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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6일(수)
* 시작 기도
주님...
어젯밤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서 정전이 되었습니다.
두어 시간 정전이 되었는데 그 시간 찜통 같은 더위를 감내해야 했습니다.
에어컨과 선풍기를 켤 수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두 시간 후에 불이 들어온다는 것을 알면 그나마 견디기 쉬울 텐데 그걸 알 수 없기에 더 힘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다윗이 당한 고난에 비하겠습니까?
우리 주님이 겪으신 그 수난에 비할 수 있겠는지요?
작은 일에도 늘 주님 앞에서 겸비한 자 되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죄로 얼룩진 나의 영과 육을 씻어주시고 주님의 마음을 닮은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이 하루도 주와 연합한 주의 날이 되게 하소서.
정희영집사를 주의 품에 품어주소서.
6개월 항암치료를 먼저 한 후에 수술을 한다네요.
거칠고 험난한 여정을 주의 강한 손으로 꼬옥 잡아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본문 / 시 31:9-24
제목 : 주의 은밀한 곳, 비밀한 장막에 감추어 주심.
9 여호와여 내가 고통 중에 있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근심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10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11 내가 모든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12 내가 잊어버린 바 됨이 죽은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깨진 그릇과 같으니이다.
13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었으므로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였나이다. 그들이 나를 치려고 함께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14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15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주소서.
16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17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나를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악인들을 부끄럽게 하사 스올에서 잠잠하게 하소서.
18 교만하고 완악한 말로 무례히 의인을 치는 거짓 입술이 말 못하는 자 되게 하소서.
19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20 주께서 그들을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말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
21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견고한 성에서 그의 놀라운 사랑을 내게 보이셨음이로다.
22 내가 놀라서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나이다.
23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24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 나의 묵상
주님, 내가 고통 속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너무 답답한 나머지 한으로 인하여 눈이 짓무르고 몸과 영혼까지 기력을 잃었습니다.
나의 평생이 슬픔으로 지났으며 그 일상이 탄식 속에 흘러갔습니다. 나의 힘은 죄악으로 인하여 쇠약해지되 뼈가 상할 정도로 약해졌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대적하는 원수들로 인하여 갖은 욕을 당하고 비난을 받는다. 그래서 자신의 친구들이 이를 보고 놀라며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그런 자신을 보고 피하여 간다.
이는 천 넌 후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본 이사야 선지자의 고백에서도 동일하게 나오는 말씀이다.
(사 53:2-3)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는 마치 땅에 떨어진 연한 장미꽃잎이 지나가는 뭇 사람들의 발길에 짓이겨진 모습과 동일하다.
가스펠송에 이런 가사가 있다.
모든 능력과 모든 권세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주님
세상이 측량할 수 없는 지혜로 모든 만물 창조하셨네.
모든 나라와 모든 보좌 이 세상 모든 경이로움보다
이 세상 모든 값진 보물보다 더욱 귀하신 나의 주님.
십자가 고통 당하사 버림받고 외면당하셨네.
짓밟힌 장미꽃처럼 나를 위해 죽으셨네 나의 주.
다윗은 육신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보다 1,000년이나 앞선 이스라엘의 성군이다.
하지만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전부터 왕이 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청년의 때에는 자기를 정말 아끼던 왕 사울이 그랬고, 왕이 된 후에는 자기의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아들 압살롬이 그러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정말이지 그는 일생을 슬픔으로 보냈고 나날이 탄식으로 보낸 자였다.
그런 그가 이 고난의 근거를 다른 이들에게 돌리기보다 자기 자신의 죄로 인함임을 고백한다.
(10절)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이뿐 아니라 그는 자신이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으므로 자기의 죄를 깊이 회개하며 죄로 범벅이 된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내어놓는다.
(시 51: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이처럼 그의 고난의 상황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을 그대로 보여준다.
몰론 다윗은 자신의 죄로 인하여 당하는 고난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심에도 우리의 죄 아니 나의 죄를 위하여 친히 죄가 되셔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채찍질과 온갖 고초를 당하시고 십자가에 온 몸을 찢기심은 짓밟힌 장미꽃과 같이 온 몸뚱이가 으깨지신 것이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한편 다윗은 사람들에게 잊혀진 자와 같이 된 것이 마치 죽은 자가 사람들에게 잊혀진 것처럼 또한 깨진 그릇과 같이 무가치한 존재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자기를 대적하는 무리들이 그의 생명을 앗아가려고 사방으로 욱여싸고 있어서 그의 사방은 온통 두려움과 공포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주를 의지하며 고백하기를 주님만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한다.
자신의 남은 날들이 모두 주님의 손에 있기에 자신을 주님의 품에 품으시고 자신의 원수들과 대적들의 손에서 건져주기를 간구한다.
다윗은 아둘람 굴을 하나님의 품으로 삼고 그곳에 자신의 몸을 누인다.
그 자리가 바로 성전이요 하나님의 품속이기 때문이다.
