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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ontents.premium.naver.com/kimdong/knowledge/contents/240204071531432pz
요즘은 MBTI를 모르면 대화에 끼어들기도
어렵습니다. 자기소개를 할 땐, 어김없이
자신의 MBTI를 말하곤 합니다. 자진해서 말하지
않을 땐, 여지없이 질문을 받기도 하죠. 한 사람의
성향을 아는 게 그만큼 큰 관심사가 된 것은 무수
히 낯선 이들과 마주치며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의
생활방식과 그 고단함을 떠올리게 합니다.
저는 MBTI 보다는 고대인들의 체액설을 더 좋아
합니다. 둘 모두 그저 '재미삼아' 인간 유형 분류
를 하는 것이라는 조건에서 말입니다. MBTI가 단
순한 이항대립의 조합이라면, 4체액설은 존재론
과 우주론을 내장하고 있죠. '유비, 유추'의 힘으
로 상상력을 풍부하게 자극합니다. 아래의 표는 4
체액설의 의미론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습
니다.
예컨대 저는 매운 맛을 좋아하고, 4계절 중 가을
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렇다면 멜랑콜리 체질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손발이 냉하고 건조한 편입니다. 나이는 장년에
속하니까 멜랑콜리 기질이 성할 때지만, 지금은
겨울밤이어서인지 그렇게까지 우울하지는 않습니
다. 만일 제가 멜랑콜리커라면, 반항 기질이 있어
야 할 텐데, 일상사에서 반항적인 모습을 자주 보
이지는 않는 걸로 보아서 그걸 억압하는 데 많은
힘을 쓰는 것 같기도 합니다. 시간을 뜻하는 행성
인 토성Saturn에 친근감이 들어서 가끔씩 밤하늘
을 볼 땐 찾아보곤 하지요.
4체액설은 한의학의 사상의학과 약간 닮아 있습
니다. 인간을 넷으로 분류한 점에서 그렇습니다.
한의학이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인간을 분류했
다면, 서양의 4체액설은 지수화풍이라는 만물의
근본 4원소가 소우주인 인체에서 4체액으로 투영
되었다는 생각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역시나 서양
인들은 의학 영역에서도 실체론적 사유방식을 가
동시킨 셈입니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인
류 멸망 직전 극소수의 어린이들만 살아남는다
면, 그 아이들에게 해 줄 말로 '세상은 원자로 되
어 있다'를 꼽았던 것은 이처럼 유구한 역사를 가
졌습니다.
https://namu.wiki/w/4%EC%B2%B4%EC%95%A1%EC%84%A4
1. 개요
히포크라테스학파에서 정리하여 갈레노스에 의해 중세까지 지배적인 학문이었던 생리학가설.
4원소설을 근원으로 두고 있어서 엠페도클레스의 제자들이 처음으로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학문이 대부분 그렇듯이 한 성인에 의해 갑자기 생겨났다기보다는 그보다 훨씬 전에 세간에 떠돌던 의학정보들을 모아모아 4체액설을 정립했다는 것이 합당하다.
히포크라테스학파는 의학은 하나의 학문이자 과학이라는 관점을 공유하였다. 이에 근거하여 질병에 대한 자연철학적 접근을 시도하였고 이런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체액설이다. 당시에는 대부분 질병이 신이 내린 징벌이나, 악행에 대한 벌로 보고 굿이나 무당을 불러 치료(?)했는데, 이를 이성적으로 바라보려 했다는 점에서 4체액설은 그 의의가 크다.
이에 따르면, 각각 4원소에 대응되는 혈액(blood→air)[1], 점액(phlegm→water)[2], 황담액(yellow bile→fire)[3], 흑담액(black bile→earth)[4]의 네 가지 체액이 인체를 이루는 기본 성분으로, 이 체액들의 불균형이 일어나게 되면 질병이 야기된다.
