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조금은 둔해도 괜찮다.
조금은 둔해도 괜찮은 것을. 요즘은 넘치다 못해 질식할 것 같은 ‘말’의 홍수에 빠져 사는 것 같다. 대화인지, 잡담이나 험담인지 구분이 안 될 때도 있다. 대면 대화가 힘들고 용기없는 사람은 소셜네트워크로 대화를 중계한다.
이 말은 확성기보다 더 크고 빠르게 퍼진다. 때론 가시가 되고 화살이 되어 누군가의 심장에 아픈 상처도 남긴다. 조금은 둔감해야 평화롭다. 상처가 났다고 긁어대면 더 아프다. 불편할 때마다 민감하게 대응하면 스트레스만 커진다.
‘신경 좀 끄시지.’ 자신에게 종종 하는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에너지는 빠진다. 게다가 예민하기까지 하면 어쩔 것인가?
젊을 때는 에너지가 충만하다. 해보지 못한 일도 해야 하고. 경험이 없으니 부정도 하고 불평도 험담도 해볼 만하다.
그래서 후회도 하고 가던 길을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 힘들게 올라간 길 다시 내려올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모든 기능이 쇠퇴하면서 사용할 에너지도 많지 않다. 그렇다고 좌절할 이유는 없다. 판단하고 불평하고 부정하는 에너지만 안 쓰면 된다.
자꾸 부정적인 일에 힘을 빼다 보면 스트레스만 쌓일 뿐이다. ‘나는 예민해서 도저히 안 돼!’라고 생각한다면 부정이 긍정되게 하는 방법도 있다.
언니가 동장이었을 때였다. 긴급회의를 하는 도중 언니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다음 날 지역신문에 ‘비상회의 때 스마트폰을 만지는 여동장의 불성실한 모습’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언니는 기자에게 무척 화가 났다. 며칠 후 언니는 기자를 만났다. 그리고 대화를 피하려는 기자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말했다. “기자님, 지난번 기사 정말 고마웠어요. 그 이후로 회의 때 절대로 스마트폰을 만지지 않아요. 정말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그 기자는 얼굴이 붉어졌고, 안절부절못했다. 그 후 언니를 멀리서 보기만 해도 먼저 달려와 반갑게 인사를 하더란다.
이렇게 반전의 역전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조금은 둔해도 좋다. 과민해서 좋을 게 없으니까.
<김수은 수녀 '살다보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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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조금은.둔해도 좋다.
과민해서 좋을게 없으니까,
예, 삶에서 과민해서 좋을게 없습니다.
과민하지 말고 느슨하게 살아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