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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정형준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일본 정부가 핵 폐수 해양 방류를 시작했다. 핵 폐수 방류 문제는 최초 고려 중이라는 보도가 나온 2019년 이후 일본과 우리나라는 물론 태평양 국가들과 전 세계의 관심 대상이었다. 지금까지 누구도 핵연료 혹은 핵폐기물과 접촉한 오염수를 해양에 방류하겠다고 밝힌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안전하다고 포장된 핵발전소도 다량의 방사성물질(최근 논란이 되는 삼중수소 포함)을 배출하지만, 이는 직접적으로 핵연료를 냉각하거나 세척한 오염수가 아니고 간접적으로 냉각할 때 발생하므로 이론상으로는 ‘안전’한 수준이라는 포장이 덧붙여져 가능했다. 최근 일본 정부는 핵 폐수 방류를 위해 중국과 한국의 반대를 무마하고자 ‘안전하다’는 중국과 한국의 핵발전소조차 삼중수소를 다수 방출한다는 문제점을 스스로 밝히고 말았다. 이는 핵발전소가 안전하다는 그간의 주장에 또 다른 의문을 불러일으켜, 핵발전 계의 오랜 안전 신화를 위협할 자충수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밀봉되었다는 핵발전소 냉각수에서조차 나온다는 삼중수소라면, 과연 핵연료봉, 그것도 어디까지 타들어 갔는지도 확인이 안 되는 곳에 직접 닿았던 폐수의 방사성물질은 어느 정도일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논리가 도출된다. 이처럼 지금 핵 폐수 방류를 합리화하려는 논지조차도 핵발전의 심각한 문제점을 폭로하고, 폐수 방류는 더 끔찍한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위험성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앞으로 핵발전소 주변의 상대적으로 높은 암 발생률의 근거가 삼중수소 배출 문제와 결합해 대중적으로 반대 여론이 늘어나는 문제를 핵발전 계는 감수해야 한다.
이런 모순 상황에서 지금까지 핵 폐수 방류로 시작된 쟁점은 우선 수백 종으로 추산되는 방사성물질을 인류가 공유하는 해양에 투기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 문제였다. 사실 윤리적으로 이는 용인될 가능성이 없다. 그래서 다음으로 기술과학적 합리화 선전이 시작됐다. 소위 다핵종제거설비(ALPS - Advanced Liquid Processing System, 번역하면 ‘발전된 액체 처리 시스템’)라 불리는 장비의 효용성, 여타 저장 방법과 처리 방법과의 비교 형평성 문제 등이다. 이런 기술과학적 논리를 뒷받침한 것이 IAEA(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 정확한 명칭은 ‘국제 핵에너지 기관’)다. 이젠 언론에도 많이 나왔지만, IAEA는 핵 안전을 위한 단체나 기구가 아니고 핵산업과 핵 과학 발전을 위한 단체다. 감시기구가 아니라 진흥기관에 과학기술적 평가를 맡긴 셈인데, 이 기관의 공신력에 대해서 한국도 핵발전 국가이다 보니 제대로 된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핵발전 국가인 한국, 중국의 핵발전소 오염수와의 삼중수소 비교, 기준치 미만은 안전하다는 거짓 등으로 물타기가 계속되었다. 그 결과 본질적 문제인 핵 폐수 해양 방류의 윤리적 문제들은 여러 가지로 조각이 났고, 핵발전 자체에 대한 비판도 주변으로 밀려났다. 추가로 문제가 될 수 있던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 문제, 그리고 폐로(사고로 인한 것이던 아니던)의 처리 문제도 아니고, 기술적 문제와 후쿠시마 핵사고에 국한된 사안으로 해양 방류 문제가 협소화된 것이다.
안전한 핵사용 신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국제 원자력 사고 등급 최고인 7등급 사고다. 역사상 7등급 사고는 체르노빌 발전소 사고와 후쿠시마 사고뿐이다. 현재 체르노빌 경우는 콘크리트 밀봉을 하고 아직도 30-50킬로미터 주변 영구 제한 지역이 존재하며, 부분적인 제한 지역이 많이 있다. 핵발전소 사고가 광범한 죽음의 땅을 만든 것이다. 후쿠시마 발전소의 경우도 이보단 작다고 하나 5-10킬로미터 반경의 영구 제한 구역과 다수의 귀환 제한 구역이 있다. 즉 핵발전소 사고 여파는 일시적 혹은 수년 이후에 회복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님을, 우리는 실제 경험하고 있다.
