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그렇지, 견훤 성질머리에 거길 그대로 놔둘리가 없었습니다.
;;;
공산 전투 승리 전후인가 어느 시점에서, 견훤이 기어이 아자개의 근거지 전체를 포함한
상주 -문경 일대를 후백제에 강제로 병합했더군요.
요약하면 끝내 화를 참지 못하고 우격다짐으로 군사력으로 확 밀어버렸습니다.
물론 문경 외엔 생각보다 저항은 별로 없었는데
아자개가 물러서줬을 개연성도 없지 않으나,
이미 상주 - 문경 일대를 후백제가 군사력이 모자라서 내비뒀던 게 아니므로
견훤의 인내심이 끊어진 순간 상주-문경 일대는 어떻게 더 저항해볼 상황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한편 문경의 세력가가 좀 게겨본 모양인데 당연한 말로 초토화 크리 ;;;
이 상황에서 아자개가 그때까지 살아있었다면 견훤하고 무슨 일이 있었을진.....매우 흥미진진한 일입니다.
설령 아자개는 죽었어도 이복동생들은 어떻게든 견훤 앞에서 기든가 해야 했겠죠.
다만 견훤 이복동생들의 후손들이 죄다 견씨로 바꾸고 견훤을 자랑스러워 했던 걸로 보면 생각보다
큰 갈등은 없었을 수도 있었겠습니다.
제가 더 읽어보고 올릴 예정입니다만, 놀랍다면 놀랍고 놀랍지 않다면 놀랍지 않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첫댓글 후삼국 시대에 최고의 야전사령관인 인물의 인내심이 끊긴 뒤면...
후삼국시대의 인물들은 기록 부실이 뼈져리게 느껴지는 군요
그래도 재구성이 어려울 정도는 아닙니다. 몇몇 양반들이 자꾸 조선왕조 기준으로 남은 기록 유무를 따지는데 정말 큰 병폐입니다. ;; 조선이 이례적으로 기록문화가 융성해서 그런거지, 다른 시기 다른 나라에 비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 있는 수준입니다.
고려는 물론 그 고백신보다도 자료가 크게 부족한 마한진한변한도 상당 부분 신뢰성 있게 재구성되고 있는 마당에 뭔 아직까지도 기록이 있네 없네만 얘기하고 있는지 간혹 어리둥절할 때가 있습니다.
@마법의활 그렇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히익 설마 ㅎ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