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종장교의 역할
최근 28사단 윤 일병 구타 및 가혹행위 사망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면서 우리 사회를 경악하게 했다. 앞서 22사단에서는 철책근무를 마친 병사가 동료들에게 총을 난사해 5명을 숨지게 하는 참혹한 사건도 있었다. 일련의 사건이 계속되면서 우리 사회에는 군을 기피하는 것은 물론 군 입대 예정자 아들을 둔 부모들의 한숨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군내에서 벌어진 각종 사건 사고, 자살 사건에서 종교계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현재 군에는 500명이 넘는 군종장교가 있다. 개신교가 260여 명으로 가장 많고 불교가 131명, 천주교가 94명, 원불교가 2명이다. 종교시설도 군 교회가 970개, 군 법당 409개, 군 성당 및 공소 244개, 군 교당은 9곳에 달한다.
그런데 아무리 되짚어봐도 최근 불거진 군내 인권유린 행태를 막는 데 군종장교들이 제 역할을 했는지 궁금하다. ‘혹시 그동안 군종병과 소속 장교들이 군 선교를 이유로 신자 수 늘리기에만 집중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일선 현장에서 사병들의 애로 사항을 듣기보다 군 간부나 군인 가족들과의 유대에 더 신경 쓴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이 자꾸 든다.
특히 다른 종교에 비해 사병 복무 경험이 있는 군종 신부들의 역할이 부각되지 않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다. 신부가 되려면 원칙적으로 병역을 마치지 않았을 경우 신학교 재학 중에 사병으로 군대에 갔다 와야 한다. 그래서 현재 군에 있는 군종 신부들은 모두 군대를 두 번 간 셈이어서 예비역이자 현역이다. 신학이나 불교 관련 학과를 졸업하고 군종장교로 복무하는 군목이나 군승보다 군종신부는 병영 내에서 병사들의 말 몇 마디만 들어도 애로사항을 파악하고 상담할 수 있는 바탕을 갖고 있다.
새누리당 이병석 의원이 국방부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14년 6월 말 현재 장병 및 하사 37만 74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성검사에서 5만 29명이 ‘관심 및 위험’ 병사로 분류됐다. 이 가운데 일반장병은 4만 9328명으로 전체 장병의 13.3%에 달했다. 자살자도 상당수에 달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서영교 의원실이 국방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과 2013년 두 해 동안 자살한 사병만 83명이다.
우리 군에 군종병과가 설립된 것은 1954년 12월 31일 130명이 군목으로 임관되면서부터다. 군종병과 창설부터 군종장교는 군종 고유의 활동 외에 인격지도 교관으로 임명돼 정신전력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했다. 특히 1957년부터는 각 부대에 개인상담소를 설치해 관심병사에 대한 선도 역할을 맡았다. 이런 측면에서 군종장교들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면 장병 정서안정과 사기앙양은 물론 사건, 사고 예방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미군 군종장교는 일선 장병들과 함께 현장에서 먹고 자며 전투를 치르거나 훈련을 하고 종교의식을 집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적 인물을 꼽는다면 6·25 전쟁 당시 미 제1기병사단 제8기병연대 제3대대 소속으로 참전했던 군종신부 에밀 카폰(1916~1951) 대위가 아닐까?
군종신부 에밀 카폰 대위는 포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지프 보닛에서 고해성사를 집전했고 주검들 사이에 숨어 죽어가는 병사들을 위해 임종기도를 올렸다. 1950년 11월 원산에서 중공군에 붙잡힌 카폰 대위는 적군의 저장고에서 음식과 약을 훔쳐 포로들을 헌신적으로 돌봤지만 정작 본인이 폐렴에 걸려 1951년 벽동 포로수용소에서 선종했다. 군종신부 카폰 대위는 2013년 4월 11일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최고 군사훈장인 ‘the Medal of Honor (명예의 훈장)’를 추서 받았다.
그동안 카폰 대위에게 수십 년간 ‘명예의 훈장’을 추서하는 운동을 벌인 사람은 다름 아닌 6ㆍ25전쟁에서 살아남은 미군 병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