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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시간에 성경의 중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여라.”(마 18:22, 현대인)는 주님의 말씀속에서 다함없는 용서와 더불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의 특별한 시간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교만과 오만, 무지는 하나님의 그 무한한 사랑마져 무효케 하고, 절망으로 치닷는 무서운 결과를 거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눅 13:7-9)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무한한 사랑은 드디어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온 인류의 죄를 사하는 놀라운 구속의 은혜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어 아무도 풀지 못하는 구원의 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결코 우연이나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큰 계획속에 분명한 목적이 있는 가장 위대한 하늘의 메시지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성경을 분명히 알면 엠마오 마을로 가는 두 제자의 탄식이 뜨거운 감동으로 바뀌어져 다시 올라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눅 24:20-21)
그러나 성경을 바르게 알게 될 때 눈이 열려 구속의 놀라운 성취를 보고 마음이 뜨거워져 어찌할 줄 모르는 감동과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눅 24:32-34)
2300주야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온 인류를 향한 한 없는 주님의 사랑의 현현입니다. 아담 때부터 죄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허덕이는 인류에게 복음중의 복음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 예언중에는 메시야의 기름부음의 때와 십자가의 피흘리심으로 온 인류의 죄가 단번히 영원히 속죄되는 온 우주가 경탄할 놀라운 구원의 노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단 9:25)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단 9:24)
인류역사의 중심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보다 더 분명하게 역사의 중심을 자리잡을 다른 대체물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온 인류의 죄를 속함입니다. 나에게 오면 구원이 있다는 말씀보다 더 놀라운 말씀입니다. 내가 너를 이렇게 구원했으니, 내가 너를 이렇게 용서했으니, 내가 너를 위해 이렇게 피를 흘렸으니 와서 누리라는 것입니다. 나의 잔치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준비됬으니 와서 함께 구원을 노래하자는 것입니다.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눅 14:17)
양과 염소를 잡아서 하는 잔치가 아닙니다.
하늘 아버지가 당신의 아들의 피로 온 인류에게 베푸시는 기가차고 가슴이 미어지는 잔치입니다.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히 10:4-5)
아버지가 탕자를 위하여 잡은 송아지는 주님의 피흘리심입니다. 아들을 십자가에서 잡으심입니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눅 15:22-23)
그 송아지는 멍에도 메어보지 않는 너무나 흠없고, 순결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죄를 모르는 미움을 모르는 우리가 늘 품는 시기심 조차도, 불평과 원망조차도 모르시는 우리를 위한 온전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그것이 번제단에서 아들을 향해 피눈물을 쏟으시는 아브라함의 제사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
그 모리아산이 갈바리입니다. 그곳에서 우리의 죄값이 갚아진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의 중심이요, 그것이 터진 우리의 주님의 가슴이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해 두팔 벌려 우리를 포옹하시려고 기다리시는 주님의 가슴입니다.
아들의 죄값을 갚으시기 위해 대신 메를 맞으시는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아들을 구원하기 위해 대신 채찍을 맞으시는 아버지의 기쁨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4-5)
우리가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만 있다면 당신은 아무리 아프셔도, 당신은 아무리 초라해져도 아무 상관이 없으시는 아비의 마음, 에미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하늘 시민이 되면, 그 모든 수치 고통도 잊고 흐뭇해 하실 것입니다. 바보처럼...
“야훼께서 그를 때리고 찌르신 것은 뜻이 있어 하신 일이었다. 그 뜻을 따라 그는 자기의 생명을 속죄의 제물로 내놓았다. 그리하여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오래 살리라. 그의 손에서 야훼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그 극심하던 고통이 말끔히 가시고 떠오르는 빛을 보리라. 나의 종은 많은 사람의 죄악을 스스로 짊어짐으로써 그들이 떳떳한 시민으로 살게 될 줄을 알고 마음 흐뭇해 하리라.”(사 53:10-11, 공동)
여기 놀라운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이미 그 값이 지불되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롬 5: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10)
이미 지불된 값입니다. 이미 베풀어주신 사랑입니다. 이미 완납한 빚문서입니다.
오면 용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용서했으니 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구속했으니 돌아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또 그분의 사랑을 배반할지를 묻지도 않으시고 그 사랑을 기약대로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2300주야의 중심입니다. 역사의 중심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중심이 되어야할 영원한 복음이요. 영원한 사랑입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사 44:22)
그러면 그 놀라운 예언은 언제 어떻게 시작됩니까? 우리 모두가 다시 눈을 비비고 정확한 성취의 날들을 헤아려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요 13:19)
다니엘서 8장에서 다니엘은 2300주야의 환상을 보았는데, 그 환상의 의미를 알지 못하여 앓기(단8:26-27)까지 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서 이 환상의 해석을 알려줍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누구입니까? 예수 탄생의 기쁜 소식을 통고할 그 천사입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눅 1:19-20)
가브리엘 천사가 온 목적을 알려줍니다.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이르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단 9:22-23)
그 놀라운 예언의 시작점은 언제입니까?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단 9:25)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내렸는가?
