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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가장 행복한 공부 원문보기 글쓴이: 無量光明
[혜국스님] 삶과 수행이 분리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걷는 길에
확신과 소신을 가진 사람은 흔하지 않다.
흔들림 없이 자기 길을 걸어가고,
자기가 걸어간 길 만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대단한 수행자임에 틀림없다.
'바람' 에 휘날리는
'마음잡기' 에 수많은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는 마음조차 떠나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 참선과 함께 기도나 염불 등도
강조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참선 · 기도 · 간경 · 염불은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의 업業이 수백 가지듯,
길도 수백 가지고 사람의 성격도 가지각색입니다.
사람마다 근기에 맞는 수행이 있습니다.
참선이 좋은 것만은 틀림없고,
다음 생에도 참선을 하겠지만,
그것만 옳고 좋은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 불교를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습니까.
"불교를 말로 표현할 수 있느냐는 말은
'불교' 를 하나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설명해 달라는 것과 같습니다.
불교학의 입장에선 가능한지 모르나,
수행자적인 관점에선 다릅니다.
불교라 하면 결국에는 마음을 깨닫는 것인데,
'마음 깨닫는 세계' 에서
'마음 깨닫는 세계' 를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를 깨닫는다' 는 것은
우주를 바로 보는 것이고,
우주를 바로 보는 것이 선禪입니다.
요즈음 선禪을 쉽게 '고요한 것' 으로 표현하는데,
그것은 선禪을 만 분의 일도
제대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 부처님 가르침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면,
중생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전할 방법은 없다는 것인지요.
"그 부분이 바로 제가 모자란 부분이고,
수행자들이 정말 받아들여야 할 부분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부처님은 행동으로 보이며,
중생과 당신(부처님) 사이엔
조그만 벽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삶 자체가 법문이었습니다.
당신의 말씀과 행동이 일치했기에,
그분의 말씀이 담긴 팔만대장경은
'진리의 보배' 즉 법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중생들에게 법보를 어떻게 전할 것인가.
제가 고민하는 주제 중 하나입니다.
개인적으론 '밖' 에 나가 설치고
말로 하는 것보다, 수행을 열심히 하고,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을
제대로 전달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 '수행으로 보여주는 것이 제일' 이라는
스님의 이야기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30∼40년씩 수행한 분이
막상 어떤 일에 부닥치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판단을
내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속의 세계와 수행의 세계가
별개라서 그런 것입니까.
"세속과 수행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수행자의 판단이 혹 그렇게 보인다면
그것은 두 가지 원인 때문입니다.
하나는 세속인들이 자기 수준에서,
자기 테두리 안에서,
도(道)를 끌어내려 수행자를 보려고 하기에
그런 일이 생깁니다.
다른 하나는 수행자들이
정말 뼈아픈 수행을 못해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중생들에게 회향돼야 할 수행을 진실로 못할 때,
판단 착오는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조하면, 도(道)란 길입니다.
걸어간 만큼만 자기 길이며,
걷지 않은 길은 자기 길이 아닙니다.
자기가 걸어가 '그 위치' 만큼 돼야 도道입니다.
그런데 세속인들이 만들어놓은 울타리 안에서
수행자의 도道를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 현재 우리나라 선방에서 스님들이
들고 수행하는 화두는 중국선사들이
천 몇 백년 전에 만든 화두들입니다.
이런 화두가 의미가 있습니까.
"간화선이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근자에 부쩍 많은데,
간화선이 문제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간화선으로 인해
한국불교 뿌리가 정말 탄탄해졌습니다.
한국불교사에 우뚝 선 많은 스님들이
간화선으로 도를 이룬 분들이고,
그 분들이 한국불교의 명맥을 이어주었으며,
우리는 그분들의 후손입니다.
간화선은 황금깃대 역할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간화선으로 눈을 뜬 사람들이 많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근기에 간화선은 맞습니다.
강원에서 배우는 대부분의 교재들도
참선(간화선)에 관한 것이 주종입니다.
서구식 교육에 젖어 산 사람들이
그 상태에 젖어 출가,
화두에 제대로 매달리지 못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간화선 자체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개인적으론 다음 생에 태어나도
간화선을 할 것입니다.
'중국 선사들이 만든 화두를 가지고
참구해도 되느냐' 는 질문에 대해선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화두라고 하는 것은
'말 이전' 의 어떤 것입니다.
'한 생각' 일어나기 이전 세계가 화두고,
이것은 진리입니다.
부처님 당시나 지금의 진리는 똑같습니다.
마치 밖에 보이는 저 넓은 '허공' 이
신라 때 허공 다르지 않고,
중국의 허공이 다르지 않듯 말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 봅시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기 전에도
'아버지' '어머니' 는 있었습니다.
다만 한글 창제 후
'아버지' '어머니' 가 말로 표현됐고,
그렇게 부릅니다.
한글이 없다고
'아버지' '어머니' 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화두도 '아버지' '어머니' 와 같은 것입니다.
과거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현재심불가득(現在心不可得),
미래심불가득(未來心不可得)인데
옛날 화두 현재 화두가 어디 있습니까.
