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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일이
서울의 한 정영 외과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20대 직장인 남성 씨는 지난해 3월 B 병원을 찾았는데요. 왼쪽 발목이 아파 걷기 힘들어진 씨는 담당 의사와 상의를 한 후 발목 수술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약 시간에 수술이 끝나고 마취에서 깨어난 씨는 자신의 발을 보고 경악하고 말았는데요 의사가 왼발이 아니라 멀쩡하던 오른쪽 발목뼈 수술했던 것입니다.
병원에서 착각해 가지고 오른 발을 한 거란 말이에요. 아픈 다리는 아파서 못쓰고, 멀쩡한 다리는 병원에서 잘못 수술을 해서 그 다리마저 못쓰게 만들었으니 얼마나 황당하고 놀랄 지경이 되었을까요? 문제를 해결하려 병원에 왔는데, 더 큰 문제를 안고 평생을 살게 되었으니 그 황당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착각은 자유지만, 착각의 댓가는 혹독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성경의 가장 긴 예언 2300주야를 살펴보았습니다.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2300주야의 중심에도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단 9:27]라는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으로 정확히 성취되었습니다.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히 10:4-5)
출애굽기 12장에 예표된 유월절 어린 양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그 년월일시에 정확히 우리의 죄짐을 지시고 돌아가셨습니다. “[6] 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7]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출 12:6-7)
유월절 어린 양의 사건이야 말로 정말로 놀라운 구속의 사건에 대한 예표요, 예언이었습니다. 수많은 공통점 가운데 몇가지만 생각해보아도 우리는 그 그림자와 원형의 일치에 감탄하게 됩니다.
① 유월절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생애를 예표했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베드로전서 1:19).
② 바른 피는 우리의 죄를 속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예표했습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7).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요한계시록 1:5).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브리서 9:22).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28).
③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피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예표했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9)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마 20:19)
④ 유월절 어린 양의 희생은 정월 14일 해질 때에 드리도록 되어 있었다(출애굽기 12:6절 ; 민수기 9:3). 해질 때의 원문의 의미는 두 저녁사이로 해가 지기 시작하는 12시와 해가 다 넘어간 오후6시의 사이인 오후3시를 말합니다. 그 정확한 시간에 우리 주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제 구 시에…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마가복음 15:34~37).
“[34] 오후 3시에 예수님은 `엘로이, 엘로이, 라마 사박다니' 하고 크게 외치셨다. ... [37] 예수님이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시자”(막 15:34-37, 현대인)
⑤ 유월절 양은 뼈를 꺽지 말고 먹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뼈가 꺽이지 않을 것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십자가 옆의 두 강도는 다리가 꺾였는데도 말입니다.
“이 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를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요 19:31~36).
⑥ 그 고기는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은 다 불에 구워”(출애굽기 12:9) 먹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고통이 얼마나 혹독한 것인지를 보여 주는 것으로서 문자 그대로 불같은 고난을 가리킨다. “소멸하는 불”이신 “우리 하나님”(히브리서 12:29)께서 죄인인 우리를 사루시는 대신에 당신의 아들을 사루실 것이 여기에 예표되어 있다.
⑦ 주의 사항은 “쓴 나물과 아울러” 먹는 것이었습니다(출애굽기 12:8).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쓴 잔을 마시셨고, 고난(苦難)을 당하셨으므로, 우리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 하며(베드로전서 4:13),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로마서 8:17).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살을 먹는 자들은 자신의 죄악이 무죄하신 그리스도에게 그토록 참혹한 고통을 안겨 주었다는 것과 죄의 본질과 결과가 얼마나 비참하고 쓴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깊은 통회와 신고(辛苦)의 심정으로 그것을 받아 먹어야 한다.
⑧피가 발려진 집안에 있는 이들은 재난이 유월(踰越)했듯이,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들은 어떤 죄의 정죄에서도 보호받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한 이레의 시작은 AD27년 예수님의 침례의 사역, 곧 메시야의 기름부음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때가 삼십세가 되시던 때입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눅 3:23)
한 이레의 중심은 AD31년 유월절 사건으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유월절 양으로 돌아가신 사건으로 정확한 년월일시, 모습, 영향력 어느것 하나 더하지도 모자람도 없이 정확히 성취되었습니다.
