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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 사도행전 17:22-31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LsOWcZT4Am8
상도중앙교회에 전도된 초신자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이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해서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한 번은 꿈에서 낯선 사람들이 와서 가자고 하더랍니다. 그 남편은 그들을 뿌리치고 눈을 떴는데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더랍니다. 그래서 부인에게 성경을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마침 그 방에 믿는 분이 계셔서 성경을 빌려다가 읽어주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평안히 잠들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상도중앙교회 전도대원을 만나서 아내가 교회에 등록을 했습니다.
남편은 상태가 심각해져서 병상세례를 청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병원에 가서 복음을 제시하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중환자실에 다섯 사람이 있었는데, 그분이 제일 위독해서 제일 먼저 죽을 거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나머지 네 사람은 다 죽었는데 남편은 병상세례를 받고 나서 호전돼서 일반병실로 올라가게 됐습니다.
그런 과정이 아내 되시는 분에게는 충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놀랍게도 구역식구들이 병원에 심방을 가보니 아내 되시는 분이 병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고 있더랍니다. 교회라고는 두 번 나온 것이 전부인 생초신자가 전도를 하더랍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나니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부족한 것이 전도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의 놀라운 역사를 많이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을 전하는 일에 힘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전도에 힘을 써야 합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께서 정오의 빛보다 더 밝은 빛으로 바울에게 임하셨습니다. 바울은 말에서 떨어졌고 하늘에서는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바울은 강력한 빛으로 눈이 멀었으나 아나니아의 안수로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다시 보게 되었고 성령의 충만함도 받았습니다. 그 이후 바울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제2차 전도 여행 중에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으나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바울은 밤에 한 사람이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청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확신하고 마게도냐로 향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로 가서 복음을 전했고 데살로니가를 거쳐서 베뢰아로 갔습니다. 그리고 본문이 나오는 아덴으로 갔습니다.
여기서 아덴은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를 말합니다. 아덴은 당대 최고의 문명 도시로 로마의 3대 도시로 꼽혔습니다. 바울 당시 아덴은 문학, 예술, 웅변, 철학, 건축 등의 모든 분야에서 당대 최고였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의 요람이었고, 철학적으로도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고향이었고,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 제노의 활동 무대였습니다. 그래서 아덴은 인류 지성을 대표하는 도시가 됩니다.
바울은 아덴의 거리를 거닐면서 그 도시의 찬란한 문명에 감명을 받기는커녕 우상숭배에 찌든 그들의 모습에 격분했습니다. 아덴 광장에 서있던 공중 우상이 300개였고, 기타 신상들은 3만 개나 되었습니다. 아덴 거리에는 사람보다 신이 더 많다고 할 만큼 우상의 소굴이었습니다.
17절을 보면 바울은 두 장소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한 곳은 유대인 회당입니다. 바울은 유대인 회당에서는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에게 성경을 통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또 다른 곳은 본문에서 장터로 번역한 아고라광장입니다. 바울은 아고라광장에서는 헬라 시민들과 논쟁을 벌였습니다. 아테네 사람들은 베뢰아 사람들과 달리 복음을 순순히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묻고 따지고 질문했습니다. 그래서 부득불 논쟁 형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철학자들과 논쟁을 했는데 철학자들이 눌렸던 것 같습니다. 18절에 보면 철학자들은 바울을 ‘말쟁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예수님과 부활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32-34절에 보면 바울 사도의 복음의 증거에 대하여 아덴 사람들은 세 가지 유형으로 반응했습니다. 첫째, 복음을 거절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는 조롱하며 복음을 거절했습니다. 둘째, 결신을 보류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바울의 말을 다시 듣겠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좀 더 생각해 보고 좀 더 연구해 보고 좀 더 들어보고 결정하겠다는 것입니다. 셋째,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드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많지는 않았습니다. 34절에 보면 몇 사람 정도였습니다.
저는 오늘 바울이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전한 하나님을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는 흔히 아덴에서 바울의 설교는 철학적인 설교였기 때문에 실패한 설교였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청중이 철학자들이었기 때문에 철학적인 접근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가 아덴에서 전한 메시지의 뼈대는 지극히 복음적이었습니다.
