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교: 함경남도 함흥시 성천강에 있는 다리다.
이 다리는 오랜 역사를 지닌 함흥 명승의 하나로, 조선왕조 군주들의 만수무강을 기원한다는 뜻에서 태조가 만세교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정월 대보름에 만세교를 밟아 한 해 재액이 없음과 건강을 비는 '다리밟기'는 함흥 사람들의 풍속이었다.
원래는 83m 길이의 목조교였으며 3천여 개의 판목을 이어맞춘 명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세 번이나 파괴되었다.
1905년 러일전쟁 당시 퇴각하던 러시아군이 방화하여 소실시키자 일본 공병대가 1906년 다시 지어 1908년 준공했다. 하지만 1928년 대홍수로 다시 유실(流失)되자 아예 콘크리트로 지어 1930년 완공하였다. 하지만 6.25 전쟁 때 북진했던 미군이 후퇴하면서 또 폭파해 북한에서 새로 지었다.(인용 위키백과)
함흥(咸興)이라하면 우리 북선(北鮮)으로는 제일 큰도시인것을 누구나 알것이올시다 그성이 군자하(君子河)라는 물우에 섯고 그 물을
건너 만세교(萬歲橋)라는 다리가 있는데 그 기리가 오리(五里 2키로~2.5키로) 올시다 참 긴다리지오
성남문우에 락민루(樂民樓)라는 다락이잇서 온 골의 경치를 휘잡음이 평양 련광정(鍊光亭)만 못지안이합니다 광막한 뜰은 해풍을 바더 그 기운의 웅장함이 용소년(勇少年) 갓하이 곱고 얌전한 싀악씨갓흔(색시같은)평양을 생각할때에 결혼 중매를 하엿스면 하는 늣김이(느낌이)떠올음니다.........
八域歌 (팔역가)는 전적(典籍) 형태의 필사본으로 우리나라를 팔역, 곧 팔도로 나누어 함경도부터 경기도까지 전체 24절로 노래한 장편 기행가사이다.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등에 대하여 역사, 지리, 인물, 특징, 영웅적 내용 등을 재미나는 이야기나 한시 등을 삽입하여 흥미와 관심을 느끼도록 노래하고 있다. 작자와 필사자를 알 수 없으며, 창작시기와 필사시기는 작품 첫 머리에 경진(庚辰) 납월(臘月)이라는 간지와 날짜로 보아 1880년 또한 1940년 섣달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현재 한국가사문학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국한문혼용체. <팔역가>는 다양 한 이본이 존재하며 전북 남원의 羅乃碩(라내석)의 <팔역가>와 유사하다. 이 가사는 <팔도읍지가>, <팔도가>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강토와 역사, 인물, 지리, 특징, 명소, 누정, 사찰 등을 노래했다
庚辰臘月日(경진납월일) 납월:음력섣달 음력12월
八域歌(팔역가) 南原羅乃碩所作也
咸鏡道(함경도)
靑年素地(청년소지)는 塵臼中(진구중) 日月(일월)이 無情(무정)하고
白首浪跡(백수낭적)은 靈區山(영구산) 山水(산수)에 有意(유의)로다
舞雩(무우기우제)에 春服(춘복)빌고 陋巷(누항누추한마을)에 瓢子(표자)어더
仁山智水(인산지수) 보랴하고 白頭山(백두산) 차자갈졔
때마줌 五月(오월)이라 采藥人(채약인) 許多(허다)로다
八日粮(팔일량식량) 진이고 가는대로 宿所(숙소)하야
八日(팔일)만의 올나가니 이뫼에 괴닌못시 八十里 周囬(팔십리주회)로다
北流爲(북류위) 松花江(송화강)이요 東流爲(동류위) 豆滿江(두만강)이요 南流爲(남류위) 鴨綠江(압록강)이라
遠近山勢(원근산세) 살펴보니 崑崙山(곤륜산) 한가지
千里(천리) 流行(류행)하야 遼東(요동)을 지내야 白頭山(백두산) 되야셔라
精氣(정기)는北走(북주)하야 寧固塔(영고탑) 지여놋코
背後(배후)예 빼여난한가지 東國山脉(동국산맥) 되야또다
이따의 지낸자호(古昔往跡고석왕적) 依依(의의 기억(記憶)이 어렴풋함 )이 생각하니
女眞(여진)이 웅거커날 高麗中世(고려중세)에 大將尹瓘(대장윤관)으로 쳐破(파)하고
豆滿江(두만강) 지하야 先春岑(선춘잠산세험준한봉우리)으로 限界(한계)러니
