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기행] ② 부다나트, 그리고 룸비니 가는 길
불교가 시작된 곳, 룸비니 동산
“마야데비 부인이 잡았던 무우수 붓다께서 사바에 온 그곳 아닌가”
스멀스멀 어둠이 드리울 무렵 카트만두의 또 다른 사원 부다나트로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카트만두에서 가장 큰 사원이자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부다나트를 어둡기 전에 제대로 참배하기 위해서다. 카트만두 동쪽 약 8킬로미터 지점인 고카르나(Gokarna)와 상쿠(Sankhu)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부다나트 스투파는 높이 약 40미터의 세계 최대 규모의 스투파로 티베트의 고승 카샤 혹은 가섭불의 사리이거나 샤카무니 붓다의 뼈 사리가 모셔졌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이 사원은 카트만두 계곡의 모든 기운이 합해지는 곳, 곧 지형적으로 만다라의 중심부에 해당된다. 자드지모(Jadzimo)라는 천민노파가 지었다고 하는데, 그가 어느 날 붓다에게 공양할 것을 찾다가 왕으로부터 물소 한 마리의 고기로 덮을 수 있는 땅을 약속받고 고기를 얇게 썰어서 넓은 땅을 얻은 다음 그 자리에 사원을 세웠다고 한다. 현재 티베탄들에 의해 관리되고 운영되는데, 한 눈에 티베트 불교와 티베탄들의 저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진설명>붓다가 태어나는 광경을 묘사한 동판조각. 룸비니의 마야데비 사원에 모셔져 있는데, 1230년 나가왕조때의 작품으로 알려지고 있다.
도착한 때가 저녁 예불 시간이어서 수천 명의 티베트 승려들과 신자들이 스투파 주위를 바쁘게 시계방향으로 돌고 있다. 일종의 예불 의식인데 그들의 발길은 저녁 늦게까지 그칠 줄 모른다. 부다나트는, 나라를 빼앗긴 티베탄들이 비록 중국의 압제를 피해 인도, 네팔 등 세계 각지로 흩어졌지만 영원한 생명처럼 분출되는 그들의 불심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점점 더 성성이 타오르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현장이다.
다음날 새벽, 룸비니로 떠나기 전 히말라야 일출을 보기 위해 순례 일행은 밤늦도록 분주하게 움직인다. 호텔에서 1시간 거리의 나가르콧(Nagarkot)까지 이동해야하므로 늦어도 새벽 5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그곳은 해발 2500미터 이상의 고지로 히말라야의 일출을 볼 수 있는 카트만두 인근의 몇 안 되는 곳 가운데 하나이다. 나가르콧 가는 길은 대관령 고갯길을 방불케 할 만큼 험준하다. 게다가 짙은 안개까지 끼어 가시거리는 5미터를 넘지 못한다.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끼며 나가르콧에 올랐는데 일출 때까지는 다소 여유가 있다. 마침 문을 연 찻집에 들러 짜이(티)를 마셨다. 고원의 서늘함을 물리치는 새벽 짜이 맛이란, 경험하지 않은 사람에겐 설명이 어려울 정도로 오묘하다.
눈앞에 히말라야의 능선이 아스라이 펼쳐져 있다. 문득 능선 근처 하늘 가운데가 환해지는가 싶더니 해가 솟아오른다. 말로만 듣던 히말라야의 일출이 지금 이렇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합장을 하고 가장 경건한 마음으로 해를 맞는다. 나가르콧을 내려오는 내내 일출의 감동은 조금도 시들지 않고 있다.
<사진설명>네팔 카트만두의 최대 사원인 부다나트의 원경. 티베트 불교의 힘을 실감할 수 있는 사원이다.
이번 순례는 아무래도 그리 쉽지는 않은 듯싶다. 마오이스트의 잇따른 준동과 2년 여 전 발생한 반정의 여진으로 인해 도처에서 반다르(게릴라들의 약탈행위), 즉 폭탄테러가 잇따르고 있어 버스 편으로 룸비니(Rumbini)에 가는 것은 너무 위험해 비행기를 이용해야 할 것 같단다. 결국 비행기를 이용해 룸비니로 가기로 하고 공항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더라도 예정에 없던 네팔 국내선을 타보는 색다른 추억거리가 생겼으니 마오이스트들에게 되레 고맙다는 마음을 갖는 게 속편하다. 어떤 경우든 성지순례 도중에 이 같은 경우는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룸비니 행 비행기는 18인승(승무원 3인 포함) 경비행기이다. 인도나 네팔을 방문한 분들은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이들에게서 예정시간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오후 1시 출발 예정인 비행기가 3시가 다되어 이륙을 한 것은 또 그렇다 치더라도 비행기의 지극히 원시적인 관리에 절로 혀를 내둘러 진다. 양동이로 물을 가져와 국자 같은 용기로 물을 뿌리고 천으로 닦아내는가하면, 여승무원이 낡은 빗자루로 비행기 내부의 쓰레기를 쓸어내고 있으니 더 말해 뭐하랴.