24절에 보면 바울이 전한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이십니다. 주재라는 말은 ‘퀴리오스’로써 주(主)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하늘과 땅 즉 온 우주의 주인이시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했을까요?
1. 하나님은 모든 것의 창조자이십니다.
24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거나 깊은 철학적인 사고를 해도 우상숭배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을 더듬어서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27절에 보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습니다. 여기서 ‘더듬어 찾다’는 말은 ‘만지다’, ‘느끼다’는 뜻으로 ‘소경이 무엇인가 열심히 더듬어 찾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사람이 깊은 철학을 할지라도 하나님을 올바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집트 카이로, 기자에 가면 피라미드가 몇 개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크고 오래된 피라미드를 대 피라미드라고 합니다. 대 피라미드의 높이는 약 147미터이며, 밑변의 길이는 약 230미터입니다. 대 피라미드는 약 230만 개의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피라미드는 현대인들에게도 불가사의로 남아있습니다. 어떻게 그 큰 돌덩이들을 그렇게 정교하게 쌓아올렸는지 현대의 건축공학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대 피라미드는 그 당시의 과학이 얼마나 발전했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토록 과학이 뛰어났던 이집트 사람들이 섬겼던 것들이 뭔지 아십니까? 벌레들이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애굽에 내렸던 10가지 재앙들에 등장하는 것들은 바로 애굽인들이 섬기는 우상이었습니다. 우상숭배는 과학적인 사고와는 별개인 모양입니다.
아덴에는 약 3만이 넘는 신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돌로 우상을 만들어놓고 섬겼습니다. 철학의 도시 아덴에 그렇게 많은 우상들이 존재했다는 것은 인간의 철학이 대단한 깊이를 가진 것 같아도 우리 표현대로 하면 개똥철학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유일신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주와 세상 만물의 창조자 이십니다. 이 세상에는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존재하거나 다른 것들을 존재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 어떤 것도 하나님과 관계없이 생겨났거나 하나님과 무관하게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주와 만유를 지으신 분입니다. 성경은 성경의 첫 장 첫 구절인 창 1:1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대전제를 가지고 시작합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이십니다.
2. 하나님은 모든 것의 공급자이십니다.
25절에 보면 하나님은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땅을 딛고 살고, 햇빛을 받으며 또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사는 것도 하나님께서 만물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몸에는 하루에 5천~1만 개의 암세포가 생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암에 걸리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 속에 백혈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백혈구 안에는 다양한 면역세포들이 존재합니다. T세포, B세포, 대식세포, 수지상세포 등 다양한 세포들이 있습니다. 암 세포를 잡아먹는 NK세포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이들 면역세포들은 우리 몸속에 들어오는 수많은 바이러스나 세균, 암세포와 같은 적으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합니다. 이런 면역세포들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이게 은혜입니다.
28절에 보면 우리는 하나님을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공급 때문에 우리는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산소를 마시고 살아갑니다. 강원도 산간지역의 산소 농도는 21%, 서울시의 산소농도는 20.5% 정도 됩니다. 두 지역의 농도 차이는 겨우 0.5%지만 두 곳에서 느끼는 쾌적감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산소가 2% 적으면 뇌의 활동에 문제가 생겨서 자신의 이름도 쓰지 못하게 됩니다. 산소 부족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천식, 뇌졸중, 심장병, 동맥경화, 무력감과 두통, 두뇌활동 둔화 현상 등이 나타납니다. 그러니 서울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위대합니다. 대기 중의 산소 농도가 7%로 떨어지면 사람은 죽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자연에서 산소가 발생하여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산소를 마시고 사는 것도 은혜입니다.
