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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한 주님의 해석
마태복음 5:27~30
오늘 본문 말씀 역시 지난 주일에 살펴본 바 “살인하지 말라”는 제 6계명에 대한 주님 해석에 이어진 동일한 취지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간음하지 말라“는 제 7계명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 영적 교훈들을 당시 청중들에게 가르쳐주고자 합니다. 이는 당시 말씀을 듣는 유대인들이 구약 율법의 본래의 취지에 대하여서도 무지하고, 당시 그들의 종교적 교사들이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그릇된 교훈들과 행실들에 의하여 그릇되게 인도받았기 때문에, 올바른 가르침을 가르쳐주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간음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일곱 번째 계명을 외적인 행실의 위반으로만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결혼한 배우자 외에 다른 이성과 신체적인 성적 관계를 맺을 때에만 이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범한 것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외적으로 행해진 간음의 죄만이 간음죄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의 진정한 의미는 보이지 않는 바 마음 안에서 일어난 음욕조차 간음죄를 범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2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사람이 마음에 음란한 마음을 품고 이성을 바라보면 그것은 이미 마음에 간음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어떤 행위가 없을지라도, 신체적인 접촉이 없을지라도, 상대방은 전혀 알지도 못할지라도 음욕을 품은 그 사람은 이미 6계명을 범한 죄인이라고 주님은 여기서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 10계명에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뉘가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고 하신 말씀과 그 의도가 통합니다. 탐심은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죄악인데, 그 탐심 자체가 범죄라고 하나님은 선언하신 것입니다.
본래 이성에게 끌리는 마음 자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면서 주신 본성적인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감정 자체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성에게 호감을 가지고 이성을 아름답고 멋지고 존귀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천부적인 감정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성품과 행실 전체를 담은 인격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정욕적인 만족만을 추구하는 마음의 욕심을 이성을 대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요 파괴적인 것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결혼 제도 안에서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고 신뢰하는 가운데 육체적인 연합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입니다. 하나님은 결혼 제도 안에서 남자와 여자가 정서적인 연합, 이지적인 연합, 영적인 연합을 이룰 뿐 아니라 육체적인 연합을 이룰 때 그 두 사람이 가장 행복한 기쁨을 누리도록 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남녀는 결혼 전에 자신의 성적인 순결을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결혼이라는 것의 의미가 마음의 연합, 영적인 연합 뿐 아니라 육체의 연합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함으로써 그 가정에서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하시니, 그것이 바로 경건한 자녀를 얻는 일입니다.
이에 대하여 말라기서 2:15 말씀에 아담에게 오직 한 사람 하와만을 지으신 까닭에 대하여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몸을 잘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실상 몸을 순결하게 지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몸을 순결하게 지키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마음으로부터 생겨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음란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내버려두거나 그러한 음란한 생각과 상상을 즐거워하면 결국 억제되지 않는 음란한 생각은 행동으로 나타나도록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사람의 겉만 깨뜻하게 하는 것을 책망하시면서 마음을 정결케 하라고 가르치실 때 이렇게 이르셨습니다.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마가복음 7:20~23)
결국 마음에서 시작된 범죄가 밖으로 흘러나와 행동의 죄로 발전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 7계명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에서도 중요한 것은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음란, 간음, 음탕의 생각들을 다스려서 그것들을 마음에서 없애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마음의 죄를 범한 사람은 실제적으로 제 7계명을 범한 것과 동일한 것이라고 예수님은 여기서 강력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적으로 다른 여인이나 다른 남자와 더불어 간음죄를 범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마음으로 다른 남자를 깊이 품고 다른 여자를 깊이 품고 음란한 생각과 상상을 하였다면 그것은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렇게 혼자서라도 마음의 상상만으로도 간음죄를 범할 수 있진대, 다른 사람들과 음란한 희롱의 말들을 나누면서 즐거워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듣는 것, 말하는 것, 상상하는 것, 그러한 음란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는 것 역시 큰 죄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3 이하에서 이르기를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에베소서 5:3,4)
