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16. 12. 10.(토)
● 산행지: 방장산(744M)
● 이동코스: 장성갈재-쓰리봉-서대봉-봉수대-방장산-억새봉-벽오봉-방장사-양고살재
● 이동거리: 약 8.93Km
● 소요시간: 5.07h
● 누구랑: 다음매일 28명
● 날씨: 2~5도
● 경비: 3.6만 (뒤풀이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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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나라 삼신산은 봉래산(금강산), 방장산(지리산), 영주산(한라산)입니다.
고창의 삼신산은 변산, 두승산, 방장산이라지요.
고창의 진산 방장산은 원래 방등산 또는 반등산이라 불렸는데
모화사상 영향으로 중국 방장산을 닮았다하여 방장산으로 바꿔 불렀답니다.
호남정맥이 내장산을 지나 순창새재에서 입암산으로 영산기맥을 내려놓습니다.
입암산에서 시루봉-노령으로 내리면 오늘 방장산 출발점인 장성갈재입니다.
영산기맥이란?
http://blog.daum.net/ydk5118/16904422
http://blog.naver.com/sheenbee/220834351165
큰 산은 아닙니다만 작은 연봉을 오르내리느라 심심하지는 않았고
선운산을 오가며 먼발치서 바라보기만 하던 방장산인데 오늘 한바퀴 돌았습니다.
하산지점 양고살재는 병자호란(1636~1637) 당시
수원 광교산 종루봉 아래 전라도 근왕병이 치른 전투에서
청태종의 사위 양고리를 죽인 김준용장군 휘하 박의장군이 고창 고부출신이라 이곳에 양고살재란 지명이 붙여졌다는군요.
시계가 멀리나가 지리산과 무등산이 훤히 보였고
억새봉에서 서쪽으로 선운산(336M)을 찾았는데 산이 낮아 특징을 발견하지 못했네요.
조망은 날씨만큼이나 시원장쾌하였답니다.^^
흔히 갈재, 혹은 장성갈재라고 부르며, 전남과 전북의 도 경계를 이룬다. 도보로 이동하던 시절부터 교통의 요충지였다. 입암산을 거쳐 방장산으로 연결되며, 노령산맥을 가로질러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와 전남평야를 이어주기 때문이다. 전북 정읍시 대흥면에서 전남 장성군 북일면 원덕리 목란마을 사이에 있다.
갈재라는 이름은 갈대가 많다 해서 붙은 것이나, 일제강점기에 지명이 한자식으로 변경되었다. 노령산맥이라는 이름도 노령에서 나온 것이다.
노령의 동쪽은 내장산으로 이어진다. 고개 남쪽에 있는 호남선의 백양사역이 내장산국립공원의 남쪽 입구이다.
노령은 높이에 비해 험한 고갯길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위령(韋嶺)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도적이 떼를 지어 살면서 백주에 살육과 약탈을 하는 요해(要害)의 땅이라고 적혀 있다. 과거 이 고개는 유배가는 선비들이 많이 넘었다.
남도의 관문으로 전남 지역에 부임하는 관리를 비롯해 봇짐장수나 과거 보러 가는 선비들이 넘어다니던 장소라 여러 전설이 전해져온다. 장성갈재의 장검도둑과 목란마을 앞산 능선에 있는 미인바위 또는 갈애바위에 얽힌 이야기가 유명하다. 주막집 딸인 미인 갈애가 조정에서 보낸 선전관의 칼에 얼굴을 맞은 뒤 미인바위의 오른쪽 눈썹에 해당하는 부분이 칼에 맞은 것처럼 찌그러졌다는 전설이다.
한국전쟁 중에는 조선로동당 전남도당의 일부가 이 부근에 파르티잔 병력으로 은거했다. 전북도당이 입산하여 근거지로 마련한 회문산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조선인민유격대는 노령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를 필사적으로 벌였다. 두 차례 공격을 통해 한 번은 노령을 점령했으나 나머지 한 번은 실패했다. 이후로는 군경의 방어선이 완강하여 노령에 접근하지 못했다.
도보 시대에 사용되던 고갯길은 인적이 끊겨 자취가 없어졌고 숲이 울창하다. 대신 도로로 된 고갯길이 국도 제1호선 구간중 하나이며, 서울과 순천시 사이의 고속도로와 호남선 철도가 통과하는 터널이 각각 뚫려 있다. 이 가운데 호남터널은 길이가 694m에 달하여 한국에서 가장 긴 터널 중 하나이다.
써래봉 또는 쓰리봉이라고 한다.
