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레터 69](사)대한사랑과 호사카 유지 특강!
엊그제(8일 목요일) 참 우스운 일이 있었습니다. 우습다기보다 창피한 이야기이지요. (사단법인) 대한사랑 어느 군지부에서 호사카 유지(누구인지 대부분 아시겠지요? 한국인이므로 친한파가 아니죠) 특강이 있다하여 아산의 지인선배와 갔답니다. 오후 4시 정확히 시작한 것은 좋은데 사회자의 말이 좀 길다했는데, 축사를 한다고 세 분이 올라왔습니다. 군수는 바빠서 군의회 의장이 대신하고, 인근 ‘대한사랑’ 군지부장은 축사가 아니라 아예 자기가 주인공이나 된 듯 20분이나 강의를 하더군요. 짜증 폭발 지경에 듣다못한 어느 청자가 짧게 하라고 말하는데도 계속 하는 거예요. 아니, 서울에서 내려온 고명高名한 강사를 앞줄에 앉혀놓고 30분이나 자기들 ‘잔치’를 하는 것같고, 내외귀빈이라며 소개하는데 군청 문화정책과장까지 일어나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와와- 꼴갑들을 떠는 것까지 좋다칩시다.
30분이 넘어서야 주인공이 특강을 하면서 하시는 말씀이 압권입니다. 그날의 주제를 <일본 극우와 한국 신친일파의 논리와 활동>이라며 스토리보드 자료를 준비해 왔는데, 지부에서 강연 전에 다담茶談을 하면서 "주제가 너무 쎄니까 다른 것으로 바꿔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뭔 말입니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쎄다’는 것이 무엇이 쎄다는 말인지요? 강사는 얼마나 어이가 없었겠습니까? 자기들이 현수막을 강사에게 말도 않고 <식민사관 왜 바로잡지 못하나?>로 만들어놓았다는데. 저 같으면 그냥 서울로 올라갔을 것인데, 이 분은 점잖더군요. 처가가 정읍인데 이곳은 처음이라며 운을 뗀 뒤, 귀화를 했기 때문에 두 아들의 군입대軍入隊는 의무가 아닌 선택사항인데, 입대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장남은 인간이 '상당히' 되어 제대를 했고, 차남은 인간이 '쪼끔' 되어 돌아왔다고 하더군요. 문제는 이런 특강을 들으려면 핸드폰을 꺼놓거나 무음, 진동으로 해야 하는 것은 기본예의지요. 30분 동안 두 번이나 울리는데, 환장하겠더군요. 듣는 사람들이 대부분 노인인데, 한 분은 아예 전화까지 받더군요. 기분이 너무 잡쳐 선배와 나와버렸습니다. 이것은 아니지요. 강의실을 나오면서 대뜸 나도 모르게 나오는 말이 “아무리 촌넘들이지만 해도 너무 허잖아요. 내가 다 얼굴이 붉어지네요. 아산에서 괜히 내 말 듣고 오셨는데 미안합니다”였습니다. 본강의 전에 축사한다며 자기 강의를 20분 한 사람은 끝난 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기나 할까요?
아무튼, 그 기분은 접어두고 호소카 유지(1956년생, 2003년에 귀화했더군요) 30여분 들은 요지를 좀 적어보겠습니다. ‘신친일파’에 관한 강의는 이미 유튜브에 다 있으니, 한번씩 들어보세요. 시골 노인네들이 생각하기엔 ‘쎈 주제’인가 봐요. 참 기가 막힐 일입니다. 일본의 우익반동들의 식민사관에 맞짱구치는 한국인들은 왜 그럴까요? 그들은 누구일까요? 천황에게 사죄하라고 주장하는 아줌마도 있고, 무슨 교수라는 인간이 ‘어거지 책’을 써내기도 했지요. 그들의 목적은 한마디로 “한국의 일본화日本化”입니다. 역사적으로 뿌리가 아주 깊습니다. 일제강점기만 따질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또 어떤가요? <동북아역사재단>이라는 기관을 만들어놓고, 그들은 대체 국민세금으로 무엇을 하는 것일까요? 생각하면 그런 주장을 하는 인간들이나 기관, 단체들에게 폭탄을 한 바작 안겨주고 싶습니다.