百年(백년)이 못하야 靺鞨(말갈)땅이 다시되야 咸興(함흥)으로 定界(정계)러니
우리 世宗大王(세종대왕) 聖德(성덕)과 金宗瑞(김종서)의 忠烈(충렬)로
拓地千里(척지천리)하야 六鎭(육진)을 排設(배설)할졔
朝臣(조신)이 爭諫曰 (쟁간왈) 以有限 民力(이유한민력)으로 興無限(려무한) 民役(민역)하니
請宗瑞(청종서)을 可誅(가주)라커날 世宗王(세종왕) 批荅曰(비답왈)
雖有 寡人 (수유과인)이나 若無宗瑞(약무종서)면 不能辦此事(불능판차사)요
雖有 宗瑞(수유종서)나 若無 寡人(약무과인)이면 不能主其事(불능주기사)라 하시니 君臣際會(군신제회뜻이잘맞음) 이안닌가
長白山(장백산) 바라보니 五月(오월)에 녹은눈이 七月(칠월)에 다시희고
豆滿江(두만강) 바라보니 太宗大王(태종대왕) 典祭氣像 (전제기상) 依然(의연)토다
徐徐(여여)이 내려와 雲頭山城(운두산성) 다다르니 金人所謂(금인소위) 五國城(오국성)이라
肅宗朝(숙종조) 丁酉年(정유년)에 康熙皇(강희황) 보낸臣下(신하)
穆克登(목극등)의 定界碑(정계비)는落落(낙락)이 놉파잇고
金人(금인)의 所虜(소로흉노의소유)되야 이땅에 幽囚(유수잡아가둠) 하던 宋天子(송천자) 슬픈무덤 楚懷王(초회왕)의 넉실넌가
白楊(백양)이 不得老(부득노)는 뉘아니 실풀소냐 一盃酒(일배주)로 告祭(고제)하고
緩步(완보)로 下山(하산)하야 會寧邑(회령읍) 宿所(숙소)하고 北兵營 (북병영)차자가
制勝楼(제승루) 올나 依依(의의)이 생각하니 金節齋(김절제) 六鎭(육진)을 排設(배설)하고
이楼(루)에 잔치할졔 月沈沈 夜三更(월침침야삼경)에 엇떠한 나는활살(화살) 슐독을 破(파)하거날
一軍(일군)이 驚動(경동)하되 節齋(절제)의 깁픈 度略(도략) 反測 (반측)의 奸計(간계)알고
晏然不動(안연부동)하니 周亞夫(주아부)의 臥而不起(와이불기) 아니던가
鍾城(종성)을 지나다가 行營宇(행영우)차자드러 遼東伯(요동백) 金公事蹟(김공사적) 살펴보니
光海朝(광해조) 己未年(기미년)에 皇朝(황조)의 請兵(청병)커날
都元師 姜弘立(도원수강홍립)과 副元師 金景瑞(부원수김경서)난 深河(심하)의 이르러
不戦而降(부전이항)하고 金公(김공)은獨戦而死(독전이사)하니
皇朝(황조)의 遼東伯(요동백) 對(대)하시고 不詔(불소)하야 慰諭(위유위로하고타일러달램)하시니
略(략)에曰(왈) 嗚呼(오호)라 內則 中國(내칙중국)이요 外則 夷狄(외칙이적)이랴
修攘 得道(수양득도)하면 夷狄(이적)이 率服(솔복)하고 修攘 失道(수양실도)하면 夷狄(이적) 猾夏(활하중국을침범해소요를일으키다)어날
寡人(과인)이 罔念(망념)하고 未耀 一德(미요필덕)하야 觀兵 萬里(관병 만리)라가
驅朕(구짐) 壯士(장사)하야 血肉(혈육)氈域(전역)하니 寡人(과인)이 恥之(치지)하노라
民心 罔常(민심망상)이랴 惟惠之(유혜지)면 懷我(회아)요 撫之(무지)면 后我(후아)요
虐之(학지)면 讐我(수아)어날 寡人(과인)이 未解(미해)하야 上咈 天時(상불천시)하고 下垂 民心(하수민심)하야
輕擧 大事(경거대사)라가 怨起(원기) 轉恤(전훌)하야 遂致(수치) 將軍(장군)으로
獨戰 無救(독전 무구)하니 寡人(과인)이 恥之(치지))하로랴
丹忠 誰效(단충수효)요 堂上 鶴髮(상당학발)은 望斷 倚門(망단의문)하고 閨中 寡妻(규중과처)은 石化 山頭(석화산두)랴
寡人(과인)이 痛之(통지)하노랴 然(연)이나 寡人之恥(과인지치)은 恥而 無補(치이무보)하고
將軍之死(장군지사)은 死而 有光(사이유광)이랴 秋霜大節(추상대절)과 白日貞忠(백일정충)은 足以(족이) 扶萬古之 綱常(부만고지망상)이요 懷萬古之 人臣(회만고지인신)이요 明萬古之 大義(명만고지대의))요 愧萬古之(괴만고지) 奸諛(간유간사하게아첨함)랴
將軍(장군)이 雖死於 一敗(수사어일패)나 不死於 萬古(불사어만고)로다
嗚呼(오호)랴 巡遠(순원)이 不死(불사)하니 仙李 有臣(선리유신)이요 天祥(천상)이 不死(불사)하니 屬猪 有臣(속저돼지무리유신)이오
將軍이 不死하니 寡國(과국)이 有臣(유신)이랴
忠臣烈士(충신열사) 何代不有(하대불유)리오마는 殉國(순국) 如子者誰(여자자수)오
綱氣 一紀(강기일기)와 磅礡(방박) 萬古(만고)을 將軍(장군)이 受之 以爲(수지이위) 將軍하니
是知三軍(시지삼군)을 可奪(가탈)호대 匹婦(필부) 難奪(난탈)이요