육신적으로 보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공기입니다. 산소가 없으면 5분이면 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산소를 무료로 주셨습니다. 15명 타는 잠수함에서 하루 동안 사용할 산소를 만드는 데 600만원이 듭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산소를 돈을 주고 사서 사용하라고 하셨으면 한 달 산소 값만 1,200만원입니다. 4식구면 한 달에 5천만 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산소를 공짜로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호흡을 주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심장은 하루에 약 10만 번을 뛰고, 몸속의 혈액은 하루에 1억6,800만 마일을 달립니다. 그리고 하루에 숨을 2만3천 번 정도 쉽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는 자신의 심장이 뛰도록, 자신의 혈액이 그 먼 거리를 달리도록, 자신의 폐가 숨을 쉬도록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런 것을 우리가 노력해서 한다면 인생이 얼마나 고단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심장과 폐가 알아서 운동하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로 심장 박동이나 호흡 등에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아갑니다. 이런 것도 우리가 지금 받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햇빛도 주십니다. 아주 적당한 온도로 비춰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지구상에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태양과 지구의 거리가 적당하고 지구가 23.5도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지구에는 물이 얼음으로도 액체로도 수증기로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물이 없다면 삶이 불가능합니다. 사람의 몸은 약 60-70%가 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은 생명입니다. 몸에서 체중의 2%의 물이 빠져나가면 갈증이 느껴지며 인체는 남아 있는 수분을 극도로 아끼려고 합니다. 신장은 방광으로 물을 덜 보냅니다. 따라서 소변의 색이 탁해지고 체온이 오릅니다. 산소 농도를 유지하기 위해 심장박동도 빨라집니다.
몸에서 체중의 4%의 물이 빠져나가면 혈액의 농도가 매우 짙어져 혈액 흐름이 나빠져 피부가 수축됩니다. 혈압이 낮아져 기절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땀 배출이 멈추게 되고, 체온이 과열되기 시작합니다.
몸에서 체중의 7%의 물이 빠져나가면 혈압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생존을 위해 신장이나 장 등 생존에 덜 중요한 장기에는 피를 천천히 보냅니다. 그러면 해당 장기는 손상을 입습니다. 신장이 피를 걸러주지 못하면 세포 노폐물이 신속히 쌓이게 됩니다. 이정도가 되면 죽음 직전입니다.
몸에서 체중의 10%의 물이 빠져나가면 주요 장기가 과열되면서 간이 부전을 일으키고 유독 물질이 혈액 안에 쌓이게 되어 신장 부전으로 사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중요한 물을 우리에게 공짜로 주십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게 하셔서 우리가 마시는 물을 공급해주십니다.
우리의 몸에 음식이 들어가면 우리의 위에서 위산이 분비되고 위가 계속해서 음식물을 주물러주며 소화시킵니다. 하나님께서 위장이 알아서 음식물을 소화시키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루 세 끼 먹은 음식을 주물로서 소화시킨다면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우리는 위장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주재이십니다.
3.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관자이십니다.
26절을 읽겠습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셨습니다. 바울 사도가 이 말을 한 이유는 아덴 사람들은 자신들은 특별한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티카(Attic) 본토의 흙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인류는 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아담이라는 한 조상을 가진 한 혈통임을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연대를 정하셨습니다. 지구가 생겨나서 유지하다가 마지막에는 불로서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벧후 3:12입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여기서 그 날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전에 먼저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하늘과 땅을 불로 태워서 사라지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게 하실 것입니다. 계 21:1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어집니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합니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에 새예루살렘성 즉 천국이 임할 것입니다. 이런 인류의 역사와 우주의 역사를 하나님은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연대를 정하셨다’는 구절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정해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써 시간을 만드셨으며, 사람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생사화복도 하나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 싶으신 대로 하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오래 살고 싶어 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이 세상을 일찍 떠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마음대로 안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사가 자기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뿐입니다. 살고 죽는 것의 결정권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이시기 때문에 인류의 거주의 경계도 정하셨습니다. 시 74:17입니다. “주께서 땅의 경계를 정하시며 주께서 여름과 겨울을 만드셨나이다” 지금 지구상에 200개가 넘는 국가들이 영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거주의 한계를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신 32:8에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자가 민족들에게 기업을 주실 때에, 인종을 나누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백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하나님께서 민족들에게 기업을 정해주셨습니다. 