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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수술과 수학
9·9계산 법을 가볍게 보지 마라
‘수술’과 ‘수학’은 한 글자 차이가 있을 뿐인데 아무튼 연관이 있겠지요? 확실히, 고대에서 수술과 수학의 관계는 분리될 수 없이 밀접하다. 어떤 학자는 심지어 하나의 지식 체계의 두 개 등급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계산은 ‘초등수학’에 속한다. 그렇지만 일상 일의 좋고 나쁨을 예측하는 수술은 ‘고등수학’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예측은 매우 형상적이고 또 비교적 역사의 실정에 부합된다.
아래에 구체적으로 이 두 가지 ‘수술’과 ‘수학’의 관계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본다.
1. 점치는 것과 계산의 연원
고대에서 수학은 셈하는 법을 가리킨다. 가장 일찍 사용한 계산 도구는 ‘주책籌策’이라고 한다. 보통 ‘산가지籌’ 혹은 ‘나무 막대기策’라고 약칭하여 사용한다. 사실은 일부 작은 나무 막대기 혹은 풀막대기나 대나무 마디도 될 수 있다. 그것들을 땅 혹은 탁자 위에 배열하면 일정한 규칙에 따라 운산을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지적할 것은 주책이 고대에서 셈하는 법의 운산 도구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 점서占筮에 쓰이는 시초蓍草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고대 산술과 점서는 최초에 대개 동일한 운산 공구를 사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점서에 쓰이는 시초가 옛날 사람들이 보기에는 신성성이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짐작되는 바 산술도 처음부터 신비주의 색채를 띤 각별한 활동이었을 것이다. 사실 어찌 운산 도구에 그치겠는가? 옛날 사람들은 잘 꾸민 셈 산가지에 사용했던 산가지 자루도 신성이 있다고 보았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진시황(BC 259~ BC 210)이 산가지 자루 하나를 동쪽 바다에 떨어뜨렸는데 그 결과 이 산가지에서 뜻밖에도 고기가 걸려 나왔다고 한다.
일상 언어의 사용에서 보면, 옛날 사람들은 수학 셈하는 규칙 ‧ 방법 따위를 일종의 ‘술’로 보고 ‘셈하는 법’이라고 불렀다. 또 점서 ‧ 산가지로 운명 보는 법2) 따위 수술 활동의 과정을 일종의 계산으로 보고 ‘점치는 셈’이라 불렀다. 또 셈하는 법과 점서의 원초 관련을 알아보게 된다. 혹은 셈하는 법이 설사 점서 활동 가운데 변화해 온 것이라 해도 알 수는 없다.
《한서》<율력서> 중에는 셈하는 산가지의 양식이 보인다.
그 산법은 대나무를 사용했다. 직경이 1분, 길이가 6촌, 271매가 6모를 이루어 1악이 된다.3)
산주는 참대로 만들었는데, 직경이 1분, 길이가 6촌, 271매의 산주가 하나의 여섯 모서리의 기둥 모양을 이루며 일악一握이라고 한다.
표면에서 보면, 이 산주의 구성이 기이한 것이 없는 듯 보이지만, 한대의 문화 분위기 가운데 하나하나의 규정은 의외로 모두 수술 관념의 해설로 되어 있다.《한서》가운데 주석을 본다.