옛날 화두, 지금 화두가 있다면
그것은 화두를 죽이는 일입니다.
그런 화두는 역사적으로
자기네 수준에 맞춰 끌어내린 화두지,
본래 있던 자리의 진정한 화두는 아닙니다.
화두를 하는 사람이
정말 몸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보여주지 않으니깐
이런저런 질문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수행자들이 제몫을 못하다보니깐
일반 불교신도들에겐 절실하게 닿지 않는 것입니다.
앞으로 정말 노력해야 됩니다."
- 재가에서 사는 사람들이 불교를
실천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없습니까.
"불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루하루 삶이 불법이 된다면
제일 좋은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일제시대 이래 불교는
중생들 삶 속에 내려가지를 못했습니다.
산 속에서 수행만 하는 체제가 돼버렸습니다.
이제는 새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삶 자체가 불교가 돼야지,
삶과 수행이 분리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세간 사람들은 물질에만 집착하고,
수행자들은 도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극복돼야 할 점입니다."
- 스님은 혹독한 수행을 자청하신 것으로 유명합니다.
소지공양(燒指供養 · 손가락을 태워 공양하는 것)은 왜 했습니까.
"저는 13세에 출가했지만
참선보다는 불경 읽기, 글쓰기를 좋아했어요.
스물두 살 땐데 성철 스님이 부르셔선
'남의 돈만 세다가 우짤끼고(어쩔 테냐)?'
'내일부터 매일 5000배씩 올려라' 며 참선공부를 권하셨어요.
두 번의 삼칠일(21일씩)로 5000배씩 하는데,
그걸 마칠 무렵,
'책 읽고, 글쓰기 좋아하는 이 손가락을 공양하고
참선공부에 매진해야겠다' 는 마음이 환히 일었어요."
― 후회한 적은 없으십니까.
"왜요. 잠시 있었죠.
간단한 응급처치 후 태백산 토굴 속에 들어가
장좌불와(長坐不臥 · 누워 자지 않고 하는 참선수행)를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잠이 오고 어머니 생각,
속세에서 학교 다니던 생각 같은 망상이 끊이질 않는 겁니다.
그 때 '괜히 소지공양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그 고비를 어떻게 넘겼습니까.
"해인사로 내려가 성철스님께
'졸리지도 않으셨습니까' 라고 여쭸지요.
성철 스님 대답이
'내가 목석(木石)이가?' 였습니다.
또 '생쌀을 씹으니 이빨이 뾰족하게 닳아서
너무 아픕니다' 라고 했더니
'이 무식한 놈아, 쌀을 불려서 먹어야지' 라며
수행방법을 자세히 가르쳐주셨어요.
그리고는 쇠로 만든 발우(스님들의 음식 그릇)를 주시며
'물을 담아 머리 위에 올려놓고 수행하라' 고 일러주셨어요."
― 효과가 있었습니까.
"처음엔 잘 안 됐습니다.
1시간에도 10번씩 졸다가 발우를 떨어뜨리고,
물을 쏟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발우를 머리에 올려 놓고 앉아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아침이더군요.
너무 좋아서 벌떡 일어서자 발우가 '쾅' 떨어지는데,
그 순간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토굴에서 뛰어나와 나무와 새,
다람쥐에게까지 인사하고 다녔습니다."
― 그렇게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하기 때문인지
고승들의 수행을 신비화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수행이 신비화되면 생명을 잃습니다.
참선은 번뇌 망상 때문에
가려진 본래의 순수한 현실을 제대로 보기 위한 수행입니다.
성철 스님도 현실을 제대로 냉철히 보고
이끌어가신 분입니다.
개개인으로선 상대적 빈곤,
정신의 빈곤을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3대 조상 때보다 1000배나 재산과 학식이 많지만,
만족하고 배려하는 마음의 넓이는
1000배나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돈 벌 때처럼
악착같이 수행하라' 고 권하고 싶습니다."
―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 분들에겐
위로의 말조차 조심스럽습니다.
무슨 말씀을 들려 주시렵니까.
"나와 남, 인간과 자연이 둘이 아닙니다.
인간을 물방울에 비유하자면,
맨 땅에 떨어지면 언젠가는 말라 버립니다.
그 물방울이 영원할 수 있는 길은 바닷물과 섞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나라는 개인은
상대방과 자연, 우주가 있을 때 존재하는 것입니다.
대가성 없는 노력을 하면서 삽시다."
- 후학들에게도 한 말씀 해주시죠.
"수행의 문에 들어서면
너무 빨리 생각하지 말자,
중생이 부처가 되는 길인데,
몇 생을 바칠 각오로 수행에 임해야 된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너무 빨리 계산해서는 안 됩니다.
도(道)성취에 욕심이 앞서선 안 됩니다."
- 스님의 좌우명이 무엇인지요.
"'어디를 가든지 주인이 되라' 는
'입처개진(立處皆眞) 수처작주(隨處作主)' 를 좋아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주인 되려면,
주위 환경에 나를 맞춰야 됩니다.
그러면 가는 곳마다 진리가 됩니다."
[글 : 석종사 금봉선원장 혜국스님]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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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행복한 공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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