五岳(오악)을 可動(가동)호대 一節(일절)은 難動(난동)이랴
向使(향사) 黃鉞(황월1750-1841) 丹誠(단성)으로 皆是(개시) 將軍이면
將軍이 何死於敗䘐(하사어패뉵)이며 寡人(과인)이 何辱於虜酋(하욕어노추)리요
嗚呼(오호)랴 忠如將軍(충여장군) 勇如將軍(용여장군) 智如將軍(지여장군) 而獨立(이독립) 無補(무보)은 寡人之 罪也(과인지죄야)로다 崇德(숭덕) 報功(보공)은 古有 金典(고유금전)이라 褒忠(포충충성을기림) 旗節(기절)이 今獨 不然(금독불연)가 肆朕(사짐)이 統承先王(통승선왕)하야 修其 祀物(수기사물)하야 金以 妻子(김이처자)로 爵以 東伯(작이동백)하야 表一寸之 朕誠(표일촌지짐성짐이진실로)하고 慰九原之 精魄(위구원지정백)하로랴
詩曰(시왈) 百尺深河(백척심하) 萬仞山(만인산) 至今沙磧(지금사적) 血痕班(혈흔반) 靈魂且莫(령혼저막) 招江上(초강상) 不滅凶奴(불감흉노) 定不還(정불환) 萬古(만고)에 誦傳(송전)터랴
慶興(경흥)을 지나다가 豆滿江(두만강) 발래보니 翼祖(익조) 이땅에 살로실졔
夫人孫氏(부인손씨)와 胡亂(호란)을 避(피)하야 江(강)을 臨(임)하시니
배은 업고 일이 急(급)한지랴 江(강)물이 잠간몰나 平安(평안)이 건너신後(후)에
江水(강수)가 如常(여상)하야 胡人(호인)이 未犯(미범)하니 天監在下 (천감재하)이안이신가
穩城(온성)을 向(향)하야 忠谷院(충곡원) 奉審(봉심)하고 吉州(길주) 차자들어 松魚膾(송어회) 안주하야 술부어 沈醉(침취=만취)하고
摩天嶺(마천령) 摩雲嶺(마운령) 게우올나 居然(거연)이 생각하니
柳眉岩(류미암)이 明宗朝乙巳(명종조 을사) 鍾城(종성)에謫居(적거)한 十九年(19년)이랴
夫人(부인) 德峯宋氏(덕봉송씨) 이재에 올나 을푼 詩曰(시왈)
行行遂到(행행수도) 摩天嶺(마천령)
東海無涯(동해무애) 鏡面平(경면평
) 萬里夫人(만리부인) 何事去(하사거)
三從義重(삼종의중) 一身輕(일신경)
德峰嘉號(덕봉가호) 이안인가 緩步(완보)로 내러와 北淸(북청)을 向(향)하야 南兵營(남병영) 차자들어 鎭南樓(진남루) 귀경하고
老德院(노덕원) 지내길에 鰲城事蹟(오성사적) 살펴보니 光海君(광해군)의 廢母(폐모)함을 極諫(극간)타가 此地謫居(차지적거귀양) 되야 一日(일일) 病臥(병와) 飮食 失節(음식실절)이랴 晝夜(주야) 집푼생각
漢城(한성)의 尾井水(미정수)와 往尋里(왕심리) 沈菜(침채김치)로다
遠莫 致之(원막치지) 恨歎(한탄)터니 此時(차시)에 鄭錦南忠信(정금남충신 금남 정충신)이 京城(경성)에 잇따가 一夜(일야)에 天文(천문)을 보고 大驚(대경)하야 曰鰲城 大監(왈 오성대감)이 將爲 不幸(장위불행)이로다
急急(급급)히 尾井水(미정수)와 往尋里 沈菜一器 (왕심리 침채일기)을 行裝(행장)하고 晝夜(주야)로 倍道(배도)하야 謫所(적소귀양처)에 得達(득달)하니 大監(대감)이 이때就寢(취침)이랴
通刺(통자)는 姑舍(고사)하고 尾井水 作飯(작반)하야 往尋菜(왕심채) 菜需(채수)하고 婢子(비자계집종)의게 進奉(진봉)하니
大監(대감)이 맛보시고하신 말삼 鄭忠信(정충신)이 來矣(래의)로다
何不入見(하불입견) 我(아)오하신니 鰲城(오성)의 知味(지미)난 不下於(불하어) 易牙(역아)하고
錦南(금남)의 知己(지기)난 不讓於(불양어) 伯牙(백아)로다
咸興監營(함흥감영) 當到(당도)하니 此地(차지)난 肅愼氏 古都(숙신씨 고도)랴 漢武帝(한무제)으 玄菟(현토)로다
君子河(군자하) 萬里橋(만리교)을 闊步(활보)로 건너와셔 樂民樓(낙민루) 올나보니
練光亭(련관정) 甲乙(갑을)이라 四方風景(사방풍경) 살펴보니
大野中(대야중) 노푼집은 太祖大王(태조대왕) 微時古宅(미시고택) 影幀(영정)이 凜凜(늠름)하고
宣化堂(선화당) 너룬마당은 太宗大王(태종) 十三歲(13세)에 쏘은사심 메고가는 氣像(기상) 依依(의의)토다
射鹿事蹟(사록사적)은 擧大綱(거대강)하로랴 我太祖(아태조) 潜邸時(잠저시)에
北道萬戶(북도만호)로 監司(감사)와 宣化堂(선화당) 酬酢時(주작시)에
太宗王(태종왕)이 十三歲(13세)랴 坐中(좌중)에 突入(돌입)하야 父主(부주)께 알온말삼 有鹿(유록사슴) 在野(재야)하니 鞍馬(안마말안장)을 주옵소셔 주시거을 不失其馳(부실기치)하야 舍矢 如破(사시여파)로다
