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실이와 함께하는 흥겨운 판소리 여행
우리 전통 문화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즐기기는 쉽지 않다. 어른들도 즐기지 못하는 판소리를 아이들이라고 즐거워할까? 기쁨을 함께하고 슬픔을 달래주며 우리 민족의 생활 속에서 살아 숨쉬던 판소리는 자연스레 어울리며 함께 즐겨야 그 참맛을 알 수 있다. 그 어울림을 위한 즐거운 첫걸음을 내딛게 해 줄 책이 바로 『판소리와 놀자!』이다. ‘놀자’라는 말은 어찌 보면 상투적이지만 이 말처럼 이 책의 재미와 흥겨움을 표현할 수 있는 말도 드물다.
이 책은 ‘윤실이’라는 아이가 우연한 기회에 판소리를 배우면서 우리 소리와 문화의 참맛을 알아 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윤실이는 꾸며 낸 인물이지만 판소리를 배우는 과정은 실제 있었던 일이다. 바로 동편 판소리 ‘흥보가’ 전수자인 전인삼 선생님과 제자들이 함께한 소리 여행을 모델로 하여 동화로 구성한 것이다.
성격은 제각각이지만 소리를 좋아하는 마음은 하나
윤실이는 엄마 약국의 단골손님인 ‘동편 판소리 연수원’ 선생님을 통해 판소리를 만나게 된다. ‘흥보가’ 완창 공연에서 소리 하나로 사람을 웃겼다 울렸다 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반해 ‘동편 판소리 연수원’에서 소리를 배우기 시작하고, 소리의 매력에 빠져 여름방학 동안 지리산 자락에서 집중 수련을 하는 ‘산 공부’를 한다. 윤실이가 남다른 아이여서 판소리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다. 목숨을 걸고 소리를 하라는 선생님의 말에 “내 목숨이 두 개라면 하나는 실컷 놀게 하고 하나는 소리하는 데 걸겠다.”는 평범한 아이일 뿐이다. 평소에는 아이들과 농담도 주고받으며 다정다감하다가도 소리를 가르칠 때만은 호랑이보다 무서운 선생님을 비롯하여 윤실이를 늘 챙겨주는 민영이, 산 공부가 힘들어 도망갔다 온 예랑이, 랩이면 랩, 팝송이면 팝송 모르는 음악이 없는 봉근이 등 함께 소리 공부를 하는 인물들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구수한 사투리로 소개하는 명창들의 일화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는 윤실이 선생님이 구수한 사투리로 소개하는 권삼득, 송흥록, 송만갑, 김정문 등 판소리 명창들의 일화이다. 무덤에서 몇날며칠을 연습하다가 귀신에게 울음소리를 직접 배워 ‘귀곡성’을 완성했다는 송흥록 명창의 일화, 천한 것들이나 하는 소리를 한다고 집안 어른들에게 죽임을 당할 뻔하다 절절한 춘향가 한 대목으로 목숨을 건진 권삼득 명창의 일화, 집안의 소리 법통을 지키기 위해 아들을 죽이려고까지 한 송우룡 명창의 일화, 자신이 최고의 소리꾼이라는 자만에 빠져 있다가 세상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까지 헤아리는 진정한 소리꾼으로 거듭난 송만갑 명창의 일화까지 명창들의 드라마틱한 삶에서 판소리의 또 다른 매력을 만날 수 있다.
또한 남원 비전리 송흥록 명창의 생가, 송만갑 명창이 살던 봉북리에 있는 대숲 등 책을 읽다 보면 직접 기행을 가고 싶을 정도로 남원을 비롯하여 지리산과 섬진강 일대가 아름답게 그려져 우리 땅과 유산에 대한 소중함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다.
판소리의 기본 개념부터 그 참맛까지
이 책은 또한 판소리가 단지 보존해야 할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 준다. 심청가를 배우면서 병원에 입원한 엄마를 생각하는 윤실이나 ‘흥보가’의 박타는 대목에서 우리 소리가 랩 못지않은 리듬감과 생명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봉근이의 모습에서 옛 조상들이 소리로 웃고 울었던 것처럼 지금 우리 또한 그 정서를 느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백발가를 통해 할머니와 윤실이가 서로 소통하고, 양로원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위한 소리 공연을 통해 어렵게 사는 이웃을 돌아보고, 어렵고 힘든 산 공부에서 주변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는 모습에서 “소리는 정치나 경제처럼 현실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하지만 우리 미래를 바꾸는 것”이라는 말의 참뜻을 알 수 있다.
창․아니리․추임새․발림 등 판소리의 기본 요소 및 진양조장단․중모리․휘모리장단 등 판소리의 장단, 춘향가․흥보가․수궁가 등 판소리 다섯 마당 같은 기본적인 개념뿐 아니라 동편제와 서편제의 차이, 사십여 가지로 나뉘는 사람의 목소리에 대한 설명 등이 본문에 자연스레 녹아 있어서 교과서가 따로 필요 없다. 또한 본문에 소개된 판소리 대목들을 구수한 사투리로 설명해 놓은 ‘선생님이 들려주는 판소리 풀이’를 읽고 나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새삼 다가올 것이다.
우리 소리처럼 흥겹고 정감 있는 책
작가는 어릴 때 라디오에서 우연히 판소리 명창 이야기를 들은 뒤부터 판소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때 받은 감동을 사람들과 꼭 나누고 싶었다고 한다. 그림 작가는 글의 배경이 된 지역들에 직접 답사를 다녀오기도 했으며 그 흥취를 우리 소리의 특징처럼 흥겨우면서도 정감 있는 그림으로 담아 냈다. 맛깔스러운 솜씨로 풀어 낸 글의 느낌을 살리면서 판소리는 옛날 것이라는 편견을 버릴 수 있게 책을 꾸몄다. 각 장마다 윤실이가 쓴 일기 형식의 글과 작은 컷 그림들을 넣어 어린이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소리로 모두를 아우르고, 하나 되는 세상을 위하여 얼씨구 절씨구 소리하면서 한바탕 놀아 보자”는 작가의 소망처럼 이 책을 통해 그 신명을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함께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