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과 용기 |
2020년 여름, 그동안 벼르던 일을 저질렀다. 바로 새 차를 뽑은 것! 동료들에게 슬쩍 소식을 흘렸다. "축하해. 이제 똥차 안 끌고 다녀서 좋겠네!"
마침내 차를 받고 생각했다. '그치. 이 맛에 돈 벌지!' 콧노래를 부르며 사무실로 향하는 길이었다. 어쩐 일인지 교차로의 차들이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비상등을 켜고 차에서 내렸다. 그때 차선 한가운데 백발에 허리가 굽은 한 할머니가 보였다. 나는 할머니에게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하고 달려갔다. 할머니는 명찰을 차고 있었다. '치매 환자입니다. 혹시 제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면 도와주세요.' 침착하게 한쪽 무릎을 꿇고 할머니와 눈을 맞췄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제가 도와드릴게요!"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양옆으로 차들은 계속 움직여 댔고, 바로 앞에 있는 운전자 역시 빨리 비키라고 손짓했다. '내가 왜 나섰을까.' 후회가 스쳤지만 어쩌겠는가. 천천히 할머니를 인도로 이끌었다. 몇 미터 거리인데도 걸음이 더뎌 한참이 걸렸다. 마침 지나가던 경찰관들이 뛰어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는데 저 멀리서 한 할아버지가 달려왔다.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집을 나갔지 뭐예요. 정말 고마워요." 연신 인사하는 할아버지를 보니 부끄럼이 밀려왔다. 별것 아닌 내 행동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는 꼭 필요한 용기였던 것이다. 다시 차로 달려가 운전대를 잡았다. 평범하게만 살아온 내가 타인을 위해 용기 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손이 덜덜 떨렸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전종혁 | 강원도 춘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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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사고 칠 뻔하다 |
소방서에서 가장 큰 고가 사다리차 점검을 위해 경기도 평택 공장에 가는 날이었다. 나는 18년 차 소방관임에도 운전 경력이 길지 않아 선배가 대신 가기로 했다. 출근하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종하 반장, 오늘 직접 평택에 가야겠다. 출동 인원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네." "저 고가 사다리차 운전 두 번밖에 안 해 봤는데요?" "아무튼 조심히 갔다 와." 갑자기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25톤 크기의, 그것도 7억 원이 넘는 차를 내가 운전해야 한다니..., 기도하는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다행히 첫 관문인 고속도로 요금소를 무사히 지났다. 그러자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목적지 부근에 안전히 다다랐다. 그때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내비게이션만 믿고 커브길로 들어섰는데, 좁디좁은 농로였던 것이다. 바퀴만 간신히 들어설 수 있는 정도인 데다 차를 돌릴 공간도 없었다. 고민 끝에 나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농로 약 100미터를 후진으로 나오기로 한 것이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바퀴가 도로변에 닿을 때마다 천당과 지옥을 100번은 오간 것 같다. 30분간 사투를 벌인 끝에 무사히 차량을 이동시켰다. '휴, 십년감수했네.' 만약 후진하다 농로에 빠졌다면 '○○소방서 모 소방관 부주의로 7억 원 상당 교가 사다리차 피해 입어...,'라고 신문에 났을 것이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내 운전 솜씨 훌륭한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다리차를 공장에 맡긴 뒤 소방서로 돌아왔다. 선배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자 그가 한마디했다. "그러면서 느는 거야. 고생했다. 다음에도 네가 가라." 김종하 |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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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천국 베트남의 등록 오토바이 수가 2022년, 총 6500만 대를 넘었다. 베트남 인구가 1억 명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인구 절반 이상이 오토바이를 보유한 셈이다. 인구 900만 명의 도시 호찌민엔 오토바이가 무려 850만 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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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안녕 하세요..망실봉님
오늘도 좋은 글 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즐거운 나날들 보내세요
다녀가신 걸음
고운 멘트주셔서
감사합니다 ~
핑크하트 님 !
또다시 선물처럼 주어진
새로운 하루, 희망과
성취가 가득하시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