에스라서에 의하면, 아래와 같이 세차례 예루살렘의 회복에 관한 조서가 다음의 페르샤 왕들에 의해 포고(布告)되었다.
* 첫번째 조서 --- 고레스 원년인 기원전 537년 (스 1:1-4, 5:13, 6:3, 대하 36:22, 23)
* 두번째 조서 --- 다리우스 1세 제 2년인 기원전 520년 (스 6:1, 8-11)
* 세번째 조서 --- 아닥사스다 제 7년인 기원전 457년 (스 7:7-26).
이상의 세 조서 가운데 9장 25절의 모든 내용을 만족시킨 조서는 어느 것인가. 9장 25절은 단순한 포로석방령 이상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예루살렘을 중건(重建)하라(to restore and build)는 영”이다. 고레스의 조서(스 1:2, 3)는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70년 간의 포로생활(605 BC - 537 BC)에 종지부를 찍고, 42,000여명의 포로를 귀환시켰으나(스 2:64), 성전의 중건은 사마리아인 등 주변 민족들의 방해로 기원전 522년 중지되고 말았다.
두번째인 다리우스 1세(522-486 BC)가 기원전 520년에 내린 조서는, 선왕(先王)인 고레스의 조서를 재확인한 것으로(스 6:1-12),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의 격려를 받아 4년 후인 다리우스 제 6년, 즉 기원전 515년 3월 12일 마침내 재건된 성전의 낙성을 보게 되었다(스 6:15). 그리고 같은 해 4월 21일 유월절 경축과 함께 성전 봉헌식을 거행하였다(스 6:17). 이리하여 예레미야의 예언대로(렘 29:10, 25:11, 12), 기원전 586년 예루살렘의 함락과 함께 잿더미가 되었던 성전도 70년 만에(586 BC-515 BC) 복구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9장 25절의 내용을 만족시켜, “예루살렘” 전체의 “중건”(*회복과 재건. to restore and build)이 가능하게 된 것은, 아닥사스다(Artaxeres I Longimanus. 465-423 BC)왕 7년, 곧 기원전 457년에 내린 조서인데(스 7:7, 12-26), 이것이 마지막 조서로, 9장 25절 전체의 내용을 충족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조서가 실제로 효력이 발생한 것은 에스라가 유다로 귀환한 기원전 457년 10월(Tishri)이었다.앞서의 두 조서는 주로 성전의 중건에 관련된 것이었지만, 세번째 조서에 의하여 비로소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법에 따라 그들의 땅을 다스릴 수 있는 신정(神政)체제의 자치권(自治權)이 부여되었으며, 예루살렘이 다시 신앙과 정치의 중심지로서의 회복을 보게 된 것이다(스 7:12, 13, 21). 이러한 세 차례의 조서는 결국 한 묶음이 되어, 예루살렘의 회복을 가능하게 했는데, 이 사실은 당시의 선지자 에스라에 의해서도 아래와 같이 확인하게 되므로, 마지막 경우를 적용하는 것이 합당하게 된다.
「......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전을 건축하며, .... 필역(畢役)하니라」 (스 6:14).
바로 에스라 6장 14절이 어느 조서를 적용해야할지를 명확히 알려주는 성경적 답변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이루는 것은 3조서의 연합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단수이고, 그 구체적인 조서들이 모여서 하나의 명령을 이룬다는 의미이다. 고레스, 다리오, 아닥스스다의 조서들이 연합하여 그 명령을 성취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마지막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통해 최종적으로 전이 건축하며 필역된 내용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가 기원전 457년이다. 나머지는 이제 산수문제만 남았다. 한번 계산해보자.
언제 메시야가 기름부음을 받는가?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단 9:25)
일곱 이레+예순두 이레
7x7+62x7
49+434=483이다.
실제의 거리를 지도상에서는 축소하여 그리는 것처럼, 예언상에서는 년일원칙이 적용된다.
기원전457년에서 483년이 지나면 몇년이 될까? 기원전을 마이너스(-)로 생각하면 쉽다. 483-457=26년이다. 그러나 주전에서 주후로 연대가 바뀌면서 0(영)년이 없으므로 1을 더해 주어야 올바른 계산이 나온다. 그러면 주후 27년이 된다. 주후 27년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예수께서 만 30세 되시던 해인 주후 27년에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셨다. 그가 물에서 올라올 때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강림하시어,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야로서 공생애(公生涯)를 시작하셨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6,17).