濯濯(탁탁산이벌거벗은 모양)한 큰사심(사슴) 馬上(마상)에 놉비매고 庭前(정전뜰앞)에 바치거을
監司閔齊(감사 민제) 卽日(즉왈) 請婚(청혼)하야 後日(후일)에 府院君(부원군) 되야셔라
永興(영흥)을 지내여 龍興江(용흥강) 다달나 太宗王 誕生(탄생) 터 구경하고
德源(덕원)을 向(향)하야 元山村 (원산촌)차자들러 面面風景(면면풍경) 발애보니
海上(해상)에 泛泛(범범)이 오난배 四方物貨(사방물화) 실어다가 交易而退(교역이퇴) 하니 一國都會(일국도회) 이안인가
岸上(안상) 層層(층층)노푼倉(창)은 列邑米穀(열읍미곡) 貿取무취하야 凶年(흉년)을 豫備(예비)하니 朝家盛事(조가성사) 거녹하다
安邊(안변)을 當到(당도)하야 釋王寺(석왕사) 올나보니 無學(무학)의 所居(소거)로다
太祖大王 潛邸時에 一夜(일야)의 得夢(득몽)하니 背負三椽(배부삼연서까래)하야 椽頭(연두)에 花飛(화비)하고 中(중)에 鏡落(경락)이랴 해몽코져 無學(무학)을 이졀에 차자신니 無學이 解曰(해왈)
背負三椽(배부삼연)하니 王字之像(왕자지상)이요 花飛(화비)하면 能成實(능성실)이요
鏡落(경락거울이떨어짐)하면 豈無聲(기무성어찌소리가없을수있는가) 가하니 太祖王心(태조왕심) 獨喜自負(독희자부)하야
水陸齋(수륙제) 지내실졔 五百羅漢(오백나한) 現形(현형)이랴 寺號(사호)을 고쳐싯니 이안니 釋王寺(석왕사)가
二十二官(22관) 발바오니 東西(동서)은 百里(백리)요 南北(남북)은 千里餘(천리여)랴
平安道(평안도)
平安道로 向한길에 碧潼(벽동)을 지내니 劍山嶺(검산령)을 넘어든다
江界(강계)에 다달으니 廢四都(폐사군) 五百里(오백리)를 世宗朝(세종조)에 革罷(혁파)하야
江界(강계)에 붓텨씨니 樹木(수목)은 參天(참천)하고 人蔘(인삼)도 許多(허다)로다
渭源(위원)을 지내다가 한곳설 바래보니 聖賢(성현) 말삼 出乎爾者(출호이자) 反乎爾(반호이)랴
애돕다 唐將李如松(당장 이여송)이 東國名山 (동국명산)다害(해)치고 무어시 不足(부족)하야 제으先山(선산) 몰나보고
天下名將(천하명장) 世出(세출)이랴하야 自掘自害(자굴자해)하엿씨니 그안이 애돌손가
寧邊(녕변)을 當到(당도)하야 百祥樓(백상루)을 올나보니 樓下(루하)에 淸川江(청천강)이요
江上(강상)에 七佛寺(칠불사)랴 이졀에 올나보니 隋陽帝(수양제) 百萬兵(백만병)이 이江(강)에 臨(임)할졔
엇덧한 일곱즁이 長衫(장삼)을 거더잡고 장감장감 건너간니 逗遛(두류객지에머물러있음)하던 져隋軍(수군)이 이걸보고 건네다가
先鋒一陣(선봉일진) 合沒(함몰)하고 일곱중은 간대업다 이안이 七佛(칠불)인가
成川(성천)을 當到(당도)하야보니 이땅은 穰王(양왕) 옛날랴 東明王(동명왕) 新都(신도)로다
降仙樓(강선루) 올나보니 四百餘間(사백여칸) 雄壯(웅장)함은 八道(팔도)에 甲第(갑제)되고
屹骨山(흘골산) 十二峰(십이봉)은 樓前(루전)에 壯觀(장관)이랴 엇지 지엿떤고
本邑府使(본읍부사) 朴燁(박엽)이 光海君(광해군)의 國命(국명)으로 不日成之(불일성지) 하앗또다
四方風景 (사방풍경)살펴보니 壯麗(장려)하고 奇異(기이)하다
平壤(평양)을 向한길에 中華(중화)을 지내다가 駒峴(구현)에 잠간쉬여 居然(거연)이 생각하니
異常(이상)하다 朴燁(박엽)의 智識(지식)이여 淸將(청장) 龍骨大(용골대)馬骨大(마골대)
不良(불량)한 마음으로 東國(동국)을 살피랴고 密密(밀밀)히 단니거을
裨將(비장)불너 일은말니 酒肴(주효술과안주) 盛備(성비)하야 駒峴(구현)에 기달으면
軒軒(헌헌)한丈夫(장부) 채을집고 지내거든 監司(감사)의 分付(분부)로 如斯如斯 (여사여사)하야
大饗大責(대향대책)하랴하니 저 裨將(비장) 그말대로 施行(시행)하니 두 丈夫(장부) 嘆服(탄복)하고 일은말이
使道(사도)난 神人(신인)이랴 世上(세상)에난 생심인들 生意(생의)할가 하직하고 도라가니 異常(이상)하야
大同江 (대동강)따랴들졔 十里 長其(십리장기)은 箕子(기자)때 숨은남무(심은나무) 이졔갓지 茂盛(무성)토다
夕陽 春風(석양춘풍) 闊步(활보)로 練光亭(련관정)올나 술부어 沈醉(침취)하고
잠한숨 깨다르니 醉興(취흥)은 飄散(표산)하고 風景풍경은 洒落(주락)하다
이 땅은 三千年 名都(삼천년명도)요 天下第一 江山(천하제일강산)이랴