사람은 저마다 한 가지 체액이 월등히 우세한 기질로 태어난다고 믿었던 의사들은 환자가 찾아오면 성격 검사부터 시작했다. 기원전식 혈액형별 성격론 사상의학
계절의 변화를 거치는 동안 4체액은 번갈아가면서 체액이 증가하게 되는데, 따뜻한 성질의 혈액은 봄에, 습한 성질을 가진 황담액은 여름에, 건조한 성질의 흑담액은 가을에, 차가운 성질인 점액은 겨울에 우세를 점하며, 이로 인한 질병들이 생겨나게 된다. 이에 근거하여 질병을 다혈질(sanguine temperament), 담즙질(choleric temperament), 흑담즙질(melancholic temperament), 점액질(phlegmatic temperament)로 분류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질병의 성질에 맞는 치료법을 제시하였다.[5]
하지만 이 치료법이라는 게 참 끔찍했는데, 체액을 빼내는게 중요했던만큼 일부러 구토, 이뇨, 설사 등을 일으키는게 치료법이랍시고 자행되었다. 구토제로선 독극물인 비소가 애용되었고,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6] 특히 사혈은 거의 무안단물급 만병통치약으로 사용되었는데 두통, 질병, 심지어 정신병에도 사혈로서 대응을 했다.(...) 당연히 효과는 거의 없었고 오히려 과다출혈로 사망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만약 사혈한 곳에 감염이라도 된다면 이미 환자는 저세상에... 거기에 이 뽑아낸 피를 아무데나 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곧 흑사병이 전유럽에 퍼지게 되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
그러나 히포크라테스학파 내에서 지배적인 입장은 아니었다. 몇몇 논고에서는 담액과 점액만을 인정하였으며, 다른 논고에서는 이 체액설 자체를 다루지 않기도 하였다.
4체액설이 지배적인 학설이 된 것은 갈레노스의 업적이 크며, 그의 이론을 바탕으로 이슬람권의 이븐 시나 등의 의학자들에 의해 발전되어왔다.
갈레노스의 4체액설은 히포크라테스학파의 4체액설을 계승하여 하나의 방대한 체계를 만들었다. 그는 인체의 기본 성분이 4체액이라는 관점 하에 네가지 체액이 결합하여 조직들을 만들고, 조직들이 결합하여 기관들을 형성하며, 이 기관들이 엮어져서 신체를 이룬다고 주장하였다.
네이버캐스트에서 이 4체액설에 관해 정리해둔 글이 있다. 참고해 보도록 하자.
2. 후대 학자들의 비판
4체액설에 대한 비판은 고대에도 있어왔다. 에라시스트라토스는 4체액설을 부정하고 병은 장기의 이상에 의해 생겨난다는 고체병리설을 주장했다.
3. 현대
현대의 4체액설은 4기질론 혹은 DISC 기질론으로 계승되어 인간 개개인의 타고난 성격의 기질을 분류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물론 의학으로서의 4체액설을 수용한 것이 아니라 명칭만 따온 정도다. 다만 사람의 성격기질을 12가지만으로 분류할 수 있냐는 비판적 견해가 있으며 그리 힘이 있는 추세까지는 아니다.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일본의 라이트 노벨인 늑대와 향신료에서 크래프트 로렌스가 호로의 몸상태를 염려해 밍밍한 사과주를 주면서 "인간은 4가지 종류의 상태가 있다"며 "사람의 몸은 차고, 뜨겁고, 건조하고, 습한 상태가 있고 이는 음식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당시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4체액설을 차용한 내용인 것이 확실.