그래도 비행기는 비행기인 것이어서 예쁘장한 스튜어디스가 허리를 구부려 인사를 하고는 사탕과 솜을 나눠준다. ‘사탕은 그렇더라도 솜은 또 무엇인가’라는 의아한 표정을 짓자 눈치 빠른 가이드가 다가와 솜은 비행기가 몹시 시끄럽고 또 높이 올랐을 때 기압의 차이로 귀가 아플 수 있으므로 귀를 보호하기 위히 미리 막아두라는 뜻이라고 일러준다. 아무려나, 가볍게 이륙한 비행기는 이내 구름을 뚫고 하늘로 솟구쳐 오른다. 가벼운 기류에도 요동치는 경비행기 기내의 광경이란 묘사가 힘들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이륙한지 5분도 안되어 토하는 사람, 애써 두려움을 잊으려 잠을 청하는 사람, 사색이 되어 떨고 있는 사람, 마치 곡예비행을 즐기듯 비행을 만끽하는 사람 등 15명 승객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마치 파도를 타고 가는 배처럼 기류를 타고 울렁대는 40여 분의 비행 끝에 가까스로 룸비니가 있는 바이라와(Bhairawa)시에 도착했다. 40분이 4시간보다도 더 긴 시간이었음은 물론이다.
바이라와시는 인도와 접경지대에 위치한 산업도시로 여기에서 룸비니까지는 22킬로미터 거리다. 공항의 이름은 ‘가우탐 붓다 에어포트(Gautam Buddha Airport)’. 규모나 수준은 우리나라의 시골 간이철도역을 떠올리면 적격이다. 부처님의 숨결을 생생히 느껴보고자 떠나는 순례 길은 이렇게 탄생지로 가는 초입부터 호된 신고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공항에서 붓다의 탄생성지 룸비니로 가는 길은 차량이 많지 않아 비교적 한산하다. 내정 혼란으로 인한 치안부재로 차량의 이동이 뜸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살벌한 정황을 입증이나 하듯이 길 도중에 ‘반다르(Bandar)’의 현장이 나타난다. 불과 3, 4일 전 마오이스트들이 지나던 버스를 폭발시킨 끔찍한 현장이란다. 불탄 버스가 도로 가운데 흉측스럽게 서있는데, 사고 후 여러 날 지났는데도 그 잔해를 처리하지 않는 것은 더운 나라 사람들의 대책 없는 느긋함 때문이리라. 반다르가 앞으로도 보름은 더 계속될 예정이라니 눈앞이 아득하다. 그러나 어쩌랴. 붓다의 성지를 찾는 마음을 더욱 더 경건히 하라는 불보살님의 뜻으로 받아들일밖에.
룸비니 가는 길 양편으론 광활한 들판이다. 밀밭이 대부분인데, 밀을 많이 심은 이유는 건기를 견딜 작물 가운데 밀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따금씩 나타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는 영락없이 장이 섰는데, 물품은 대개 양배추, 감자 등 채소류가 주종을 이룬다.
“인도여행을 하려면 조급한 마음부터 버려야 한다. 그래야만 인도를 순례하는 가치를 얻을 수 있다.” 룸비니 성지로 이동하면서 가이드의 장황한 ‘법문’을 경청하고 있다. 모든 것이 생소하고 불편한 이 곳에서 안내자의 말은 곧 법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니 잘 듣고 따라야 심신이 편안할 터이다. 우리 일행의 가이드는 동국대학에서 인도철학을 전공한 재원으로 불교와 인도, 인도철학 등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춘 베테랑이다. 그의 설명 수준이나 인도철학 및 문화에 대한 이해 정도는 어지간한 학자들을 훌쩍 뛰어넘어 보인다.
룸비니 동산, 불교가 시작된 곳. 늘 마음속으로 그리워하던 붓다의 탄생 성지를 향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때론 붓다의 마음이 되기도 하고, 때론 이곳을 순례했던 아소카 대왕이나 구법승 혜초, 현장의 마음이 되어 순례에 임해야 할 것이다. 이번 순례의 포인트가 붓다의 일생을 그대로 체험하는 것이니, 아무래도 가급적 붓다의 입장에 스스로를 대입시켜 순례에 나설 때 붓다의 마음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설명>아기붓다를 낳을때 마야데비께서 붙잡았다는 무우수 나무와 막 태어난 태자를 씻겼던 목욕지.
드디어 룸비니 동산. 나는 지금 말로만 듣고 책으로만 보았던 붓다의 탄생성지 룸비니에 우두커니 서 있다. 붓다의 어머니 마야데비 부인이 무우수(無憂樹) 가지를 잡고 싯다르타를 낳은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불제자로서 어찌 감격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온몸이 감동으로 전율한다는 것은 바로 이 경우를 말하는 것이리라. 앞으로 얼마나 더 이 같은 감동의 전율을 경험하게 될지 붓다성지 첫날부터 순례자의 가슴은 감동으로 벅차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