千古 往蹟(천고왕적)을 依依(의의)이 생각하고 四方 風景을 歷歷(력력)히 살펴보니
中原文章(중원문장) 朱之蕃(주지번) 天下 第一江山 (천하제일강산)씬여셧글자 갓초와거늘
어져타 丁丑(정축)淸皇帝(청황제) 回軍日(회군일)에 이樓(루)에 올나보고
中原金陵(중원금릉) 浙江(절강)잇따하야 天下二字(천하 이자) 파바리고 네글자만 完然(완연)토다
檀君 千年(단군천년)은 文獻(문헌) 無徵(무징)하니 擧大綱(거대강) 하올리랴
東方(동방)에 初無君長(초무군장)이랴 풀노 오셜하고(옷을하고) 나무열매로 밥을하야
夏節(하절)에난 셥에자고 冬節(동절)에난 궁게(굴에)거하던니
일은배 九種夷(구종이)라 太白山(태백산) 檀木下(단목하)에 神人(신인)이 下降(하강)하야
平壤(평양)에 卽位(즉위)하니 國號을 朝鮮이랴하니 元年(원년) 戊辰(무진)은 唐堯(당요)의 二十五年(25년)이랴
百姓(백성)으로 멀리 따라시게하고 君臣男女(군신남녀) 飮食制度 (음식제도)하여또다
檀君(단군)은 神人이랴 千年後(천년후)에 箕子(기자)을 쥬시랴고
九月山(구월산)에 避位(피위)하야 다시神人 되야또다 箕子의 나오심은
我罔爲(아망위) 臣僕(신업) 周武王(주무왕) 己卯年(기묘년)에 白馬(백마)타고 나오실져 隨行者 (수행자)五千餘人(오천여인)이랴
뉘가뉘가 따랴던고 詩書禮樂(시서예악) 발근선비 醫藥卜筮(의약복서) 가진사람 百工技藝(백공기예) 뿐이러랴
本土(본토) 사남 王祖明(왕조명)을 차자보고 敎民(교민) 八條(팔조)하야 小中華(소중화) 되야셔랴
國泰 民安(국태민안)하야 黃河水(황하수) 노라지여 聖德(성덕)을 誦傳(송전)하이
歌曰(가왈) 昔聞(석문) 大同江(대동강) 不見(불견) 黃河水(황하수)
天回地轉(천회지전) 黃河水(황하수) 白馬哻冠(백마한관) 覯之子(구지자)
浩浩洋洋(호호양양) 涵德澤(함덕택) 千秋萬古(천추만고) 流如此(류여차)
孔夫子(공부자)의 일은말삼 欲居九夷(욕거구이) 이안이런가
엇지타 四十二代孫箕準(42대손 기준)이 衛滿(위만)의 奸計(간계)에빠져
九百餘年(구백여년) 都邑(도읍)일코 漢江水(한강수) 너며와셔 益山 都邑(익산 도읍)하야 馬韓始祖(마한시조) 되야싯니
元年(원년) 丁未(정미)난 漢宣帝(한선제) 元年(원년)이랴 이안이 三韓(삼한)인가 衛氏 (위씨)엇텃타고 八十七年(87년) 직킨나랴
其孫右渠(그손 우거) 頑悖(완패)하야 漢武帝 拒逆(한무제 거역)타가 樂浪(낙랑)골 되야싯니 이안니 四郡(사군)인가
長安(장안)이 멀고멀어 직키기 어렵또다 句麗山(구려산) 高朱蒙(고주몽)이
女眞(녀진)에 운거타가 成川(성천)은 新都(신도)요 平壤(평양)은 移都(이도)로다
國號(국호)은 高句麗(고구리)요 王號(왕호)은 東明王(동명왕) 이라하니
元年甲寅(원년갑인)은 漢元帝(한원제) 年이라 이안니 三國(삼국)인가 三國中(삼국중)에 强國(강국)이랴
隋陽帝(수양제) 百萬兵(백만병)이 淸川江(청천강)에 敗歸(패귀)하니
東國名將(동국명장) 그뉘던고 乙支文德 안이던가 唐太宗(당태종) 威武(위무)로
安市城(안시성)에 班師(반사)하니 이골太守(태수) 그뉘던고 楊萬春(양만춘)으 城上拜(성상배)은 萬古(만고)에 奇異(기이)토다
詩曰 臣有罪 抗六軍 六軍本討 臣叛君 臣亦守城 不叛君 赦臣罪 班六軍 無於禮 有於禮兮 城上之拜 千古奇
潯陽江(심양강) 北(북)을삼고 漢江水(한강수) 南(남)을삼아
七百五年(705년) 직키던이 天命(천명) 靡常(미상한결같지않음)이랴
東明王 母親塑像(모친소상)니 泣血(읍혈) 三日(삼일)하고 平壤 江水(평양강수) 赤血 三日(적혈삼일)터니
唐高宗 甲寅年(당고종 갑인년)에 大將 李世勣(대장 이세적)과 幕下將(막하장) 薛仁貴(설인귀) 新羅兵(신라병) 合勢(합세)하야
平壤(평양)을 처파하고 新羅(신라)에 붓쳐또다 三千年(삼천년) 지낸사적 엇지다 기록할가
練光亭(련관정) 나려와 映明樓(영명루) 올나보니 箕子廟(기자묘) 奉審(봉심)하고 井田形址(정전형지) 귀경하고
外城外村 (외성외촌)차자들어 衛滿(위만)과 朱蒙時(주몽시)에 土城 (토성)싸 外城外村(외성외촌)을 삼은고로 外城外村이랴 일홈하다
良田玉土(량전옥토) 널운들은 百里(백리)에 明朗(명랑)하고 奇巖 秀石(기암 수석)은 淸江 一帶(청강일대)로 回抱(회포)로다
江上(강상) 商賈船(상매선)은 八路(팔로)에 往來(왕래)하고 岸上(안상)에 浣紗女(완사녀빨래하는여인)은 十里(십리)에 羅列(나열)하니
