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백년 前(1926년) 이번 週(6월10일)
백년100년 전 이번 주는 순종의 인산(因山.장례)과 관련된 기사와 사진으로 가득 찼다.
또한 눈길을 끄는 것은 인산 중에 발생한 6.10만세운동 소식이다.
1926년 6월12일 동아일보 기사를 통해 만세운동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자.
'6월10일 인산 당일에 사내 학생들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서 '조선OO만세'를 높이 부르며
다수의 격문서(檄文書.어떤 일을 여러 사람에게 알려 부추기는 글)를 일반 관중에게 산포했다.
경찰 당국에 많은 학생과 그 외 청년들이 검거된 사건에 대하여 어제 11일 총독부 경무국에서 발표한 범위 안에서
그 상세를 보도하면 다음과 같다.
돈화문 앞 = 오전 8시30분 종로 단성사 앞에서 국장의 행렬이 통과한 뒤에 중앙고등보통학교 생도 약 30~40명이
만세를 고창(高唱)하며 격문서 1000여장을 산포했다.
그 격문서는 6월7일에 시내 종로 중앙기독청년학관에 다니던 학생 박두종(34)과 연희전문 학생 박하균(23),
이병립(23)과 경성예과대학 학생 이천진(23)과 중앙고보 학생 이선호(19) 외 다섯 학생이 협의하고,
격문서 6000장과 태극기 30여 개를 만들어 가지고 동지들에게 나눠주었다.
인산 당일 박두종은 격문서 500장을 가지고 그중 200장은 청년회관 어떤 학생에게 나누어 주고
또 250장은 시대일보 배달부 김난환에게 준 후 그 나머지는 자기가 가지고 있다가
위 장소에서 중앙고소보 학생들과 함꼐 산포한 것이다.
격문 인쇄에 사용 한 인쇄 기계 명함 박는 것 한 대와 잉크와 활자(活字) 등도 압수하였다고 한다.
* 사범교 부근 = 당일 오전 9시 반경에 청년학관 생도 박두종 외 학생 아닌 청년 두 사람이 경성사범학교 앞에서
격문서 1000여 장을 산포하며 만세를 고창하였다.
* 훈련원 부근 = 당일 오후 1시경에 훈련원 재전(齋殿) 부근에서 학생 한 명이 구(舊) 한국기(韓國旗를 두르며 만세를 높이 불렀다.
* 동대문 경과 = 당일 오후 1시10분경에 동재대문부인병원 안에서 대여(대여.국상 떄에 쓰는 큰 상여)가 지나가신 후
시대일보 배달부 김낙환 외 두 청년이 격문서를 뿌리며 만세를 고창하였다.
* 창신동 부근 = 경성 창신동 체석장 입구에서 50세가량 된 노인 한 사람이 만세를 고창하였다.(시간은 미상).
*신설리 부근 = 당일 오후 1시45분경에 시외 고양군 숭인면 신설리에서 대여가 고무 회사 앞을 지나갈 때에
어떤 학생이 격문서 100여 장을 산포하였다.
동묘 부근 = 당일 오후 2시20분경에 동대문 박 똥묘 앞에서 학생 4명이 격문서 약 700장을 선포하였는데,
그것을 산포한 학생들은 시내 통동 71번지 중동학교 생도 박룡규, 청진동 곽재형, 낙원동 205번지 휘문고보 생도 황정환,
재동 53번지의 2 중앙고보 생도 리동환 등이며, 그들은 5월 하순경부터 등사판을 얻어다가 4000여 장의 격문서를 등사한 것이라고.'
19세기발전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