직경은 건율인 황종의 처음을 상징하고, 길이는 곤여인 임종의 길이를 상징한다. 그 수는 역으로써 대연지수인 50으로, 그것은 49를 사용하고 주 나라류인 육허의 현상으로 사용한다.4)
그 뜻인즉 산주 하나의 직경을 1분으로 취한 것은 12율 가운데 6율의 우두머리인 황종의 구분을 상징하고, 길이가 6촌인 것은 6여의 우두머리인 임종의 대롱 길이를 상징하며, 1 악握의 수 271은 즉 《주역》서법 가운데 대연지수에 쓰는 수 49, 하늘의 책수策數 216과 효수 6의 합에서 온 것이다. 즉
49+216+6=271
한 나라(BC 206 ~ AD 5) 서악徐岳의《수술기유數術記遺》 및 《수서》<율역지> 가운데에도 흡사한 기록이 있다. 산주의 길이의 크기와 수술 계통 가운데의 신비한 숫자와 억지로 비교했는데, 이것은 산주에서 산술 신화에 이르기까지《한서》<율력지>의 방법과 비슷하게 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고대의 또 다른 하나의 독특한 셈본 도구는 산반算盤이다.5) 그것의 최초 기록도 서악의《수술기유》에 나타났다. 서악은 책의 ‘주산’ 아래에 ‘4 계절을 당겨 차고 삼재를 날줄과 씨줄로 삼는다’라고 썼다. 주산하는 법은 네 계절을 유지 또는 관통하고 하늘 ‧ 땅 ‧ 사람 3재를 고정한 것이다. 이는 마치 직물의 날줄과 씨줄 모양과 비슷하다.
《수술기유》의 주석자 견란甄鸞은 이 단락 아래에 산반의 작법을 썼다. 즉 하나의 나무판을 세 개의 가로 향한 칸막이로 나누었다. 윗 바탕과 아래 바탕의 칸막이는 움직이는 산주를 거는 데에 사용한다. 중간의 칸막이는 위치를 고정하는 데에 사용했다. 모든 위치에는 다섯 개 구슬이 있고 고정된 판의 상면에는 하나의 구슬을, 더불어 하면에는 네 개의 구슬을 했는데 색이 같지 않았다. 상면의 구슬은 다섯 개 단위에 해당하고 아래의 네 개 구슬은 하나하나의 구슬이 한 개 단위에 해당했다. 그것은 네 개의 구슬이 위와 아래로 이동하기 때문에 네 계절을 유지 또는 관통하는 것이 된다. 또 세 개 칸막이가 각 구슬로 하여금 이동하게 하기 때문에 마치 직물의 경위선처럼 3재를 고정한 것으로 보았다.
견란의 주석으로 보면, 이런 산반의 구조는 후세의 산반과 대동소이하다. 다만 네 계절 ‧ 삼재 따위 관념과 억지로 비교하기 때문에 보다 신비화의 경향을 띠고 있다.
산주 ‧ 산반과 흡사하게 고대의 양척量尺 ‧ 양기量器 따위의 공구 구조도 여러 가지 신비한 해설이 있지만 지면의 제한으로 여기에서 일일이 소개하지 않겠다.
2. 구구계산 법
고대의 신비한 숫자 관념은 역사가 유구하다. 숫자의 운산도 이 신비한 숫자 관념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사실상 중국 고대 숫자의 계산 방법과 계산 제도에는 확실히 많은 신비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이런 요소 중에서 우리는 수학과 수술의 밀접한 관계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위진(BC 403~BC 207) 시대의 대수학가 유미劉微는《구장산술九章算術》6)<주서注序>에서 이렇게 썼다.
옛날에 포희씨가 있었다. 비로소 팔괘를 그려 신의 덕과 통하고 만물의 정과 비견하게 됨으로써 99의 술을 만들어 육효의 변과 합해지게 되었다.7)
이는 이전의 성인인 포희씨包犧氏8)가 8괘를 창조하여 모든 일과 모든 물건의 신묘함으로써 예측할 수 없는 성질을 통달하는 데에 사용했다. 모든 일과 모든 물건의 풍부하고 다채로운 정황을 개괄하여 유추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구구계산 법을 창작하여 육효의 변화와 서로 부합되게 하였다.
여기에서의 ‘구구계산 법’은 두 가지의 해석이 있다. 첫째가 옛날 사람들이 수학 활동에 대한 총칭이고, 둘째가 오늘날 말하는 승법구결乘法口訣에 해당된다. 어찌됐든 관계없이 유미는 확실히 수학 방법의 공로를 옛날 성인 선왕의 창조로 돌리고, 또《주역》가운데 6효 ‧ 8괘 따위의 내용과 연결시켰다.