인종도 하나님이 나누어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이 근동지역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나라를 이루게 된 것도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심지어 저와 여러분이 서울이나 하남에 살게 된 것도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곳 하남시 감이동으로 온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이곳으로 오기 전에 저는 강남이나 판교로 가고 싶었습니다. 김양욱목사님이 제 설교를 들으시고는 “마목사, 강남으로 가. 강남에 가면 먹히겠어!”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그 말에 자극을 받아서인지 저는 강남이나 판교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김요한목사님이 저를 찾아오셨고 저는 이곳으로 와서 목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저에게 마치 광야와 같았습니다. 그때까지 교회는 꾸준히 성장을 했었는데 이곳에 와서 정체 되더니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린벨트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20년 가까이 견디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가끔은 ‘이곳으로 들어오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생각도 했지만, 우리 비전교회의 주소를 이곳으로 정해주신 분은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인도가 있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해가 잘 안 되어도 감사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자기 생각으로 제한하려고 합니다. 24절을 보겠습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은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리스 아테네에 가면 바울 당시에 존재했던 파르테논 신전이 있습니다. 아테나를 위하여 봉헌된 신전인데 엄청난 규모입니다. 그 당시 파르테논 신전이 아무리 웅장하고 화려하다고 해도 그것은 인간이 지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아덴 사람들은 그들의 도시국가와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한 많은 신전과 사원 안에 수많은 신들을 소유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소유될 수 있는 분도 아니시며 그러한 신들과 같은 부류와 혼동되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 의하여 제한 받는 분이 아닙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완공한 후에 봉헌할 때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왕상 8:27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했다고 그 성전에 하나님을 가둬둘 수 없었습니다.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도 하나님을 제한 할 수 없는데, 하나님이 인간이 만든 성전에 제한을 받으시겠습니까?
29절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너무나 광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105편을 보면 우상은 손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런 것이 신이 될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우상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합니다. 우상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입에는 아무 호흡도 없습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 후에 시 135:18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을 만든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것과 같으리로다” 우상을 만든 사람과 우상을 의지하는 사람은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런 능력도 지혜도 없고 무능한 것처럼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관자이신데 감히 누가 하나님을 제한하겠습니까?
4. 하나님은 모든 것의 심판자이시다.
31절입니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하나님은 천지창조부터 온 세상이 심판 받을 날까지 모든 것을 작정하셨습니다. 결국 이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신적 작정대로 되는 것입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정하신 마지막 때의 시간표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 됩니다.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 되면 대환난이 시작 됩니다. 환난 후에 주님이 공중 강림하시는데, 그때 믿는 자들이 부활하고 신자들은 공중으로 들림을 받을 것입니다. 그 후에 주님이 지상으로 재림하시고 지상에서 천년 왕국이 펼쳐집니다. 그 후에 불신자들 가운데서 죽은 자들이 부활하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이 심판을 백보좌 심판이라고 합니다. 이 심판을 통과한 자들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복락을 누리고 이 심판을 통과하지 못한 자들은 영원한 불못에 들어가서 세세토록 괴로움을 당하게 됩니다. 이때 심판은 영원한 세상을 결정하는 심판이기 때문에 반드시 심판을 잘 통과해야 합니다.
백보좌 심판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안 믿느냐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31절에 보면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의 기준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와 부활의 능력으로 심판을 통과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자신의 죄를 해결하지 못해서 심판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1983년 시카고에서 세계 종교 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각 종교 지도자들이 자기들 종교의 좋은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힌두교, 불교, 유교, 이슬람교 등등. 그 때에 기독교의 대표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들의 종교에는 사람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습니까?” 그러자 모두들 입을 다물었습니다. 기독교 대표는 답을 못하는 그분들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십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의 죄를 사해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심판을 이기는 조건입니다.
바울이 아덴에서 전파했던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 하나님은 모든 것의 창조자이십니다.
2. 하나님은 모든 것의 공급자이십니다.
3.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관자이십니다.
4. 하나님은 모든 것의 심판자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