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볼 프로젝트 김남우]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맹활약을 펼친 강정호 덕분에 미국 현지에서 국내 야수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2년 연속 50홈런 이상을 달성한 박병호의 진출은 확실시 되고 있으며 이 외에도 올 시즌 후 FA가 되는 김현수와 포스팅 자격을 얻는 손아섭 또한 미국에서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 4번타자 이대호 역시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미국 진출을 타진한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이대호의 미국 도전 소식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현 소속팀인 소프트뱅크와의 계약이 2년+1년 옵션으로 내년 시즌 본인이 원하면 소프트뱅크에 남을 수 있는 상황이다. 내년 보장되는 연봉 5억엔 대신에 미국에 진출하겠다는 의사를 보여 더 좋은 계약을 이끌어내기 위한 언론 플레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대호의 미국 진출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본다.
아시아 무대에서 더 이상 이룰게 없다
이대호는 한국무대에서 타격 7관왕과 2차례의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할 정도로 국내 최고의 타자였다. 우승을 제외하면 국내에서 이룰 것이 없을 때 일본에 진출하여 정상급 성적을 거두었고, 우승반지도 차지했다.
개인 성적을 놓고 봤을 때 아시아 무대에서 이대호가 더 큰 성취감을 얻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소프트뱅크의 우승을 위해서 계속 뛰어야 될 동기도 부족하다. 어디까지나 일본에선 용병일 뿐이다.
게다가 이대호가 앞으로 일본 무대에서 더 많은 연봉을 받기는 힘들다. 내년에 옵션을 행사할 경우에 이대호에게 보장되는 연봉은 5억엔이고 여기에 인센티브까지 포함하면 최대 5억 5천만엔으로 늘어난다. 현 일본 최고 연봉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아베가 받는 5억 1천만엔으로, 이대호가 일본인 선수가 아니란 점을 감안하면 외국인 선수로서 일본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 대우를 받고 있는 셈이다. 즉, 아시아 무대에서 이대호는 야구 내적 성취와 연봉 계약 양쪽 부분 모두에서 더 이상 이룰 것 없는 상태에 이른 것이다.
이대호는 지명타자감이다?
이대호가 미국 진출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 중 하나가 그의 수비력 문제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이대호를 1루수가 아닌 지명타자로 판단하기 때문에 거액을 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우선 이대호는 일본에서 4년간 총 361경기에서 14개의 에러를 기록했다. 올 시즌 피츠버그의 주전 1루수 페드로 알바레즈는 116경기에서 21개의 실책을 기록하고 있다. 최소한 최악의 수비수가 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실제로 이대호의 수비가 메이저리그에서 붙박이 1루수를 차지할 수 없는 수준이라 하더라도 이대호의 가치는 충분하다. 위 선수들은 현재 지명타자로 뛰고 있는 선수들이며 올 시즌 FA 계약을 맺은 선수들이다. 이 중 아담 라로쉬만이 지난해 1루수로 뛰던 선수이다. 지난해 부진했던 버틀러와 모랄레스의 적지 않은 계약 조건을 보면 수비가 안 되는 지명타자라고 해서 거액의 계약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선구자’ 강정호와 시장 상황
예전에는 이대호가 미국 진출에 자신감을 보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2년 전, 혹은 그 이전에 도전을 했다면 KBO 리그 출신 최초의 야수가 될 것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부담감도 컸을 것이며 성공을 자신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강정호라는 비교 대상이 존재한다. 이대호는 KBO 리그 시절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타자였다. 미국에 진출한다면 강정호만큼은 칠 수도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을 거라 생각된다. 강정호가 메이저리그에서 거둔 올시즌 wRC+(득점 생산력)은 129이다. 올해 1루수 중에 강정호보다 높은 wRC+를 기록한 선수는 총 10명에 불과하며 지명타자는 3명 뿐이다.
단순하게 이대호의 득점 생산력이 강정호 수준이라고 가정해보자. LA 다저스의 4번타자 애드리언 곤잘레스의 wRC+가 132이며, 텍사스 레인저스의 미치 모어랜드가 118이다. 루키스 두다(메츠)와 에릭 호스머(캔자스시티)의 wRC+는 124로 포스트시즌이 유력한 팀들의 주전 1루수들의 공격력이 강정호와 비슷하다.
