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시 3관왕’. 사법시험·행정고시·외무고시를 모두 합격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하나도 합격하기 힘든 시험 3개를 제패한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공부의 달인’ ‘천재’로 통했다.

그러나 이런 전통적 의미의 고시 3관왕은 이제 나오기 어려울 전망이다. 12일 발표하는 합격자를 마지막으로 외무고시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외무고시는 국립외교원(외교아카데미) 선발 시험으로 바뀐다. 정원의 1.5배수를 뽑아 1년의 교육과정과 종합평가를 거친 뒤 최종 임용되기 때문에 다른 고시와 함께 준비하기 어려운 시험이 됐다. 법학전문대학원 도입으로 사법시험도 2017년을 끝으로 폐지될 예정이라 고시계의 판도는 바뀔 전망이다. <표2 참조>
대신 다른 고시 3관왕은 여전히 가능하다. 과거엔 외시 대신 공인회계사(CPA) 등에 합격한 이들도 사시·행시를 패스하면 고시 3관왕으로 인정받았다. 요즘엔 CPA가 대거 배출되고 대우가 과거만 못해 국회 5급 공무원을 뽑는 입법고시가 3관왕 요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입법고시는 그간 인력 수급 상황에 따라 실시되고 소수만 뽑아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2000년부터 정례화되고, 전국 각지로 파견되는 행정공무원이나 판·검사와 달리 서울 여의도 국회에만 머무를 수 있는 데다 상대적으로 승진이 빨라 갈수록 선호되는 추세다.
고시 다관왕이란 존재는 시대별로 선호되는 시험과 직업상을 보여준다. 중앙SUNDAY는 역대 3관왕들의 현재를 추적했다. 사시·행시·외시 3관왕 8명, 사시·행시·회계사 3관왕 3명, 사시·행시·입법고시 3관왕 2명 등 모두 13명이다. <표1 참조>
고시합격자를 관리하는 안전행정부 채용관리과에선 “합격자를 수험번호로만 관리할 뿐 고시 복수 합격자 명단은 없다”고 밝혀 본지는 그간 언론에 노출되거나 고시계에 알려진 이들을 접촉했다.
한 해 모두 패스한 뒤 하버드 유학도
13명 중 법조행을 택한 이는 11명에 달했다. 잠시 행정·외무 공무원으로 일한 경우(4명)도 있었지만 결국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내거나 로펌(이 중 ‘김앤장 법률사무소’만 4명)으로 이동했다. 11명 중 일부는 법대 교수(2명)이거나 정치인(3명)이지만 모두 법조계를 거쳤다.
이들은 “외교관이나 행정부 사무관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일해야 하지만 변호사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고승덕 전 의원), “법대 출신인 데다 법원 쪽에서 경력을 쌓는 게 더 좋지 않겠느냐는 주변 권유 때문”(김기영 조선대 교수)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13명 중 8명이 법학 전공자이고, 4명은 경제·경영 전공이었다. 다른 학과는 1명(화학공학)에 불과했다.
공부 욕심을 더 내 미국 유학을 떠난 이도 5명이나 됐다. 고승덕(56) 전 의원은 대학 재학 중 고시 3관왕(사시 최연소, 행시 수석, 외시 차석)에 올랐고 서울대 법대를 수석 졸업한 뒤 예일·하버드대 법학 석사, 컬럼비아대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4개 주(뉴욕·뉴저지·일리노이·워싱턴) 변호사 자격도 취득했다. 그는 “여러 고시에 합격한 사람이 뭐가 아쉽다고 유학을 가느냐는 말도 들었지만 계속 도전하는 인생을 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송옥렬(44) 서울대 로스쿨 교수도 1991년 한 해에 3개 고시 합격 기록을 세운 뒤 하버드대로 가 법학 석사·박사를 받아 2003년 서울대 교수가 됐다.
공무원으로 일하다 미국 유학 뒤 진로를 바꾼 이도 있다. 정영진(47) 김앤장 변호사는 사시 합격 뒤 외교부에서 일했지만 미국 유학 뒤 변호사로 진로를 굳혔다. 정 변호사는 “미국 로펌에서 일할 때 정부 못지않게 민간에서 국제 통상이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걸 보고 변호사가 되기로 했다”고 말했다. 원래 행시에 합격했던 진행섭(67) 변호사도 재무부에서 일하다 미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을 밟고 돌아와 사시 합격 후 변호사로 일한다.
정치권 도전한 5명, 희비 엇갈려정치에 도전한 고시 3관왕도 13명 중 5명에 이른다. 현재 19대 국회에서 활동하는 이는 민주당 수석대변인 김관영(44·전북 군산·초선) 의원뿐이지만 고승덕(새누리당·서울 서초을) 전 의원, 박찬종(74) 변호사도 정계 경험이 있다.
김 의원은 회계사, 재경부 공무원, 김앤장 변호사를 거쳐 지난해 지역구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김 의원은 “주변에서 안정된 직장, 괜찮은 보수를 놔두고 큰 존경을 받지 못하는 정치권에 뭐하러 가느냐고 말렸지만 공부하면서 주변에 빚진 마음, 지역에 봉사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가장 좋다는 직장까지 다녀봤기 때문에 양극화 해소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고도 했다.
