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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석굴암석굴 ③ - 십일면관음보살상
승인 2006.09.23 00:00 호수 15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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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는 말도 필요없는 ‘예술의 극치’
우리나라 불교 조각예술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석굴암 석굴의 불상군(佛像群),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것이 본존상과 십일면관음보살상이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머리 위에 11개의 얼굴을 가진 이 특이한 모습의 관음보살상은 여성적인 몸매에 화려한 장신구를 두른 것이 특징이다. 전실에서는 본존상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 다가가 대하면 그 아름답고 거룩한 자태에 압도당하고 만다. 이런 예술품은 심원한 종교적 체험과 차원 높은 미의식을 갖춘 신라인들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창조해 낼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사진설명: 십일면관음보살상 전체모습. >
“원광(圓光) 보관(寶冠)이 모두 다 거룩하다/부드러운 두 볼, 날씬한 두 억개/춘산(春山) 아미(峨眉)가 으적이 열린 미테 결곡하게 드리우신 코 어엽부다 방울조차 없구나/고은지고 보살의 손, 돌이면서 백어(白魚) 갔다/신라 옛 미인이 저러트시 거룩하오/무릅 꿀어 울어러 만지면 훈향(薰香) 내 높은 훈훈한 살기운/당장 곧 따수할 듯 하구나.”(〈삼천리〉 제11권 제1호(1939. 1. 1))
이상은 월탄 박종화 선생이 십일면관음보살상을 상찬한 ‘석굴암’ 시의 일부다. 맞춤법통일안 이전의 글이라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표현이 있지만 십일면관음보살상을 직접 친견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시의 정서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상은 석굴내의 다른 어떤 보살상보다 매력적이고 육감적이다. 매끄러운 신체 곡선을 타고 흘러내리는 천의(天衣)는 이 보살상이 과연 돌로 만든 것인가를 의심할 정도로 부드럽고 섬세하다. 엉덩이를 약간 내민 자태와 화려한 장신구로 감싸인 날씬한 허리는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러나 결코 관능적 흥분을 일으키게 하지 않는 것은 그 육감적인 자태 속에 종교적 장엄미가 내재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십일면관음보살의 모태는 관음보살이다. 관음보살은 관세음보살.관자재보살 등 여러가지 명호로 불린다. ‘관세음이란 세간의 음성을 관하는’이란 뜻이고, 관자재라 함은 지혜로 관조하므로 자재한 묘과(妙果)를 얻는다는 뜻이다.
관음보살은 그를 원하는 중생의 근기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몸을 나타내는데, 이것을 보문시현(普門示現)이라고 한다. 십일면관음보살은 성관음의 보문시현에 의해 나타난 또 다른 관음보살로, 성관음.천수관음.마두관음.준제관음.여의륜관음과 함께 6관음의 하나로 신봉되고 있다.
<사진설명: 십일면관음보살상 머리의 보살과 부처 얼굴.>
십일면관음보살상의 도상적 특징은 머리 위에 11개의 불보살 얼굴이 부가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본 얼굴 외에 다른 여러가지 얼굴을 덧붙이는 형식은 인도 힌두교의 신상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예컨대 우주 창조의 신인 브라마는 3개의 얼굴을 가진 모습으로 표현되고, 시바 신의 화현인 칼리는 10여 개의 얼굴과 수많은 팔을 가진 여신으로 묘사된다. 그런가 하면 열렬한 시바의 신봉자인 라바나는 10개의 머리를 가진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처럼 신상의 본 얼굴에 추가된 여러 개 얼굴은 그 신이 가진 여러 가지 권능과 서원(誓願)의 내용을 드러내기 위한 방편이 된다.
전신에 가득한 기품.날씬한 허리곡선
그러나 관능적 흥분은 일으키지 않고
머리위 십일면불보살엔 因果의 가르침
십일면관음보살의 11면은 보살 얼굴 10면, 부처님 얼굴 1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면상(面像)들의 표정은 모두 네 가지인데, 적정상(寂靜相), 위노상(威怒相), 백아상출상(白牙上出相), 대소상(大笑相)이 그것이다. 여기서 적정상은 자비의 표정, 위노상은 분노하는 표정, 백아상출상은 이를 드러내고 있는 표정, 대소상은 크게 웃는 표정을 말한다. 각 표정은 관음보살의 권능, 서원, 내증 등을 나타내는 방편인데, 적정상은 중생을 자심(慈心)으로 대하면서 즐거움을 준다는 뜻을, 위노상은 악한 중생을 보면 비심(悲心)을 일으켜 그를 고통에서 구한다는 의미를, 백아상출상은 정법을 행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더욱 불도에 정진토록 권장한다는 뜻을, 대소상은 착한 자나 악한 자 등 중생들이 뒤섞여 있는 모습을 보고 웃음으로써 이들 모두를 거둬들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각 면상들은 표정 그룹별로 정해진 위치에 배치되는데, 적정상 3면은 정수리의 부처님 앞에, 위노상 3면은 정면 화불(化佛) 왼쪽에, 백아상출상 3면은 화불 오른쪽에, 그리고 크게 웃는 대소상 1면은 머리 뒤쪽에 배치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적정상과 위노상과 백아상출상은 3면이고, 부처님 얼굴과 대소상은 1면뿐인가.
