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조위, 장만옥이 주연한 영화 『화양연화(花樣年華)』(2000)는 배우자들의 불륜을 눈치챈 두 사람이 '우리도 확 그냥...' 하는 본능과 우린 그럴 수 없다는 이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모습을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는데...결국 이성의 편에선 그들은 각자의 길을 가게 되고, 훗날 양조위는 그들이 처음 만났던 아파트를 혼자 찾아가 자기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었던 그때를 돌아보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지나온 긴 세월을 돌아볼 때 나의 인생에서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언제였을까? 때로 가만히 자문해 보면 한결같이 언제였다고 뚜렷하게 떠오르는 아름다운 시절은 없었던 것 같다. 마음 먹은 게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뭘 새삼스레 화양연화의 시기를 콕 찝어 말할 수 있을까만 굳이 다시 새로운 삶을 위해 과거로 돌아가고픈 마음 또한 전혀 들지 않은 것은 애초 화려한 삶에의 의지가 없었다고나 할까...
역사를 빛낸 위인들의 전기가 으레 말하듯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하지만, 내겐 타고난 어떤 특별한 능력도 없을 뿐 아니라 집요하다할 의지조차 눈곱만큼도 없었으니, 언감생심 무슨 화양연화를 꿈꿀 마음이나 있었을까만...
황해도 출신의 작곡가 윤용하(尹龍河) 선생의 생애를 보면 수재는 처음부터 타고나야 함을 말하고 있다고 보는데...그는 보통학교 졸업 수준의 학력으로 교회 성가대 활동과 일본인 성가대 지휘자에게서 틈틈이 화성학을 배웠을 뿐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운 곡들을 많이도 작곡했는지 신기할 정도라고 할 것이다.
2022년 우정사업본부는 윤용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우표를 발행하였는데, 우표 속의 사진은 그가 서울 동북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할 때 애국가를 지휘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사진에서 선생의 모습 어디에도 음악적 수재의 면모, 이를테면 섬세한 얼굴, 신경질적 표정 등 뭐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 그냥 평범한, 어쩌면 조금은 괴짜 같으면서도 자유분방한 모습이랄까 뭐 하튼 예술가적인 풍모는 찾을 수 없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만...
그의 삶이 녹록치 않았던 게 일본의 태평양전쟁에 징집되지 않으려고 도망치고 이후 북한에서 생활하다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남쪽으로 내려왔으나, 곧 6.25전쟁으로 부산으로 피난을 떠나는 등 갖은 고생을 겪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어려운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도 자기보다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한다.
윤용하 선생의 인생에서 화양연화의 시기는 그가 동북고등학교 음악교사로 채용되어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게 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인 바, 그 시기 동안 오페라 소품, 가곡 ,그리고 동요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곡활동을 하였다. 긴 세월 동안 사회적 불안과 함께 가정생활도 궁핍하기 이를 데 없을 정도였음에도 그의 음악은 아름답다. 그것도 그냥 아름다운 게 아니라 눈물겹게 아름답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를 이야기하기로 했으면서 어쩌다 이야기가 윤용하 선생 이야기를 하니 주제가 삼천포로 빠졌나? 굳이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화양연화의 시기는 바로 윤용하 선생의 음악을 아이들과 함께 불렀던 그 옛날이었다고 하겠다. 그때 선생의 음악을 듣고 부르며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고 희망을 노래할 수 있었으니, 이후 성공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가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고 하겠다.
윤용하 선생이 작곡한 음악 몇 곡을 들으며, 그리 자랑스럽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쥐구멍 속으로 숨을 정도로 크게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는 나의 그 시절을 돌아본다. 뭐 제 잘난 맛에 사는 게 인생 아녀?
1. 보리밭- 박화목 시, 윤용하 곡, Jacob Koller 편곡·피아노연주
2. 고독- 황인호 시, 윤용하 곡, 조해음 편곡·일렉트릭 피아노 연주
3. 고독- 황인호 시, 윤용하 곡, 테너 안형일
4. 추억- 조병화 시, 윤용하 곡, 소프라노 곽신형
5. 나뭇잎배- 박홍근 사, 윤용하 곡, 이성원 노래
6. 봄비- 김요섭 사, 윤용하 곡, 김희성 팬플룻