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편지
가을 물무산은 해발 250미터쯤 되는 영광의 야트막한 산이네.
외진 곳마다 채우는 중늙은이 걷기 좋게 길이 잘 마련되어 있다네.
주차장에서 임도를 따라 오르다가 쉼터에서 가져온 커피 한 잔으로 행로를 부렸는데
거기에서까지 따라와 입으로 울력하는 여자들 등쌀에 내려오는 길,
부러 만든 길이 겨울 북태평양 명태의 곤이(창사구) 같네.
산벚나무 잎이 그야말로 전라도식으로 지는 평탄한 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한 백여 미터
황토를 돋워 깔고 물을 뿌린 ‘질퍽질퍽 황톳길’이 나오네.
돌중 참회하듯 신발을 벗어 들고 그 ‘찌럭찌럭’한 길을 걷다가 발자국을 내 놓고 사진을 찍었네.
‘족적(足跡)’
분명 내가 밟아 낸 흔적이니 그늘새김일 것인데 부조(浮彫)처럼 보이네.
이른 아침에 내 족적을 들어다 보면 또 음각(陰刻)으로 보인다네.
내 눈에만 그런가?
삶이 의도하지 않게 그 족적을 만들어도 대상의 시간과 생각이 달라지면
그늘새김이 돋을새김으로 보이기도 하는가?
한 번 보아주시게나.
가을이네.
요즘 ‘무엇을 한다’는 내게 남은 해야 할 무엇을 ‘없애는 일’이네.
내 족적,
알아보지 못하는 눈 없는 발에 밟혀 지워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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