핵발전소는 사고가 아니더라도 사용 후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사고가 아닌 폐로도 일정 반경은 수천 년에서 수만 년 동안 쓸 수 없다. 핵발전 자체가 비가역적인 오염 문제를 내재한다. 핵이 안전하고 유용하다는 신화를 만들기 위해 뭔가 인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전력이라도 만드는 발전소를 창안하면서 이 문제는 시작됐다. 핵발전소의 시발점은 핵폭탄을 만드는 재료인 방사성물질을 조합하는 과정을 합리화하려는 데에서 상당 부분 기인한다.
인류는 방사성물질에서 방사능을 제거하는 기술(현재로는 자연적인 반감기를 통해 방사성붕괴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엄청난 방사선과 방사성물질을 만드는 기술은 달성했다. 바로 핵폭발 기술이다.
핵폭탄의 가공할 위력은 주요 패권국의 정치지도자와 군산복합체가 목매달 수밖에 없는 매력이 있었지만, 핵폭탄과 그 제조 과정은 통제 불가능한 방사성물질을 다량 축적하고 방출했다. 여기에 핵폭탄은 윤리적 문제도 만만치 않다. 민간인 대량 살상은 물론 방사능 오염 지역까지 만든다. 현재는 지구상 핵무기의 1퍼센트만 폭발해도 생물들이 절멸할 것으로 예상되는 수준이다. 그래서 아무런 포장 없이 지금도 핵폭탄을 만들기 위해 핵물질을 재처리하고 축적한다면 이는 정치적으로 심각한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런 문제를 희석하려고 제기한 것이 평화적인 핵사용, 환경친화적(?)인 에너지 공급 등의 미사여구로 포장한 핵발전이었다. 이를 통해 우라늄 채굴 및 가공, 재처리, 핵 원료(사실상 핵무기 원료) 보관이 윤리적 정당성을 확보했다. 핵발전소의 비가역적 오염 문제, 오염 물질의 배출 문제 등은 모두 배제되거나 축소되었다. 핵발전소로 저렴한 전력을 공급받는다는 단기적인 이점만 강조되었다.
하지만 이제 모두 알다시피, 장기적으로 핵폐기물 보관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 핵폐기장 건립, 비가역적 환경 오염 등등을 볼 때 비용적으로도 핵발전소는 이익이 없다. 따라서 핵발전소가 있다면 사실 핵무장을 고려한다고 봐야 한다. 굳이 경제적으로도 폐로 및 관리 비용에 천문학적 금액을 보존해야 하는 핵발전소를 수십 개씩 만들어 운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수십 년 뒤에 따라올 막대한 폐기물 관리 비용과 지역 오염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당장 싼 값에 엄청난 전기에너지를 만들 수 있고, 이는 단기 투기 세력에게는 이익일 수 있다. 하지만 미래의 비용을 현재에 극단적으로 당겨서 쓰는 부담을 경제적으로 이후에 감당해야 하는 여러 타 산업에서는 이런 부담을 달가워할 수 없다. 그래서 이젠 밝혀지고 입증된 경제성 때문에 핵무장을 하려는 전제가 없는 선진 국가들은 이미 탈핵(탈원전)의 방향성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핵무장에 대한 정치적 이해 관계가 아니고서는 핵발전 그것도 핵발전 장려(원전 장려)는 퇴행적이다.