https://ko.wikipedia.org/wiki/%EC%82%AC%EC%B2%B4%EC%95%A1%EC%84%A4
사체액설
사체액설(四體液說, 영어: Humor theory)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 의사들과 철학자들이 주장하던 인체의 구성 원리이다. 히포크라테스가 의학적 치료원리로 주장했으며, 혈관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 9세기가 되기 전까지 가장 영향력있는 의학 이론이었다. 르네상스 이후 해부학이 발전한 16세기~18세기 들어 이러한 액체병리학은 쇠퇴되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그리스의 엠페도클레스및 히포크라테스가 발전시킨 4체액설은 2000년 전 당시 모든 질병이라는 결과에는 이를 야기하는 원인이 있으며 이를 액체의 변화에서 찾는 일종의 액체병리학 이론은 질병이 죄를 지어서 생기는 것이거나 주술로 이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변화 때문에 생긴다는 가설을 세워 인류 최초로 질병의 원인을 이성적으로 설명해보려 했다는점이 이후 인류가 질병에 대한 과학적 접근의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만큼은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개요
4원소와 4 체액설
기본적으로 인간의 몸이 네 가지의 체액으로 차 있으며, 체액들 사이의 균형이 맞으면 건강한 상태라고 생각했다. 모든 병과 심신의 장애는 체액들 중 하나라도 모자라거나 넘치는데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네 가지 체액은 다음과 같다.
혈액 (血液, blood)
점액 (粘液, phlegm)
황담즙 (黃膽汁, yellow bile)
흑담즙 (黑膽汁, black bile)
이것은 각각 사계절과 네 가지 원소(공기, 물, 불, 흙)에 대응된다.
다혈질 (多血質, sanguine temperament)
점액질 (粘液質, phlegmatic temperament)
담즙질 (膽汁質, choleric temperament)
우울질 (憂鬱質, melancholic temperament)
한편 서로 대칭되는 한 쌍의 체액이 전체적인 불균형을 야기해서 병이된다는 이러한 이론은 혈액은 심장, 점액은 뇌, 담즙은 담낭, 물은 지라에서 만들어진다고 추측하였으며 이처럼 각각 만들어지는 관련 장기들은 음식물을 섭취해 영양분을 계속 공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질병은 체액이 모자라거나 넘치는 경우로 이는 영양분이 새로이 공급되지 못한 경우나 몸이 외부로부터 데미지를 입거나 피로해진 경우 또는 주변환경의 변화로 체액이 건조해지나 심하게 변한 경우 생긴다고 여겼다.
4체액설, 네 가지 체액이 건강과 성격을 정한다?
4체액설, 네 가지 체액이 건강과 성격을 정한다?
현재 사용되는 의학용어 중 다수는 그리스어로 돼 있다. 이는 그리스 의학이 현대의학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렇듯 고대 문명의 의료 중 그리스 의학은 현대의학과 가장 가까운 성격을 가졌다. 원시사회에서 질병을 고치는 일은 무당이나 주술사들이 담당했다. 이는 죄를 지었거나 좋지 않은 행위에 대해 신이 벌을 내린 결과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B.C 7세기경부터 질병을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연적, 과학적, 논리적으로 파악하려고 애썼다. 이러한 그리스인의 자연철학을 바탕으로 질병이 생기는 이유를 이성적으로 설명하려고 한 최초의 이론이 4체액설이다. 네 가지 체액으로 질병이 생기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했을까?
네 가지 체액이 균형을 이뤄야 건강하다
4체액설은 철학자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기원전 약490년~430년)가 처음으로 주장했던 4원소설에 근원을 두고 있다. 4원소설은 우주는 흙, 공기, 물, 불(earth, air, water, fire)의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으로, 현재 일부분만 남아 있는 엠페도클레스의 시 ‘자연의 시(Poem on Nature)’에 해설돼 있다.
한편 4체액설은 그의 제자들이 처음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의 몸은 냉, 건, 습, 열(cold, dry, moist, hot)의 성질을 가진 4가지 체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이 균형 잡힌 상태일 때 건강하다는 학설이다. 4가지 체액은 피, 점액, 황담즙, 흑담즙이다. 피는 열하고 습하며, 점액은 차고 습하다. 황담즙은 열하고 건조하며 흑담즙은 차고 건조하다. 4체액설에 의하면 한 원소가 많을 때 반대가 되는 원소를 보충해주는 것이 좋은 치료법이다. 또 각각의 사람은 어느 한 가지 체액을 중심으로 평형을 이루고 있는데, 그것으로 개인의 체질을 구분할 수 있다는 일종의 의학 이론이었다.
