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시절에 이어령 교수의 “고독한 군중”이라는 에세이를 읽고 많은 감명을 받았다. 그때까지 문학에 대해 소양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위 도서를 접하게 된 후 두 세번 탐독한 기억이다. 대중 사회 속에서 타인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면서도 내면의 고립감으로 번민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성격을 이르는 말인데. 연극에서라면 배우가 무대 위에서 연기할 때, 관중 속에 홀로 있는 느낌을 받는 것을 말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빗 리즈먼이 책 제목으로 사용하였다고 했다..
‘고독한 군중’이라는 말을 바꾸면 ‘군중 속 고독’이 된다.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치고 군중 속 고독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책 제목에 담긴 강렬한 메시지와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설명하는 책이라고 기억한다. 그동안 나는 여든 살 정도가 되었으니까 이제는 내가 살아온 인생도 그리 짧지 않으므로 살면서 느꼈던 소회를 남겨도 그리 부끄럽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여든살에 쓰는 이야기” 라는 제목으로 계속 글을 모아 오고 있다. .
그런데 오늘 동창 단톡방에 100세가 넘으신 김형석 교수의 “나이가 들수록 혼자가 행복한 이유”라는 좀 긴 글이 올라와서 읽었다. 100 세까지 사는 분은 얼마나 많은 얘기들을 들려줄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분에 비하면 아직 자식같은 놈이 느껴봐야 새발의피 같은 내가 무슨 여든살에 쓰는 이야기를 쓴다고 건방진 생각조차 들어서 부끄러운 마음까지 든다.
그분의 말씀은 인간관계에서 배신도 느끼고 실망을 하여 인간관계가 떨어져 나가더라도 그것은 처음부터 기대를 너무 크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므로 상처받지 말고 마치 나무가 겨울을 맞기전에 잎을 떨구듯 사람도 나이가 들면 자연히 관계가 정리되는 것이 순리라고 한다. 그러니 인생사에 기대를 너무 하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외로움과 고독은 다른데 외로움은 타인이 나를 채워주지 않을 때 느끼는 결핍이고 고독은 내가 내자신과 마주 하는 충만이며 외로움은 수동적이고 고독은 능동적인 선택이라는 것이다. 특히 노년에 찾아오는 고독은 축복이므로 노년은 상실의 계절이라고 비관하지 말고 정화의 계절이란 점을 깨닫고 누구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하더라도 그건 쓸쓸함이 아니라 해방이니 고요한 자유를 마음껏 누리라고 했다.
100세의 연륜이 묻어나는 말씀이다. 또 그분은 여든 살때와 아흔살때의 소회도 잠깐 언급하셨는데, 그 작은 분량으로 어찌 그분의 철학을 냄새라도 맡을수 있을까마는 한편으로는 위안이되고 용기도 나는 것 같다. 즉 내 나이 비록 여든 살 밖에 안되었지만 지금쯤 “여든살에 쓰는 이야기” 로 한번 정리하고 또 “이흔 살에 쓰는 이야기“로다시 한번 정리하고 그다음은 하늘에 맡겨 봐야 하지 않을까.
(26-3 백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