70이레의 예언은 7+62+?=70이 아니겠습니까? 물음표에 들어갈 정답인 1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에 정확히 성취되었는데, 그 한 이레를 마지막 때 일어날 먼 미래적 사건으로 가져와서 미래주의가 나오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큰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져온 부작용이 엄청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인류의 구속의 사건으로 적용될 한 이레의 예언, 7년간의 예언을 마지막 시대에 나타난 적 그리스도의 7년 대환란으로 해석하여서 7년 대환란설이 생기고, 비밀휴거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것이 예수회에 의학 의도된 착가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1992년 휴거운동에 가담된 사람과 피해규모는 엄청났습니다. 전국적으로 약 250여 개 교회 및 단체, 약 20,000명의 신도가 시한부 종말론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전 국민적인 분노를 샀던 결정적인 이유는 교주 이장림의 위선 때문이었습니다. 휴거를 가르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정작 본인은 휴거 날짜 이후인 1993년에 만기되는 환매조건부채권(RP) 등에 거액을 투자하고 있었음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결국 이장림은 사기죄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으며, 이 사건은 한국 개신교계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크게 추락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니엘9:27절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단 9:27)
다니엘9:7에서 말한 그는 누구일까요? 어떤 이는 마지막 때 일어날 적 그리스도에 적용하고, 어떤 이는 그리스도에게 적용합니다. 이 성경절은 한절로 연결되어 있으나 내용을 잘 살펴보면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전반부의 내용은 그리스도께 적용되고, 후반부의 내용은 로마군대와 로마의 정신을 이어받은 적 그리스도에게 적용됩니다.
전반부의 메시약적 성취: 그는 바로 앞절 26절에서 말한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단 9:27)
후반부의 로마와 그 정신으로 이어지는 적 그리스도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단 9:27)
우리는 이것을 하나의 절로 연결되어 보지만, 내용상은 둘로 나누어집니다. 성경을 '장'으로 처음 나눈 사람은 영국의 스테판 랭턴(Stephen Langton)입니다. 시기: 1205년경 (또는 1227년 이전)이었으며, 그는 당시 파리 대학교의 교수였으며, 나중에 캔터베리 대주교가 된 인물입니다.
구약성경의 절 구분은 유대인 학자들(마소라 학자들): 아주 오래전부터 의미 단위로 구분을 해왔으나, 숫자를 붙인 현대적 구분은 1440년경 이삭 나단(Isaac Nathan)이라는 랍비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신약성경 및 전체 성경의 완성 1551년년 신약이 완성되고, 1555년 신구약성경이 완결됩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알면 성경의 장절구분에 메일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됩니다.
단9:27의 하반부의 내용을 로마에 적용시킨 내용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마 24:15)
누가복음에서는 바로 로마군대임을 확인시켜 줍니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눅 21:20)
비밀휴거론자들과 세대주의자들은 27절에 나오는 “또 강포하여 미운 물건 (abominations he shall make it desolate) 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라는 말씀을 세상 끝에 나타나는 적그리스도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석하면 예수님의 말씀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다니엘 9장 27절 말씀을 인용해서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예언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the abomination of desolation)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마 24:15,16)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데 그때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는 의미를 ‘적그리스도가 제3 성전에 앉아서 하나님 행세를 하면서 유대인들을 핍박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말 이 말씀이 그런 뜻일까요? 추측할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가복음에 이 말씀에 대한 정확한 의미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눅 21:20,21)
얼마나 분명합니까? 다니엘 9장에서 가브리엘 천사가 “강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라고 한 것과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이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 것을 보거든”이라고 한 것은 모두 “로마군대들이 거룩한 예루살렘을 침공해서 에워싼다.”는 의미입니다. 두 말씀 모두 적그리스도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다니엘서와 예수께서 예언하신 예루살렘의 멸망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까? 그렇습니다. AD 70년, 로마의 타이투스 장군은 베스파시안 황제의 명령을 받아서 8만 명의 대군으로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모든 보급로를 차단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고 어미가 자식의 시체를 뜯어먹는 참상이 벌어졌습니다. 예루살렘성은 처참하게 멸망당했습니다. 11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이 무참하게 학살되었습니다. 성벽도, 성전도, 도시도 모두 불타버렸습니다. 성소와 지성소에 있는 금으로 된 모든 기구들이 불에 녹아서 돌들 사이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로마군인들은 그 금을 캐내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의 돌 하나하나를 치우고 들추면서 찾았습니다. 결국,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뜨리우리라”는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예언이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 24:2)
유대민족은 메시아를 죽였고, 그 결과 서기 70년 예루살렘성은 참혹하게 멸망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특권을 영원히 잃어버렸습니다.