<사진설명: 왼손에 들고 있는 지물(연꽃을 꽂은 꽃병).>
적정상을 셋으로 한 것은 ①고통에 빠져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고득락(離苦得樂)케 하는 것과, ②복이 있으나 지혜가 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혜를 가지게 하는 것과, ③지혜가 있으나 도통(道通)하지 못한 자를 통하게 하는 관음보살의 세 가지 자심(慈心)을 표현하기 위함이며, 위노상을 셋으로 한 것은 ①선업을 쌓지 않고 선과를 구하려는 것, ②미혹과 고통의 업보를 거듭하면서도 고통과 업보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 ③어지럽고 산만하면서도 적정(寂靜)을 즐기려고 하는 것 등 잘못을 깨우치게 하려는 관음보살의 세 가지 서원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또한 백아상출상을 셋으로 한 것은 삼업(三業) 즉, ①살생 투도 사음 등 몸으로 짓는 업, ②망어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입으로 짓는 업과, ③탐심 진심(瞋心) 치심(痴心) 등 뜻으로 짓는 업을 짓지 않게 하는 관음보살의 서원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그리고 부처님의 얼굴이 하나인 것은 과도(果道)가 둘이 아니기 때문이며, 대소상이 하나인 것은 선악과 잡되고 더러운 것을 한번으로 웃어넘겨 섭수하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십일면관음보살상 머리 위에 올려 진 모든 보살과 부처님 얼굴은 인과(因果)의 원리를 상징한다. 즉, 10면의 보살 얼굴은 인(因)을 의미하고, 정수리의 부처님 얼굴은 과(果)를 의미하므로 전체적으로는 인과의 원리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11면 전체 불보살 얼굴은 방편이고, 보관의 화불은 법성 진여라 할 수 있으므로, 이 또한 정법과 방편의 도리를 나타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십일면관음보살상의 유래와 도상적 근거는 어떤 경전에서 찾을 수 있는가. 그 대표적인 경전이 〈십일면관자재보살심밀언의궤경〉, 〈십일면관음신주심경〉 등인데, 〈십일면관자재보살심밀언의궤경〉에 이런 내용이 있다.
세존이 보타락카산의 대성(大聖) 관자재 궁전에 있을 때 관자재보살이 11면 근본 다라니를 설하는데, 이 진언은 과거 자신이 백련화여래에게서 받은 것으로 열 가지의 이로움과 네 가지의 공덕이 있다. 관자재보살상을 조성하는 방법은, 길이가 한 자 세 치, 얼굴은 열한 개, 팔은 네 개를 가진 상을 만들되, 오른 쪽의 첫째 손에는 염주를 들고, 두 번째 손은 수인을 취하고, 왼쪽의 첫째 손은 연꽃을, 두 번째 손은 병을 잡게 한다. 머리에 11면을 부가하되, 앞쪽의 3면은 적정상, 왼쪽 3면은 위노상, 오른쪽 3면은 이아출현상(利牙出現相), 뒤쪽의 1면은 대소상, 위쪽의 1면은 여래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석굴암 석굴 십일면관음보살상의 11면도 기본적으로 이 경의 내용을 따르고 있다. 머리에 부가된 불보살상들을 살펴보면, 정수리에 전신 광배를 가진 불좌상이 안치되어 있고, 이를 중심으로 9면의 보살 얼굴이 배치되어 있다. 정수리의 불상은 과거에 일본인들이 보충한 것으로, 십일면관음보살상 정수리에는 부처님의 얼굴을 조각하는 것이 원칙임을 감안할 때 잘못된 형태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부처님 상 앞 쪽에 세 보살 얼굴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것이 적정상을 나타낸 것이다. 이들 바로 밑 정면 중앙에 아미타불로 추정되는 화불이 입상으로 조각되어 있고, 그 양쪽에 각각 3면의 보살 얼굴이 배치되어 있는데, 왼쪽의 3면이 위노상, 오른 쪽의 3면이 백아상출상이다. 머리 뒤쪽에도 보살 얼굴이 하나 더 있어야 할 것이나 이 보살상이 환조가 아닌 부조이기 때문에 뒤쪽의 1면은 생략된 것으로 보인다. 정수리의 부처님 얼굴 외에도 일제강점기 일본 사람들에 의해 보수되었거나 보충된 부분이 있는데, 현재 유독 희게 보이는 것이 그에 해당한다.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상 머리 위의 10개의 보살 얼굴은 보문시현으로 나타난 또 다른 관음보살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들 각 관음 화신들의 권능과 서원과 자증은 정수리의 부처님에 의해 하나로 통일되고, 이렇게 통일된 십일면관음보살은 결국 진리 자체를 상징하는 석굴 중앙의 본존여래에 융합되게 된다. 석굴암 불상군 전체 질서와 마찬가지로 십일면관음보살상에도 불일불이(不一不二), 일즉다 다즉일(一卽多多卽一)의 화엄의 원리가 적용되어 있는 것이다.
허 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불교신문 2265호/ 9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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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석굴암관세음의 노래,
시낭송 준비하다가 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