 같다. 모쪼록 지금처럼만 해서 마지막까지 훌륭히 마무리해 이 드라마의 여운이 오래도록 남을 수 있는 명작으로 기억되기를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