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4주일설교 시편82:1-8
제목: 약자를 돌보시는 하나님
본문: 시편82:1-8
오늘은 시편82:1-8의 말씀을 가지고
약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무엇입니까?
“약자를 돌보시는 하나님”
대한민국의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이다.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그 말은 백성이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는 그렇지 못합니다.
상당히 민주화 되었다고
세계적으로 칭송을 받던 때가 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대통령과 행정부가 있고 국회의원이 있고
또한 법관들이 있습니다.
이들 모두는 헌법에 의하면
백성들을 위하여 움직여야 하고
백성들이 원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가 안정을 찾고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독재국가 되고
혼란과 고통이 따르게 됩니다.
백성들의 말은 두렵지 않고 오직 자신의 뜻이나
몇몇 사람들의 말만 중요하기에
독재를 하고 폭력을 사용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입니다.
민주주의가 백성의 뜻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행동은
오직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오늘 시편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인용하여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천상의 신들 곧 신적 존재들에 대한
고발과 심판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최고의 재판장이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최고의 재판장이 되어
세상도 심판하고 다스려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1.하나님의 고발(1-5절)
고발을 당하여 고통 당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 고발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고
자신이 죄가 없다고 하거나 적다고 하려고 애를 씁니다.
정상적인 법정에서는 그러한 고발에서 죄가 없다면
그 고발에서 벗어나 평안함을 누리고
도리어 배상을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고발자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나서서 고발하고 있습니다.
심판자이신 그분께서 고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은
최고의 재판장으로 등장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천상회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성경은 다른 신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신들은 천상의 존재
곧 천사들의 모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열왕기 상22:19-20절에도
이사야 6:1-13에서도
욥기1:6-12, 2:1-6에서도
천사들의 모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서 계십니다.
보통은 보좌에 좌정해 계신 분으로
성경은 많이 묘사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서 계신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보통 앉아 있지 않고 서 있다고 하는 것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 시간에 서서 예배를 드리는 때가 있습니다.
왜 서서 드립니까?
그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찬양을 드릴 때 서서 합니다.
매우 그 시간이 중요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편76:9에서도
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심판하러 일어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3:13에서도
하나님은 변론하기 위해서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러 일어나신다고 하십니다.
먼저 하나님은 죄인들을 향하여
2절에서 언제까지 하려느냐?라고 묻습니다.
이 말은 언제까지 불의를 행하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불의를 행하고 있습니다.
‘악인의 낯 보기’라는 표현에서
그들의 악을 말하고 있습니다.
악인의 낯 보기란 무슨 말일까요?
한마디로 악인을 편드는 것을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악인에게 호의를 가지고
부당한 이익을 주는 적극적인 행동을 가리킵니다.
그 일은 정의롭지 못하며 악한 행동입니다.
그러한 일을 언제까지 하려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3-4절은 권고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해
공정한 재판을 하시는 분입니다.
세상의 재판은 어떻습니까?
옛날에는 유전무죄, 무전 유죄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유권 무죄, 무권 유죄라는 말이 있습니다.
권력이 있으면 죄가 없고
권력이 없으면 죄가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돈이 없는 가난한 자와
고아를 공정하게 재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권력이 없는 과부와 고아를
공정하게 재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정의를 베푸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악인들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천상의 재판은 약한 자들의 편에서
재판해야 한다는 재판의 기준을 보여줍니다.
약자를 돌보는 것이 하나님이
중히 여기시는 최고의 정의입니다.
그렇기에 천상의 존재들은 하나님의 정의와
구원을 실현하는 기관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어떠합니까?
악인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이들의 문제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인”
“약자 돌봄”을 이행하지 못하였습니다.
마태복음25장에서 주님께서 양과 염소를 나누십니다.
그 나누는 기준이 무엇이었습니까?
약자들을 주님으로 알고 주님처럼
대접하고 돌보고 살핀 자 와
약자를 그냥 약자로 알고 무시하고
돌아보지 않은 자로 나누었습니다.
약자를 주님으로 알고 돌본 자들은 복된 자들이 되어
창세 전부터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게 됩니다.
