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편지」
- 77년 만에 쓰는 편지
어머니,
77년 전 그날의 바람, 그날의 흙냄새가 아직도 선합니다.
영문도 모른 채 군인들에게 끌려 트럭에 실려 가던 어머니의 뒷모습을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바라만 봐야 했던 제가 어찌 잊겠습니까?
며칠 뒤 들려온 소문은 너무도 잔인했습니다.
양정리 갱변 다리 밑에서 총살을 당했다는 말을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신들 사이에서 어머니가 그날 입고 가셨던 누비저고리를 찾았을 때 저의 식구들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졌습니다.
그 옷에 남은 온기를 품어 안고 벌벌 떨리는 손으로 모래밭을 파던 그 밤에 저는 갑자기 철이 들었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과 목소리, 평범하게 불러볼 ’엄마‘라는 이름이 사라진 그날 이후,
우리 아홉남매는 세상과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자랐고 아버지는 한마디 말도 없이 굳은 어깨로만 우셨으니까요.
그렇게 제 어린 시절은 상실과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머니,
그럼에도 저는 살아남아 이렇게 여기 서 있습니다.
당신이 못다 본 세월을 제가 대신 살아내고 있습니다.
이 아픔을 기억하는 일만이 당신께 드릴 수 있는 마지막 효도라 믿으면서 살아내고 있습니다.
77년 동안 삼키고 또 삼킨 슬픔 끝에 이제야 당신의 억울함을 말할 용기를 냅니다.
어머니,
당신은 아무 죄도 없는 그저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라구요
함께 한 날보다 그리워 한 날이 더 많은
어머니,
정말 보고 싶습니다.
단 하루만이라도 다시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서로 닮은 얼굴을 바라보면서 웃으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어머니,
그립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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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구례 지리산역사문화관에서 열린 ‘제 77주기 여순 10.19사건 합동 추모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 정청래민주당 대표 등 정부인사와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하였고
도올 김용옥선생의 평화의 메세지 선언도 있었다.
그러나 참석자들을 울린 것은 구례유족회의 이선복님과 AI로 복원된 어머니 故김애남씨
모자 간에 주고받은 77년 만의 편지였다.
8살 때 어머니가 끌려가 총살 당했는데 77년이 지나 이제 9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버린
이선복님이 단 하루만이라도 다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께 올린 편지를 옮겨봅니다.
-섬진강 / 김인호
첫댓글 저도 따라 숙연해집니다.
지리산역사문화관을 찾아가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