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생각, 말, 분위기 등이 음란한 분위기로 에워싸 있다면 그것이 발전되어 더 분명한 음행과 간음의 실제적인 행동의 죄악까지 나아가는 것은 시간 문제일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에서부터 성적인 불결함을 피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율법을 주실 때에 이러한 명령을 내린 바 있습니다. 민수기 15:37~40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그리하여 너희가 내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행하면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
그렇습니다. 길게 늘어진 옷 술과 청색 끈을 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입는 겉옷에 달도록 명했으니, 이는 방종하기 쉬운 마음을 다스리고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하려는 뜻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옷 차림새도 매우 중요합니다. 옷 차림새가 우아하고 차분하고 단정하여서 보는 이들의 마음이 그 사람의 내면에서 경건한 신앙심과 인격이 드러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오늘날 수많은 대중 매체에서 특히 상업적 선전 영상 등에서 보이듯이 선정적이고 유혹적이고 육감적인 옷차림이나 표정이나 저급한 희롱의 말들은 보고 듣는 이들을 자극하여 그릇된 정욕을 일으키고 육신적인 상상을 유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오늘날의 음란한 풍조에 휩쓸리지 않도록 눈과 귀를 조심하여 마음 속에 육감적인 욕심이 일어나지 않도록 자기를 잘 지켜야 하겠습니다.
동방의 의인 욥은 바로 이 점을 늘 스스로 훈련하여 실천하곤 했습니다. 욥기 31:1 이하에서 욥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그리하면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분깃이 무엇이겠으며 높은 곳의 전능자께서 주시는 기업이 무엇이겠느냐 불의한 자에게는 환난이 아니겠느냐 행악자에게는 불행이 아니겠느냐 그가 내 길을 살피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욥기 31:1~4)
욥은 그 옛날 시절에 율법이 주어지기 전부터 영적인 은혜를 입고서 육체적인 간음죄를 짓는 것을 피하는 정도가 아니라 마음의 정결함을 지키려고 이렇게 눈의 유혹을 피하여 아름다운 처녀의 외모에 마음을 빼앗겨 음욕을 품지 않으려고 눈의 유혹을 스스로 다스렸던 것입니다. 아름다운 여성, 아름다운 남성을 보고 참 “아름답다, 멋있다”라고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이야 어찌 죄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그 마음을 뛰어넘어 욕심을 품거나 그릇된 상상이나 헛된 생각을 발전시켜 품는 것은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욥과 같이 자기 눈을 다스리며, 자기 귀를 다스리며, 자기의 발을 잘 다스려서 항상 마음이 정결하고 깨끗하고 거룩하게 합시다.
또한 고린도전서 15장 부활장에서 사도 바울이 경고한 가르침에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고린도전서 15:33,34)
고 하신 말씀대로, 술 취함, 방탕함, 음란함에 물들지 않도록 교우 관계를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교제 관계가 중요한 것은 가까이 하는 친구는 어느틈엔가 서로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 소망 사랑을 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기도의 사람, 교회의 사람, 성경의 사람을 늘 가까이 하고 자주 만나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당시 젊은 동료 사역자였던 디모데에게 쓴 그의 유언 편지인 디모데전서 2:22 말씀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말이나 생각이나 행실에서 마음이 음욕을 품은 자들을 멀리하고 항상 마음과 입술과 행실에서 청결한 사람을 친구로 삼아 가까이 교제합시다. 그리할 때에 제 7계명의 온전한 뜻을 우리가 잘 지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문 말씀에서 매우 중대한 영적 경고와 교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죄의 그 파괴적인 위험성과 그것을 물리치려는 결연한 결단의 필요성입니다. 그리고 음행 죄의 궁극적인 결과의 무서움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29절과 3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 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예수님께서 여기서 육체적인 간음죄나 마음의 음욕을 품은 마음의 간음죄나 간에 그 결과는 심각한 심판을 가져온다고 여기서 언급합니다. 그것은 바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라고 주님은 경고합니다. 간음과 음행의 죄악은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데, 이에 대하여 성경은 여러 차례 분명히 선언하곤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6:9 이하의 말씀에 이르기를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린도전서 6:9~11)
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21:8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고 하였습니다.