기독교회를 흔드는 마지막 한 주일의 예언
만약 70주일 예언이 메시아와 십자가에 관한 예언이라면, 그리고 마지막 한 주일을 세상 끝으로 가져가서 분리시킬 수 없다면, 오늘날 기독교회를 떠받치고 있는 <7년 대환난> 예언의 기둥이 송두리째 흔들려서 무너지게 됩니다.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70주일 예언은 역사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예언입니다. 70주일의 마지막 한 주일은 십자가에 대한 예언이며 결코 종말적 사건이 될 수 없습니다. 70주일 예언 전체가 예수님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예언 어디에도 적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비밀휴거와 세대주의는 모래 위에 세워진 허망한 가르침입니다. 70주일 예언에서 마지막 한 주일을 미래로 가져가는 세대주의와 비밀휴거는 성경 밖으로 나간 가르침입니다. 더 이상 중동에 있는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을 바라볼 필요가 없습니다.
7년 대환난은 모래 위에 세워졌다!
오늘날 <7년 대환난>을 가르치는 분들은 다니엘서 9장에 나오는 70주일 예언에서 마지막 한 주일(7년)을 역사의 중간으로부터 뚝 떼어서 저 멀리 미래, 즉 세상 끝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들은 69주일 다음에 이어지는 마지막 70번째 주일은 말세에 그리스도께서 의인들을 비밀휴거시킨 후에야 성취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69주일이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한 예언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69주와 70번째 주 사이에 2,000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을 집어 넣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언의 시간표를 69주(483년)+2,000년에 이르는 기독교회 시대+세상 끝의 1주(7년)로 만들었습니다. 70번째 주일인 마지막 7년을 ‘7년 대환난’이라고 이름 붙인 후, 7년 환난의 앞에 비밀휴거를 넣었고, 7년 환난 후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는 2단계의 재림설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니엘서 9장의 70주일 예언을 완전히 왜곡시킨 가르침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종말론을 이렇게 믿고 있습니다. “의인들에게는 7년 대환난이 시작되기 직전에 공중으로 끌어 올려가는 비밀휴거가 있고, 7년의 중간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성전에 앉아서 자기를 하나님으로 자처하면서 세상을 다스린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종말론의 기초가 70주일 예언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70주일 예언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로 연결된 예언이고 그리스도의 침례와 십자가에 대한 예언입니다. 70주일 예언 어디에도 적그리스도와 7년 대환난이 들어갈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오늘날 기독교회에서 7년 대환난을 너무나 쉽게, 너무나 자주,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말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성경은 7년 대환난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단 하나의 성경구절도 7년이라는 기간을 세상 끝이나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하여 말하지 않습니다. 비밀휴거와 세대주의 예언 해석을 믿는 분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 만약 마지막 70번째 주일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메시아가 끊어져 없어졌다면, 70주일 예언에서 마지막 주일은 미래의 사건이 될 수 있는가? 마지막 주일이 십자가에 대한 예언이라면, 7년을 세상 끝으로 가져가서 적그리스도가 지배하는 기간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
2. 만일 70주일 예언이 하나로 연결된 예언이고 그리스도의 침례와 십자가에서 모두 성취되었다면, 비밀휴거와 7년 대환난의 시기는 어떤 예언으로 입증해야 하는가?
<7년 대환난>은 사탄이 교회 안에 뿌려놓은 거짓 가르침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7년 대환난과 비밀휴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대주의 종말론은 70주일 예언에서 마지막 한 주일을 떼내어서 세상 끝에 갖다 놓아야만 가능한데, 마지막 70번째 주일은 세상 끝으로 옮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한 주일 중간인 서기 31년 봄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마지막 한 주일의 예언이 2천 년 전에 이미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세대주의 종말론의 뿌리를 아시나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진리처럼 믿고 있는 세대주의적 종말론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충격적인 사실은, 세대주의적 종말론의 뿌리는 천주교회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천주교회는 왜 적그리스도가 세상 끝에 나타난다는 종말론을 만들었을까요? 그 배경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 연구를 통해서, 적그리스도는 중세기에 이미 나타났으며, 적그리스도는 천주교회 안에 있는 교황과 바티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교황과 바티칸이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바꾸고 변조한 사실과 수천만 명의 성도들을 죽이고 고문한 사실을 유럽 전체에 공포했습니다.
