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文 : 창세기 33장 1~20절
主題 : 엘 엘로헤 이스라엘
要解 : 20여년 적대적 관계에 있던 야곱과 에서의 감동적인 만남의 장면이다. 이들의 화해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32장은 말하고 있다. 얍복 강가에서의 기도는 야곱의 인격을 변화시켰으며, 변화된 모습으로 에서를 향하여 나아가는 행동은 증오와 원한으로 굳어버린 에서의 마음을 봄 햇빛에 녹아내리는 눈처럼 풀어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므로 야곱의 얍복 강가의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갈등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事例(사례)라 하겠다.
段落區分
1-4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나아가는 야곱
5-7 야곱 가족의 소개
8-11 화해의 예물
12-17 숙곳
18-20 엘엘로헤 이스라엘
-註 解-
1-4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나아가는 야곱
하나님을 경험(만난)한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수많은 특징이 있다. 잘못을 돌이키고,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섬김을 받기 보다는 섬기게 된다.
에서와 야곱 사이에 발생했던 불화의 원인은 장자의 권세와 재산상속의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였다. 분쟁의 원인자인 야곱은 화해를 위해 많은 재산을 준비하여 예물로 보냈으나(창32:13-23), 이 예물이 두 사람 사이를 화해시키는 힘이 되지 못했다. 이 문제로 고뇌하던 야곱이 엎드려 기도함으로서 문제 해결의 길이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과 대면한 야곱은 이제 더 이상 겁에 질려 전전긍긍(戰戰兢兢) 하거나 죽음을 두려워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 및 그 언약을 신뢰하고 믿음에 확신을 가지고 나아간다. 야곱은 몸을 땅에 일곱 번 굽히는 진실 된 행동으로 회개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얼굴이 땅에 닿도록 몸을 숙여 일곱 번 경의를 표하는 인사는 고대에 왕이나 점령자들에게 갖추던 항복의 예의로서 한 곳에서 머물러 서서 한 것이 아니라 세 걸음 앞으로 나아가면서 굽혔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에서는 눈물로 화해(和解)를 받아들인다.
깨어진 인간관계(人間關係)의 회복(回復)은 물질보상(物質報償)이 먼저가 아니라 진실하게 뉘우치며 마음의 용서를 구하는 것이 먼저다. 인간의 죄악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을 회복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5-7 야곱 가족의 소개 8-11 화해의 예물
화해와 눈물겨운 상봉을 마친 에서는 야곱의 가족들을 바라보며 ‘이들은 너에게 있어서 누구냐’ 그리고 선물로 보낸 가축들을 가리키면서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며 묻는다. 집을 떠날 때 혈혈단신(孑孑單身)이었던 야곱을 생각하면서 의아해 물었을 것이다. 야곱은 “하나님이 주의 종(형님의 종으로 자신을 표현)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 들이라고 대답한다. 자신의 총명함이나 노력으로 얻은 자식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셨음을 고백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먼저 보낸 가축들은 에서에게 은혜를 입으려고 보낸 선물이라고 말한다.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잠19:6) “선물은 앞길을 여는 물건, 높은 사람에게로 인도해 준다”(잠18:16) 에서는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족하다고 말하면서 예물이 자신에게 필요치 않음을 표현한다. 그러나 야곱의 간곡한 요청에 받아들인다(고대 사회에서 선물은 각 부족간의 우의와 상호 동맹에 대한 증표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상대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의 교제를 받아들이는 것이지만 받지 않는 것은 불화와 전쟁을 표시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에서를 바라보는 야곱의 고백을 들어보자 “야곱이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형님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청컨데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기뻐하심이니이다” 복수심과 분노에 가득한 형의 얼굴이 따뜻하고 온유한 모습으로 바뀐 모습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얼굴, 즉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보았다. 두 사람의 화해를 통하여 진정한 화해는 그 사이에 속된 이권이 오고 가는 것이 필요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선물은 관계회복에 많은 도움을 주며, 사람의 마음을 얻게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膳物)은 구원(救援)이다. 또한 성령(聖靈)을 선물(膳物)로 주신 것이다.
