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즈음 여러 나라 장군들의 전기를 재미있게 읽고 있다. 전쟁이라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결단하고 행동한 이들의 삶을 따라가는 것이 정말 흥미롭다. 그중에서 최고의 장군을 한 명 꼽으라면, 주저 없이 조지 마셜 장군을 택하겠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재건을 위한 미국의 원조 계획인 '마셜 플랜'을 수립해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한국전쟁 당시 미국 국방 장관으로 우리를 도운 사람이다. 마셜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두 달 전인 1939년 7월 미국 육군 참모총장으로 취임해 전쟁을 이끌었다. 그의 취임 무렵 미국 육군은 19만 명에 불과했고, 무기도 형편없었다. 참전을 반대하는 여론이 거세 국회의원들을 먼저 설득해야 했다.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건 그가 주는 신뢰감과 진실함이었다. 이후 그의 지휘에 따라 미국 군대는 불과 5년 만에 800만 명, 61개 사단의 대군으로 성장했다. 그는 군 내부에서도 혁신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옛 방식에 젖어 있는 고위 장교 600명을 전역시켰고, 젊고 유능한 군인들을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그는 수백 명의 후보 중 갓 준장으로 진급한 무명의 아이젠하워를 최고위 사령관으로 선택했다. 동시에 국내 정치부터 영국 및 소련과의 협의, 전략 설계와 병참까지 모든 일을 결정하고 책임졌다. 믿기 어려울 만큼 짧은 기간에 미군을 강력한 군대로 혁신했다. 그가 없었더라면 전쟁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참전한 군인들이 큰 피해를 입고 승리 역시 아주 늦어졌을 것이다.
노르망디 상륙(Normandy Landing)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오버로드 작전(Operation Overlord)에서 연합군이 프랑스 노르망디를 침공한 1944년 6월 6일(화요일) 상륙작전이다. 마셜은 어떻게 이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그에게는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첫째, 그는 늘 자신을 단련했다. 장교로서 병참, 교육, 심지어 매점 관리까지 인기 없는 일들을 주로 맡았는데, 불평하기보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문제점을 찾아 업무 방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군사 교육 시스템을 현대적으로, 병참의 구조도 효율적으로 전면 쇄신했다. 여러 일을 하면서 조직 관리, 의견 조율, 문제 해결 등 핵심 역량을 키워 나간 그에게는 어느새 '마법사'라는 별명이 붙었고, 상급자들은 그를 눈여겨봤다. 소위 임관 후 34년 만에야 준장이 될 정도로 진급이 늦었지만, 전쟁이라는 비상시국에 그의 진면목을 알아본 이들은 그를 참모총장에 전격 발탁했다. 둘째, 그는 자신의 이익에 전혀 관심이 없고,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정직했다. 그에게는 오직 공적 업무와 진실만이 기준이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앞두고 사람들은 이 작전을 준비해 온 마셜이 당연히 총사령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루즈벨트 대통령은 그가 전장으로 떠나면 공백이 너무 커 자신의 업무에 지장이 생길까 염려했다. 그러면서도 루즈벨트는 마셜이 원하면 임명하기로 결심하고 그에게 뜻을 물었다. 마셜은 속으로는 간절히 원했지만, 끝까지 "뜻에 따르겠습니다."라고만 말했다. 결정권자가 자유롭게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한 말이었다. 루즈벨트는 "장군이 워싱턴에 없다면 내가 밤에 편히 잠들 수 없을 것 같네요."라고 고마워하면서 아이젠하워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결국 마셜은 너무 뛰어나서 그 자리에 오르지 못한 셈이었다. 원한다는 말만 했다면 그는 총사령관이 됐을 것이고, 그 후 아이젠하워 대신 대통령까지 됐을지도 모른다. 그는 신상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상급자에게 필요한 말은 반드시 하곤 했다. 일관된 모습에 사람들은 그가 대의를 위해 정직하게 일한다는 것을 믿게 됐다. 노회한 국회의원들마저 "그는 언제나 보는 대로 진실을 말한다."라면서 존경을 표했다. 퇴임 후 자서전을 쓰면 100만 달러를 주겠다는 출판업자의 제안도 거절했다. 거론될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지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역사가들은 그가 엄청난 성취를 이룬 동시에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능력을 그가 타고났을까? 전혀 아니다. 어린 시절의 그는 행동이 느리고 공부를 못해 형제들이 얼간이라고 놀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부족함에 좌절하지 않고, 더 높은 목표를 세우고 자신을 단련해 나갔다. 만약 운이 따르지 않아 하급 장교로 군 생활을 마쳤다 해도 그는 똑같은 방식으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을 것이다. 그가 걸어온 삶의 핵심은 눈에 보이는 성공이 아니라 오랜 시간 자신의 인격을 꾸준히 닦아 온 태도에 있지 않을까. 그는 '인생은 성공이 아니라 성장의 드라마이며,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투쟁’이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 사람이었다.
윤재윤 변호사
알링턴 국립묘지의 마셜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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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공유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
봄의 향기 가득한
좋은 계절,,
오늘도 기쁨과 웃음이
함께하는 보람찬
하루보내세요
~^^
안녕 하세요..망실봉님
오늘도 좋은 글 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새로이 시작하는 한 주의 출발 입니다
즐거운 나날들 보내세요
다녀가신 고운 흔적
감사합니다 ~
핑크하트 님 !
또다시
선물처럼 주어진
새로운 하루가
기쁨과 성취로
가득하시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