•주후 27년:예수 30세?-서력기원은 예수님의 탄생부터 즉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예수님 당시나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로마의 건국 연대를 사용하고 있었다. 예수님 탄생 이후 약 520년이 지난 후, 엑시구스라는 학자가 매년 돌아오는 부활절 축제일 날자를 미리 계산하다가, 예수님 탄생을 1년으로 하면 편리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 제안이 받아들여져 예수 탄생을 기원으로 하는 연대가 만들어졌는데, 예수의 탄생을 로마건국 연대 754년으로 보고 그 해를 서기 1년으로 시작한 것이다. 약 700여년이 지난 서기 1200년경 로저 베이컨이라는 학자가 도서관에서 옛 역사를 연구하던 중, 예수님 당시 헤롯 왕이 로마 건국 연대로 750년에 죽은 기록을 발견하였다. 그렇다면, 예수는 헤롯이 죽은 지 4년 후에 탄생한 샘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탄생은 로마 건국 754년이 아니라 750년이 되는 것이고, 그 동안 사용하던 역사적 연대에 4년의 차질이 생겨 매우 복잡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모든 연대를 그대로 두고 예수의 탄생을 주전 4년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 주전 4년에 탄생했다면 서기 27년에 만 30세가 되는 것이므로, 2300주야 기간 중에 포함된 메시야의 출현 예언은 매우 정확한 성취를 이룬 것이다.
•메시야 죽음의 시기-다니엘 9장 27절에서는 메시야 죽음의 시기를 예언하고 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위의 성경절에서 ‘그’가 누구인가? 직전 성경절의 내용 중에서 인칭 대명사 ‘그’에 해당될 수 있는 인물은 둘이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거나 “한 왕의 백성” 둘 중 하나가 ‘그’에 해당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한 왕의 백성”이라는 말에서 주체는 “백성”이지 “한 왕”이 아니기 때문에 ‘그’는 ‘백성’을 받는 대명사가 될 수 없고, ‘그’가 지칭하는 주체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말하는 것이다. 그 메시야가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다고 하였다. 이것은 새로운 언약을 세우는 것이 아니고, 이미 세워진 언약을 새롭고 확실하게 한다는 뜻(히. 힉빌 브리트)이다. 새로 언약을 맺는 것은 히브리어로 카라트 브리트이다. 다시 말해서, 창세로부터 인간과 맺은 구원의 언약을 한 이레 동안에 성취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그 기름부음을 받은 자 메시야가 “그 이레[한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우선 70이레 중에서 남아 있던 한 이레의 절반이 언제인지 아래의 도표를 살펴보자.
| 70 이레 (=490년) | |||
| 7 이레 | 62 이레 | 1 이레 | |
| 49년 | 434년 | 3년 반 | 3년 반 |
457BC 408BC AD27 31 34
나머지 한 이레의 절반에 해당하는 시간은 서기 31년이다. 서기 27년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메시야로서 사역을 시작하신지 3년 반이 되는 서기 31년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그 때에,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하는 제사를 계속 드려오던 성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마 27:50,51). 예수께서 운명하시던 순간,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찢어졌다. 성소 제도와 제사가 끝난 것이다. 더 이상 예물을 가져올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한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라는 예언이 정확히 성취된 것이다.
세대주의 종말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그 “한 이레”를 따로 떼어서 지상 역사의 마지막에 두고, 휴거로 시작되는 ‘전 3년 반 환란’과 ‘후 3년 반 환란’ 기간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은 우선, 연속되는 기간 70이레 중에서 한 이레를 따로 떼어서 아무 성경적 근거도 없이 멀리 밀어낸 것부터 문제가 될 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다른 부분에 대한 해석에 무리가 발생하므로 합당한 해석이 아니다.
얼마나 놀랍고 경이로운 예언의 성취입니까? 다니엘서 9장을 통하여 “이레의 절반에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단 9:27)이라는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 원형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므로 더 이상 그림자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히 10:5)
예수님은 유월절 양이 되셔서 유대성력 유월절 양잡는 그 시간에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유월절 양은 도망가고, 그 원형되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입니다. 성소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겨져 그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알려줍니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막 15:38)
바로 그 장면이 아브라함 제단의 성취입니다. 이삭은 살아나고 숫양이 대신 죽음을 당했던 것처럼, 이제는 반대로 숫양은 살아나고 그 원형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창 22:1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신 것은 그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동시에 복음의 실재를 그의 마음에 새겨 주기 위함이었다. 그 무서운 시련의 어두운 날 동안 그가 참은 고통은 그가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속하기 위하여 치르신 희생의 위대함을 깨닫게 하려고 허락되었다. 아무 다른 시험도 그의 아들을 제물로 드리는 것과 같은 영혼의 고통을 아브라함에게 일으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고통과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도록 내주셨다. 하나님의 아들의 치욕과 영혼의 고뇌를 목격한 천사들은 이삭의 경우처럼, 중재하도록 허락되지 않았다. “족하다” 라고 부르짖는 어떤 음성도 없었다.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려고 영광의 왕께서 당신의 생명을 포기하셨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동정과 사랑에 대하여 이보다 더 강력한 증거가 주어질 수 있겠는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 ”(부조, 154)
아래 영상을 통하여 다시 확인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