이 두 개의 구절에서도 분명하게 음행하는 자들, 성적으로 문란한 자, 동성연애자, 간음한 자들은 불과 유황이 영원히 타오르는 못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제 7계명의 본래적인 뜻을 우습게 여기고 세상적인 세태와 음란한 풍조를 따라 행한다면 결과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대로 결국 지옥 불에 던져지는 신세가 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제 7계명을 베푸신 하나님의 뜻과 우리 구주의 산상수훈에서 밝혀주신 계명의 드높은 성결의 표준을 마음에 소중히 품고 지키고자 애쓰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영혼의 영원한 재난을 피하고 영원한 복락을 얻기 위하여 명심해야 할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파국적인 끔찍한 심판적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주님께서는 듣는 청중들에게 단호한 결단을 내리고 죄를 끊어낼 것을 요청합니다. 오른 눈이 이 간음과 음행 죄로 이끌어간다면, 단호하게 그 오른 눈을 빼어내버리고 말씀합니다. 오른 손이 만일 간음과 음행 죄로 이끌어간다면, 그 오른 손을 찍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오른 눈이란 가장 소중한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오른 손이라는 것은 가장 중요한 삶의 방도, 방책을 가리킵니다. 고기잡는 갈릴리 어부나 농사짓는 농부나 집에서 일하는 주부나 오른 손이 없다면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신세가 될 것입니다. 눈이 하나 없다면 그 사람은 보기에도 흉측하며 제대로 사물을 보지 못하는 신세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소중하여 포기할 수 없고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일지라도 기꺼이 희생하며 포기하는 결단을 내리면서까지 마음의 순결과 행실의 거룩함을 지켜가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것 곧 내세의 영혼의 영원한 운명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의 야곱의 아들 요셉은 결단하여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쳤습니다. 그래서 감옥에 잡혀 들어가는 고통을 겪었지만 그로 인하여 하나님은 도리어 애굽 왕 바로에게 발탁되어 국무총리가 되는 계기로 바꾸셨습니다. 순결한 영혼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귀하게 쓰신 것입니다. 다윗 왕은 왕위에 올라 영광의 절정의 때에 방심했다가 그만 눈의 유혹을 받아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여 간음하였고 그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무서운 책망을 받고 깊은 참회를 통하여 그 영혼은 멸망에서 간신히 살아났습니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내리신 징계의 채찍은 그와 그의 가정과 나라에 오랫동안 쓰라리게 아프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영혼의 영원한 복락을 위하여, 저 지옥불의 영원한 고통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또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채찍과 막대기를 맞지 않기 위하여 결단을 하고 이 음행과 간음의 죄를 범치 않도록 몸부림을 쳐야 하겠습니다. 오른 눈을 뺄 정도로, 오른 손을 찍어낼 정도의 결단을 해야 합니다.
