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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지막 날은 학교 행사 때문에 수업이 30분으로 단축되었다. 정규 수업을 하기가 애매해서 나는 오늘 평소와 다른 얘기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칠판에 다음과 같이 썼다.
역사와 나
학년말인데다 오후에 있을 전교생 콘서트 때문에 잔뜩 들떠 있던 차라 아이들은 계속 웅성거렸다. 그러나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내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선생님 아버지 얘기를 하려고 해. 우리 아버지는 선생님이 딱 너희 나이 때, 그러니까 중학교 2학년 때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아이들에게 부모를 잃는다는 것은, 상상 너머의 공포일 것이다. 그렇게 운을 떼니 자동으로 아이들의 눈빛은 약간 측은한 느낌으로 바뀌고 있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계속 실업자로 지내셨어. 선생님 기억에 학교에 갔다 오면 아버지는 늘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계셨지. 우리 집은 문을 열면 바로 부엌이었는데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한테 설거지하고 있는 모습을 들키는 게 창피하셨나봐. 내가 문을 활짝 열면 빨리 문 닫으라고 호통을 치셨지. 여하튼 아버지 돌아가신 뒤 안 그래도 가난했던 우리 집은 더 가난해졌지. 나는 참고서 살 돈이 없었어. 그래서 당시 학력고사 만점자들이 뉴스에 나와서 했던 "교과서로만 공부했다"는 게 나한테는 진실이었지. 어린 시절 선생님은 계속 고민했다. 왜 우리 집은 가난하지? 왜 아버지는 계속 실업자였지?"
가난해서 참고서 살 돈은커녕 학원은 꿈도 못꾸던 시절 얘기를 잠깐 하니 아이들에게는 점점 더 연민의 표정이 스쳤다. 그리고 나는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하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거두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우리 아버지는 1924년생이야. 일제 강점기지. 아버지가 성인이 되니 하필 태평양 전쟁이 터졌어. 알지? 일본이 진주만 습격을 해서 미국과 한판 붙었잖아. 그때 아버지는 징병을 당했어. 그래서 필리핀 등지에서 전투에 참가했지. 조선 사람인데 일본군이 된 거야. 포병 부대에 배치되어서인지 보병보다는 덜 위험했는지, 아무튼 치열한 전투의 와중에서도 목숨을 건지셨어. 그리고 해방 후 고향인 강원도 춘천으로 돌아왔지. 그런데 그새 홀어머니가 사할린으로 징용을 당하셨어. 아무리 기다려도 어머니는 오지 않고 3대 독자인 아버지는 졸지에 고아가 되어 버렸다. 그때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는 데가 어디였을까?"
"군대요?"
"맞아, 그래서 군대에 입대한 거야. 포병 부대 장교가 되셨지. 아마도 징병 당해서 한 전투 경험을 인정해주었나봐. 그 와중에 우리 어머니를 만나셔서 결혼도 하셨다. 두 분은 아버지 부임지인 원주에서 신혼 살림을 차리고 얼마 있다가 큰 딸도 보았단다. 그런데 아버지가 도박에 빠져 버렸어. 그래서 공금으로 도박을 했다가 싹 날렸지. 그 길로 탈영을 해버리시고 졸지에 도망병이 아니라 도망 장교가 된 거다. 그런 신세에 어디 취직이라도 할 수 있었겠어. 평생 실업자로 산 게 당연한 거지."
짦은 시간에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아이들은 어느새 완전히 몰입한 표정들이었다. 이 학교에서 수업을 시작한 이래 아이들이 이렇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역시 교과서보다 선생님의 개인사적 사연이 훨씬 더 흥미로운 법이다.
"나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아버지가 필리핀 정글에서 포탄이 마구 떨어지는 전장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단다. 기분이 어땠을까? 그 현장에서 총을 잘 쏘는 사람은 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죽었을까? 그냥 복불복인 거야. 살고 죽는 문제가. 그런 상황을 2년 가까이 겪었다면 세상이 그냥 도박판처럼 보였을 것 같아. 게다가 돌아왔는데 아무도 남지 않고 홀로인 신세가 되었다면 더더욱 제 정신으로 사는 게 힘들었겠지. 나는 도박으로 집안을 망가뜨린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다. 하지만 역사를 공부하고 나서 아버지의 고통을 가늠할 수 있었어. 그래서, 비록 돌아가신 뒤였지만, 용서해드렸지."
이 대목에서 아이들은 대단히 숙연한 분위기였다. 침 꼴깍 넘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수업 종료 종이 울릴 시간이 다가와서 나는 오늘의 결말을 서둘러 이야기했다.
"역사를 공부하는 건 내가 어디 서 있는지 알기 위해서야. 역사를 통해 내 아버지의 고통을 가늠하고, 거기서 이어져온 나의 좌표도 알게 된다. 여러분도 살다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그의 역사를 헤아려봐. 그러면 이해가 될 수도 있다. 역사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근원이 없는 고통은 존재하지 않는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