영광스런 자리를 주님과 함께 누리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가난한 자를 돌보았는데
주님은 그것이 자신에게 행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외로운 자를 돌보았는데
그것도 주님께 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헐벗은 자들을 입혀 주었는데
그것도 주님께 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때 그들은 자신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님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주님께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악한 자들은 어떻게 행하였습니까?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인
약자의 돌봄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그 지혜인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무시하고 의도적으로 모른척 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어둠을 헤매면서
부정과 악을 양산하였습니다.
그들에게 하늘의 뜻은 중요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뜻, 자신의 원하는 것이 중요하였기에
그렇게 행하였습니다.
그렇게 행하는 이들 때문에
땅의 모든 터가 흔들입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표시로서
창조 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질서가 파괴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지금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이런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고 합니다.
권력자들이 하늘의 질서를 무시하여 행동함으로
우리나라 사회가 붕괴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창조 질서와 사회정의는 상호 직결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극도로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하나님의 개입이 불가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 나라에 개입하여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 건져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시11:3)
그렇습니다.
터가 무너지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어집니다.
공의와 바로 서고 정의가 실천되는 땅이 되어야
우리 믿는 자가 바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땅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극복해 왔습니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세워지도록
그래서 약자가 돌봄을 받고
악인들이 무너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악인들을 하늘의 재판정에서 고발하십니다.
2) 하나님의 심판 권고(6-7절)
6-7절의 말씀은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심판의 선고입니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지리로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리켜 신적 존재들
곧 지존 자의 아들이라고 칭합니다.
우리는 가장 위대한 신이신 지존자의 특성과
성품을 공유하는 신적 존재입니다.
베드로는 우리를 가리켜
신의 성품을 가진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는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고의 통지자인 하나님이
이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십니다.
이들에게 신적 권위 곧 불멸성을 박탁 당하고
사람처럼 멸망하는 존재가 되어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불멸의 존재로 지음 받은 자들이
멸망할 존재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부정한 일을 저지르고
왕에 의해 왕궁에서 쫓겨나 권력을 상실한
고관과 같은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정의의 실현 곧 약자를 돌봄에서 벗어난 자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신성을
박탈당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신성한 성품
곧 신적 성품이 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가치 곧 정의 실현 약자를 돌보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향한 간구(8절)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다.”(8절)
이 말씀은 하나님께 드리는 간구입니다.
이 구절은 천상의 정의 실현과 더불어
지상의 정의 실현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천상의 재판장을 향해
지상도 재판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나라의 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의 심판장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도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눈은 하나님 앞에 있어야 합니다.
돈이나 권력이나 내 뜻으로가 아닌
심판하시는 하늘의 하나님의 뜻을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이 멀리 계신다고 생각하고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멸망하는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재판을 바라보며
그분에게 죽은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
그분의 뜻 그분이 원하는 것을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시편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이미 도래했지만
아직 완전히 실현되지 않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모든 권세와 힘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악을 행한 자들은 천상에서
이미 힘을 박탈당한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아직 지상에서는 여전히 활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의의 완전한 열매를 경험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심판의 유일한 기준은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약자를 돌보는 일을 통해 실현됩니다.
하나님은 약자를 무시하면
신성이 박탈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천상과 지상에서 관심을 두어야 할
가치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보고 침묵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늘 암송하며 기도하는
주기도문을 무엇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마6:10)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늘의 정의가 이 땅에 이루어지길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바로 정의의 하나님을 붙들고
이 땅에 정의가 실현되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 약한 자들을
돌보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셨습니다.
그 뜻이 지금 우리 땅에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이루어지길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우리가 한다는 것은
우리 또한 그렇게 살아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해 놓고 약한 자들을 돌보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됨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시편을 통해 하늘의 재판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지금을 이 땅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하늘의 뜻이 이 땅에 나의 삶에 나의 가정에
나에게 이루어지길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약자를 돌보아 외로운 자를 찾아가
헐벗은 자에게 입혀 주어
심판의 대상이 아닌 하나님의 성품으로
하늘의 상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