물론 “눈을 뺀다”, “손을 찍는다”라는 것은 상징적 의미입니다. 간음과 음행의 죄의 원천은 마음이지, 눈이나 손이 그 죄를 범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부터 이 죄를 철저하게 끊어내는 것이 필요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눈을 빼라, 손을 찍으라고 주님께서 결단을 요구한 것입니다. 아무리 내게 소중하고 필요한 것이나 사람일지라도 내 영혼의 복락을 위하여, 저 지옥불을 피하기 위해서, 음행을 피하고 거룩함에 이르도록 기꺼이 끊어내는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적으로 너무나 개방되어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분명히 결혼한 사람들인데, 다른 사람과 성적인 관계를 맺어도 간음죄로 고발되어 감옥에 수감되는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2012년에 형법에 있는 간음죄가 폐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입니다. 성적으로 얼마든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 육체 관계를 맺는다 해서 그것 자체가 죄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원히 변치 아니하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계명은 분명히 간음을 지옥에 떨어질 무서운 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음행과 음란과 희롱하는 말도 다 죄로 규정합니다. 보이는 바 행실의 죄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바 마음의 음란한 욕심과 생각까지도 죄로 규정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엄청난 두 세계 사이에 벌어진 간격 사이에서 정신을 차리지 아니하면 신앙 생활을 한다면서도 세속적이고 음란한 세태에 물들어서 제 7계명을 범하면서 살아갈 위험성이 매우 큽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자칫 우리의 영혼이 장차 주님 앞에서 무서운 징벌을 받고 저 지옥불에 떨어질 수 있음이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주님께서 일깨워주신 하나님 백성의 드높은 윤리적 이상을 마음에 깊게 새기고, 마음에 음욕을 가지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다는 주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마음을 철저하게 성결하게 지키고자 몸부림칩시다. 오른 눈을 빼서라도, 오른 손을 찍어내는 결단을 하더라도 우리가 제 7계명을 범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합시다. 왜냐하면 그 결과는 끔찍한 지옥불에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7계를 범한 사람에게는 영적인 교제의 은총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엄중한 징계의 채찍이 임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항상 주님의 말씀을 늘 마음에 두어서 우리 마음을 힘써 지키도록 합시다. 시편 119:9,11 말씀에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성결케 하시는 말씀을 마음에 두어 세속의 물결에 우리 마음에 휩쓸리지 않도록 합시다.
또한 늘 기도에 힘씀으로써 우리 마음을 씻도록 합시다. 성령은 우리 영혼을 씻고 새롭게 하시는 생수의 강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주 기도하며 은혜를 간구할 때에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솟아나와 더러운 것들을 말갛게 씻겨내주시는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또한 성도의 교제를 늘 힘써서 세상 친구들로부터 자신을 잘 지켜내고 마음의 허전함, 외로움들로 인하여 마귀가 틈타지 않도록 자기를 지킵시다. 디모데후서 2:22 말씀에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고 하셨으니, 우리도 주님을 청결한 마음으로 사랑하여 섬기는 자들과 힘써 교제합시다. 그리할 때에 세상의 도도한 탁류의 풍조를 능히 이겨나갈 힘을 얻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주 넘어집니다. 세속의 물결에 휩쓸립니다. 워낙 음란한 풍조가 강한 시대를 우리가 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넘어지고 쓰러질 때에 우리는 구주 예수님께 나와 자주 회개합시다. 요한일서 1:9 말씀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깊이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넘어졌다고 버리지 않습니다. 끝까지 붙잡아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의 요란함, 흔들림, 육신의 정욕에 끌려가는 나약한 감정을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솔직히 털어놓으시기 바랍니다. 그의 긍휼을 구하시며, 용서를 청하시고 치유해주시기를 청합시다. 그리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너그럽게 용서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성령으로 우리 심령을 새롭게 해주시고 거룩함의 용기를 더해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간음한 여인을 향하여 돌을 들고 치려고 몰려든 바리새인들에게서 그녀를 건져내시기 위하여 글을 쓴 후에 일어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고 하신 후에 엎드려 다시 땅에 글을 쓰셨습니다. 그 때에 돌을 들었던 유대인들 중에 나이든 자로부터 하나씩 돌을 내려놓고 그 자리를 떠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묻습니다.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주여 없나이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렇게 일러 주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용서해주시고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또 다시 넘어질 수 있는 것이 인간임을 주님은 아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새롭게 결단하고 마음으로부터 거룩함을 추구해갈진대 점점 온전히 죄를 이겨나가게 될 줄 아십니다. 그리하여 마음으로부터 음행과 음란의 죄를 다 이겨내고 성결하여 주님과 깊은 교제 속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다가 다시는 시험이 없는 저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천사와 함께 영광 중에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