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년쯤 개봉했던 영화 바더 마인호프 콤플렉스에서 재현된 피습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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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68세대 아이콘 두치케 피격 50년…베를린의 영원한 기억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 탕!, 탕!,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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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4월 11일 오후. 서베를린 중심지 쿠담 거리에 세 발의 총성.
나치를 추종하던 20대 미숙련공 요제프 바흐만의 범행.
타깃은 독일 68혁명 세대를 상징하는 학생운동 지도자 루디 두치케였고 총알은 그의 머리와 어깨 관통.
독일사회주의학생동맹 사무실이 있던 쿠담 모퉁이 현장에는 두치케의 신발 한 켤레와 자전거, 그 위에 걸린 손가방만 쓸쓸히 널브러져.
두치케는 수 시간 수술을 받은 끝에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11년 후인 1979년 39세에 후유증으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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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통신] 거리이름 놓고 다시 불붙은 ‘68 논쟁’
지난 1960년대말 서방세계를 뒤흔든 68운동의 학생 지도자 루디 두치케의 이름을 딴 거리를 둘지를 놓고 베를린에서 찬반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붉은 루디’로 불린 두치케는 68운동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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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치케의 이름이 붙여질 거리는 68운동 당시 두치케의 적수였던 악셀 슈프링어 언론·출판 그룹의 본사가 자리잡은 ‘악셀 슈프링어 스트라세’와 교차로에서 만나는 지점.
당시 슈프링어 그룹의 신문들은 두치케를 “폭도의 우두머리”나 “공적 1호”로 몰아붙였다.
슈프링어그룹이 발행하는 <빌트>의 애독자인 한 청년이 두치케를 저격.
분노한 학생들은 슈프링어 건물로 몰려와 “슈프링어가 함께 쏘았다”고 외치며 격렬한 시위.
역대 피습 중 가장 최악의 케이스에 속하는 사건입니다
피해자는 당시에 독일 68운동을 이끈 좌파 학생운동 지도자(흔히 극우들이 좌파좌파 거리는 한국 진보와는 비교할수 없이 진퉁 빨갱이에 가까운 ㄷㄷ)이고
뇌 속 깊숙히 총알이 들어가 꺼내질 못했다고 합니다
흔히 총알이 인체에 들어가면 시간이 지나면 계속 움직인다고 하죠 ㄷㄷ
하필이면 그게 뇌였고 시간이 갈수록 여기저기를 휘젓고 다닐테니
이곳저곳 서서히 마비 등 증상이 오면서 사망에 이르게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엄청 고통스러웠을 것이고 차라리 한번에 바로 죽는게 나았을 수도 있겠습니다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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