12-17 숙곳
만약, 야곱이 거느린 모든 양과 염소와 약대를 거느리고 에서가 거하는 곳으로 갔다면 어떠한 결과가 나타났을까?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겪었던 것처럼(창13:9) 얼마 지나지 않아 다툼이 생겼을 것이다. 야곱은 할아버지께서 겪은 일을 통하여 앞날의 갈등을 미리 예방한 것이다.
라반과의 갈등, 야복 강가의 도고(禱告), 그리고 형 에서와의 만남과 화해 등으로 인하여 심신이 매우 지쳐 있었던 야곱은 일단 에서의 환대에 감사하며 간곡히 자신의 사정을 얘기하며 건너왔던 얍복강을 다시 건너 숙곳에 머무르며 약 10여년을 머무르게 된다(숙곳은 ‘작은 양우리’라는 뜻으로, 처음에는 헤스본왕 시혼의 영토이었으나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온 후에 는 갓 자손의 땅이 되었으며(수13:27), 기드온은 이곳까지 적군을 추격하였으며(삿8:5-6), 이 부근에는 솔로몬의 주조소(주물공장)가 있었다(왕상7:46). 숙곳은 수많은 가축들을 관리하기에 용이한 곳이었기 때문이다(17절).
그는 숙곳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좀 더 번창한 세겜(작은 언덕- 그리심산과 에발산 사이 삿9:7)으로 장막을 옮겼다. 물론 그곳도 약속의 땅 가나안의 일부이며 하나님을 위한 제단이 쌓아졌던 곳이기는 하나, 옛날 사닥다리 언약이 이루어졌던 벧엘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의 세겜 정착은 다음 행보를 위한 조처가 아닌가 생각된다.
야곱은 이곳저곳을 찾아 정착하려 하지만 언약의 땅 가나안이 아닌 어느 곳도 그에게 안정을 주지 못했다. 성도의 여정도 영생천국에 이르기까지는 이 세상 어느 곳도 평안이 거할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 거할 처소는 주님 품일세...347장♪
18-20 엘 엘로헤 이스라엘(나의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좋으신 ...’ 부분을 내가 만난 하나님으로 개사해서 불러보자.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거하여(창28:13) 언젠가는 이 가나안 땅이 자신과 및 후손의 터전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 땅의 일부를 매입한다. 훗날 야곱의 후손들은 가나안 정복 직후 애굽에서 요셉의 유해를 운구하여 이곳에 장사했다(수24:32).
단을 쌓고(יצב מזבה-야체브 미즈베아흐) ‘세우다’ ‘만들다’란 동사 ‘야체브’의 3인칭 과거형과 ‘제물을 바치다’‘동물을 희생시키다’라는 동사 ‘자바흐(זבח)’에서 유래된 명사 ‘미즈베아흐’(제단)가 합쳐진 말로 ‘그는 동물을 희생시키는 제단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엘 엘로헤 이스라엘(אל אלהי ישראל)” ‘강하신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란 뜻으로 ‘이스라엘’이란 즉 야곱은 이름을 부여해 주신 그 하나님을 기념하기 위하여 조부(祖父) 아브라함이 처음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제단(祭壇)을 쌓은 그곳에서 단을 쌓는다(창12:6,7). 이는 자신이 아브라함 언약을 이을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요 자신이 거주하는 땅이 하나님께서 거룩히 구별하여 주신 약속의 땅임을 천명하는 것이다.
◐本文 小考◑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겸손해졌다. 야곱이 죽음 앞에 서게 되자, 자신과 및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들이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가 홀로 남게 되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성찰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통회 자복하며 자신에게 참(眞)된 복(福)을 달라고 간구한다.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달라졌다. 이제 옛 사람 야곱이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인 이스라엘이 된 것이다(고후5:17). 그 변화된 모습은 전에는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아왔던 야곱에서 성령을 좇아 살아가는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스라엘이 된 것이다.