한대 이후로 많은 산가算家들이 계산하는 방법과《주역》및 수술 활동 가운데의 각종 관념을 상호 연결하는 데에 열중하였다. 예를 들면, 서악의《수술기유》는 고대 유명한 ‘산경십서山經十書’9)의 하나이다. 여기에 14가지 운산 방법이 열거되어 있다. 적산積山 ‧ 태일太一 ‧ 양의兩儀 ‧ 삼재三才 ‧ 오행五行 ‧ 팔괘八卦 ‧ 구궁九宫 ‧ 운산運算 ‧ 요지了知 ‧ 성수成數 ‧ 파두把頭 ‧ 귀산龜算 ‧ 주산珠算 ‧ 계산計算 따위가 포함된다. 이런 항목에서만 보면, 그것들은 수술화數術化의 특징을 선명히 알 수 있다.
이 가운데에서 몇 가지 계산 방법의 함의를 알아보아도 무방하리라.
양의兩儀.
‘양의산兩儀算, 천기하통天氣下通, 지품사시地禀四時.’ 그 기본 방법은 두 가지의 산주算珠로 한 가지는 위에 있고 푸른색으로 하며 위에서 아래로 위를 계산함으로써 ‘천기하통天氣下通’이라 불렀다. 다른 한 가지는 아래에 있고 노란색으로 하며 아래에서부터 우로 위를 계산, 4각四刻으로 나눔으로써 ‘지품사시地禀四時’라고 불렀던 것이다.
삼재三才.
‘삼재산三才算, 천지화동天地和同, 수물변통随物變通.’ 그 기본방법은 하나의 나무 관에 세 가닥의 가로선을 긋고 위의 것은 하늘을 상징하고, 가운데 것은 땅을 상징하며, 아래에 것은 사람을 상징했다. 세 가자의 산주가 있었다. 청주青珠는 하늘을 상징하고, 황주黄珠는 땅을 상징하며 백주白珠는 사람을 상징했다. 삼주三珠는 삼도三道에서 운행했다. 만약 천주天珠가 천도天道 위에 있으면 9九로 기록하고, 지도地道 위에 있으면 6六으로 기록하며, 인도人道 위에 있으면 3三으로 기록했다. 만약 지주地珠가 천도 위에 있으면 8八로 기록하고, 지도 위에 있으면 5五로 기록하며, 인도 위에 있으면 2二로 기록했다. 만약 인주人珠가 천도 위에 있으면 7七로 기록하고 지도 위에 있으면 4四로 기록하며 인도 위에 있으면 1一로 기록했다. 이것이 바로 하늘天 ‧ 땅地 ‧ 사람人 삼재가 물건에 따라 변통하는 의미를 상징했던 것이다.
오행五行.
‘오행산五行算, 이생겸생以生兼生, 생변무궁生變無窮’ 그 기본 방법은 5색五色을 5행五行에 대응하여 5색산법五色算法을 세운 것이다. 즉 수水는 현색玄色으로 대응하고 생수生數는 1一로 하며, 화火는 적색赤色으로 대응하고 생수를 2二로 하며, 목木은 청색青色으로 대응하고 생수를 3三으로 하며, 금金은 백색白色으로 대응하고 생수는 4四로 하며, 토土는 황색黄色으로 대응하고 생수는 5五로 하였다. 이런 생수를 상호 결합하면 어떤 숫자이든지 표시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숫자 5691은 황산黄算으로 5000五千을 현산玄算으로 600六百을 표시했다. 백산白算과 황산黄算을 배합하여 90九十으로 하고 현산玄算을 1一로 하는 따위였다.
팔괘八卦.
‘팔괘산八卦算, 침자팔방针刺八方, 위결종천位阕從天.’ 그 기본 방법은 지침指針 하나를 한 면에 사방사우四方四隅가 새겨진 나반羅盤 위에 고정시키고 팔괘의 방향과 일치하게 했다. 다음 침봉针缝의 지시대로 산위算位를 확정했다. 즉 정남 방향의 이괘离卦를 1一로 하고, 서남의 건괘坤卦를 2二로, 정서의 태괘兑卦를 3三으로, 서북의 건괘乾卦를 4四로, 정북의 감괘坎卦를 5五로, 동부의 간괘艮卦를 6六으로, 정동의 진괘震卦를 7七로, 동남의 손괘巽卦를 8八로 하는 따위였다. 실제상 여기에서 후천팔괘后天八卦 방위와 8수八数가 상호 대응되었다.