고승덕 전 의원도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정치를 택했다. 그는 “정치할 때도 그렇고 방송 예능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증권 전문가로 활동할 때 주변에서 “뭐가 아쉬워 그러느냐’고 했지만 하고 싶은 다양한 일을 해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청소년을 위한 활동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TV 프로그램 2개를 진행하면서 청소년 단체 대표와 다문화학교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박찬종 변호사도 시사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며 계속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엔 대선에 도전하기도 했다. 사시·행시·회계사 합격 뒤 73년 정계에 입문해 5선 의원을 지냈고 92년 대선, 95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해 인지도가 높다.
하지만 정치권의 러브콜에도 선을 그은 이도 있다. 서울대 첫 직선 총학생회장 출신 이정우(51) 변호사다. 84년 학생회장 당선 나흘 만에 서울대 프락치 사건으로 제적된 그는 도피생활 중 ‘전국학생대표기구’를 결성해 ‘대중 선동의 귀재’로 불렸다. 1년6개월간 복역한 그는 88년 복학과 동시에 공부를 시작해 외시·사시·행시에 합격했다. 현재 법무법인 제이피(법무법인 정평의 후신) 변호사다. 본지는 그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법인 관계자는 “잠시 미국에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세속적인 출세의 시각으로 보지 말아 달라.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현실을 개선하는 데 노력하겠다”(91년 11월), “자유로운 상태에서 뜻을 펴기 위해 판·검사 대신 변호사를 지망했다”(94년 1월)고 밝혔다.
이 밖에 장덕진(79) 전 농수산부 장관은 법조인 대신 ‘재무부 이재국장 겸 대통령 비서관’이 됐다. 한 정치권 인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처조카 사위라는 점이 관료의 길을 걷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고 육영수 여사의 언니 육인순씨의 사위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축구협회장, 제8대 국회의원(공화·영등포갑), 농수산부 장관을 지냈다.
장 전 장관은 58~61년 고시를 패스해 ‘한국 최초의 고시 3관왕’으로도 알려졌다. 그러나 본지 확인 결과 고등고시 3개 과를 장 전 장관보다 먼저 합격한 이가 있다. 58~59년 고등고시 행정·재무·사법 3과를 합격한 신오철(75) 변호사다. 신 변호사는 13대 국회의원(공화·도봉갑), 민자당 원내부총무를 지냈다.
오승진(31) 국회 입법조사관도 사법연수원 졸업 뒤 국회로 돌아왔다. 그는 연락이 닿지 않았으나 그의 국회 동료는 “오 조사관 외에도 사시에 합격해도 국회에 오는 이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사시와 입법고시에 합격한 뒤 국회로 온 이가 98년 처음 나타난 이래 같은 케이스가 9명에 이른다. 변호사 경력을 인정받아 특채로 들어온 이도 13명이다. ‘변호사 1000명 배출 시대’엔 국회 공무원이 더 이득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여전히 판사는 선호된다. 손태원(33)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재경부 공무원으로 일하다 사시에 매달려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법원행을 택했다.
고시 3관왕이면 당연히 서울에서 활동할 듯하지만 지방에 있는 이도 있다. 울산에서 15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김태석(48) 변호사, 광주 조선대 법대에 있는 김기영(50) 교수가 그렇다. 김 교수는 “고향이 이쪽인 데다 학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게 보람 있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고시는 목표 도달 위한 수단일 뿐”고시 3관왕들은 다양한 선택을 했지만 고시 다관왕인 게 좋지만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자신을 특별하게 보는 시각과 선입견에 부담이 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떤 이는 본지에 “제발 나를 언급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김관영 의원은 “공부만 많이 해 이기적일 거라는 선입견을 갖더라”며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려 노력해 왔다”고 밝혔다. 고승덕 전 의원도 “‘특별한 인간’으로 보는 이가 많아 철저히 자신을 낮추려 했다”며 “성격이 이상하다는 말이 나올까 봐 일주일에 하루는 봉사하고 강의 재능 기부를 통해 편견을 깨려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부담 때문인지 무너지는 이도 생긴다. 어떤 이는 과도한 음주 뒤 성폭력특별법 위반으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돼 ‘고시 3관왕의 몰락’이란 말까지 나왔다.
이들은 다른 분야에 갈 수 있으니 자기 일에 100% 전념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시선에도 시달린다. “사람들은 내가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보더라”(정영진 변호사)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는 고시 다관왕이란 경력에 안주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기영 교수는 “여러 고시를 합격하니 (고시 동기 등) 다양한 통로로 아는 사람이 많고 일을 같이 하자는 제안도 받는다”며 “고시 합격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꾸준히 새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고 했다.
정영진 변호사도 “어렸을 때는 약간의 과시욕도 있었던 것 같은데 시험 공부만 하기보다 언어를 공부하거나 다른 경험을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고시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에 인생 목표를 분명히 선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후배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김 의원은 “자신감을 갖고 1주일, 1개월, 6개월 단위로 계획을 세워 실천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목표한 데 이를 수 있다”고 했다. 고 전 의원도 “당장 세상에서 볼 때 좋은 것, 돈 되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어떤 분야든 열정을 갖고 도전하라”고 했다.

첫댓글 오씨가 저기서 제일 질떨어짐
사시+행시+외시가 진짜 개씹갑....일단 딴건 닥치고 틀어박혀 공부하면 된다고 말이나 할 수 있지만 외시는 외국어 장벽이 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