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레터 68]나는 내 아버지와 어떻게 영별永別할까?
-정지아의 소설 『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나는 베스트셀러라면 일부러 외면하는 편이다. 좋은 글, 좋은 책이라면 금세가 아니면 2-3년, 혹은 십수년이 지나서라도 알려지기 마련이라는 게 지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해방일지』(268쪽, 창비 펴냄, 15000원)만큼은 예외였다. 지인 선배가 경향신문에 쓴 ‘김택근의 묵언’ 칼럼을 읽고 당장 사 읽은 게 달포인데, 엊그제 다시 정독했다. 독서 경력사상 거의 처음인 듯하다.
이 책은 ‘빨치산의 딸’로 알려진 정지아 작가의 소설이다. 이름 두 자를, 아버지의 빨치산 활동지역이던 지리산과 백아산(실제 주활동지역은 백운산이었다 한다)에서 따 지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 소설을 읽고 여러 번 깜짝 놀랐다. 아무래도 실화이다. 실화가 아니라면 이토록 핍진하고 진솔하게 쓸 수가 없을 터. 환갑을 앞둔, 결혼도 하지 않은, 개이름 같은 ‘아리’라는 이름의 딸은 자신을 불효녀라고 고백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그를 처음 인간적으로 100% 이해했다는 딸이 생전에 어찌 불효녀였을까.
아무튼, 이 소설 아닌 소설은, 대학 ‘보따리장사(시간강사)’이자 빨치산(구빨이자 신빨이다) 출신의 부모를 둔 딸이, 전봇대에 머리를 부닥쳐 여든 나이에 졸지에 돌아간 아버지의 사흘상을 치르면서 느끼는 아버지의 ‘제법 많은’ 관계인사들(아직은 극소수로 살아있는 슬픈 혁명전사들도 있고, 미제국주의를 유일하게 물리친 자랑스런 베트남여인의 미성년 딸도 있다)과 부녀간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장례일기’같은 글의 연속이다. 위장자수를 하고, 전향서를 쓰고 나와 ‘이 풍진 세상’을 살다간 민중 최우선주의자, 합리주의자, 사회주의자, 철두철미 유물론자인‘오지랖 아버지’가 이 땅과 이 지역에 남긴 것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평생 못마땅한 지아비였으나 ‘민중’만 앞세우면 ‘꼬리’를 접고 무조건 순종했던 어머니(두 분의 재혼을 중신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재밌다), 천형天刑같은 가족연좌제에 얽혀 평생을 술을 끼고 사는 작은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와 비록 ‘이념’은 달랐으나 평생 짝꿍처럼 어울린 중앙국민핵교35회 친구, 선생님 아버지의 유언으로 ‘제자 아저씨’를 끔찍이 챙기는 출세한 스승의 아들, 자신의 일처럼 장례식장을 휘어잡는 민노당원, 조카들과 어머니 친구의 주방장 딸 등을 차례차례 불러내 조잘조잘 풀어내는 그들의 휴먼스토리. 작가는 가슴에 얹힌 그 무엇이 내려간 듯, 아버지가 평생 처음으로‘해방解放’된 것같아 제목을 그렇게 정했겠지만, 그 슬픔과 상처는 차치하고. 독자인 나는 남의 장례일기를 읽으며 좀 민망했지만 너무 재밌었다. 자꾸 읽은 앞장까지도 뒤적이게 했다.
압권의 장면은 247쪽에 나온다. 아버지가 인간의 시원始原이라고 믿었던 먼지로 돌아가는 중에, 작가의 어머니가 느닷없이 귀엣말로 속삭인 말. ‘대외비'인지라 차마 글로 쓸 수 없는 어머니의 해학이랄까, 후회라 할까? 작품을 읽으면서 하마트면 폭소를 터트릴만한 얘기가 궁금하지 않으신가. 그럼 꼭 읽으셔야 한다. 하하. 작가 아버지의 십팔번 “사램이 오죽혔으먼 그릿것냐”“긍개 사램이제”는 내가 바로 옆에서 듣는 것같은 환청의 착각을 일으켰다.
최근에 읽은 희한한 시집『그라시재라-서남 전라도 서사시』도 떠올리게 했다. 구례 읍내 어느 장례식장에서 사흘동안 꼬박 들어앉아 있다 나온 듯한 감정이입 최고의 소설, 책을 덮었는데도 고시랑고시랑 어머니의 말과 주변인들의 말이 들리는 듯하다. 정겨운 호남 사투리와 방언들, 그 억양(인토네이션), 뉘앙스,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듣던 탯말 그대로가 아니던가. 허기사 전북 임실과 구례가 얼마나 멀 것인가. 쎗(혀)바닥을 칵 깨물고 죽어불제, 워치케 아까요?(어떻게 알까요), 되싱마요(되는군요), 알그만요(아는군요), 여개까장(여기까지), 워쨌가니?(어떻게 했는데), 워쩌끄나, 워째야 쓰끄나, 에레서는(어려서는), 깜깜봉사까이(눈먼 봉사일까), 『태백산맥』의 숱한 말들과 맛이 또 남달랐다.
“뭐 이런 소설이 다 있어?” 하면서도 책에서 손뗄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먹먹하게 아프면서도 재밌었다. 사실, 재밌었다는 말은 작가에게는 실례일 것이지만, 할 수 없다. 읽는 내내, 나는 96세 아버지와 어떻게 작별할 것인가를 생각했고, 아버지의 ‘고달프고 외로웠을’ 농부의 일생을 생각했다. 불과 여덟 살에 서른 살이었던 3대독자 아버지를 여의고, 5개월도 안돼 할아버지마저 별세한 후, 일가친척 하나 없이 두 살 남동생과 스물일곱 살 청상과부 어머니를 모시며, 자칫 멸실될 뻔한 한 가족을 일터세우고 나이 스물에 열일곱 살 어머니를 만나 4남 3녀를 낳아 기르며 오직 흙만 파 모두 대학까지 가르친 훌륭하신 내 아버지. 이런데도 나는 지금, 여기에서 막심한 불효를 하고 있다. 어찌할 것인가. 휴먼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에 “총생들아, 잘 살거라”라는 제목으로 기록된 것이 유일한 위로라고 할 것인가. 그래서, 내가 만약 조만간‘내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쓴다면 어떻게 시작하여 어떻게 끝맺을지를 생각하게 했다. 누구라도 부모는 있는 법. 이미 작별을 했거나 조만간 영별을 앞둔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딸 그리고 어머니와 아들, 어머니와 딸은 전생에 다들 무슨 관계들이었을까? 그것을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모두 ‘천륜의 멍에’를 지고 한평생 ‘휘적휘적’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작가는 냉정히 말한다. 아버지의 ‘죽음일지’는 자신이 잘났다고 뻗대며 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라고. 그리고 아버지의 ‘십팔번 말씀’을 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렇게 아름답더라고 고백한다. 어찌 섬진강변의 벚꽃길, 반야봉의 낙조, 노고단의 운해만 아름다울 것인가. 고향에 돌아오니 서울에서 보이지 않던 ‘아름다움 천지’인 것을. 작가에게 감정이입이나 된 듯, 몰입한 소설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 나하곤 아무 상관도 없는 ‘빨치산의 딸’이 쓴 글을 읽으며, 여러 번 뭉클뭉클, 가슴이 먹먹, 울 뻔한 것이 무슨 까닭인지는 읽어보시면 알게 될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