(삼상 22:1-2)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400명가량 이었더라.
아둘람 굴로 피한 다윗이 쓴 시가 시편 57편이다.
(시 57: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이 시에서 다윗은 자신의 몸을 피한 아둘람 굴을 일컬어 주께로 피하였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주의 날개 그늘 아래며 그곳에서 모든 재앙들이 지나가기까지 피할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는 심지어 그가 당하는 재앙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들이 판 웅덩이로 인하여 자기가 빠질 뻔하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오히려 웅덩이를 판 자들이 그 웅덩이에 빠지고 말았노라고 말한다.
(시 57:6)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 중에 빠졌도다.
이런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다윗이 비관하지 않는 것은 늘 하나님과 연합 속에서 교제와 사귐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놀랍게 찬양을 이어간다.
(시 57:7-11)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다윗의 이 찬송은 다윗 자신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의 찬송은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찬송이다.
이는 바울이 부른 그리스도에 대한 찬가를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골 1:13-20)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의 삶을 고해(苦海) 즉 고통의 바다라고들 한다.
일견 틀린 말은 아니다.
뒤돌아보면 우리의 지나온 삶이 기쁨과 즐거움의 시간보다 고난과 힘들었던 시간이 훨씬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런 고통의 시간을 넉넉히 이겨낼 수 있는 것은 그저 단순히 그 시간이 지나가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복음송을 즐겨 부르기도 하지만, 그것이 모든 해법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은 목동 다윗이 왕위에 오르자 자신이 교만해질까 혹은 절망하여 쓰러질까 두려워한 나머지 금세공업자를 불러서 이런 명령을 했다고 한다. ‘전쟁에서 거둔 승리로 한껏 오른 자만심을 눌러주고, 낙담해 있을 때 용기를 줄 수 있는 반지를 하나 만들어 오라.“ 이 명령을 받은 세공업자는 반지는 완성을 했지만 거기에 새겨넣을 문구를 찾지 못했을 때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게 문구를 하나 알려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솔로몬이 이 문구 곧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말해주었고 세공업자는 그 반지에 이 문구를 새겨서 다윗에게 주었다. 다윗은 그 반지를 보고 매우 흡족했고 그 반지를 보면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렸다는 일화가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마음을 새기면서 교만을 낮출 수 있고, 또한 아무리 절망에 빠지더라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마음을 새기면서 그 절망을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성경적인 말이 아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떤 상황을 당하든지 항상 기뻐할 것을 명한다.
(살전 5:16) 항상 기뻐하라.
우리가 무덤의 상황에 빠져 절망스러운 나날을 보낼 때조차 기뻐할 수 있는 것은 그 무덤의 상황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께서 주신 것임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하여 그 무덤 안에서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교제할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 때 상황은 전혀 바뀌지 않고 여전히 암흑과 같은 어둠의 상황이지만 만물보다 높고 위에 계시는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심령의 평안을 누리게 된다.
그 때 누리는 평안이 진짜 기쁨이요 하늘의 기쁨인 것이다.
나는 이런 평안과 기쁨을 알지 못하는 자였다.
문제가 생기고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이 상황을 모면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엎드려 기도하고 이를 해결할 만한 사람을 찾아다니기에 매진하던 자였다.
어떻게 해서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이 해결은 완전하지 못하다.
또 다른 곳에서 둑이 무너지는 조그만 구멍들이 만들어진다.
문제는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고 ‘아멘’으로 수용하고 용납하는 것이 진짜 해답이다.
그 안에서 이전보다 더욱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과 그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해결책이요 방법인 것이다.
나는 이를 알지 못하여 계속해서 남의 다리만 긁는 헛수고만 행했던 것이다.
그런데 끝까지 참으신 주님께서는 이런 나를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복음을 알게 하셔서 영생의 비밀을 깨닫게 하셨다.
이 비밀이 나를 살렸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거한다.
나는 주님 안에, 주님은 내 안에 거하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지금 이 시간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양식을 얻어먹는다.
오늘 다윗을 통하여 부른 놀라운 고백, 그리스도의 찬가가 나의 고백이 되어 소리 높여 부른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를 믿음으로 수용하게 하시고 주님을 예배하는 참된 예배자가 되게 하소서.
나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셔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주신 그 놀라우신 은혜 앞에 머리를 조아립니다.
지옥의 아랫목이 내가 거해야 할 처소인데, 나를 그런 곳이 아닌 영원한 기쁨이 넘치는 아버지의 나라로 인도하셨으니 이게 웬 은혜요 웬 사랑인지요?
감당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 앞에 목이 매일 뿐입니다.
두근거리는 나의 가슴을 주님 아시지요?
주님의 귀에는 들리시지요?
이 감사와 감격의 방망이 소리를 주님이 받으소서.
천국의 소망이 되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선교사님
어제 정전이 되셨다니~
저도 남의 다리 긁던 자에서
지금은 제 다리를 긁고 있습니다
더운 여름~
아버지 집에서 평안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주의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