그 당시 유럽에는 오직 하나의 교회, 천주교회밖에 없었는데, 종교개혁자들이 일어나서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설명하면서 “적그리스도는 교황과 바티칸이다.”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어떤 일이 생겼을까요? 유럽 전체에서 수십만 명의 성도들이 교황에 항거해서 일어났고 천주교회를 떠났습니다. 종교개혁 운동은 천주교회의 존폐를 위협하는 위기를 몰고 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천주교회는 놀라운 방법으로 대처했습니다. 바티칸은 예수회의 사제인 ‘리베라’를 앞장 세워서 종교개혁자들의 예언 해석을 와해시키려고 했습니다. 리베라 신부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를 주장했는데, 이것을 ‘미래주의’ 예언 해석이라고 부릅니다.
1. 적그리스도는 중세기 과거에 나타난 존재가 아니라 미래의 세상 끝에 나타날 존재라고 주장했습니다.
2. 적그리스도는 교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 세상에서 나타나는 슈퍼맨과 같은 사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리베라 신부가 무엇을 한 것입니까? 적그리스도를 미래에 나타날 해석함으로써, 교황을 적그리스도와 전혀 상관없는 존재로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월이 흘러가면서 리베라의 예언 해석이 개신교회 속으로 들어왔고 세대주의자들의 손에 의해서 꽃을 피우게 되었습니다.
70주일 예언에서 마지막 한 주일을 떼어내서 미래에 갖다놓는 <7년 대환난>의 종말론 시나리오가 만들어지게 되었고, 이 종말론이 기독교회 전체를 뒤덮게 되었습니다. 5백 년 전에 시작된 리베라 신부에 의해서 시작된 사탄의 미혹이 거의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19세기 말의 주석학자인 요셉 테너는 1580년경에 나타난 예수회 사제인 리베라가 만든 미래주의가 어떻게 현대 기독교회의 종말론과 연결되었는지 밝혔습니다.
“16세기 말에 이르러 천주교회의 저명한 학자들이 나타나서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들이 교황과 교황제도에 의해서 성취되었다는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으로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서 서로 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 예수회 학자인 리베라는 미래주의 해석을 고안해 냈는데, 미래주의는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교황의 행적에 대한 것이 아니라 미래 세상 끝에 나타나서 3년 반 동안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권세를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 그러므로 예수회 사제인 리베라는 현대 미래주의 해석법의 창시자로 간주된다.”(Daniel and Revelation, 16)
개신교회는 적어도 17세기까지는 70주일 예언의 빛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만유인력의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은 다니엘 9장의 70주일 예언을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선포하면서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다니엘서의 예언을 거절하는 사람은 기독교 신앙을 뒤엎는 일을 하는 셈인데,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이 그리스도에 관한 다니엘의 예언 위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작 뉴턴이 무엇을 경고한 것입니까? 70주일 예언의 빛을 거절하면 기독교 신앙의 기초가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왜 무너지게 될까요?
70주일 예언을 모르면, 메시아의 죽음과 십자가에 대한 예언의 빛을 잃어버리게 되며, 유대민족를 위한 은혜의 시간이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모르게 됩니다. 유대인들을 여전히 선택받은 민족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유대인 중심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지금 그런 종말론이 개신교 전체를 뒤덮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까? 개신교회가 아이작 뉴턴의 경고를 무시함으로써 천주교회 리베라 사제가 만든 거짓 종말론을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리베라 신부가 만든 미래주의가 지금 세대주의로 분장해서 기독교회 전체를 미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서 계십니까? 여러분은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을 지키겠습니까? 아니면 리베라 신부의 예언 해석을 따르겠습니까? 아무렇게나 믿어도 예수만 영접하면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벗어난 곳에는 결코 안전이 없습니다.
지금 너무나 많은 분들이 7년 환난과 환난 전 비밀리에 휴거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빗나간 예언 해석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치명적으로 파괴하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내일에는 더 깊게 다니엘서 9장을 살펴볼 것입니다. 그 속에 이스라엘의 역사적 운명과 교회의 사명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을 더욱 분명히 알면 7년 대환란설이 얼마나 공허한 외침인지를 더욱 확실히 알게 될 것입니다.
https://youtu.be/m7HV1gMUSW8?list=RDm7HV1gMUSW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