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又山) 손경석의 『韓國登山史』 읽어보기 26
임무(林茂)가 말하는 암벽등반이란③
조장빈·이강승·류백현(근대등반사팀)
임무가 말하는 암벽등반은 계속해서 등반기술 특히, 클라이머에게 자일의 의미를 계속 얘기하고 있다. 등산사 관련해서는 서울근교 암벽등반 대상지로 “우선 도봉산의 만장봉, 선인봉, 자운봉, 보현봉등 하루 종일 즐기기에는 최적의 장소이다.” 정도이며, 임무가 게이오 대학을 다녀 “게이오 대학 선배인 오오시마(大島)씨가 이전에 「암벽등산의 미래에 부여한다」라고 하는 작문에서”로 적고 있다. 오오시마는 일본의 산악운동 초기에 많은 영향을 미친 선구자다. 임무가 오오시마와 비슷한 시기에 게이오 대학을 다녔을 것으로 추정되나 게이오대 산악부원이었는지 여부나 일본 산의 등반 여부는 기록하고 있지 않다.
영국 등반가인 헬포드와 샘슨이 “최후의 한마디 (더 베스트 넘버 이즈 원 – 최고는 혼자서 등산하는 것) 라고 말했다. “암벽등산이 아니더라도, 즉, 등산에 가장 적당한 베스트 수는 얼마인가 하면, 그것은 1인이다. 조를 짠다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 1사람이 오르는 것이 등산이다.” 라고 말했다.“라고 하며 게오르그 윙클러를 예로 들고 있다. 하지만 결국 단독등반 보다는 향후 자일로 이어진 파트너와의 등반이 계속될 것이라고 하며 글을 끝맺었다.
“즉, 전에 이야기한 심리학상으로부터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 것은 걱정이 없다는 기분이고, 또한 아래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하는 안도 하에 오를 수 없는 곳까지 올라가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앞에 이야기한 것처럼 자기암시이고, 그런 것은 참된 오르는 방법이 아니라, 참된 오르기이란, 단지 혼자서 올라가는 것부터는 아닐까.
그런 식으로 해서 자일로써 서로 연결하여 오른다. 공동동작, 상호부조라고 하는 것은, 향후의 테크닉처럼 생각되지만, 또한 한편으로 생각하면, 정말로 혼자서 오르는 것이 진짜 오르는 방법이라는 것도 생각된다. 실제로 약 30년전정도 전에 윙클러라고하는 뮌헨의 20살도 되지 않은 소년이 위험하고 험하다고 회자되는 치날로트호른을 단독으로 훌륭하게 올랐다는 예가 있다.
이런 듯이 여러가지 자일의 역사라는 것도 있지만, 결국은 어떻게 될 건가 하면, 역시 자일로 서로 연결하여, 공동동작과 상호부조라고하는 정신으로 한다고 하는 것은 향후의 등산, 특히 곤란한 암벽등산에 있어서는 영구히 거행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근대등반사팀에서는 임무에 대하여, 1929~1930년의 동계 금강산 비로봉 첫 원정 등반기와 이번의 1930년 기록 그리고 1933년 1월의 금강산 비로봉 횡단 스키등반 기사 등을 발굴하여 소개했다. 임무가 “주변인”으로 내몰린 상황을 불식시키고자 한 바가 있었지만 답 없는 메아리인지 모르겠다.
일제강점기 산악회에 대해 어줍잖은 글을 써놓고 반영 못한 이런저런 얘기도 더하여 보았는데, 찾아 놓고 읽어보자 못한 자료가 잔뜩 쌓였고 2021년 "인문산행" 준비도 해야 해서 등반사 얘기는 다음에 또.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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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그 빈클러(Georg Winkler, 1869~1888)는 뮌헨 출생의 산악인으로 1888년 8월, 높이의 바이스혼(Weisshorn, 4,505m)의 서벽 등반 도중 사고사까지 20세도 안되어 많은 초등반을 하였고 1887년 9월 17일, UIAA 난이도 IV+로 평가되는 돌로미테 윙클러 타워의 크럭스를 넘어 첫 단독 등정하였다. 그는 귀도 라머(Eugen Guido Lammer, 1863~1945, 산악인)에게 보낸 편지에, 높은 산의 위험과 웅장함은 등반을 유혹하는데, 등반의 곤란을 극복하는 것은 큰 만족을 준다고 적고 있으며, 1906년 그의 일기를 에리히 쾨니히(Erich König)가 『엠포르(Empor)』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다.-출처:위키백과
첫댓글 윙클러의 출생년도가 이상~~
@조장빈 오늘 아점먹고 가려는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