漂擊(표격) 聲中(성중)에 鳧鴈(부안기러기)이 驚飛(경비)하고 櫛枇 村前(즐비촌전)에 市廛(시전)이 繁華(번화)하니
箕子時(기자시)로 至于今(지우금)갓지 無盛衰(무성쇠)랴 第一名村 (제일명촌)이안인가 二十四官(24관) 발분後(후)에
黃海道(황해도)
黃海道로 向하니 豊川(풍천)을 귀경하고 殷栗(은율)에 다다를니 土沃 穀出(옥토곡출)은 不下於(불하어) 三南(삼남)이랴
造山(조산)들 畓(답)한말落(락)에 穀出(곡출) 數百斗(수백두)요 小不下(소불하) 百斗(백두)로다
長淵(장연)을 다다랴 金沙寺(금사사)을 올나보니 奇異(기이)한明沙(명사)로다 日光(일광)밧치 金(금)빗시요
바람따라 峰巒(봉만)이랴 層層(층층)이 놉고놉파 朝夕(조석) 遷徙(천도)하야 東(동)에잇다 西(서)에하니
이안니 壯觀(장관)이며 한곳 바래보니 沙上(사상)에 놉푼塔(탑)과 고은 祠堂(사당) 空中(공중)에 偃然(언연)하니
明沙十里(명사십리) 海棠花 (해당화)白鷗(백구) 雙雙(쌍쌍) 飛疎雨(비소우)은 이럴두고 일름이랴
長山串(장산곶) 바래보니 峯巒(봉만)은 奇異(기이)하고 松栢(송백)은 鬱密(울밀)터랴
海州監營(해주감영) 當到(당도)하야 芙蓉堂(부용당)차자들어 仁祖大王(인조대왕) 誕生地 (탄생지)귀경하고 또한곳 바라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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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尙道(경상도)
慶尙道로 向(향)한길에 小白山(소백산) 올나 四方山川(사방산천) 살펴보니 大白山 一枝脈(대백산일지맥)이 左出東萊海上(좌출동래해상) 근쳐잇고 右出(우출) 한가지 小白山(소백산) 되야 南海上(남해상)에 끗쳐신니----
洛東江(낙동강)을 건너오니 이 江上流(강상류)는 太白山(태백산) 上峯下(상봉하)로 數百里逶迤(수백리위이구불구불굽이침)하야
一道中央 일도중앙)되야신니 江東(강동)은 左道(좌도)요 江西(강서)은 右道(우도)로다
南州(남주)을 當到(당도)하야보니 此地(차지이땅)는 沙伐古國(사벌고국)이랴 屛風山(병풍산) 올나 옛都邑 (도읍)귀경하고 山川(산천)을 살펴보니 鳥嶺(조령)으로 오난人馬(인마) 洛東江으로 오난舟楫(주집배) 物貨相通 (물화상통)만이하니 一大 都會(일대도회)랴
富饒(부요)도 許多(허다)하고 文物(문물)도 彬彬(빈빈번성)하더랴
京畿道(경기도)
京畿道로 向(향)한길에 大皇橋(대황교) 지내여 水原(수원)을 當(당)하야 陵所(능소) 귀경하고 水原府(수원부)에 面面(면면)이 살펴보고 遲遲臺(지지대) 지내오니 無非我(무비아) 正宗大王(정종대왕) 孝(효)으 遺澤(유택)이랴 終身(종신)토녹 慕養 (모양)父母(부모)하신니
東方大舜(동방대순) 이안인가
銅籍江(동적강) 건네오니 源流(원류)난 江陵 五臺山(강릉 오대산)이랴
上流(상류)난 廣津(광진) 三浦(삼포)요 下流(하류)는 楊花(양화) 孔巖津(공암진)이랴
高麗時(고려시)에 兄弟 二人(형제이인) 同行(동행)타가 아의 黃金鐙子(황금등자) 한雙(쌍)을 어더 한짝은 兄(형)을주고 孔巖津(공암진)에 배을 함거(함께)타고 건네다고 이히金(금)을 江(강)에 던지거을 兄(형)이 괴히여게 問之(문지)하되 아히 答曰(답왈) 平日(평알) 愛兄(애형)하야 物我(물아) 업셔턴니 今日(금일)에 金(금)을 分半(반분)하니 此(차)은 不祥之物(불상지물)이랴
故(고)로 投之(투지던지다)닛다 兄曰(형왈) 汝言(여언너의말)이 是也(시야옳다)라하고
또한 金(금)을떤진 故(고)로 曰(왈)投金江(투금강)이랴 後世(후세)에 有名(유명)토다
木不見山(목불견산) 蠶頭(잠두)에 올나 漢陽山川(한양산천) 歷歷(력력)키보니
이땅은 箕尾 分野(기미분야)로 三角山(삼각산) 北(북)에 놉푸고 漢江水(한강수) 南(남)에 띄되여
左接(좌접) 南領(남령)하고 右环(우배) 渤海(발해)하니 萬代 天府之地(만대 천부지대) 이안이며
四方(사방) 入貢(입공)에 道里(도리) 甚均(심균)하니 竊非(절비) 東四關(동서관) 三京之所耶(삼경지소야)아
