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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김지하
나는
병원이 좋다
조금은.
그래
조금은 어긋난 사람들,
밀려난 인생이.
아금바르게
또박거리지 않고
조금은 겁에 질린,
그래서 서글픈,
좀 모자란 인생들이 좋다.
거리며 빌딩이여
수많은 장바닥에서
목에 핏대 세우는
그 대낮에
귀퉁이에 서서
어색한 얼굴로
사랑이니
인간성이니
경우니 예절이니
떠듬거리는
떠듬거리는
오로지
생명만을 생각하는,
나는 병원이 좋다.
찌그러진 인생들이 오가는,
그래서
마음 편한,
남보다는 더 죽음에 가까운,
머지않아 끝날 그러한
그래서
마음이 편한
아 나는 역시
'쟁이'던가
아 나는 역시
'산송장'이던가
아아
나는 역시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던가
좋다.
끝이 분명 가까우니,
오로지
생명만을 생각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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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지혜를 불러온다는 서양 속담처럼 사람은 괴롭고 외로운 처지에 놓이게 될 때 비로소 자신의 생을 온전히 되돌아보게 마련인가 보다. 보름 간 독감이 몸에 머물다 갔다. 살과 뼈를 물고 갉아대는 바이러스에 시달리면서 나는 오르지 땀으로 무거워진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더운 김이 오르는 밥 한 그릇 먹는 것만을 소원하였다. 병원에 가면 '오르지/ 생명만을 생각하는' 겸손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재무<시인>
https://bepoem.tistory.com/m/11606
▶김지하의 저항시와 우주 생명학 시의 전개(발췌) _김미연/ 문학평론가, 진주교대 강사
김지하(金芝河, 본명 김영일, 1941-2022, 81세)는 전남 목포 출생으로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8년여 투옥생활과 저항운동으로 잔뼈를 굳히고 1960년 『시인』 지에 「황톳길 등 5편으로 김현의 추천에 의해 등단하였다. 1970년 『사상계』 6월호에 담시譚詩 「오적」이라는 군사정부에 대한 신랄한 저항시를 발표하여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화제의 대상이 되었다. 김지하는 시 「오적」을 통해 자율적이고 근대화된 질서를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서는 일제 찌꺼기를 지우고 '새로운 인간으로 구성된 조직'을 만드는 것이 급하다는 인식을 보여주었다. 「오적」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정치판을 말한다. 그들은 국민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주체이다. '오적'은 인간성을 상실한 존재이므로 그들과 일반 국민과는 같은 인간이 아님을 뚜렷이 구별해 주고 있다.
이 작품을 실었다는 이유로 『사상계』는 그해 9월 간행 중단되었고 작가, 발행인, 편집인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이른바 김지하 '오적 필화 사건'이다. 이로써 김지하라는 젊은 시인의 이름과 위상은 바로 세계적인 체제 저항시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이름 자체가 시대요 역사요 현실이 되었다.
그러던 그가 행진의 역류를 보였다. 그는 저항시라는 비판적 시세계에서 1980년대 이후 우주적 생명의식으로 관심을 바꾸면서 수운과 해월에 경도되는, 부딪힘과 부드러움의 통합 혼융의 지향을 드러내었다. 그리하여 그의 시세계는 전후 두 갈래로 나뉘면서 시 독자를 통박과 이해함의 두 진영으로 갈라놓게 되었다.
이 글의 텍스트로는 산문선 『우주 생명학이론』(김지하, 작가)과 시집 『화개』(2002, 실천문학), 『유목과 은둔』(2004, 창비), 『못난 시들』(2009, 이룸), 시선집 『빈 산』(2003, 시인생각) 등의 시집을 참고하였다. 세계적인 수상 이력에는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회의 LOTUS특별상, 국제시인대회 위대한 시인상, 브루노 크라이스키 인권상, 노벨문학상 후보 추대, 만해대상 등 국내 문학상 다수가 있다. 그의 저서는 모두 107권이 있다. (p. 84-85)
위 시는 어쩌면 병원이 좋다고 하면서 형식을 '해제'하고 있다. '해제'가 아니라 병에 가까운 느슨한 늘여놓기의 형식을 강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금은 어긋난 사람', '좀 모자란 사람' '목에 핏대 세우지 않는', '사랑이니/ 인간성이니/ 예절이니'에 떠듬거리는 사람이 좋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생명만을 생각하는 사람, 죽음에 더 가까이 간 사람이 좋아서 병원이 좋다는 것이다. 나는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라서 끝이 가까워서 생명만을 생각하는 사람이라 병원이 좋다는 것이다. 스스로 졸拙이라 하고 스스로 산散이라 하고 내놓는 작품이지만 병이 가지는, 병원에 드나드는 겁에 질린 사람들을 연상할 수 있는, 편한 형식의 배려로 볼 때 나름으로는 이완 속의 긴장이라 할 만하다. 그 긴장이 한 겹 위에 있는 긴장일 것이다. 현대를 100세 시대라 하지만 실제로는 온전히 100세를 누리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 많지 않은 대열에 서서 그 자체를 생명에 근접해 있다는 것으로 인식하는 시인은 오로지 우주 생명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p. 97-98)
남은 말: 김지하 시인은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1960년대 시 전문지 『시인』 지에서 등단하여 등단 2년 만에 담시 「오적」으로 일약 세계적 시인 반열에 올라선 시인이 되었다. 우리나라 현대문학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없는 시대 저항시의 발자취를 남겼다. 아마도 문학 작품으로 일세의 시대를 흔든 시인으로 영구히 문학사에 기록될 것이다. 필자의 이 글에서는 전반기 시를 더 깊이 살피지 못한 것이 한계였고 후반의 김지하 우주생명학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지 못한 부분 또한 한계로 남는다. 다만 이 짧은 논의에서나마 우리 시단의 젊은 시인들이 저항의 영역과 역사라는 들판에서 잠시 서성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p. 10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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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2023년 봄(89)호 <현대 시인 열전 -21/ 김지하 편> 에서
* 김미연/ 2015년『월간문학』으로 문학평론 & 2018년『월간문학』으로 시조 부문 등단, 시집『절반의 목요일』『지금도 그 이름은 저녁』, 평론집『문효치 시의 이미지와 서정의 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