원래 방장산의 최고봉이었으나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바위가 부서져내려 세번째 봉이 되었다는 믿거나말거나한 이야기도 있다.^^
저멀리 중앙에 둥그스룸하고 넙대대한 산이 무등산이 아닌가 짐작된다.
고창평야지이다.
진수성찬, 산해진미, 주지육림이 따로없다.^^
백양산과 내장산 연봉이 보이는 내장산 국립공원
호남정맥이 흐르는 백암산 상봉과 가인봉이 보이고, 맨 뒤쪽 아슴한 산이 지리산이다.
헬기장이 마련된 봉수대, 한여름엔 비박터로도 유용할듯 하다.
인증샷이 필요한 블랙야크 100대명산 중의 하나란다. 저 뒷배경 쓰리봉 그 너머로 모악산이 보여야 하는데 찾지 못했다.
『고려사』 악지에 기록된 방등산은 나주시 진관의 속현인 장성, 고창 경계에 있어, 신라 후기에 도적이 반등산에 근거지를 두고 있으면서 양가집 자녀들을 많이 잡아다 부렸다고 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조선을 지원하러 온 명나라 이여송 장군이 고창 방장산의 수려한 산세를 보고 큰 인물이 나올 것을 경계하여 쇠말뚝 다섯 개를 박아 산의 정기를 차단하려 했으며, 일제 강점기 때도 쇠말뚝을 박았다 하여 제거 작업을 벌였다.
왜 하늘에 대고 주먹질이지?? 페러글라이딩을 타는 억새봉 정상이다.
어깨동무에 나오던 주먹대장이 울고가겠다.
여기서 서쪽 바닷가쪽으로 선운산이 보여야 하는데 산이 낮아 특징을 찾지 못했다.
「방등산가(方等山歌)」는 방등산[방장산]에 있는 도적 떼에 의해 장일현이라는 여자가 납치되자 남편이 구해주러 오지 않는다고 원망하면서 불렀다는 노랫말인데, 현재 가사는 전해오지 않는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106 악고(樂考) 17에는 「반등산가(半登山曲)」으로 나와 있지만 두 작품의 내력은 같다.
시산제 제단이 있어 배낭에 남겨진 먹거리로 제수음식을 차려놓고 산행의 무사안녕을 기원하였다.
이 산정엔 벽오동나무가 많이 있었을까? 뒷 배경이 방장산 정상이다.
방장산에 있는 양고살재는 병자호란 때 고창 출신 박의(朴義) 장군이 청태종 홍타이지의 사위인 적장 양고리(陽古利)를 살해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박의는 1599년(선조 32) 고수면 초내리 산양동에서 고창 입향조인 관찰사 양오공의 증손으로 태어났다. 용기가 대단하고 말을 잘 타며 총을 잘 쏘아 박포수라 불렀다. 1642년(인조 2) 무과에 급제하였다.
청태종은 양고리의 죽음 소식을 듣고 크게 통곡하였다고 전하며, 무훈왕에 봉하였다고 한다. 박의의 묘소는 고수면 예지리 양정마을에 있으며, 박의의 후손들은 고수면 장두리와 아산면 중월리 등에 살고 있다. 방장산은 호남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으로 접근이 쉬워짐에 따라 산악인들에게 새로운 관광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첫댓글 정성어린 산행기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빵도 잘 먹었구요
다녀오고 싶었던 산인데 덕분에 수월하게 둘러보았습니다.^^
정읍 두승산 말인데요. 두승은 쌀을 재는 말과 되라는데, 정상에 말과 되를 닮은 바위가 있답니다.
산은 그리 크지 않은데 먹고사는게 어려웠던 시대에 말과 되의 상징성 때문일까요 큰 의미를 부여한 이유가 궁금해지는군요.^^
눈 오는 밤
심훈
저눈이 쌀이다되어 나려주소서
이 땅의 백성들은 몹시도 배곱하 하옵니다
손톱발톱 달토록 녀름내 농사짓다가
박아지 덜렁덜렁 조밥 차저 떠납니다
저눈이 솜이나되여 나려주소서
흰옷입은 겨레들은 너무나 헐버섯습니다
쭈구리고 길걷든 무리의 등어리우에
푸군히 나리소서
방장산행지의 자세한 설명이 있어 고창주변의 산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산행후기 또한 잘읽었습니다~~!!!
고생많으셨습니다^^@^^
삐삐머리 미즐님이시죠^^ 담번엔 캔디머리도 해바여~~ ㅋ
네에~~맞아요~~ㅋㅋ
담에 멋진 곳에 또 뵈옵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상세한 산행 일지에
한 번 더 방장산을 알고 갑니다.^^*
재밌게 사세요~^^
좋은 사진 많이 남겨주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