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경찰이 차량과 경력을 동원해 시청광장에서 대한문 방향 이동을 막고 있다. |
여기저기서 ‘고용률 70% 달성’을 말한다. 노조를 만들어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도 안정된 일자리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고용불안을 빌미로 노동권이 발 묶이는, 노동권을 말하는 순간 거리로 내쫓기는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1일 민주노총이 주최한 제123주년 세계노동절 기념대회의 화두는 ‘권리선언’이었다. 서울역 등에서 사전집회를 하고 서울광장까지 행진하면서 산별연맹들이 요구한 것도 "빼앗긴 권리를 돌려 달라"는 것이었다. 하얀 가운을 입고 휠체어를 탄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은 공공병원에서 서민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외쳤다. 건설사무노동자들은 온몸에 밧줄을 묶고 “잘못된 국가의 건설정책으로 건설노동자들에게 희생이 전가되고 있다”는 현수막이 붙은 승합차를 끌었다.
서울광장에서 사전집회를 한 공공운수노조·연맹은 공공기관 비정규 노동자들이 잘리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외쳤다. 공무원노조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노조를 설립할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노동3권을 요구하다 해고된 공무원들이 다시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서비스연맹은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노동자로 대우받지 못하는 학습지교사 노동자들의 현실을 비판했다. 비슷한 시각 종로 영풍문고 앞에서는 ‘제1회 알바노동자 메이데이’ 행사가 열렸다.
노동자대회 본대회에서는 청소년·장애인·빈민단체를 대표하는 이들이 인간으로 살 수 있는 ‘연대권리’를 선언했다. 민주노총 노동절 기념대회 사상 처음으로 성소수자가 공식발언을 했다. 보이지 않는 유령처럼 살고 있지만, 그들도 일터에서 함께하고 있는 노동자들이다.
동성애자 인권연대 소속인 형태(30)씨는 무대 위에 올라 “우리는 성소수자의 이름으로, 성소수자의 모습으로 긍지를 지니고 노동할 권리, 변태로 불리는 모욕을 당하지 않고 노동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권리를 선언하러 나온 노동자·시민들이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모습도 연출됐다. 매년 민주노총 노동절 기념대회에 참가해 온 장애인단체들은 ‘이동할 권리’를 빼앗겼다. 경찰은 대한문 앞에서 사전행사를 한 뒤 횡단보도를 건너 서울광장으로 향하던 장애인들을 가로막았다. “도로 혼잡이 우려돼 횡단보도가 아닌 지하도를 통해 행사장으로 가야 한다”고 요구했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은 10미터 남짓한 횡단보도를 뒤로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에 내려갔다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24명의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희생자와 그 가족을 기리는 권리도 빼앗겼다. 일부 대회 참가자들은 대한문 임시분향소 조문을 시도했다가 4천여명의 경찰력에 막혀 주저앉았다.
대회 막바지에 단결하고 투쟁할 권리를 담은 5대 노동자 권리선언문이 낭독됐다. 각 산별연맹· 노조의 깃발과 장기투쟁 사업장 조합원들이 피켓을 들고 무대 위에 올랐다.
“오늘은 123주년 세계노동절이다. 그러나 세기를 건너뛴 지금도 노동의 권리는 위협받고 있다. 고용은 권리를 틀어막는 자본의 무기가 됐고 언론은 노동자의 권리를 말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는 다시 노동의 권리를 선언한다.”
한편 이날 민주노총 서울광장 기념대회에는 조준호 진보정의당 공동대표·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이용길 진보신당 대표 등 정치인과 권영길·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등이 참석했다.
김학태·배혜정·김은성 기자
“청소년도 노동자입니다”
| | | 김광혁 청소년노조준비모임 활동가 | “청소년도 노동자로 인정받고, 청소년노동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김광혁(21·사진)씨가 1일 민주노총이 주최한 노동절 행사에 참여해 연대권리선언에 나선 이유다. 김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청소년노조준비모임 활동을 하고 있다. 노동절 행사에 참가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마음이 벅차기도 하고 긴장도 된다”며 “노동절이 더 많은 시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져 저를 비롯한 많은 청소년들이 스스로 노동자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는 날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업주는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법으로 정해진 노동자 권리를 당연하다는 듯이 짓밟고 정부는 악덕 사업주를 방관하고 있어요. 청소년노동을 대하는 학력주의·보호주의·나이주의를 깨고 온전한 노동자로 차별받지 않고 인정받을 수 있게 하는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김은성 기자 |
“용산학살 진실 규명하겠다”
| | | 이충연 용산참사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개선위원회 위원장 | “빈민 등 다양한 민중운동에 힘이 될 수 있도록 노동계가 중심을 잡아 줬으면 좋겠습니다. 노동계와 함께 용산학살에 대한 진실을 규명해 다시는 저 같은 희생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충연 (41·사진) 위원장은 2009년 1월 용산참사 당시 숨진 고 이상림씨의 아들이다. 그는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징역 5년4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됐다가 올해 1월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그는 “4년 후 돌아와 보니 시민들과 빈민들의 삶이 더 힘들어지고 정신적으로도 각박해진 것 같아 안타까웠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용산참사 진상규명을 약속한 만큼 건설재벌과 가진 자들을 위한 개발 정책을 올바로 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시민의 권리는 스스로 주어지지 않는 만큼 용산참사 진상규명을 밝혀 내는 투쟁을 끝까지 벌여 다시는 나 같은 희생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며 “노동운동이 제대로 중심을 잡아 민중운동의 맏형으로서 힘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김은성 기자 |
“성소수자 이유로 해고 금지해야”
| | |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형태씨 |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형태(30·사진)씨는 “성소수자를 혐오하지 말고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형태씨는 “민주노총이 노동절에 성소수자단체에 공식적으로 발언을 요청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라며 “노동자와 성소수자가 함께 차별 철폐를 외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이며 무척 뜻깊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가 소속된 단체는 정부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성소수자의 권리를 언급하고 있는 법률은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유일합니다. 근로기준법에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금지하고, 장기적으로 해고를 금지한다는 조항을 명시해야 합니다.”
형태씨는 민주노총이 올해 노동절을 계기로 성소수자와의 연대를 강화해 주기를 바랐다.
“민주노총이 저희들을 초청한 것은 대공장 노동자나 현장 활동가 중에도 성소수자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함께하자는 뜻인 것 같아요. 역사적인 날이죠. 이달 17일이 ‘아이다호 데이’(성소수자 혐오 반대일)인데요. 그때도 민주노총이 와서 함께해 줬으면 좋겠네요.” 양우람 기자 |
“장애인등급제 너무나 반인권적”
| | | 박경석 장애인인권연대 공동대표 | “노동절이 노동자들만의 날이 아니라 장애인을 포함해 차별받는 많은 소수자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날이라는 생각에 이 자리에 왔습니다.”
박경석(53·사진) 장애인인권연대 공동대표는 현재 서울 광화문에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촉구하며 254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장애인이라는 소수자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투쟁이에요. 사람을 등급을 나눠 구분하는 것은 너무 반인권적이잖아요. 이렇게 하는 나라가 몇 없습니다.”
그는 “노동자들의 투쟁과 우리의 농성은 결국 맞닿아 있다”며 “민주노총이 정규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장애인 등 차별받는 모든 사람들의 권리신장을 위해 전폭적이고 실천적으로 투쟁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우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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