핵무장과 한미일동맹
그래서 핵발전소를 더 짓거나 부흥시키려는 세력과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해 군사동맹을 공고히 하는 것은 연결되어 있다. 후쿠시마 핵 폐수 해양 방류는 일본 내 운영되는 핵 재처리시설, 그리고 일본이 삼십 년 전 시도했다 실패한 재처리 핵연료의 재사용발전소 문제 등을 일거에 해결할 방안이기도 하다. 며칠 만에 수백 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있는 일본이지만, 이런 재료들을 보관하고 계속 만들기 위해선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며, 해양의 방사성 수치와 생물학적 방사성 축적을 미세하게 올릴 문제가 상존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일거에 물타기 할 수 있는 게 사고로 망가진 후쿠시마 폐수의 해양 투기다. 후쿠시마 사고 처리 비용 절감은 덤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미국의 대중국 견제로 확대되고 있는 한미일 동맹 문제에서 일본이 추구하는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의 전환과도 결합한다. 미국은 일본의 핵 재처리를 허용하고, 동북아에서 긴장이 고조되면 일본의 핵무장을 승인할 여지를 뒀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한국의 윤석열 정부가 숟가락을 얹어야 한다는 조바심이 발동한 듯하다. 지난 수년간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나오는 핵무장론은 그 핑계를 북한의 핵무장에 두고 있으나, 실제는 핵무장을 포기하면 여러 지역의 패권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걱정이 더 큰 듯하다. 한국만 동북아에서 핵이 없는 나라가 된다는 상실감도 반영되었다. 이미 한국의 국방비는 세계적 수준이고, 단순히 동북아에서 지정학적으로 방어를 위한 수준이라고 보기에는 매우 고도화되어 있다. 최근 국방 기업의 해외 진출에서 보듯이 군사기술도 상당하고 군산복합적 산업도 부흥시키려 한다.
따라서 후쿠시마 핵 폐수 방류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용인과 협조는 단순히 일본에 대한 봐주기 문제가 아니다. 각자의 이해관계 그것도 핵무장, 군사적 패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 일부다. 이번 핵 폐수 방류가 한미일 회담 이후에 시점을 봐서 이뤄진 것도 여론만 고려한 것은 아니다.
끝으로 윤석열 정부의 원전 부흥 정책도 핵무장에 대한 나름의 전망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 한반도 평화가 아니라 군사적 경쟁을 통한 ‘힘의 균형’을 이야기하는 정권이라면 당연히 비대칭무기인 핵무장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그런 핵무장을 향한 강경 우파들의 욕망과 달리 우리 국민의 삶과 안녕은 심각한 위험 속에 놓인다. 장기적으로 심각한 낭비인 핵발전 부흥뿐 아니라, 국민 복지와 지속가능성에 투입될 자원 상당수는 살상 무기와 그 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과학기술에 투입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인민의 삶보다 핵무기가 중요하다고 비판한 내용은 우리 스스로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8월 26일 광화문-프레스센터 앞에서 후쿠시마 핵 오염수 해양 투기 중단 범국민대회'가 있었다. 한 시민이 든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 철회!'라고 쓰인 손팻말. (사진 출처 = 후쿠시마 핵 오염수 해양 투기 중단 범국민대회)
아직 끝은 아니다.
방류가 시작되었다고 끝은 아니다. 이 방류는 전문가들의 전망에 따르면 100년이 넘어갈 수도 있다고 한다. 핵발전소 오염의 끝을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앞서 이야기한 일본의 핵 재처리 시설과 사용 후 핵연료에서 발생한 핵발전소의 오염 물질 등도 해양 방류에 추가될 수 있다. 그 결과 지금 논의되는 방사성물질의 안전 수치 기준(현재의 기준점도 미국이 비키니섬 등에서 벌인 수차례 핵실험의 여파다)과 축적 정도는 시발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추가로 일정 농도 이상의 방사성물질이 해양에 농축되면 안전한 방사성 기준도 상향되고 핵폐기물의 해양 방류가 국제적으로 기정사실화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후쿠시마 핵 폐수 방류는 당장 중단시켜야 할 문제다.
과학기술적 숫자놀음이나 수십 년 안에 더 나은 정화 기술이 나올 것이라는 환상도 버려야 한다. 인류가 핵폭탄을 만들고 8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핵폭발 이후 만들어진 방사성물질과 방사능은 제어할 방법도, 제어할 논리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는 천재 물리학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이기도 했다. 안전장치 도입도 없이 핵폭발부터 개발하고 핵폭탄을 떨어뜨린 사건은 군사적 대량 학살이 정점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이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즉 안전한 핵발전도 없고 안전한 핵폐기물 방류도 없음에도, 이런 문제를 뭉개고 강행되는 이 오염수 방류의 본류는 동북아의 제국주의적 경쟁에서 시작된 핵무장과 핵 경쟁에 있다. 10여 년 전 후쿠시마 핵사고가 보여준 진실은 핵발전소를 하루빨리 중단해야 한다는 교훈과 핵무장에 대한 일본 우파들의 야욕이 보여주는 광기다. 이는 한국에서도 다르지 않다. 핵 폐수 방류, 핵발전, 핵무장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우리가 막아야 할 중대한 위협이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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