一國山川(일국산천) 精神 都會處(정신도회처)로다 일어무로 句麗(구려)에 漢山(한산) 되고
百濟中(백제중)에 暫都南遷(잠도남천)하고 高麗(고려)에 樹李(수리)되야
道銑 秘訣(도선비결)에 曰(왈) 繼王氏而(계왕씨이) 都漢陽者(도한양자)난 李氏云(리씨운)
故(고)로 高麗 中世(고려중세)에 尹權(윤관)으로 白岳南(백악남)에 地理(지리)을 察相(찰상)하야
李花(리화)을 種(종)하엿던니 茂盛(무성)하면 斫伐(작벌)하야 以爲壓勝(이위압승) 이랴하니
笑矣乎(소의호) 笑矣乎(소의호)로다 凡物(범물)도 有主(유주)커든 况天府之 地乎(항천부지지호)아
大明洪武(대명홍무) 二十五年(25년) 壬申(임신)에 我太祖大王(아태조대왕) 聖德(성덕)으로 차자오시여
無學(무학)으로 都邑(도읍)터을 定(정)할졔 無學이(무학) 白雲臺(백운대)로부터 地脈(지맥)을 차자
萬頃 (만경)쎠부터 西南(서남)으로 行(행)하야 碑石峯(비석봉) 다다들니 一石碑(일석비) 大字(대자)로 刻曰(각왈)
無學(무학)이 誤尋到此(오심도차)랴 하엿씨니 道銑(도선)이 所記(소기)로다
無學이 길을곳쳐 萬頃 正南脈(만경 정남맥)으로 좃차바로 白岳山(백악산)에 이르러 보니
三脈(삼맥)이 合爲一坪(합위일평)이랴 宮闕(궁궐)으 땅을 定鼎(정정)하니 高麗(고려)의 種李處(종리처)라
엇지타 高麗의 尹權은 地理(지리)난 明白(명백)키알되 天理(천리)난 모로던고 宮闕(궁궐)은 創建(창건)하고
外城(외성)은 未定(미정)터니 一夜(일야)에 大雪(대설)이 外積(외적) 內淸(내청)이랴
太祖 奇異(기이)히생각하시고 눈을따랴 城地(성지)을 셰워셔라 人傑(인걸)은 地靈(지령)이랴
賢君明臣(현군명신) 輩出(배출)하니 家家文章(가가문장)이요 戶戶道德(호호도덕)이랴
五百年來(오백년래) 禮樂文物 (예악문물)三韓 以後(삼한이후)에 最爲 文明(최위문명)니 小中華(소중화) 이안이던가
樹李山(수리산) 仙李枝(선리지) 萬萬 長春(만만장춘)이랴 이안이 壯할손가 緩步(완보)로 내려와
城外(성외) 城內(성내) 歷歷(력력)히 귀경하니 宮闕城門(궁궐성문)과 坊里橋樑(방리교량) 名號(명호)난
鄭道傳(정도전)으 所撰(소찬)이랴 저의 집을 兩闕間(양궐간)에 놉피짓고 坊名(방명)을 壽盡洞(수진동)이라하니 이안이 애돌손가
鄭道傳은 李牧隱(이목은색)의 門人(문인)으로 文章 智略(문장지략)이 逈出(형출) 人表(인표)하되 小人 肝腸(소인간장)이랴
貪功攝權(탐공섭권)야 太祖 婦寺(태조부시)되고 太宗(태종)의 逆賊(역적)되야 壽盡洞(수진동)에 橫死(횡사)하니
壽盡坊名(수진방명)이 良有以也(량유이야)라 後人(후인)의 唾鄙(타비 더럽게 여기어 침을 뱉음 )로다
廣州(광주)을 向(향)하야 南漢山城(남한산성) 차자가니 百濟王(백제왕) 溫祚(온조) 古都(고도)로다
萬仞山 頂上(만인산정상)에 內平坦而(내평단이) 外峻急(외준급)이랴 不幸(불행)하야 丙子年(병자년)에
仁祖(인조) 不城(불성)홈은 江都(강도)가 被陷(피함)하고 軍粮(군량) 乏絶(핍절)홈이로다
保障重地(보장중지) 심아 九等(구등)을 創建(창건)하고 摠攝(총섭)으로 大將(대장)삼아
各邑(각읍) 僧壯丁(승장정) 擇出(택출)하야 九等에 屯守(둔수 군영(軍營)을 지킴)하고
月課(월과)로 習射(습사)하야 賞錄(상록)을 厚給(후급)하니 諸僧(제승)이 弓矢爲業(궁시위업)더랴
北漢寺(북한사) 올나 귀경하고 甲串津(갑곶진) 건너고 沈都(심도) 正峴(정현)은 夫人(부인)과 上對(상대) 自縊(자액스스로목을맴)하고
李掌令 時稷(장령 이시직)은 自訣詩(자결시) 지어 그아달게(아들에게) 부처주고 從容就死 (종용취사)하야신니
貞忠 大節(정충대절)은 千秋(천추)예 流傳(류전)터랴
滿月臺(만월대) 올나 宮闕遺址(궁궐유지) 살펴보니 金豚臥處(금돈와처) 分明(분명)하고
案對(안대)에 進鳳山(진봉산)은 玉女粧(옥녀장) 되얏셔랴
所以(소이)로 麗王(려왕)이 累世(누세) 上國公主(상국공주)으게 장개하야 麗元(려원)이 一家(일가)되야
來往(래왕) 無禁(무금)하고 多或而(다혹이) 仍居(잉거)하니
溫城孟氏(온성맹씨) 延安李氏(연안리씨) 驪州李氏(려주리씨)南陽洪氏(남양홍씨) 原州元氏(원주원씨)
海州吳氏(해주오씨) 宜寧南氏 (의령남씨)居昌愼氏(거창신씨) 昌原黃氏(창원황씨)은
中國人(중국인)流落中(유락중)에 我國大姓氏(아국대성씨) 되야셔라