호사카 유지는 한국에서 석박사과정을 하면서 ‘참공부’를 한 것이지요. 그들은 어쩌면 독도를 다케시마라며 자기네 땅이라고 유네스코에 문화유산 등재를 요구할지도 모릅니다. 임나일본부任那日本部도 마찬가지죠. 우리로서는 호사카 유지가 그저 기특하고 고마운 ‘참 일본인’인 셈이지요. 문제는 우리 한국인입니다. 식민사관에 쪄들고 몸과 머리에 배어있는, 그리하여 바로잡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우리 한국인말입니다. 대체 왜 그럴까요? 방법은 있는 걸까요? 역사왜곡, 이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닙니다. 제대로 된 역사를 알아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강의를 소란스런 가운데 들으면서 (사)대한사랑에 대해 검색을 하며 공부했습니다. 이사장이 ‘블랙홀 박사’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천문학자 박석재 교수더군요. 얼마 전 과기부에서 정년퇴직한 친구가 가장 존경한다며 그분의 유튜브 영상을 보내와 알고 있었습니다. <박석재의 천문&역사TV>를 검색해 들어보세요https://www.youtube.com/watch?v=8x12cj 천문학자가 왜 역사 특강을 하는지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말년 인생을 바꾼 <무진50년오성취루戊辰五十年五星聚婁> 아홉 글자였다고 합니다. 이 기록은 <단군세기>라는 책에 나오는데, 무진 50년은 BC1733년, 그러니까 3757년 전의 천문기록이지요. 그 해에 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이 손뼘 길이로 나란히 모였다는 것. 그런 기록의 책이 있다니 믿기지 않겠지요? 그러나 엄연한 사실인 것을. 우리 역사를 집대성한 <환단고기桓檀古記>라는 역사책이 실존하는데도, 대개 보지도, 읽지도 않은 사람들이 ‘위서僞書’라고 치부해 버리는 이상한 현상이 있습니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제강점기 1915년 일제가 맨먼저 착수한 것이 우리나라 역사왜곡의 일환으로 <조선사편수회>를 만든 것입니다. 육당 최남선은 3.1운동 투옥 후 20년대에 변절하여 조선사편수회에 참여, 역사왜곡에 앞장을 섭니다. 그리고 두계斗溪 이병도李丙燾(1896-1989)라는 역사학자가 두드러진 활동과 연구를 합니다. 해방이후 친일청산을 못하는 바람에 친일학문 청산도 당연히 못하며, 그들은 제 세상을 만난 듯 ‘지금까지’ 활개를 칩니다. 정치계도 보십시오. ‘토착왜구土着倭寇’ 어떤 이는 토착왜구라 손가락질해도 자랑스러운 모양입니다. 자기 할아버지가 왜정때 면장을 했다며 일본에서 ‘천황 만세’를 부른 기초단체 의원도 있었지요.
저는 국수주의자國粹主義者도 아니고 쇼비니스트chauvinist도 아닙니다. 허나, 아무리 생각해도 <환단고기>는 위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환단고기>는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고, 5천년 역사 속에서 간신히, 기어코 내려온 역사서 5권을 모아놓은 책으로, 나라 망한 1911년 계연수라는 분이 펴냈는데, 홍범도 장군과 오동진 장군이 적극 도왔다고 합니다. 이 얘기만 들어도 ‘꼭 읽어봐야겠다’ 흥미가 돋지 않나요?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단군왕검, 호랑이와 곰의 허구신화가 뽀록납니다. 2011년 편찬 100주년을 맞아 증산도의 안경전 종도사가 역주본을 냈습니다. 이 역사책은 증산도와 어떤 관련도 없습니다. ‘잃어버린 역사’가 몇 년이나 되는지 아시나요? 물경勿驚 7000년입니다. 7대 환인桓因의 환국桓國 3301년, 18대 환웅桓雄의 1565년, 47대 단군檀君의 2096년이 그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무진50년오성취루>는 BC 1733년 흘단단군때의 기록인 것입니다.
저에게는 이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지만, 두꺼운 <환단고기> 책을 읽기 힘드시면 유튜브에서 <박석재의 역사&천문 TV>와 <호사카 유지 TV>를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겨울이 깊어갑니다. 지천명知天命과 이순耳順을 넘어선 이즈음, 꼭 읽고 사랑스런 손주들에게 복돈을 줘가며 들려줘야 할 역사이야기가 아닐까요?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