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이후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의 기밀문서에 의하면 슈타지는 서독의 반공 보수정치인들을 매장 공작을 하였고 서독의 통일부장관과 브란트 서독 총리의 보좌관 ‘기욤’도 동독의 거물간첩이었다.
슈타지는 서독의 녹색당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미남(美男) 공작원을 내세워 女비서들을 포섭했다. 학생운동에 침투해 서독 대학생들의 반미(反美)시위를 배후조종하고 서독 대학을 슈타지 첩자 양성소로 이용했다. 슈타지는 女性테러리스트를 유럽의회의원으로 당선시켰으며, 슈피겔·슈테른 등 유수의 서독 언론도 슈타지 공작에 놀아났다.
공산당의 이런 공작정치 와중에서 서독이 살아남았고 통일의 주역이 되었다. 반면 야당지도자 쯍딘쥬를 포함해 5만 간첩이 활개 친 월남은 패망했다. 서독의 승리는 ‘자유의 적에겐 자유가 없다’는 전투적(방어적) 민주주의가 있었던 탓이요 월남의 멸망은 자유(自由)의 과잉(過剩), 민주(民主)의 폭람(爆濫) 탓이다.
한국은 서독에서 월남을 향하고 있지는 않는가? 한국이 과연 북한과 종북(從北)의 연합공세를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아래는 관련 기사>
[TV조선 단독] "신상옥·최은희, 남한 간첩 때문에 미국행" :정세영 기자 등록 2014.09.09 21:59
[앵커] 납북됐던 신상옥- 최은희 부부, 8년 만에 북한을 탈출했는데, 대한민국이 아니라 미국으로 갔습니다. 대한민국으로 오고 싶었지만, 간첩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올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정세영 기자입니다.
[리포트] 영화감독 신상옥씨와 배우 최은희씨 부부는 1978년 김정일의 지시로 납북된 뒤 영화 17편을 만들며 김정일의 환심을 샀습니다.
1985년 런던국제영화제에서 배우 김지미씨를 만난 자리에서도 이들 부부는 "위대한 수령님의 따뜻한 배려로 부러울 것 없이 잘 지내고 있다"며 거짓 찬양을 했습니다.
변해버린 부부의 모습을 본 김지미씨는 섭섭한 마음에 눈물을 터트릴 정도였다고 마이클리 전 CIA요원은 전했습니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김일성 부자는 이들 부부를 신뢰하기 시작했고, 철통 감시도 느슨해졌습니다. 1986년 3월, 이들 부부는 촬영장비 구입 차 머무르던 오스트리아에서 소홀해진 감시를 틈타 탈출을 감행합니다.
신 감독은 최은희씨 손도 잡지 않은채 미국대사관 정문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렸고, 최은희씨는 한쪽 신발이 벗겨진 상태로 달릴만큼 필사적인 탈출이었다고 리 전 요원은 전했습니다.
하지만 탈북 후 이들은 우리나라가 아닌 미국 망명을 택했습니다.
마이클 리 / 전직 CIA 요원 "그 사람들이 남한에 가면, 북한의 간첩이 너무 우글우글하는데 우리들이 위험하지 않겠느냐, 그걸 의식한 겁니다."
리 전 요원은 또 김정일이 이들 부부에게 자본주의의 우월성과 사회주의의 비효율성을 잘 알고 있다는 얘기를 수차례했다고 증언했습니다.
TV조선 정세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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