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항구적인 동맹은 영어를 모국어로 채택한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입니다. 이들과 함께 일본과 필리핀(미국의 식민지였다), 한국이 장기적인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반도의 통일을 방해하는 역할, 필리핀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동남아시아의 교두보 역할, 한국은 북한과의 적대적 공생을 통해 상시적 전쟁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로서 존재의 가치가 있습니다.
즉,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최우선의 외교 및 국방 정책입니다. 경제적으로는 너무나 많은 부분이 얽혀 있어 이것을 가지고 중국을 견제하면 양국(미국의 피해가 더욱 치명적이다)이 모두 다 파멸할 수 있기 때문에 별도의 영역으로 나둡니다. 미국의 부실채권을 가장 많이 사주는 나라가 중국이니 소련을 무너뜨린 방식의 경제적 대립은 아예 꿈도 꾸지 않습니다.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와 달러화 자산을 내다 팔면 미국은 기축통화국의 지위마저 상실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럴 경우 미국은 소련처럼 주 단위로 분열되는 것밖에 살아남을 방법이 없습니다. 연방정부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수밖에 없고, 현재의 무정부적 자본주의를 넘어 진정한 의미의 무정부 상태로 접어듭니다. 향후 20년 간 줄여할 연방부채만 3조 달러(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에 이릅니다.
미국의 중국 봉쇄ㅡ다음이미지 캡처
결국 연방정부가 미국의 51개 주를 대표해서 존재하려면 전통의 동맹들을 동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바마는 중국 다음으로 미국 재무부 채권을 많이 사주는 일본에게 러브콜을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1년에 70조원 가까이 국방예산을 삭감해야 하니, 오바마는 자금력이 풍부한 일본에게 삭감된 국방비를 대신해주면 '니 꼴리는 대로 해도 돼'라는 정치적 백지수표를 발행하게 된 것입니다.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인 아베 총리가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미 성숙경제(부의 재분배로 자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경제로 성장이 아닌 현실 유지, 또는 장기간에 걸친 완만한 후퇴를 지향한다)에 들어선 일본 경제를 되살려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픈 아베에게는 오바마의 오퍼가 반갑기만 합니다. 이를 위해 미국 주도의 TPP에 전격 참여했던 것이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경제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주도하고 있는 TPP는 최종 타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됩니다. 미국의 제조업 기반이 약한 상태에서 중국 경제 패권을 제어하는 역할까지 해야 하는 TPP는 참여국가의 상호이익을 보장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일방적 이익만 반영되면 다자간협상으로서의 TPP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미국 내에서 반발이 엄청날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의 입장에서 TPP 이외의 대안이 필요합니다. 일본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이 패전 후 69년 동안 지키도록 만들어 온 '전수방위 원칙'(공격은 하지 않고 방어만 한다는 원칙)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미국은 부족한 방위비를 일본의 군사력 동원과 무기 판매로 득을 보고, 일본은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됨으로써 무기를 판매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립니다, 중국의 일방적인 영토 확장 행위를 저지하면서.
실제 기계공학과 군수산업에서의 일본의 기술력은 미국에 별로 뒤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평화헌법 9조만 수정(재해석으로 빠져나갈 수도 있다)할 수 있으면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폭력시장에 맞춰 일본의 무기들을 팔아먹을 수 있습니다. 미쓰비시, 마쓰시다, 도요타, 도시바 같은 전통의 대기업들이 회생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금의 아베를 만들어준 납치 일본인 문제 해결(일본으로 귀환)을 위해 북한과의 협상에도 나설 수 있습니다.
일본의 독도 도발ㅡ다음이미지 캡처
독도 문제에서도 강경노선을 유지할 수 있고, 기로에 놓인 아베노믹스를 되살릴 수도 있고, 원전의 재가동도 속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제대로 진행되면 장기집권도 가능해집니다. 지긋지긋한 미국의 속국에서 벗어난다는 장기적인 플랜도 가동할 수 있습니다. 아베의 입장에선 미국의 눈치를 보는 일을 자신의 임기 중에 토대를 구축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오바마로서는 민주당의 재집권을 도모하는 것과 미국의 부채를 줄여 재임 시의 업적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는데 일본이 이를 상당 부분 덜어준다면 몇 가지 탈선 쯤은 묵인해줄 용의가 있는 것입니다. 일본은 언제든지 찍어누를 방법이 있지만 중국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미국이 제국적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아베의 일본을 활용하는 것 이외에는 현실적 대안도 없습니다.