강정호가 유격수와 3루수 포지션에서 뛰기 때문에 공격력이 더 돋보이지만 1루수들과 비교해도 상당히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대호의 성적을 좀 더 보수적으로 예측해 강정호보다 낮은 110의 wRC+ 를 기록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는 메이저리그의 평균적인 1루수 수준이다. (메이저리그 1루수 평균 wRC+ 112)
시장 상황 역시 이대호 편이다. 당장 내년시즌 메이저리그 FA 시장에 주전급 1루수는 크리스 데이비스 한명 뿐이다. 이는 박병호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이유이기도 한데, 박병호의 경우에는 포스팅 입찰 과정을 거쳐야 되고 다년의 계약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영입 시 부담이 존재한다. 강정호의 사례를 봤을 때 박병호를 잡기 위해선 최소 1,000만불 이상을 지불해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대호는 포스팅이 아니라 FA 신분이기 때문에 단년 계약이 가능하고 KBO뿐만 아니라 NPB에서도 실력을 검증 받았다는 점에서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입장에서는 위험부담을 적게 느낄 수 있는 카드이다. 또한 그는 일본에서 wRC+ 160~170대를 유지하고 있는데 박병호의 지난해 wRC+가 168인 점을 감안하면 이대호의 득점 생산력은 박병호보다 떨어진다고 보기 힘들다.
성공 가능성은?
최근 일본에서 뛰고 있는 쿠바 선수들도 좋은 비교 대상이 될 것이다. 지바 롯데에서 활약하고 있는 알프레도 데스파이그네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중인 어브레유, 세스페데스와 함께 쿠바를 대표하는 선수이다. 어브레유 이전에 4할 타율을 기록한바 있으며 어브레유와 세스페데스를 제치고 쿠바리그 한 시즌 최다 홈런을 기록한바 있다.
이런 데스파이그네가 망명을 통해 미국 무대에 진출한다면 강정호가 받았던 금액이나 박병호가 받게 될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 제의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일본 무대에서 데스파이그네보다 더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는 선수가 이대호이다. 이대호와 데스파이그네의 국적이 바뀐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A급 투수 상대 성적 : .300 .409 .618 12.88 BB% 22.73 K%
외국인 투수 상대 성적 : .327 .409 .491 12.12 BB% 12.12 K%
9월 19일을 기준으로 NPB 양리그 평균자책점 10위 내 투수 및 세이브 5위내 투수들을 상대로 거둔 성적과 용병을 상대로 거둔 성적이다. NPB의 상위권 선수들의 수준은 메이저리그 레벨에 근접한 평가를 받고 있다.
구종 별로 보면 이대호는 패스트볼과 투심 패스트볼로 알려져 있는 슈트를 상대로 높은 타율을 기록했다. 컷 패스트볼 공략도 잘한 편으로 변형 패스트볼에 대한 대처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대호는 주로 종으로 떨어지는 공인 포크와 커브에 약한 모습을 보였다. 그나마 커브를 상대로는 K%가 18.18%로 최소한 방망이에는 맞추는 모습을 보인데 반해, 포크볼에는 철저히 당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행인 점은 메이저리그엔 포크볼(또는 스플리터)의 구사율이 일본에 비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외국인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친화력으로 적응을 잘했기 때문에 미국에서의 적응 또한 큰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중요한 것은 본인 의지
2년 전에 미국 진출을 시도한 것처럼 보였으나 결국 실패한 이대호는 당시에 미국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지 못했지만 지금은 미국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었다. 일본 내에서 몸값을 높이는 목적으로 미국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을 리는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행보는 주목 할 만하다.
무엇보다 실패 뒤에 국내 유턴을 한다 하더라도 이전 사례를 봤을 때 이대호는 섭섭치 않은 대우를 받을 확률이 높다. 실패하지 않는다면 더 큰 돈을 만질 수도 있다.
강정호와 박병호의 진출, 그리고 동갑내기 친구의 활약상은 이대호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들과 같은 무대에서 활약하고자 한다면, 메이저리그에 1루수 자원이 부족한 지금이 가장 적기일 것이다.
여러 상황들을 봤을 때 이대호의 가치는 생각보다 괜찮아 보인다. 이대호 측에서도 이런 사항들을 고려했을 것이며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대호 본인이나 그를 응원하는 팬들이나, 헐값에 미국에 진출하는 것을 원치는 않는다. 하지만 선수생활의 마지막 도전을 한다면, 지금이야 말로 적기가 아닌가 싶다.
기록 출처 : baseballdata.jp, baseball-reference.com, fangraphs.com, baseball-lab.com, baseball.yahoo.co.jp, baseball-lab.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