첫째 : 하나님께서 에서의 굳은 마음을 풀어주셨다.
야곱이 미리 보낸 사절단도 에서의 마음을 풀어지게 할 수 없었다. 한 떼 두 떼로 나누어 보낸 550마리의 선물도 에서의 굳은 마음을 돌려놓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절대 절명의 위기에서 야곱이 하나님께 간구하자 복수심에 불타던 에서의 마음을 풀어주신 것이다. 어떻게 에서의 마음이 풀어지도록 역사하셨을까?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일방적으로 주장하여 풀어주신 것이 아니다. 야곱이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나아가는 행위를 통하여 에서의 마음이 풀어지도록 역사하신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야곱의 간구를 들으시고 야곱에게 이렇게 행하도록 말씀하셨고 말씀하신 그대로 일곱 번 머리를 땅에 굽히며 나아가는 야곱의 순종을 통하여 에서의 마음이 풀어지도록 역사 하셨던 것이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리고는 일방적인 역사를 기대하고 아무 것도 행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그 역사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문제를 놓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잠잠히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둘째 : 엘 엘로헤 이스라엘
삼위하나님을 예배드리며 신앙하는 것을 특권으로 여기는가?
야곱은 조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하나님께 단을 쌓았던 그 세겜에서 단을 쌓았다. 그리고 그 장소를 ‘엘 엘로헤 이스라엘’(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전능하시다)이라고 당당히 명명한다. 이 제사는 자신이 언약의 후손임을 확인하는 제사였으며,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예배였다. 또한 거느린 가솔들과 또한 代代孫孫(대대손손)이 여호와를 경외할 것을 공포하는 제사였다.
우리의 신앙과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믿음의 후손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의 특권이다. 이 세상은 수많은 인간이 존재하고 그들은 수많은 신들을 숭배한다. 그러나 창조주요 영원하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으며 오직 선택받은 사람만이 드릴 수 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만의 특권이다.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셋째 : 視線(시선)과 생각(思考)을 하나님의 시선과 마음으로 바꿔야 한다.
거듭나기 전에 야곱이 바라본 형은 사납고 욕심이 많으며 무식한 형이었다. 팥죽 사건과 상속 사건이후 복수심에만 불타는 형이라고 생각했다. 상처와 아픔이 에서를 굴곡지게 바라보고 치우쳐 생각하게 되는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얍복 강나루에서 하나님을 경험한 야곱의 마음과 생각과 시선은 바뀌었다. 야곱의 고백을 들어보자. “형의 얼굴을 뵈옵는 것이 마치 하나님얼굴을 뵈옵는 것 같습니다”
예화 : 인간의 생각의 한계- 미국의 한 주일학교 교사가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주일학교에 오신다는 꿈이었습니다. 그녀는 주님을 맞이할 아이들을 정돈하여 앉히라는 말에 맨 앞자리에는 백인아이들을 그다음은 황인종아이들을 그다음자리는 갈색인종아이들을 그리고 맨 뒤에 흑색인종아이들을 앉혔다. 다 앉히고 앞에서 보니 뭔가 이상하게 생각되어 다시 자리를 배치하려고 하는데 모든 것이 점점 더 엉망이 되었다. 그 때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주님의 발자국 소리였다. 당황해하며 정돈하려 했지만 드디어 교실 앞에서 발자국 소리가 멈춰 섰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눈을 들어 아이들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렇게 정돈 시키려고 했던 아이들의 피부색은 온데간데없고 그냥 순수한 아이들만 있었다. 혹 우리는 인종과 사람에 대한 편견은 없는지 ㅠ
우리가 가진 偏見(편견)은 없는지 우리의 시선과 생각을 바꿔야 한다. 우리가 가진 偏見(편견)은 단어 그대로 어떤 사건이나 상처로 인하여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받고 거듭났다는 것은 단순히 영혼만 거듭났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의 시선, 우리의 생각, 우리의 마음까지 그리스도의 눈과 생각과 마음으로 바뀌게 된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