미국에게 한국이란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카드였는데,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몰락이 너무 일찍 겹치면서 이제는 한미일 동맹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습니다. 문제는 일본과 한국의 역사문제인데, 이는 방임적 태도를 보임으로써 양비론을 펴면 그만입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사소한 문제인 위안부 관련해서만 인도적 발언만 쏟아내면 그만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믿지 못해도, 한국의 통치 엘리트층을 지배하고 있는 미국 유학파들이 든든하기만 할 것입니다. 게다가 전시작전권을 자신들이 가지고 있으니, 종북과 북풍 몰이를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한국의 보수화는 효자 중에 효자입니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무기들도 팔 수 있고, 주한미군을 최소 비용으로 유지할 수 있으니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힘겨울 지경입니다.
중국의 주석인 시진핑으로서는 이런 한미일 정상들의 행태가 영 마뜩지 않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오바마의 묵인 하에 적대적 공생을 하는 것이 분명해 보일 것입니다. 한국의 정부가 일본의 재무장에 외교적 수사만 남발할 뿐, 실제로는 아무런 제동 노력을 하지 않으니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지요? 시진핑이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한 것도 경고의 의미가 크다 할 수 있습니다.
오바마와 시진핑ㅡ뉴시스에서 캡처
이상이 아베와 오바마 뒤에 숨어 있는 것에 대한 대략적인 고찰입니다. 국제 역학은 수시로 변하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우방이 되기도 하지만, 앞으로 거의 변하지 않을 것은 미국과 중국의 적대적 공생입니다. 유럽의 통합이 더욱 진전되고, 남미의 통합도 가속하되면 이런 역학관계는 더욱 복잡해지겠지만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개의 축은 불변하는 상수로 존재할 확률이 높습니다.
헌데 무능하기로 따지면 역사상 최고의 자리에 올라 있는 박근혜 정부가 제대로 대응할지 한 줌의 믿음도 가지 않습니다. 한중정상회담에서 나온 것이란, 갈수록 중국의 경제적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중FTA의 연내 체결 전망입니다. 시진핑의 방문이 노린 것은 바로 이것인데, 한국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함으로써 미국과 일본 주도의 TPP에 맞설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한중FTA는 한미FTA와는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일본과 한국을 지배한 방식 그대로 한국을 옭아매려 하는 한중FTA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대통령이 통상관료들의 감언이설에 녹아내리는 것 같습니다. 시장규모만 넓히면 모든 일이 풀릴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대한민국은 소탐대실로 이어질 확률이 높은 한중FTA를 단계적으로 실시해야지, 처음부터 높은 차원의 FTA로 바로 들어가면 안 됩니다.
특히 한국 정도의 인구를 지닌 국가라면 어떤 경우에도 식량주권만은 움켜 쥐고 있어야 합니다. 한중FTA는 한미FTA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의 농축산업계와 수내가공업 및 각종 경공업들을 한계상황까지 내몰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럴 경우 일본의 재무장을 둘러싼 이해당사국들이 각자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있는데 한국만이 아무런 이익도 챙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제도권 언론은 이런 내용을 다룰 수 없는데, 필자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어 거칠게나마 이런 글만 올립니다. 전시작전권을 찾아오려는 노무현 대통령의 노력과 10.4공동선언에 담겨 있는 남북의 경제협력 강화와 확대 시도가 얼마나 중요하고 귀중한 것이었는지 박근혜를 찍은 분들은 깨달아야 합니다. 속고 사는 것도 한도가 있는 법입니다. 죽기 전에 제발 실체적 진실의 일부라도 확인해 보십시오.
전교조 교사가 박근혜 퇴진 말하면 범죄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