구궁九宫.
‘구궁산九宫算, 오행참수五行參數, 유여순환猶如循環.’ 9궁은 본래 수학 가운데 종횡도縱橫圖였다. 이런 계산법도 5행설五行說을 기초로 했다. 즉 5행五行 ‧ 5방五方 ‧ 5색五色과 5수五數 대응에 의거하여 정위定位를 진행했다. 현주玄珠는 10위十位로 하고, 적주赤珠는 100위百位로 하며, 청주青珠는 1,000위千位로 하고, 백주白珠는 10,000위萬位로 하고 황주黄珠는 100,000千萬位로 했다. 적선계赤線系 황주黄珠는 1,000,000위百萬位로 하고, 청선계青線系 황주黄珠는 10,000,000위千萬位로 하며 백선계白線系 황주黄珠는 100,000,000위萬萬位로 하는 따위였다.
고대 계산 제도도 형형색색이어서 눈부신 것이었다. 그 가운데 비교적 전형적인 것은 2진제 ‧ 3진제 ‧ 5진제 ‧ 6진제 ‧ 10진제 ‧ 12진제 ‧ 60진제 따위였다. 그것들의 문화 배경도 매우 복잡했으나 대다수는 수술 관념과 관련된다. 예를 들면, 2진제는《주역》가운데 중요한 음양 사상에서 온 것이다. 3진제는 서한(BC 206~AD 5) 양웅楊雄(BC 53~AD 18)10)《태현경太玄經》과 관련되고, 5진제와 5행학설도 밀접히 연관되고, 6진제와《주역》의 6효성괘六爻成卦의 설은 관계가 있다. 10진제는 일반적으로 옛날 사람들이 10지계수十指計數의 산물로 생각했다. 그러나 동중서董仲舒(BC 197~BC 104)은 하늘 ‧ 땅 ‧ 사람 ‧ 해 ‧ 달 ‧ 나무 ‧ 불 ‧ 흙 ‧ 쇠 ‧ 물의 열 가지를 ‘하늘의 수’에서 온 것이라 생각했다. 12진제와 세성의 운행 주기는 관련되고 점성학의 의미를 갖고 있다. 60진제는 10천간과 12지지의 배열에 의해 산생되었다. 즉 60갑자 따위이다. 여기에도 신격화된 산술의 의미가 있음이 분명하다.
3. 점치며 계산하는 수학
이상으로 계산 도구 ‧ 계산 방법과 계산 제도 따위의 몇 개 방법으로 고대수학과 수술이 뒤엉켜 복잡한 관계라는 사실을 소개한 셈이다. 어떤 사람은 깊이 소개를 하지 못했다고 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형식에 치우치고 내용에는 깊이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그럼, 여기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어도 무방할 것이다. 정규적인 고대 수학의 저작 가운데서도 수술의 내용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유명한《손자산경孫子山經》그 가운데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29세의 임산부가 있었다. 산월이 9월인지 알기 어렵고 무엇을 낳을 지는 모르겠다. 대답하기를 ‘아들’이라 했다. 49로 점을 치면, 산월을 알기는 더욱 어렵고, 남녀이 반반이므로 부담이 적다. 그래서 하늘天은 1로 제하고, 땅地는 2로 제하고, 사람은 3으로 제하고, 4 계절은 4로 제하고, 오행은 5로 제하고, 육율은 6으로 제하고, 칠성은 7로 제하고, 팔풍은 8로 제하고, 구주는 9로 제하니 끝이 없다. 기수는 즉 남자이고 짝수는 즉 여자이다.11)
이 부분은 임신부가 어떻게 아들 혹은 딸을 낳는가 하는 방법을 추산한 것이다. 잠시 그 구체적 방법이 어떤가를 관계하지 않고 오늘의 입장에서 본다면 황당하여 이치에 맞지 않는 사실인 듯 할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산경십서山經十書》에 나타난 것이다(《손자산경》은 고대 《산경십서》의 하나이다.). 이런 현상 자체가 충분히 옛날과 현대 수학 관념의 차이를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런 차이는 수술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사실 이런 현상의 출현은 신기할 것이 없다. 그것은《산경십서》의 편찬자인 이순풍李淳風12)이 바로 산술算術과 산명算命을 겸비한 기인奇人이기 때문이다. 이순풍은 산술을 통달하였기에 편찬을 했고, 또 고대의 《산경십서》를 주석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사서에서는 그를 ‘매점후길흉每占侯吉凶, 합약부계合若符契.’라고 칭찬하였다. 그는 유명한 점복대사占卜大師였던 것이다.