大抵 我國(대저 아국)은 中國外(중국외)랴 옛날 禹貢賜姓(우공사성)을 未參(미참)하니 所一東夷(소일 동이)려니
但箕子後(단 기자후) 鮮于氏(선우씨)요 句麗後(구려후) 高氏(고씨)요 新羅後(신라후) 朴氏昔氏金氏三姓(박.석.김씨삼성)이요
駕洛後(가락후) 金氏(김씨)던니 新羅末(신라말)에 中國(중국)의 通來(통래)하야 姓氏(성씨)를 始造(시조)하되
仕宦(사환벼슬살이함)이 略有(략유)하고 民庶(서민)의 全無(전무)하니
高麗朝(고려조)에 中國 橫來(중국횡래)하야 班姓於(반성어) 八路(팔로)하니 人皆(인개) 有姓(유성)하야
或以爲(혹이위) 庶民(서민)하고 或以爲(혹이위) 士大夫(사대부)랴
何以爲(하이위) 士大夫(사대부)요 士而行(사이행) 大夫事(대부사) 故(고)로 曰(왈)士大夫(사대부)랴
王公聖賢(왕공성현) 後裔(후예)로 孝悌忠信(효제충신)을 職業(직업)하고
禮義廉恥(예의염치)을 根本(근본)하야 立紀綱(입기강) 正風俗(정풍속)하니 所以(소이)로 爲士大夫(위사대부)랴
인용 한국가사문학관
전체를 보려면 요기로 들어가시면되요 해석도같이 볼수있읍니다
영평부(永平府)는 중국 명(明)나라 시기 북직예(北直隸) 지방에 속했던 행정구역으로, 조선시대 사신단의 연행(燕行) 경로 중 한 곳이었습니다. 조선 사신단은 의주에서 요양, 산해관을 거쳐 북경으로 이동할 때 영평부를 반드시 지나쳤으며, 이곳에서 주변 지역의 정세를 파악하기도 했습니다.
영평부의 위치와 역할
영평부(永平府)가 조선에서 유명하였던 이유는 사행로 중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선 사신단은 의주에서 요양, 산해관을 거쳐 북경으로 갔다. 이때 산해관에서 북경으로 갈 때 지나간 장소 중에 한 곳이 영평부였다.
1421년(세종 3) 명이 수도를 북경으로 천도하기 전까지는 조선의 사행은 주로 해로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이전의 수도였던 남경으로 오고 갈 때에는 조난 등의 사고만 제외한다면 육로보다 편리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명의 북경 천도가 시행되고 난 다음부터는 요동 지역을 통해서 이동하는 육로가 기본 사행로가 되었다.
조선의 사행단은 요양(遼陽)으로부터 안산(鞍山)-해주(海州)-우가장(牛家莊)-사령(沙嶺)-고평(高平)-반산(盤山)-광녕(廣寧)-여양(閭陽)-십삼산(十三山)-소릉하(小凌河)-행산(杏山)-연산(連山)-조장(曹莊)-동관(東關)-사하(沙河)-고령(高嶺)을 거쳐 산해관에 이르렀다. 산해관부터는 심하역(深河驛)-무녕현(撫寧縣)-영평부(永平府)-칠가령역(七家領驛)-풍윤역(豊潤驛)-옥전현(玉田縣)-소주(蘇州)-삼하현(三河縣)-통주(通州)를 지나서 북경에 도착하였다.
조선의 사행단은 영평부를 지나면서 그곳에 있던 관리들을 통하여 주변 지역의 정세 등을 파악하기도 하였다. 당시 조선의 주문사(奏聞使)매우(梅佑)가 영평부에서 알고자 했던 정보들은 모두 여진 세력과 몽골 세력의 동정에 관한 것이었다(『세조실록』 8년 2월 11일). 조선과 명에서는 여진과 몽골 세력의 동향을 항상 주목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행 과정에서 관련된 정보를 교환하고자 노력하였다.(인용 위키백과)
明一通志(명일통지)에云朝鮮城(조선성)은在永平府境內(재영평부경내)하야相傳箕子受封之地(상전기자수봉지지)러니後魏置縣屬北平郡(후위치현속북평군)이라하고又盛京地(우 성경지)에云遼西之廣寧縣(운요서지광녕현)은在周(재주)에爲朝鮮界(위조선계)오遼東之海城縣蓋平縣及金州 (요동지해성현개평현급금주)난皆箕子朝鮮地(개기자조선지)라하니自義州渡鴨江(자의주도압강)하야西至鳳凰城(서지봉황성)이 百三十里(130리)-------自鴨綠河(자압록하)로至永平(지영평)이凡一千六百餘里(범1600여리)라以此考之(이차고지)컨댄今
첫댓글 자료 봅니다
자료 감사합니다~!
강계(江界)에 인삼.. 제가 봤던 자료와 일치하는군요!!
좋은 자료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