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스 패드에는 쥐가 살고 있다
김충경
구입한 지 10년이 넘은
컴퓨터 마우스 패드 위에 쥐가 살고 있다
주인의 심중 따라 하루 종일 움직이다
밤이 되면 검은 눈망울 지그시 감고
잠시 숨을 고르는 생쥐 한 마리
밥도 안 주고 월급도 안 줘도
하루 종일 눈 깜박거리며
전깃줄 한 가닥에 묶여
주인 손아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싫다는 말 한번 못하고
기껏해야 패드에 남긴 수많은 발톱 자국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한 뼘 공간에서 맴돌고 있다
지난한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나도 '가장家長'이란 주인의 명령에 따라
쉬지 않고 움직이는 생쥐로 일생을 살아왔다
패드에 몸을 뉘고 있는 생쥐를
온기 가득한 손바닥으로 어루만져 본다
주름지고 윤기를 잃어 까칠하다
그래,
너나 나나 별반 다르지 않는 인생이구나
---김충경 시집, {마우스 패드에는 쥐가 살고 있다}에서
생명이 생명을 먹는다는 것은 원죄가 되고, 이 원죄의식을 통해 속죄를 하며, 모든 생명체들에게 고마움과 감사함을 표하는 것이 ‘시인—부처의 길’이라면, 오늘날은 이 ‘시인-부처의 길’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소위 ‘자본가-악마의 길’이 그 모든 권력을 다 장악하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정상과 비정상, 정의와 불의, 부자와 가난한 자들을 결정하는 것은 자본가들이며, 그 결과, 죄도 없이 죄를 짓고 한평생 감옥에서 강제노역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과 인공지능은 악마가 만든 걸작품이며, 어느 누구도 이 자본가들의 전면적인 감시체제와 그 노역의 사슬을 벗어날 수가 없다. “컴퓨터 마우스 패드 위에 쥐가 살고” 있고, “밥도 안 주고 월급도 안 줘도/ 하루 종일 눈 깜박거리며/ 전깃줄 한 가닥에 묶여/ 주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싫다는 말 한 번 못하고/ 기껏해야 패드에 남긴 수많은 발톱 자국/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한 뼘 공간에서 맴”돈다. 너도 “가장家長이란 주인의 명령에 따라” “쉬지 않고 움직이는 생쥐”처럼 살아왔고, 나도 “가장家長이란 주인의 명령에 따라” “쉬지 않고 움직이는 생쥐”처럼 살아왔다. 작업현장에서 일을 해도, 밥을 먹고 소주 한 잔을 마셔도 자본가들이 이익을 다 챙겨가고, 영화구경을 가도, 야구구경을 가도 자본가들이 이익을 다 챙겨간다. 자동차를 타도, 비행기를 타도 자본가들이 이익을 다 챙겨가고, TV를 시청해도, 컴퓨터로 물건을 사고 팔 때에도 자본가들이 이익을 다 챙겨간다. 너무나도 완벽한 감시와 관리체제, 너무나도 완벽한 강제노역과 착취체제----, 이처럼 너무나도 완벽한 인간에 의한 인간 착취와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자본가들이고, 어느 누구도 이 ‘컴퓨터’라는 ‘맹골수도의 법칙’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다. “패드에 몸을 뉘고 있는 생쥐를/ 온기 가득한 손바닥으로 어루만져” 보지만 그러나 그와 나는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자본의 법칙은 맹골수도*의 법칙이고, 인간에 의한 인간 착취와 그 희생만을 강요하는 자본주의의 미래는 참으로 암울하고 참담하기만 하다. 엘리뇨와 라니냐에 의한 대참사, 수많은 지진과 화산폭발, 점점 더 뜨거워 지는 지구와 생태환경의 파괴 이외에도 인간보다도 천 배, 또는 만 배나 더 뛰어난 인공지능의 등장은 오직 단 하나의 법칙, 즉, 최고 이윤의 법칙에 따라 이제까지의 인간의 역사와 전통, 그 모든 가치들을 다 파괴시키고, 곧 가까운 시일 내에 지구촌을 대폭발시키고 말게 될 것이다.
자본의 법칙은 맹골수도의 법칙이고, 무서워하는 사람들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너무나도 사납고 험상궂게 짖어댄다.
* 전남 진도 서거차도와 맹골군도 사이를 지나는 바닷길로 물살이 빠르고 거세기로 소문난 곳이며, 2014년 4월 인천과 제주를 운항하던 세월호가 이곳에서 침몰했다.
김충경 시집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