당 나라 전기에 무측천武則天(624~705)13)이 찬위한 일이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무측천이 대궐에 불려갔을 때 이순풍은 다시 재위한 당태종唐太宗(599~649)에게 이렇게 상소하였다. ‘후궁 가운데 천자의 기색氣色이 나타났습니다.’ 당태종이 듣자 두렵게 생각하고, 후궁들을 불러 집합시켰다. 백 명의 후궁을 한 대열로 세운 다음 이순풍에게 어느 줄에 천자기天子氣가 있는가고 물었다. 이순풍은 ‘어느 대열에 있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당태종은 또 이 대열을 둘로 나누고 이순풍에게 물었다. 이순풍은 또 ‘어느 대열에 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당태종은 계속해서 대열을 나누었다. 그러나 이순풍을 ‘또 어느 대열에 있기 때문에 황제께서 천천히 분별하시오.’라고 하였다. 당태종은 어느 사람이 천자기가 있는지 알아볼 수 없자, 그 대열의 사람들을 모조리 살해하려 하였다. 그러자 이순풍이 제지하면서 ‘이렇게 하면 아니 됩니다. 황제께서 만약 그 여자를 죽인다면, 그녀는 남자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럼 그때에 가서 종족을 멸하게 됩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당태종은 재삼 가늠하더니, 이순풍의 권유를 듣고 더 깊이 이 일을 조사하지 않았다.
다른 한 이야기는 더욱 신기한 색채를 띠고 있다. 언제 한 번 이순풍이 당태종에게 상소했다. ‘북두칠성이 사람의 형태로 변하여, 내일 서쪽 시장에서 음주할 것이다. 그때 가서 황제께서 그들을 모셔서 방문하게 하시오.’ 당태종은 이순풍의 말을 믿고, 다음날 사절을 파견하여 거기에서 기다리게 하였다. 얼마 안지나 멀리에서 일곱 분의 승려가 걸어왔다. 그들은 금광문金光門에서 서쪽 시장의 술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술 한 항아리를 가져오라고 했다. 술을 다 마시고 난 다음 또 한 항아리를 요구했다. 이때 당태종의 사절이 다가왔다. 사절은 그들에게 ‘황제께서 궁궐로 모셔 오도록 하셨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중들이 서로 마주보며 웃더니, ‘이순풍이 소문을 낸 것이 틀림없다.’고 하면서 사절들에게 ‘우리는 이 술을 다 마신 후에 너희들이랑 입궁하겠다.’고 하였다. 그들이 술을 다 마신 후 사절들이 앞장섰다. 그런데 그들이 다시 머리를 돌렸을 때 승려들은 모두 사라지고, 다만 그들이 앉았던 자리에 이천 냥만 보였다.
이순풍과 같은 이런 보기는 고대에는 매우 많았다. 수학은 고대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추상적이고 무미건조하지 않았다. 그것은 많은 풍부하고 다채로운 문화 관념과 행위가 더불어 결합된 산물이었다. 특히 수술 관념과 행위와 고대 수학은 물과 젖처럼 서로 잘 융합하여 구분하기 어렵다. 설령 우리가 이런 문화배경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고대 수학에 대한 인식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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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공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