히포크라테스는 엠페도클레스의 이론을 도입해 4체액설을 정리했는데, 이는 질병의 원인을 액체의 변화에서 찾는 일종의 액체병리학 이론이었다. 히포크라테스는 인간이 정액, 즉 체액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액체가 생명의 근원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는 처음부터 일관되게 공통적으로 혈액(blood), 담즙(bile), 점액(phlegm) 세 가지 체액이 사람의 몸을 이룬다고 인정했다. 네 번째 체액은 초기에는 물(water)이었으나 후일 흑담즙(black bile)으로 바뀌었다. 두 종류의 서로 반대되는 두 쌍의 체액 간의 불균형이 병이 된다는 이 학설은 대칭과 균형을 추구했던 피타고라스 학파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추정된다. 수학적 사색을 중시한 피타고라스 학파는 4라는 숫자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모든 체액은 각각 만들어지는 관련 장기가 있었다. 혈액은 심장에서, 점액은 머리에서, 담즙은 담낭에서, 물은 지라에서 만들어졌다. 이 체액들은 음식물을 통해 항상 새로 보충되기 때문에 영양이 중요했다. 질병은 체액이 남거나 모자라는 경우, 몸이 충격을 받거나 피로한 경우, 기압의 변화로 체액이 굳거나 녹아 다르게 변한 경우 생긴다고 설명했다.
천오백 년 동안 정설로 자리잡았던 4체액설
로마의 갈레노스(Claudios Galenos, 129년~199년)는 4체액설을 다시 정리해 가장 올바른 의학 이론이라 전파했다. 당시 그의 영향력은 중세에 이르기까지 거의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4체액설은 천오백 년 동안 의학계의 정설로 자리 잡았었다.
4체액설을 변하지 않는 진리로 믿은 중세 의사들의 치료법은 단순했다. 기본적으로 모든 병에 식이요법, 즉 부족해진 체액을 보충하는 음식을 섭취하도록 하면서 너무 많아져서 균형이 맞지 않게 된 체액들을 뽑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몸에서 무엇인가를 뽑아내는 치료법을 배출법이라 하는데 토하는 약을 먹이거나, 코가 나오게 재채기를 시키거나, 설사하도록 약을 먹이거나, 피를 뽑는 방법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를 끌었던 치료법은 방혈, 혹은 사혈이라고 부르는 피를 뽑는 치료였다. 예를 들어 열이 나는 환자에게는 열성을 나타내는 혈액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 피를 뽑았다.
4체액설은 체액의 부조화 때문이 아니라 몸 일부분이 다치거나 상해 질병이 생긴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 쇠퇴하게 됐다. 16세기 해부학자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 1514년~1564년), 17세기 생리학자 하비(William Harvey, 1578년~1657년) 18세기 병리학자 모르가니(Giovanni Battista Morgagni, 1682년~1771년)와 같은 과학자들의 실험과 관찰에 의해 갈레노스의 의학이 무조건 옳다는 고정관념이 깨진 것이다.
18세기 후반 모르가니가 사체해부를 근거로 신체 장기의 국소적 변화 때문에 임상증상이 나타남을 증명하자 액체병리학설이 부정됐다. 의료 현장에서는 이 시기부터 피를 뽑는 치료가 점차 설 곳을 잃었다. 19세기 중반 모든 치료법의 효과를 수학적으로 검증해 한다는 개념이 도입된 이후에는 피를 뽑는 치료가 거의 사라지게 됐다.
2000년 전 그리스 의학자들은 자연철학을 바탕으로 질병이 죄를 지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변화 때문에 생긴다는 가설을 세워 인류 최초로 질병의 원인을 이성적으로 설명해보려 했다. 고도로 발달한 현대의학의 혜택을 받는 현대인들에게 이 학설은 우스꽝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4체액설은 의학이 장차 과학적으로 발전해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 수 있다.
글 / 이재담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 jdlee@amc.seoul.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